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수도원과 현대사회

 

18세기 이후 오늘날까지의 시기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동요와 격변이 심했던 시기이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 이후 절대 왕정의 몰락과 시민계층의 대두, 이로 인한 민주정치 체제의 출현으로 새로운 정치와 국가 질서가 만들어지지만, 국가들 속에 내재된 국가주의는 제국주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욕구를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제국주의는 제1-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서 계몽주의 이후 찬양을 받아온 인간의 이성에 심각한 회의를 던져주었다. 오늘날 역시 자본주의의 이름으로, 또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인간과 사회, 또 양심을 지배하고 예속하고 있다. 마치 이성은 인간의 문제에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이‥‥‥‥ 이런 문제점의 대두와 걸맞게 현대에 들어오면서 수도원이 새로운 부흥기를 맞는 것은 어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은 미미하고 부분적이긴 하지만, 이것은 이성에 근거한 인간의 노력이 한계를 절감하고 다시금 신적 질서에 동참하는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신성에 참여하고자 하는 수도자의 이상, 그 노력과 의지가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1. 수도원의 부활

 

근대 사회에서 국가가 수도회에 대해 그렇게 혹독한 대접을 했던 이유는 중세시대에 국가가 교회에 예속되어 당해야 했던 아픔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세 황금기를 나타내 주는 표징인 십자군전쟁이나 스콜라 신학은 국가와 사상이 교회에 예속되어있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근대 유럽의 나라들은 교회나 교황으로부터의 실질적 독립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수도원에 대한 국가의 정책에 그대로 나타나서, 혹독한 세속화 정책으로 수도원을 국가 기관화하거나 해체해서 더 이상 가톨릭의 첨병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것은 반대로 보면 중앙 집권적 근대 국가로 발전해 가야 했던 각 나라들에게 가톨릭교회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위협 세력이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근대의 국가들이 체제를 정비해 중앙 집권적 정치체제가 자리 잡게 되고, 시민계급을 통한 정치 · 사회적 안정을 갖게 되자 각 나라들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바로 국민과 사회에 대한 복지 문제가 국가와 사회의 새로운 과제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 과제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통해서 더욱 구체화 되었다. 자본주의 하의 근대사회에서 물질적 부가 중요하게 되면서 빈부격차와 가난의 문제가 근대 사회의 국가적 과제로 떠 올랐던 것이다.

이런 새로운 사회구조 속에서 국가와 사람들은 수도원과 수도자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그들은 수도자와 수도원이 사는 삶의 방식이 주는 의미, 또 그들의 활동인,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교육, 구제, 간호 등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고, 그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때 모든 수도원은 해체되었다고 공식적으로 공포했던 프랑스 정부는 1807년, 빈센트 폰 바울 수도회 소속의 박애 자매단이라는 여성 수도회의 활동 재개를 허락했다. 이들의 활동은 프랑스 황제가 직접 나서서 도왔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이 박애 자매단이 오는 것을 환영했다. 이것은 유럽 전역에서 수도원 활동의 재개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런 흐름은 1814년 교황 피우스 7세에 의한 예수회의 공식 부활 선언으로 나타났다. 예수회는 1773년 해체 선언 이후 공식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사제들의 모임으로 그 뿌리는 계속 살아 있었고, 또 러시아에서는 지방회 형태로 공식 조직이 존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황이 예수회 부활을 선언한 지 6년 만에 회원수가 2천 명에 이를 만큼 급속히 성장했다. 그러나 비록 재건은 되었지만 성격을 규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논쟁이 되는 부분은 예수회가 새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가, 아니면 첫 예수회 모습의 복원인가 하는 것이었다. 교황청은 총회를 주선했고, 1820년의 총회에서 옛것과 새것을 조화시키는 강령을 채택했다. 조직은 옛것을 그대로 받되, 거기에 새로운 환경의 요구를 추가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교와 민중 선교, 해외 선교, 피정(避靜) 등의 전통적 활동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고, 새로운 과제로 교황과 가톨릭교회를 위한 신학과 교회 정책의 개발을 결정했다.

