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수도원의 처음, 빛은 동방에서

 

 

 

수도자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

이 어떻게 이웃과 세상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몸으로 보여주었다. 때로는 금욕으로, 때로는 희생으로, 때로는 가난으로, 그들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본모습을 나타내 보여주었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신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정한 자기 포기와 세상과의 일정한 거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종교는 절대자인 신과 초월적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세상은 그 초월적 세계를 위한 준비 또는 훈련 과정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이 세상을 중심 가치로 놓고 살아가는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그렇다고 억지로 한다거나 내세를 위해서 현재의 삶을 희생한다는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주장하는 것들을 벗어나 일정한 거리를 두었을 때 찾아오는 정신적 만족감과 평안은 세상에 매달려 살 때에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세상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수도자는 세상을 아예 버린 사람들, 세상을 아예 떠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런 수도자들이 함께 모여 살며, 제도화된 것이 수도원이다.

 

 

 

 

1. 수도원의 성서적 배경

 

기독교 수도원이나 수도자가 나타난 것은 물론 기독교만의

독특한 배경을 갖는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기독교 일반에 대한 간략한 설명부터 시작해 보자.

기독교의 원줄기는 유대교이다. 유대교는 이스라엘의 민족종교이다. 유대교의 경전이자 기독교의 경전이기도 한 구약성서에 의하면 세상과 사람의 시작은 야훼 하나님이라는 신에 의해서이다. 이 야훼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또 앞으로도 영원토록 거기에 그렇게 계신다. 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했고, 이들에게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 나라와 이 백성의 역사를 통해서 사람이 야훼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하지만 이 야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은 그것을 올바로 해내지 못했다. 그들은 야훼의 명령인 율법을 지키지도 않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즐거워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는 국가적 불행으로 나타났다. 국가가 이스라엘과 유대라는 두 나라로 갈라지고, 각 나라들은 시간적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강대국에 의해 망하고 말았다(주전 587년). 이렇게 망한 이후, 이 하나님의 백성은 예언자를 통해 알려준 것인, "구원자 메시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 백성을 구원해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구약성서의 내용이다.

하지만 신약성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 즉 유대인들은 정작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왔을 때 그리고 그 자신이 메시아라고 선포했을 때,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이라는 특정한 민족과 국가에 묶어 놓았고, 그래서 그들은 구원이라는 단어를 민족이나 국가의 독립으로 이해했다. 구체적으로는 로마제국으로부터 그들을 독립시켜줄 영웅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철저하게 절대자 하나님 앞에 선 개인을 가르쳤다. 그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부끄러운 존재인지를 깨달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기를 권한다. 그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는 징표로 강물 속에 들어가서 죄를 씻는 의식인 세례를 권한다. 그는 국가와 민족, 특정한 교리에 매인 유대교적 하나님을 인간의 하나님, 인간의 고통과 아픔을 알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그런 하나님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유대인들의 권력자들은 이 예수를용납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고, 누구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예수는 그들이 기대하는 메시아 -로마제국으로부터 그들을 독립시키고, 이스라엘을 위대한 나라로 변모시킬 구원자- 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자칭 메시아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당시 (로마의 속국이어서 사람을 사형시킬 권한이 없었던 그들은 예수에게 반란을 주도한 혐의를 씌워 로마제국에 고발함으로써 십자가에서 죽도록 했다.

하지만 예수에게는 이런 십자가의 죽음 역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려면 자신을 죽여야만 한다는 신앙적 표지였다. 자신의 세계, 자신만의 삶, 자신만의 가치관에 빠져 서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포기하고 죽어야만, 즉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다는 참된 신앙의 모습을 죽음을 통해서 보여준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는 죽은 지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났고,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 땅에서 가르친 것들, 삶과 죽음을 통해 가르친 것들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알려줄 것을 부탁하고, 하늘로 승천했다. 승천하면서 그는 또한 그 모습 그대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그 때는 실패자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올바르게 선포할 영원한 승리자의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했다.

