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이도 춥던 올겨울도 다가고 벌써 봄기운이 느껴진다.

이제 얼마 안 있어면 입춘(3월 22일)이니 말이다. 

세상사람들은 입춘하면 "입춘대길"이 생각나겠지만 우리에겐 좀 다른 특별한 날이 기억에 남는다.

"입춘이 지난 만월 후 첫 주일"이 부활절이니 말이다.

벌써 일부에선 부활절 행사를 위해서 준비하는 듯하다. 아니 상인들의 발빠른 부활절 소식이 들려온다.

그래서 부활절에 대한 자료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아래에 그 내용들을 올립니다.

누구라도 바로알고 사용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  부활과 관련하여 -------------------------------------------------------------------------------

 

 

부활(復活, resurrection)

출처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신적 혹은 인간적 존재가 자신의 개성 또는 개별성을 보유한 채 죽음에서 소생하는 것.

이때 몸은 변할 수도 있고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흔히 몸의 부활에 관한 신앙을 그리스도교와 관련지어 생각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교리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신앙은 후기 유대교와 연관되는 것이기도 하다. 즉 부활에 관한 기본적인 사상은 후기 유대교에서 형성되었고, 그 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로 확산되었다.

 

고대 근동의 종교사상이 신적 존재(예를 들면 바빌로니아 식물의 신 타무즈)의 부활에 대한 신앙의 근거를 제공했으나 인간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없었다. 그리스 로마의 종교사상에도 영혼불멸에 관한 신앙이 있었으나 몸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없었다. 헬레니즘의 신비종교, 이를테면 이시스 여신숭배 등에 영혼의 상징적 부활이나 재생에 관한 신앙이 나타나지만 죽은 후 육체의 부활은 인정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부활에 대한 기대는 〈구약성서〉의 몇몇 구절에서 발견된다. 〈에스겔〉에는 의로운 이스라엘인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을 기대하는 내용이 있다. 〈다니엘〉에는 한층 발전하여 의롭든 의롭지 않든 이스라엘 사람 모두가 부활하리라는 소망이 나타나 있으며, 부활 후 의로운 자는 영원한 메시아 왕국에 참여하고 불의한 자는 그 나라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룩의 시리아 묵시록 The Syriac Apocalypse of Baruch〉 같은 〈구약성서>와〈신약성서〉 중간기 문학에도 메시아 강림 때 우주적인 부활이 있으리라는 기대가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교의 중심 교리인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이렇게 그가 죽음을 정복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죄 · 죽음 · 악마'를 물리친 그의 승리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사건을 기념하는 날을 부활절 또는 부활제라고 하는데, 이날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주요축일이다. 예수의 부활에 관한 기록은 4복음서인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요한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초대교회의 보편적 확신과 합의를 표현하는 다양한 신학적 표현들은 〈신약성서〉 전체, 특히 바울의 편지(예를 들면 고전 15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복음서 기록에 의하면 여자 제자 몇몇이 예수의 무덤으로 갔는데, 이 무덤은 산헤드린(유대인의 최고 종교법정)의 일원이며 예수의 은밀한 제자였던 아리마대 요셉의 동산에 있었다. 그들은 거기서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이 옮겨져 있고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의 시체가 무덤에 없음을 알렸다. 나중에 여러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보았고, 심지어 그가 문이 잠긴 방으로 들어오는 것도 보았다. 또한 제자들은 갈릴리에서도 그를 보았다(예수가 나타난 장소와 시간에 관해서는 복음서마다 다름). 복음서 외에 부활한 주(主)가 40일 동안 지상에서 활동하다가 승천한 것을 언급한 기록은 〈사도행전〉에만 있다. 이슬람교에서도 심판 전에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신앙은 조로아스터교에서도 발견된다.

 

출처 : 위키백과.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부활(復活)은 십자가 위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 3일 만에 되살아난 것을 말한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심적인 신앙 내용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인간이 죽음에서 되살아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구원의 행위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이 인간의 죄과(罪過)를 씻기 위한 죽음이라고 한다면, 부활이야말로 인간의 죄와 그 결과인 죽음을 이겼다는 것을 나타내며, 이에 의해 하나님 스스로가 생명과 죽음의 주(主)임을 계시했다고 성경에서는 말한다. 바울도 "만일 예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선교(宣敎)는 헛된 일이며, 또한 여러분의 신앙도 헛된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또한 그 스스로가 부활한 그리스도와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듯이, 그리스도의 부활은 - 어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는 성서 상으로도 일정하지 않으나 - 무엇보다도 신앙적인 계기가 되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국어사전

 

1. [명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 생명의 부활.

