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옹근]   비우면 채워주시니 온전하지 않겠는가

입력 : 2018-04-13 14:00

이현주 목사 부부가 전남 순천시 행금길 자택 앞에서 ‘말씀과 밥의 집’ 팻말을 바라보고 있다.

‘옹근’은 ‘조금도 축나지 않고 다 있는 것’을 일컫는 옛말이다. 남한에선 근래 많이 사용하지 않는 약간 낯선 단어지만, 북한에선 여전히 자주 쓰인다. 성서에의 ‘옹근’은 ‘온전함’과 상통한다. 성경은 ‘온전한 삶’을 위해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뭇가지가 꺾이듯 추락할 수 있다. 자신의 잘못으로 추락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잘못으로 암흑 같은 시간을 견뎌야 할 때도 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5)”

전남 구례군 섬진강변의 한 벚나무 옹이에서 벚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포도나무 가지인 우리가 나무인 예수님께 꼭 붙어있으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요 15:5)”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할 때 우리는 반드시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생명력이 유지되고 열매를 맺는다.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풍성하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 상태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며 ‘옹근’이다.

더할 나위 없는 삶
“기본적으로 전반부 인생은 본문을 쓰고 후반부 인생은 그에 대해 주석을 쓴다. 옹근 사람(whole people)은 가는 곳마다 옹근 전체(wholeness)를 보고 옹근 전체를 만들어낸다. 분열된 사람은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에서 분열을 보고 분열을 만들어낸다. 후반부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나뉜 조각들이 아니라 옹근 전체 안에서 모든 것을 본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저분한 조각들 안으로 ‘떨어져 내림’으로써 옹근 전체에 가서 닿게 돼 있다.”(리처드 로어의 ‘위쪽으로 떨어지다’ 중에서)

미국의 영적 지도자 리처드 로어는 저서 ‘위쪽으로 떨어지다’에서 오직 추락해본 사람만이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역설하며 후반기 인생을 준비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책에 ‘옹근’이란 두 글자가 자주 등장한다. 책을 번역한 이현주(74) 목사는 ‘옹근’은 ‘온전함’을 의미한다.

이 목사는 작가이며, 영성가이자 번역문학가다.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죽변교회 등에서 목회했으며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교훈과 감동을 주는 글을 써 왔다. 그의 ‘마른 뼈의 기도’는 기독교 명시로 꼽힌다. 현재 전남 순천에서 번역문학가로 살고 있는 그를 최근 만났다.


그의 집엔 문패 대신 ‘말씀과 밥의 집’이란 팻말이 붙어있다. 말씀과 밥은 영의 양식과 육의 양식으로 서로 보완적이다. 그는 좋은 책을 보기 위해 번역을 하는데, 번역은 밥 먹는 거랑 같다고 했다. “번역하는 동안 참 행복했어요. 40년 목회 생활하면서 마음 놓고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는데 번역을 통해 대신 말할 수 있어 속이 시원했어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그가 책에서 ‘옹근’이라고 표현한 것은 ‘온전한 삶’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에 의하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지성과 감정, 의지를 그리스도의 주 되심 아래 복종시킨 온전한 인격을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온전한 그리스도인, 통합된 그리스도인은 반지성적이지도, 반감정적이지도 않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인간을 합리적인 피조물로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피조물로 만드셨다는 것 역시 인정한다. 그분은 우리에게 사고할 수 있는 지성을 주셨으며, 인간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깊은 감정도 주셨다.”(존 스토트의 ‘온전한 그리스도인’ 중에서)

깊이 갈망하고 비워라
이 목사에게 온전한 삶을 사는 방법에 관해 물었다. 그는 베드로가 만난 예수, 막달라 마리아가 만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라고 말했다. “예수님에 대해서 교회가 하는 설명, 신학자의 설명, 다른 사람들이 하는 설명에 만족할 수 없었어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중간에서 누가 암만 설명을 잘해도 그 사람을 잘 알 수는 없잖아요.

성경에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네 안에 내가 있다’고 하셨거든요. 현존하는 예수님을 만나세요. 이런 갈망을 품지 않으면 씨를 뿌리지 않고 거두려고 하는 것과 같아요.”