예수회가 재조직되어 활동에 나서자 가톨릭교회는 다른 수도회 조직을 복원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셨다. 전통적인 수도원인 시토 수도회, 도미니크 수도회 등이 그 대상이었다. 교회의 복구 정책은 각 수도회를 각각 하나의 연합체로 통합해서 단일화된 새로운 조직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은 물론 종교개혁 이후 나라나 지역별로 나뉘어 그 사회에 맞는 독자적 프로그램에 익숙해 있던 수도원을 교황을 구심점으로 다시 모으려는 의도와 함께, 또 수도회별로 통일된 생활방식을 만들어 체계적 부활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황청의 이런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각 수도회들은 우선 독자적 성격이 너무 강해져 있었고, 교황청이 중심이 되어 수도원을 교황청의 예속 기관으로 두려는 의도에 별로 찬성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영주들의 권력이 강했던 독일 지역의 수도원들 중에는 만일 교황이나 다른 나라의 수도원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경우 영주들에 의해 다시금 해체될 위험을 갖고 있어서 이 계획에 동참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연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재조직되지는 못했지만, 각각의 수도원들에게 새로운 활력과 생명력이 불어넣어진 것만은 분명했다.

새롭게 조직되고 부활한 수도원들이 해야 할 일은 처음부터 자명했다. 소위 혁명의 시대를 통해서 사람들 가운에 뿌리깊이 자리잡은 증오심을 치료해내는 것이었다. 또한 전통적으로 수도자의 일이자 당시 사회에 새로운 과제로 등장하고 있던 민중의 학교 교육이나 구제 등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였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에서 출발한 이들의 활동은 각 나라에서 훌륭한 성공을 거두었고, 더구나 새로운 빈민계층을 만들어낸 산업혁명 이후에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들은 또한 전쟁 후에는 나라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 전쟁고아나 부상자들, 극빈자들에 대한 간호와 교육 등을 담당해서 수도자 활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했다.

이러한 수도원 복고 운동은 마침내 프랑스에 솔레스메 수도원이 세워짐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프랑스의 젊은 신부 구에랑(Proster Louis Pascal Gueranger, 1805~ 1875)은 솔레스메 수도원을 설립해 교황의 승인을 얻었고, 전통적인 형태인 원장의 자율적 선출, 관상 기도에 전념하는 것을 이상으로 내세웠다. 시대적 요구가 아니라 전통적 의미의 수도자 이상을 가진 수도원이 새롭게 출현했던 것이다. 원장으로 선출된 구에랑은 첫 번째 과제로 예배의 복원을 시도했다. 축제적 분위기의 예배는 중세 클루니 수도원의 예배를 회상시켰다. 이것은 예베에 대한 갱신으로 이어졌고, 새로운 베네딕트 예배 모범도 만들어냈다.

솔레스메 수도원은 전통적 수도원의 복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그렇다고 근대 사회에서 만들어진 수도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중세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 많은 복원과 복권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은 일부이고, 사실은 근대 이후의 수도원에서는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수도자적 삶의 모습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그리고 그 특징은 "교회적이며 무정부 상태로"라는 말로 요약된다. 교회적이라는 말은 제도권 교회로서의 정형적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에 대한 봉사와 그들을 향한 선교를 말하며, 무정부적이란 교권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개인의 신앙적 고백에 따라 수도자적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현대 사회의 수도원은 제도권 교회나 교황권의 지도와 감독을 받는 "전통적 수도원"과 어떤 수도원 분파나 계율에도 묶이지 않고, 또 일상적인 삶을 살면서 개인의 신앙에 따라 수도자적인 삶을 사는 '내면적 수도지들(제3수도회라고 불린다)'이 공존하고 있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2. 개신교 수도원

 