2. 쇠퇴하거나 폐지한 것이 다시 성하게 됨. 또는 그렇게 함.

3. [기독교]십자가에 못 박혀 세상을 떠난 예수가 자신의 예언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일.

 

 

부활

출처 : 기독교 강요 제1권 제16장

 

다음에 나오는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이다. 이것이 없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논한 모든 체계는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과 장사에서는 연약함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신앙은 그 완전한 힘을 얻기 위하여 이 모든 사실들을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죽음을 통하여 구원의 완성을 이룩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였고 그의 공의로우신 심판이 충족되었으며 저주는 제거되었고 형벌은 완전히 치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심은 그의 죽음을 통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벧전 1 : 3). 그가 다시 살아나심으로서 죽음을 이긴 승리자로 등장한 것처럼 죽음을 이긴 우리 신앙의 승리 역시 그의 부활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다음 말이 이 내용을 잘 표시해 준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 나셨느니라"(롬 4:25). 이 말은 마치 그가 "죽으심으로 죄는 제거됐고 그의 부활로서 의는 다시 살아나 회복되었다”라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만약 죽음에 굴복 당하고 말았다면 그가 죽었다고 해서 이렇게 그것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겠는가? 또 만약 그가 이 싸움에서 졌다면 어떻게 그가 우리를 위하여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요소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서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그의 죽음을 통해서는 죄가 제거되고 죽음이 소멸되었으며 그의 부활을 통해서는 의가 회복되고 생명이 되살아나 그의 죽음이 우리 안에서 능력과 효력을 나타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의 부활의 덕분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느니라"(롬 1:4)라고 말하였다. 이는 종국적으로 그 때에 하늘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셨기 때문에 이는 그의 신성을 보여주는 맑은 거울이요 또 우리의 신앙의 확고한 기둥이 되는 것이다(고후 13:4). 바울은 또 다른 곳에서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느니라"(고후 13:4)고 가르치고 있으며 또 같은 뜻으로 다른 곳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알려 하느니라"고 하여 완전에 관하여 논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이어서 "그의 죽으심에 참여한다"고 하였다(빌 3:10). 이에 관한 베드로의 말은 보다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셨으니 이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21). 그것은 신앙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서 지탱이 되지만 그것은 동요된다는 말이 아니고 신앙으로 우리를 지켜주는 하나님의 권능이 부활 자체에서 더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만을 언급할 때에는 항상 그의 부활에 속한 것을 포함하고 있음을 동시에 기억하여야 한다. 이와 동일한 제유법이 "부활"이란 말에도 적용되는 데 그의 죽음과는 별도로 말하게 될 때에는 언제든지, 특히 죽음에 관계된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그는 승리자의 상급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부활이요 생명"이 되기 위함이었고 따라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속임수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고전 15:17). 따라서 다른 구절에서는 정죄의 공포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을 칭찬하고 나서 이것을 더욱 강조하는 뜻으로 "죽으심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가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는 자로 나타나시리라"(롬 8:34)고 하였다. 더 나아가 앞에서 우리의 육신의 죽음은 그의 십자가에의 참여에 좌우된다고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는 그의 부활로부터도 동일한 은혜를 받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여야 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에 합하여 접붙임이 된 것은 그의 부활에 참여하여 우리로 하여금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고 하였다. 따라서 다른 구절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실로부터(골 3:3) 우리가 땅에 있는 육신의 지체를 죽여야 한다는 이론을 내세운 것이다(골 3:5). 그와 같이 또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남으로 위에 있는 것을 찾올지언정 땅에 있는 것을 찾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추론하고 있다(골 3:1-2), 이상과 같은 말을 볼 때 우리는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서 새로운 삶을 추구하도록 인정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그의 권능을 통하여 의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또 그의 부활로부터 세번째 은혜를 받는다. 그의 부활은 우리들 자신의 부활에 대한 가장 실질적인 보증이 된다. 바울은 이를 고전 15:12-17에서 자세히 논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라는 말에 유의해야 한다. 이 말은 그의 죽음과 부활의 진리를 나타내는데 이는 마치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죽는 것 같은 죽음을 당했고 죽을 수밖에 없는 같은 육신에 불멸의 생을 받았다라고 하는 말과 같다.

