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베네딕트 규칙이 서방 수도원을 점령하다

 

 

 

 

어거스틴의 친구이자 학생이었던 오로시우스(Orosius)는 수도사란 믿음 사역에만 관심을 가지고 매달리고자 하므로 세상의 번거로운 일은 아예 포기해 버린 그리스도인이라고 정의 한 적이 있다.

이런 이해는 굳이 오로시우스가 아니더라도 아주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정의에 의하면 세상과 수도원이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믿음 사역"이란 수도사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믿음에 관계된 사역은 수도사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관련된 사안인 것이다.

반면에 수도사 역시 세상적 활동으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이란 불가능하다. 그들 역시 세상적 활동에 참여 없이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필요한 물자를 세상으로부터 조달해야 하고, 그들의 이상과 활동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방문했을 때 외면해서도 안되었다. 그들이 좋아하던 싫어하던 나름대로 세상과의 연계는 어쩔 수 없었던 셈이다.

이렇게 세상과 수도원과의 완전한 단절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오로시우스 때에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이후 시대에도 계속해서 새롭게 확인되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수도사의 생활 내용을 설명할 때 다른 것은 다 포기하고 "신앙활동에만 전념" 한다고 해서 신앙적 행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제대로 된 설명이 될 수가 없었다.

수도사 생활과 세상적 생활의 엄격한 구분선이 모호한 면이 많았다. 이런 모호함은 수도원 규칙에 의해 해소되었다. 베네딕트가, 규칙을 통해서 잘 나타나는 것처럼, 수도원에서 사는 수도사에게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기본적 전제가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리해 줌으로써 수도사의 생활 자체에 대한 정의가 내려졌다. 실제로는 이런 정의가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 실천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베네딕트의 정의는 수도원 역사의 전체적 맥락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실제상으로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수도사의 생활을 전체로 요약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정의해 놓음으로 수도사의 생활의 특징을 말할 때는 항상 베네딕트라는 사람을 거론할 수 있게 했으며, 또 똑같은 이상 즉 "하나님의 추구"를 지향하되 실제에서는 여러 다른 모습으로 나타남으로써 각 수도원의 차이나 고유성(固有性)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시골 수도원과 도시 수도원 사이에, 마틴이나 콜룸반에게서 나타나는 목회와 선교의 노력과 수도원적 삶을 결합시킨다거나, 은거 수도원(성 클라우데)처럼 완전히 은거해서 사는 삶의 모습이라든가, 베네딕트 규칙에서 말하고 있는 소규모 가족 단위의 수도사 모임에서부터 카시노도 수도원의 필경실까지 여러 수도원들이 가지는 차이나 독자성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수도사들이 이런 일 모두가 "믿음과 관계된 사역"이라는 데서는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이 때 나타나는 경향들은 다양한 강조점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 카시안의 저작은 이것과 관련해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수도원에서 규범의 중대성이 부각된 시기는 6세기이다. 이 당시에는 수많은 규칙이 만들어지는데, 이들 규칙이 가지는 목적이 수도사의 생활에 대한 정형적 모습과 규범들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이 당시의 규칙 중에서 지금까지 전해 오는 것의 내용을 보면 당시에 규칙을 만들 때 전통적인 규범과 질서에서 공통적인 요소를 찾으려는 노력을 알 수가 있다.

짧은 규칙집인 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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