남겨진 제자들은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의 삶과 가르침을 이 세상에 전하는 데 자신들의 삶을 바쳤다. 예수를 통해서 새로운 삶을 얻었고, 그의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삶이 약속되어 있다는 증거를 가졌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두려움도 없었고, 어떤 어려움도 방해가 되지 못했다. 그의 제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예수의 복음을 전했다. 이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이 하나의 조직체, 제도화된 기관으로 발전했고, 역사적으로 기독교라는 종교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신약성서의 내용이다. 전해 오는 바에 의하면 이 제자들 대부분은 기독교를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제자들의 이러한 삶, 또 그들에 의해 기독교 신앙을 알고믿게 된 사람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가 이미 가르치고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던 것으로, 이 세상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살지만, 스스로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자기 인식을 갖고 있었다. 예수는 스스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18:36)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그가 원하는 삶을 살길 원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대해 더 이상의 미련과 관심을 갖지 않아야했다. 그들의 관심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살며 다가올 미래, 다음 생을 준비하는 것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전했으며, 이런 활동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제도화된 기관으로 나타난 것이 교회이고, 기독교이다.

결국 이 세상에 남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내세를 위한 준비였다.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예수가 이 세상에 다시 왔을 때 그의 제자로 받아들여지고, 영원한 나라에 함께 있기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준비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들의 결론은 예수를 따라서 사는 삶이었다. 이것은 보통 '그리스도를 본받음'이라는 뜻의 라틴어 경구 '이미타치오 크리스티(Imitatio Christi)'로 요약되는데, 후대에 만들어진 말이지만 수도자나 올바른 기독교 신앙인을 가장 잘 요약한 말로 전해져 내려온다. 이런 삶은 물론 예수 또는 제자들의 삶을 그대로 모방해서 산다는 말이다. 제자들의 삶을 따르는 삶 또한 '사도적 삶'이라는 뜻의 '비타아포스틀리(Vita Apostoli)'로 요약되어, 수도자의 삶을 나타내는 또 다른 경구가 된다. 이런 삶은 이 땅에서 예수가 살았던 삶의 모습과 제자들이 살았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생겨났다. 예수는 이 땅에 살면서 결혼을 하지 않았고, 특정한 거처가 없이 방랑생활을 했다. 또한 돈이 많고 부유한 청년에게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따를 것을 명령하고 있다. 한편 제자들 역시 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이었다.(마 19:27) 예수는 또 사람들에게 어렵고 힘들어도 자기의 삶을 일정부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로 각자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를 것을 명하고 있기도 하다(마 10:38; 16:24; 막 8:34; 눅 14:27). 성서의 이런 가르침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영원한 나라를 얻기 위해 택한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 셈이다.

이것은 흔히 역사적으로 초기 기독교인들이 강력한 종말론적 삶을 살았다고 설명되는 배경이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부활을 통해서 세상에 속한 가장 큰 권력인 죽음을 이긴 것처럼, 그들 역시 세상의 유혹과 박해를 이기고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세상의 것들을 전부 또는 일정 부분 포기하는 '금욕적 삶'으로 나타난다. 이 금욕적 삶의 모습이 바로 수도원 제도가 만들어지는 바탕이다.

 

 

2. 금욕에서 수도원으로

 