 

 

부활절

출처 : 기독교 강요 제2권 제14장

 

부활절이란 우리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매년 지키는 절기이다. 그리고 또한 부활절 주간에는 부활주일을 지킨다. 이 부활절은 가장 오래 되고 큰 절기로서, 아주 고대로부터 지켜온 절기이다. 부활절을 교회에서 중요하게 지키는 이유는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 주제이기 때문이다. 부활절 이전 40일 간은 사순절(四旬節, Lent, 해당 항목 참조)로 지켜지며, 부활절은 부활주일 후 40일 간, 즉 승천일(Ascension Day)까지 계속된다. 초대 교회 때에 부활절은 초신자들(학습교인들)에게 세례를 주고, 범죄한 교인들 중 회개한 자들을 성찬식에 다시 참석케 해준 특별한 절기였다. 1-3세기에 알렉산드리아교회와 로마교회는 부활절 날짜의 계산법에 관하여 의견을 달리했었다. 그러나 니케아회의(A.D.325년) 이후에는 부활절의 날짜가 유대인의 유월절을 기준으로 하여 니산월 14일 경의 주일날로 결정되었다. 따라서 부활절의 날짜는 3월 21일 - 4월 25일 어간에 놓이게 되었다. 베데(Bede)에 의하면, 부활절에 해당하는 영어 Easter는 앵글로 색슨족의 한 여신(女神)인 Eostre -이 여신의 출제가 봄에 거행되었음- 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동 ․ 서양을 막론하고 '부활절'에 대한 원래의 명칭은 Pascha인데, 이것은 유대인의 유월절(Passover)과 관련되어 있다.

 

 

부활절 논쟁

 

성 금요일과 부활절을 지키는 것은 초대 교회에 있어서 당연 지사였는데, 그 날짜를 결정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주로 4가지가 논쟁점이었다. 첫재로,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기로는 '개략적인 날자들'(day)을 지키려고 했다('4분 십진법'(Quar to decimanism)을 보라). 둘째로, 안디옥과 알렉산드라아 간에는 날짜 계산법에 차이가 났다. 안디옥은 유대인의 계산법을 따랐고, 반면에 알렉산드리아는 독자작인 계산법을 고안해 냈다. 세째로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간의 상위점(相違點)이 발생했는데, 이것은 니케아 회의(A.D.325년)에서 알렉산드리아의 계산법을 따르기로 통일했지만 아직도 여러 가지 계산법이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째로, 불란서와 영국 교회들은 옛날 로마의 역법을 고수했는데, 로마는 A.D. 525년에 알렉산드리아 역법을 따르기로 공식적으로 채택했으며, 영국에서 이 문제가 최종적으로 결정되기는 바로 휘트비(Whitby)에서였다. 부활절 논쟁에 있어서 어려운 문제점은 첫번째 사항이었고 나중 것들은 단지 계산법과 접속의 문제에 불과했다.

 

부활주일

 

참고로, 부활절을 정하는 기준이 있는데,

춘분 다음의 만월(滿月 : 부활절 달)이 지난 후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

 

 

부활절

출처 : 브리태니커

(라틴어, Pascha) (그리스어, Pascha)

그리스도교 교회력의 주요축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날.

부활절의 기원은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아마도 그리스도교에서 지키는 기념일 가운데 매주 부활을 기념하는 날인 주일 다음으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영어명 'Easter'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8세기 앵글로색슨족의 사제인 가경자(可敬者) 비드는 이 말이 앵글로색슨족이 숭배하는 봄의 여신 '에오스터'(Eostre)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했다.

 

 

부활절 날짜

서방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춘분(3월 21일경) 무렵이나 춘분 다음의 만월(滿月 : 부활절 달)이 지난 후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 부활절 달(paschal moon)은 황금수(서기 연수에 1을 더하여 19로 나눈 나머지 수)와 태양력과 태음력의 1년의 날수 차이(약 11일)로 계산하는데, 이는 천문학상의 만월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만일 이 만월이 일요일일 경우 그 다음 일요일이 부활절이 된다. 따라서 부활절은 대개 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가 될 수 있다.