“당신은 분명하게 갈망하라. 깊이 갈망하라. 당신 자신을 갈망하라. 하나님을 갈망하라. 모든 진실과 선과 아름다움을 갈망하라. 모든 비워냄은 오직 큰 쏟아져 나옴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연이 그렇듯이 모든 공백들을 싫어하여 급히 그것을 채우신다.”(‘위쪽으로 떨어지다’ 중에서)


이 목사는 온전한 삶을 위해 ‘좋은 질문’을 가슴에 품으라고 말했다. 그의 평생의 질문은 ‘사랑이란 무엇인가’였다. “사랑은 혼자서 할 수 없어요. 둘이 있어야 가능하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나 봐요. 우리 없이는 사랑이 실현될 수 없어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라고 했듯이 사랑은 상대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음의 길을 가는 거예요. 그 결과 둘 다 살아요. 반대로 나를 살리려고 상대를 죽이면 둘 다 죽습니다.” 앞으로 다시 바뀔 수 있다고 전제한 뒤 그가 내놓은 답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빛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호롱불의 그을음을 깨끗이 닦았을 때 빛이 환해진 경험을 예로 들었다. “내 안에 하나님 빛이 있는데 나(그을음) 때문에 빛이 나지 않았던 겁니다. ‘나’ 자신이 없어지면 빛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주장인 그을음을 닦아내면 가만있어도 빛납니다. 등잔이 빛나게 하는 게 아니고 내가 빛을 내는 게 아니라 오직 내 안의 주님이 빛나는 것입니다.”

그가 표현한 ‘옹근’은 성(聖)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기록한 내용과 일치한다. “당신은 안에 계셨고 저는 밖에 있었습니다. 당신은 저와 함께 계셨고 저는 당신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부르셨고 당신은 소리치셨고 당신은 저의 먹은 귀를 뚫으셨고 당신은 불빛으로 신호하셨고 불타오르셨고 저의 맹목을 추방하셨고 당신 향기를 아낌없이 내어뿜으셨고 그리고 저는 헐떡이다가 숨이 막혔습니다.”

이 목사는 요즘 사회적으로 추락한 사람들이 많다며 그들에게 “‘괜찮아 이 사람아. 잘 가고 있어. 온 세상이 너를 나쁜 놈이라고 해도 너를 품어주는 누군가가 있어. 이번 기회에 그를 꼭 만났으면 좋겠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밝음 속으로 떨어지기
그도 절망했던 순간이 있었다. 군 제대 무렵 많이 아팠다. 뇌막염으로 말을 잘 못했고 잘 걷지도 못했다. 너무 힘들어 그만 살았으면 했다. “그때 하나님이 ‘네 인생이 네 것이니? 네 목숨이 네 것이니? 왜 네가 걱정해?’라고 하셨어요. 내가 깊은 좌절에 빠지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음성이지요.”

온전함. 그것은 인생의 온갖 문제 앞에서 ‘더 큰 밝음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 더 좋은 것을 실천하는 것이 나쁜 것에 대한 최선의 비판이란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안으로 떨어지는 유일한 길은 ‘빛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말씀의 집과 호스피스 요리연구가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봄에서 여름 지나/가을까지/그 여러 날들을/비바람 땡볕으로/익어온 쌀인데/그렇게 허겁지겁/삼켜 버리면/어느 틈에/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그게 사람이 아닌 거여”.(이현주의 시 ‘밥 먹는 자식에게’)

성서는 밥이다. 밥을 먹으면 밥은 죽고 기운(氣運)이 산다. 성서를 읽으면 말씀은(삶 속에 스며들어) 죽고, 삶이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듯하다. “성서를 읽어서 알게 된 나에 관한 지식을, 내게로 오는 길에 걸림돌이 되게 하지 말고 디딤돌로 삼아라. 내 말이나 나에 관한 증언을 받들어 모시지 말고 발로 밟아라.”

이현주 목사의 집은 ‘말씀과 밥의 집’이다. 긴 세월 당당하게 살았고 불의와 억압이 있는 곳을 모른 체하지 않았기에 그를 만나길 원하는 길손들이 많다. 용서해(55) 사모는 이들을 정성으로 섬긴다. 용 사모는 일상이 행복이라고 말했다. “예전엔 특별한 목적을 세우고 성취해야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남편의 머리를 이발해줄 때 행복을 느끼고, 마당에 핀 봄꽃을 보며 행복을 느껴요. 행복은 거창하지 않아요. 작은 일상 속에 하나님은 숨어 계셔요.”

그는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24년 동안 활동한 플루티스트다. 20년 전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해 연주하면서 삶의 전환점을 만났다. “따뜻한 봄날이었어요. 작은 호스피스 병원에서 신청곡을 받아 연주해 드렸는데 곧 세상과 작별할 사람이 내 연주를 들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을 정리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벅찼어요.” 그는 이를 계기로 20년 넘게 걸어온 플루트 연주자의 길을 미련 없이 접고 호스피스 요리에 관심을 가졌다. 프랑스 요리학교 ‘르코르동블루’에서 공부한 후 말기암 환자들의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 음식, 치유의 기운이 깃든 음식을 고민하는 호스피스 요리연구가로 살고 있다.

순천=글·사진 이지현 선임기자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277595&code=61221111&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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