금욕의 삶이 수도원 제도로 발전해 가는 과정은 꽤 오랜 기간 동안 몇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이루어진다. 금욕적 삶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난 것이 초기 기독교(2-3세기경)에 발견되는 독신주의자들과 방랑사도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들은 교회가 제도화되어 가면서 교회 내에서 독특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모습들은 보통 독신주의, 음식이나 옷 등의 삶에서 필수적인 것을 최소한으로 하는 금욕의 형태, 또는 좀 특별한 금욕의 모습인 순교 등으로 나타났다. 이 모습들은 흔히 거룩한 생활, 경건의 생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 등으로 정리되는데, 이것은 포괄적 의미의 순교로 요약할 수 있다. 원래 죽음으로 자신의 신앙이 옳음을 증거해 보인다는 뜻을 가진 순교는 세속의 권력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순교자들은 글자 그대로 내세의 행복과 영광을 위해 이 땅에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버린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 순교의 개념은 점차 폭넓게 해석되어, (신앙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죽은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께 완전히 드렸다는 뜻의) 세상에 대해 죽은 자, 세상적인 것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 삶까지를 포괄하게 되었다. 즉, 금욕적 삶은 순교의 독특한 형태로 이해되었고, 동시에 진실한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금욕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드리기를 원했다. 자신의 육체가 원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루 종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명상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진 본성을 넘어, 인간이 사는 삶의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하늘로부터의 위로를 받고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유세비우스) 또, 이것은 참되고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금욕가들에게 세상은 너무 번거로운 장소였다. 그들은 가정은 물론 교회도 때로는 그들의 영적인 삶, 신의 뜻을 알기 위해 명상하는 삶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들이 금욕의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소위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피해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세금을 내야 했고, 전쟁 시에 군인으로 징발되어야 했으며, 국가가 필요한 경우 부역의 의무도 져야 함과 동시에, 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이나 그들이 속해 있는 가정에서의 일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은 이런 세상을 등지고 떠나, 홀로 은둔하는 삶을 살면서 금욕의 이상(理想)을 따르는 것이었다. 이런 참의 모습은 당시 사람들에게 이미 낯설지 않은 생활 형태였다. 당시 그리스의 문화적 전통에 의하면, 이것은 이미 견유(犬儒)학파라고 알려진 철학의 한 분파가 갖고 있던 삶의 모습이었고, 세례 요한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옳은 삶을 살기 위해 광야로 나가 메뚜기와 돌꿀(석청,石淸)을 먹으며 살았던 모습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누구에 의해서, 또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3세기를 전후해서 이집트와 소아시아, 또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지역에서 보통의 인간이 사는 모습을 포기하고 성경 묵상, 기도와 명상을 위해서 광야로 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점차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적으로 광야로 나가서 은둔적 삶, 금욕적 삶을 살았던 것이 기독교 최초의 광야 금욕이고, 이것이 발전해서 기독교 내에 수용되고 제도적으로 형상화된 것이 수도원이다.

 

 

3. 동방교회에서 시작된 수도원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수도원의 처음 시작은 금욕과 은들

의 삶이다. 이런 기독교적 금욕의 삶은 기독교의 자생적 삶의 형태가 아니라 헬라문화의 금욕 전통에서 배워 온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금욕에서 사용되는 그리스어를 통해서 추적해 보면 쉽게 드러난다. 우리말로 금욕이라고 번역되는 그리스어는아스케시스(ασκησις)로, 연습이나 훈련을 뜻한다. 이 단어는 원래 손으로 무엇을 만들어 완성한다거나, 완전하고 모범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하는 운동이나 훈련을 의미했다. 그러나 점차로 어떤 이상에 도달한 인간이 되기 위해 하는 모든 노력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그리스의 문화적 배경 상 이 단어는 일차적으로 '미덕 훈련'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육체를 떠나 영혼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이라는 종교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것을 위해 음식을 제한한다거나, 무소유로 산다거나, 본능을 억제한다는 등의 구체적 방편이 나타났다. 구체적 방편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역시 금욕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그리스어 아나호레인(αναχορειν)다. 이것의 원 뜻은 도피 혹은 거부이며, 가족관계나 인간관계 또는 인간적 욕구를 끊는 것을 말한다.

