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동방 수도원의 초기 형태

 

 

 

 

교회에서 빠져 나온 금욕자들은 광야로 나가 광야 금욕자들이 되었는데, 이들은 혼자 살았다. 이것이 가장 단순한 형태로 시작된 곳은 이집트였다. 이 결과 이집트는 수도원이 처음 시작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동방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어 있던 다른 지역에도 이미 이집트의 수도원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생성된 수도원이 있었고, 4세기에는 교회권 전역에 퍼져 있었다.

우선 수도원의 전형적 모습을 제공하고 있는 이집트 수도원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이집트의 수도원에 관해서 말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이 금욕자 안토니(Antonius)이다.

안토니가 유명해진 까닭은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가 안토니가 사망(356년)한지 얼마 안 되어 그의 전기를 저술했기 때문이다.

「안토니의 생애」는 백 년이 넘는 이집트 수도사들의 삶을 잘 전해 주고 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아타나시우스가 안토니의 전기를 집필한 이유가 이 수도사들의 생활 자체를 기술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체계화된 수도사의 삶을 설명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신학적 교회 정치적 개념에 맞는 수도사의 상을 그려내려고 했다.

아타나시우스의 전기에 의하면 안토니는 275년 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이집트의 경계 지역에 있던 광야로 갔다. 아타나시우스는 이러한 광야에서의 삶이 젊은 안토니가 갑작스럽게 스스로 찾아낸 생활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 주고 있다. 안토니는 광야에 가서 젊어서부터 광야의 한쪽 끝에 살고 있던 한 금욕가에게 자신을 의탁한다. 이 내용은 광야 금욕의 초기 형태가 어떠했는지를 알려 준다. 그들은 은둔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교회로부터의 빠져 나와서 은둔적 삶을 사는 이러한 삶의 형태는(즉 스스로 숨어서 사는 것) 개인적으로 행해졌다. 자신의 생활 주거지를 광야에 갖고 있는 사람인 금욕자는 혼자, 개인별로 살았다. 그렇다고 이것이 모든 인간적 접촉을 끊어버리는 고립된 생활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안토니에게서도 이런 기본 원칙이 나타난다: 수도사의 생사(生死)는 함께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 된다.

은둔적 삶에서 나타난 이런 경험들은 곧 광야 생활에서의 새로운 삶을 배우도록 했다: "만일 당신이 이전에 세상에서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했다면, 당신은 홀로 사는 은둔의 삶 역시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광야 금욕의 원시적 형태는 자연스럽게 느슨한 은둔 식민지로 형성되었다. 은둔자는 천막에서 살거나, 직접지은 오두막, 무너진 성채, 또는 버려진 무덤 동굴 같은 데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곳에서 매일의 생활을 계속했던 수도사들의 하루는 보통 계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영원한 구원을 얻는 것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으므로, 기도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 생활의 다른 면들이 기도에 종속되는 것은 당연했다.

육체노동은 꼭 해야 하는 의무였으나 이때에도 목적은 분명히 명시되었다: 자신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것을 얻는 수단인 동시에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했다. 이러한 은둔 지역의 정신적 구심점은 보통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적인 명망으로 정신적 영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경험이 풍부한 수도사였다.

수도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이들을 찾아가 그들과 관계를 맺음으로 시작했는데, 이런 관계는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노 수도사의 밑에서 수학하는 것은 당연시 되었다. 어떤 법규 같은 지도 수단이 문서화 되거나 정형화되어 규칙으로 쓰여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신적 능력이 있는 스승의 “말”, 즉 어떤 개인 수도사가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거나 가르침을 받고자 했을 때 그가 주었던 말이 이들을 가르치는 교훈이 되어 규칙의 역할을 했다.

이 말씀들이 나중에 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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