현대 사회가 수도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개신교에서 보여준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역설이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수도원에 대해 적대적이었으나, 재세례파의 한뿌리인 헤른후트 공동체는 개신교의 수도원적 공동생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 흐름은 17세기에 경건주의를 통해서 계속 이어지게 되는데, 형제자매단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개신교조직 내의 디아코니(Dionie, 구제사업)라는 조직으로 이어져 왔다. 이런 활동은 개신교 안에 남아 있는 수도원 활동의 흔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런 조직은 17세기 전후, 많은 나라에서 수도원들이 해체되고, 개신교가 수도원들이 해오던 역할을 넘겨받으면서 구체화되기도 했다. 특히 옥스퍼드 운동의 전통을 갖고 있는 영국에서 이런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스칸디나비아나 독일에서도 디아코니가 이런 운동을 주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에 개신교 공동체의 활동은 많이 활발해졌다. 이런 모임들은 빈민 구제나 선교 등 전통적 의미의 수도회 활동보다는 신앙적 재각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옛날 수도회들의 신앙적 가치를 재발견해서, 축제적 예배, 공동 기도회, 이웃 사랑의 적극적 실천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활동들은 세속화 시기에 가톨릭 수도원들이 보여준 모습들과 정확하게 일치하는데, 이것은 또한 현대 수도 공동체의 일반적 특징이기도 하다. '서로 닮아 있음'과 '활동의 유사함'은 에큐메니칼(ecumenical)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기독교의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좋은 방편이라는 점에서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전통적으로 수도원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프랑스에 수도원적 개신교 모임인 떼제 공동체(La Commu- nautede Taize)가 세워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이 공동체의 설립자는 스위스 사람인 로제 슈츠(Roger Schutz, 1915~)로 칼빈주의 신학자이다. 그는 1940년 클루니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곳인 떼제에 정착했는데, 1944년 공동체를 세웠고, 1949년부터는 전통적 수도자의 선서인 재산의 공유, 독신주의, 절대적인 순종을 내세우면서 원장에 취임했다. 슈츠의 원래 목적은 칼빈주의 신학 입장에서 청소년을 신앙으로 양육하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은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는 에큐메니칼적 청소년 운동으로 바뀌었고, 오늘날에는 세계 에큐베니칼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1974년에 그가 조직한 청소년회의는 이 떼제 공동체가 세계 청소년들이 교파의 차이를 넘어 단순 소박한 삶, 관상의 삶을 살도록 하며, 기독교 교회들이 대화를 하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은 1969년부터 가톨릭 교인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고, 회원들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터져 나오는 곳이면 세계 어느 곳이든 가서 그리스도인들의 속죄, 다툼의 해결, 공동체로 살아가기 등을 실천하고 있다.

또 하나 소개해야 할 단체는 라브리(L'Abti) 공동체이다. 미국인 목사였던 프란시스 쉐퍼는 유럽 방문을 통해서 제2차세계대전 후의 유럽이 신앙적으로 와해된 것을 발견하고, 이러한 신앙적 혼돈에 대해 하나님은 살아 있고, 인간의 삶 자체를 구원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다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려는 목적으로, 1948년 가족과 함께 스위스로 이주했다. 그들은 1955년 스위스에 라브리 공동체를 세웠고, 아무런 외부의 도움 없이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그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공동체적 삶을 시작했다. 그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집을 개방했으며, 찾아오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그들의 삶을 실천해 나갔다. 이 모임의 원칙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계획을 세우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 일에 대한 당신의 계획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직접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라브리 공동체의 목적은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현재 우리들의 삶에 실제로 활동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공동체는 인간의 불행과 고통이 생명과 삶의 근원인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 자신의 힘으로 사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육체적인 가치관을 떠나 영적인 눈을 뜨고, 신성의 실체에 들어감으로써 인간이 가진 근본적 불안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삶은 유럽과 전 세계에 커다란 공명을 일으켰고, 현재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10개국이 넘는 곳에 지부가 있을 만큼 성공을 거두고 있다.

 

 

제5장 현대 수도원.hwp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