또 다른 하나는 은둔이라고 번역되는 그리스어 에레미아(ερημια)로, 문명화된 삶의 방식을 벗어나서 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플라톤이나 스토아학파, 후기 유대 묵시사상 등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방식으로, 기독교가 로마제국 내에서 세력을 얻기 이전에 이미 하나의 전통으로 확립되어 있었다. 더구나 이런 금욕의 전통은 참된 종교의 특징으로까지 인식되고 있었다. 위에서 이미 살펴본 것처럼 기독교 역시 이런 금욕 이상(理想)을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토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 금욕자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던 것이다. 즉, 2-3세기에 기독교가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주요한 종교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기독교 금욕 이상이 헬라의 전통적 금욕 형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그래서 나타난 것이 기독교 금욕자들인 것이다. 헬라식 금욕 전통을 기독교금욕 방식으로 설명한다면 아마도 기독교 금욕의 삶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조건인 하나님이 원하는 완전한 삶을 완성하기 위해 가족이나 인간관계를 끊고(아나흐레안, 또 세상의모든 문화적인 것과 단절(에레미아)하고, 참회와 회개 그리고 기도와 명상을 통해 하나님을 추구하는 훈련(아스케시스)이라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삶을 받아들인 기독교 금욕자들은 그 형식과 외양은 헬라 전통에서 이어받고 있었지만, 그 내적인 의미는 기독교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고자 했다. 이러한 기독교적 이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기독교적인 금욕의 삶을 나타내는 새로운 용어들이다. 누구에 의해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독교 수도자는 그리스어의 혼자라는 뜻, 또는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뜻의 모나코스(μωναχος)라고 불렸고, 이러한 삶의 방식이 서방에 전해지면서 이 단어의 라틴어 표기인 모나쿠스(monachus)가 기독교 수도자라는 뜻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단어에서 수도원 모나스테리움(라틴어: monasterium, 영어 : monastery, 독일어 : mönchtum)이 파생되었다. 보통 수도원 건물을 의미하는 단어인 클라우스트룸(라틴어: claustrum, 영어 : cloister, 독일어 : kloster)은 라틴어 클라우데레(claudere)에서 직접 파생된 단어로, 폐쇄된 공간, 단절된 장소를 지칭하며, 일반적으로 신앙적 동기로 함께 모여 사는 장소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똑같이 수도원을 의미하는 단어지만 모나스테리움은 그리스어에서 전이되어 라틴 기독교에 자리 잡은 것이고, 클라우스트룸은 수도적 삶의 의미를 받아들여 서방 기독교가 직접 만들어낸 용어임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고 기독교 수도원이 가지는 금욕적 삶의 양태가 헬라 금욕 전통의 단순한 모방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유대교 전통의 쿰란(Qumran) 공동체나 에세네파(Essenes)에서 볼 수 있듯, 유대교를 비롯한 고대의 종교들 대부분이 금욕의 전통을 갖고 있었고, 원시 기독교 역시 금욕의 이상을 갖고 있었다. 이 이상은 헬라의 금욕 전통과 만나면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어원을 통한 고찰에서 본 것처럼 기독교 수도원은 처음에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헬라 문화 공간에서 시작되었고, 이것이 서방세계, 즉 라틴어를 사용하는 문화 공간으로 옮겨갔다. 실제로 기독교 내에서 이런 은둔적 또는 수도원적 삶이 나타난 것은 3세기경으로, 이집트에서 처음 시작되어 소아시아와 시리아 지역에서도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수도자(원)의 첫 모습들

 

수도자적 삶의 모습이 처음으로 나타난 곳은 이집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록상 그렇고 실제로는 오히려 팔레스타인이나 시리아 지역에서 먼저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어쨌든 각 지역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에서의 삶을 포기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이집트에서 나타난 수도자들은 수도원 역사에서 특히 중요하다. 그 이유는 이집트에서 나타난 수도자의 삶의 형태가 은둔자적 형태와 공동체적 형태라는 수도원의 전통적 형태를 고스란히 보여주어, 후대에 기독교 수도자나 수도원의 전형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와 기타 지역들에서 나타났던 수도자들의 모습들을 살펴보자.

