16. 어느 누구도 자기와 같은,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죄인이 진실로 회심하고 뒤이어 관상으로 부르심 받고 아울러 자신의 영성지도자와 자기 양심으로부터 온전히 인정받은 상태에서. 이제 감히 하나님께 겸허한 사랑을 바치고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가로놓인 그 무지의 구름 속으로 은밀하게 발을 들이민다고 해서, 스스로를 건방지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죄인들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표상인 막달라 마리아를 관상생활로 부르시면서 "네 죄는 용서받았다."(눅 7:47)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까닭은 그녀가 몹시 슬퍼했기 때문도 아니요, 귀신의 죄를 심히 걱정했기 때문도 아니며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관상하며 겸손을 보였기 때문도 아니요, 다만 그녀가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은밀하고 간절한 사랑이 우리 주님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루거나 상상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물론 나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죄를 깊이 뉘우치고 쓰라린 눈물을 흘렸으며,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생각하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우리처럼 비천하고 상습적인 죄인들 역시 평생토록 참회하고 두려워하며 경외하고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떠올리며 더없이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됩니까? 마리아와 똑같은 방법으로 하면 틀림없습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죄를 뼈저리게 아파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 죄를 마음과 기억 속에 부담으로 안고 평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서가 보여주고 있듯이 그녀가 한결 더 애처롭게 슬퍼하고, 한결 더 간절하게 열망하고, 더욱더 애절하게 한숨짓고, 정말로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번민했던 것은 하나님을 더욱더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그녀가 자신의 죄를 되새기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깊이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더욱더 사랑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조금도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더 사랑하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자신이 모든 죄인 가운데서 가장 끔찍한 죄인이고, 자신의 죄가 그토록 깊이 사랑하는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심연을 만들었으며, 자기가 나약해지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지 못한 주요 원인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과연 그녀는 열망의 봉우리에서 사악한 삶의 나락으로 내려와 죄악의 쓰레기더미며 하수구를 뒤져서 자신이 범한 죄 하나하나를 건져내고, 하나씩 주워 올릴 때마다 찬찬히 뜯어보며 슬퍼하고 통곡했던가요? 물론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녀의 영혼 안에서 당신의 은총을 통해 그런 식으로 해서는 결코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녀가 그런 식으로 처신했다면 그녀는 범한 죄를 용서받기보다는 다시 죄를 범했을 공산이 훨씬 높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자신의 사랑과 간절한 소망을 이 무지의 구름에다 걸었었고, 그리하여 이승에서는 이성으로 확연하게 이해하기불가능하고 감성으로 즐거움을 누릴 수 없는 어떤 것을 사랑할 줄 알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녀는 사랑이 너무나도 깊은 나머지 그만 자신이 죄인이었다는 사실까지 곧잘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생각에 그녀는 우리 주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는 동안, 주로 그분의 신성을 사랑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그분의 육체가 축복받은 고귀한 것임에도 그 아름다움과 감미로움에는 생각이 거의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점에 있어서는 육체적이든 영․신적이든 다른 어떤 것에도 생각이 기울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이 대목에서 복음서의 가르침은 바로 이 점에 있었다고 봅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