이집트에서 광야로 나가 기독교적 금욕 이상을 실천하며 은둔자로 산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인물은 이집트인인 안토니우스(Antonius, ?~356)이다. 이 은둔 금욕가는 삼위일체 교리로 유명한 신학자인 아타나시우스가 쓴 전기인 안토니우스의 생애(Vita Antonii)를 통해서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초기의 은둔 금욕가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보통 천막이나 직접 지은 오두막 또는 무너진 성채나 버려진 무덤, 동굴 같은 데서 살았으며, 그들의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기도와 명상이었다. 그들은 육체노동도 의무로 여겼고, 보통 광주리나 만줄, 담요 같은 것을 만드는 일을 했다. 노동은 '일하지 않는 자는먹지도 말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단인 동시에, 삶을위한 최소한의 것을 얻는 수단이자 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금욕 수도자는 홀로 은둔생활을 하는 것이지만 금욕자가 되려는 사람은 보통 이미 명망을 얻고 있는 은둔 수도자에게 찾아가 그에게 지도를 받았으며, 자유롭게 다른 수도자를 찾아갈 수 있었다(금욕수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명망 있는 수도자를 찾아가 "스승이여, 생명을 구원할 말씀을 들려주십시오"라는 말로 그 배움을 시작했다). 안토니우스가 광야 금욕 수도자의 삶을 시작했을 때 역시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때에 이미 많은 수의 광야 금욕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중 명망 있는 수도자는 자연스럽게 광야 금욕자들의 정신적 구심점을 이루었다. 이렇게 스승이 되는 수도자들의 말은 참생명을 주는 말로 받아들여졌으며, 이들에게 가르침을 받는자들은 스승 수도자의 영적인 자녀로 여겨졌기 때문에, 스승은 아랍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압바(abba), 여자 스승은 암마(amma)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말은 나중에 수도원장을 뜻하는 용어가 된다. 또, 이 스승들이 가르치는 말들이 묶여서 처음에는 구전으로, 나중에는 기록으로 전해지게 되는데, 이것이 발전해서 수도원 규범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집트에서 금욕자들이 모여 살던 대표적인 지역은 나일강삼각주 지역의 북서쪽인 스케티스(Sketis), 니트리아(Nitria), 켈리아(Kellia), 또 북 이집트의 테바이스(Thebais) 등 이었다.

이런 개인적 금욕의 형태는 한 장소에 많은 수도자들이 모여서 한 사람의 지도 하에 공동체로서 단일화된 수도생활을 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런 형태는 4세기경, 기록상으로는 은둔 수도자적 삶의 형태와 비슷한 시기에 나타나는데, 이렇게 공동체적 수도원 생활 형태를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은역시 이집트 수도자인 파코미우스(Phachomius, ?~347)이다. 원래 은둔 수도자 출신이었던 그는 처음에는 은둔 금욕자의 삶을 살았으나 금욕자들을 조직화하는 재능을 보였다. 원래 그가 사람들을 모아서 조직체로 만든 이유는 봉사하기 위해서였다. 광야 금욕자들이나 은둔 수도자들에게 방문객이 많이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성숙한 인격과 상담에 응할 만한 식견을 가진 수도자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는 320-325년경 이집트의 척박한 지역인 타메네제(Tabennese) 지역에 첫 기독교 수도원을 세웠다. 이때 그는 신약성서 4장에 나타나는 예루살렘 원시 공동체를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수도자는 한마음, 한 영혼이어야 하며 생활에는 최소한의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공동 거주, 공동 노동과 공동 기도, 식사와 삶, 또 의복에서의 단순 소박함, 문서로 규정된 공동체적 규범에 따른 생활, 상급자에 대한 순종). 그가 제정한 규칙에는 순종이 강조되어 있어서 모든 수도자는 상위자에게 순종해야 하며, 상위자나 원장은 또한 그 지역의 주교에게 순종하는 것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파코미우스 역시 노동을 수도자의 필수 요소로 정해 놓고 있는데, 노동을 통해 생긴 생산물은 자신들이 필요한 최소의 것을 제외하고는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곧이어 그를 모방한 많은 수도원이 세워졌고, 공동체 생활은 수도자의 필수 요소가 되었으며, 수도자가 되기 위해서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이로써 수도자들이 광야에서 은둔자나 금욕 수도자로서 추구하는 이상이 수도원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파코미우스가 만들어낸, 공동체에서 규범을 따르는 수도자 생활방식은 갑바도기아의 주교이자 교부였던 가이사랴의 바실리우스(Basilius von Caesrea, c. 329~379)가 이 방식을 근거로 수도규칙을 저술함으로 신학적으로 정리되었다. 그는 노동과 공동체 생활이 완전한 기독교인이 되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인 금욕보다는 공동생활을 더 강조했다. 그는 수도자란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예배드리며, 소박하고 순결하게 온전한 삶을 사는 자들이라고 정리했다. 이것으로 바실리우스는 특별히 동방교회 수도원과 수도자의 삶의 모습에 대한 신학적 스승이 되었다.

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지역, 시리아 지역에도 은둔 수도자나 공동생활 수도원이 형성되었다. 이곳에 수도원이 생긴 것은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로 4세기경으로 추정되는데, 은둔 수도자 단체와 공동체 수도원이 혼재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예루살렘 지역의 대표적인 수도원은 예루살렘 북부 바란 지역에 세워진 라우라(Laura)라고 불리는 수도원으로, 공동체 전체를 위한 건물 및 방과 함께, 은둔 수도자들을 위한 천막과 동굴도 가지고 있는 형태였다. 라우라 수도원의 생활방식은 5-6세기에 팔레스타인 전체로 퍼져 나갔는데, 갑바도기아에서 온 사바(Saba, ?~532)가 469년부터 사해 근방에서 은둔자로 살면서 몇 개의 라우라를 세웠다. 그는 483년에 예루살렘 남동쪽 은둔자 동굴에 대 라우라를 세웠는데, 동방교회의 유명한 신학자이자 시인, 또 설교자로 이름 높은 다메섹의 요한(Johannes von Damaskus)이 임종을 맞이한 곳이기도 하다. 이 라우라는 현재까지 남아 있다.

시리아 지역의 수도원 형태는 좀 특별하다. 시리아 지역은 특별히 참회가 강조되었다. 이는 기묘한 형태의 금욕으로 나타나서, 쇠사슬에 묶여서 지내기도 했고, 야생으로 살면서 밤의 추위와 낮의 더위 또는 해충이나 자연의 위협에 몸을 맡기고 살기도 했다. 재미있는 형태 중 하나는 역사적으로 주상(柱上) 금욕으로 알려진, 높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서 생활하는 방식의 수도생활이다. 이런 주상 금욕자로 시므온(Symeon, 389/90-459)이 널리 알려졌는데, 그는 412년에 은둔 금욕생활을 시작했다가 10년이 지난 후에 3m 높이의 기둥 위에서 수도했고, 나중에서는 20m 높이의 기둥 위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이런 기묘한 형태의 금욕은 동방교회의 다른 지역에도 전해져 어떤 주상금욕자는 사제 서품을 기둥 위에서 받기도 했다. 이런 주상 금욕자들은 사람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순례자로서 방문하기도 했다.

비잔틴, 즉 소아시아 지역의 금욕자들이나 수도원들은 이미 언급한 가이사랴의 바실리우스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수도사의 삶을 배우려고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을 여행했으며,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수도자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수도원 규칙을 제정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창조했다는 주장을 하며, 수도자 생활의 핵심을 공동생활에다 두어서 후대에 수도원적 삶이 공동체적 삶으로 규정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에게서 발견되는 특별한 요소는 수도원을 광야나 황량한 곳이 아닌 도시 한복판에 세웠다는 것이다. 담으로 둘러싸이긴 했지만 도시 속에 만들어진 인공 광야로서의 수도원은 후대 수도원 발전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다. 세상과 단절하기 위한 열망을 가지고 광야로 나가던 열정이 이제는 세상 속에서 세상을 포기하는 훈련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바실리우스는 수도원을 교회와 같은 것으로 규정하고, 도시에 세워진 수도원들이 사회 구제 기관과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의 사상은 동방교회 수도원의 모범이 되었고, 그 결과 그의 수도원 공동체는 동방교회 수도원의 전형이 되었으며, 그에게는 동방교회 수도원의 아버지라는 칭호가 붙어 있다.

비잔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수도원은 집정관 출신의 스투디오스(Studios)가 463년에 세운 스투디우(Studiu)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은 탁월한 원장인 데오도르(Theodois Studites, 759-826)의 지도 하에 798년부터 비잔틴 수도원의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는 바실리우스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원장의 엄격한 영적 지도, 기도와 명상의 적절한 조화, 육체적 노동과 금욕의 적절한 조화를 이룩해 놓았다. 테오도르의 이 전통은 후대에 그리스 지역의 대표적 수도원인 아토스(Athos)수도원에서 거의 그대로 물려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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