 

부활절 날짜를 산출하는 방법은 많은 논쟁과 의혹을 거친 끝에 정해졌으며, 이 논쟁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여러 분파에서 8세기까지 계속되었다. 동방정교회는 약간 다른 계산법을 따르고 있으며, 그결과 동방정교회의 부활절은 서방교회의 부활절과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1주나 4주 또는 5주 후에 해당된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부활절 날짜를 고정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논의되어 일부 성직자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으나, 이 가능성의 채택 여부는 여러 교파가 이에 동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동안 4월 2번째 일요일로 부활절을 정하자는 안건이 제시되어왔다.

 

 

부활절 의식

부활절 행사는 특정한 일요일에 거행하지만, 그 중요성은 사순절이라는 오랜 준비기간, 엄숙한 예식들이 행해지는 성주간(Holy Week), 그후 부활절 시기(Eastertide)로 알려진 오순절(성령강림 축일)까지 50일 동안 교회예배에서 강조된다.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절기가 실린 교회력 전체가 부활절 날짜에 따라 짜여지고, 한 해의 예배를 위한 전례력도 부활절을 중심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부활절은 그리스도교에서 1년 중 가장 중심되는 절기이다. 전례서(典禮書)에는 부활절이 그리스도교 유월절(구속의 때)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예배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2세기) 주일성찬에 앞서 성서를 읽고 〈시편〉을 노래하는 전야예배를 보았다. 바로 여기서 부활절 전날 행하는 전야예배의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이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모두가 행하는 주목할 만한 부활절 축하행사로서 매주 행하다가 1년에 1번 부활절에만 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의 미사 경본에 나타나 있듯이 이 전야행사는 새로운 불의 강복(중세 초기 유럽에 도입된 관습), 부활절 촛불 점화, 예언이라고도 부르는 성구봉독, 세례반(洗禮盤) 강복, 세례, 부활절 미사 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양식은 초기의 것으로서, 그 주요행사로 볼 때 3~4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방교회의 전야예배는 토요일 저녁에 행해지다가 토요일 오후로, 중세 말엽에는 토요일 아침에 행하게 되었다. 1951년에는 선택적으로, 1955년에는 의무적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 전체에서 부활절 전야예배는 오후 10시로 조정되어 현재 부활절 첫 미사는 한밤중에 시작한다(→ 부활전야).

 

부활절에 세례를 받는 것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몇 세기 동안 사순절 기간은 참회의 시간이었을 뿐 아니라 세례예비자들(catechumens)이 세례받을 준비를 하는 기간이었으며, 당시 세례는 1년에 1번, 즉 부활절에 받을 수 있었다. 부활절 전 6주 동안 세례예비자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교육받았으며, 로마 가톨릭 미사경본의 사순절 전례서에는 지금도 이 관행에 대한 지침이 분명하게 보존되어 있다. 세례예비자들은 부활절 밤에 엄숙하게 세례를 받음으로써 세례준비기간을 마무리한다. 부활절 밤에 세례반을 축복하는 긴 의식, 세례와 그 의미를 크게 강조하는 것, 이에 대한 많은 언급들이 지금도 부활절 예배에 여전히 행해지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방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는 교회가 매년 지키는 절기로서만이 아니라 교회의 예배 전체와 영적 삶의 핵심으로서 부활절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전야예배 전에 그리스도의 시체를 찾으려는 무익한 행위를 상징하는 행진이 교회 밖에서 벌어진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공포한 뒤 부활절 성찬을 행한다. 처음에 행렬이 교회를 출발할 때는 사방에 불을 전혀 밝히지 않으나, 다시 교회로 돌아올 때는 수백 개의 촛불과 여러 가지 색채의 램프를 밝혀 그리스도 부활의 광휘를 보여준다.

 

성공회에서는 아침기도 때 성공회기도서의 특별 성가로 〈시편〉 95편(Venite)을 대신하고 있고, 루터교의 찬송집에는 부활절 예배순서가 실려 있으며 부활절에는 특별한 악절(樂節)을 사용한다. 스코틀랜드 교회의 공동전례집에는 부활절기도문이 실려 있고, 감리교의 〈거룩한 예배 Divine Worship〉에는 부활절 아침예배순서가 실려 있으나 이것을 꼭 사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개신교교회에서 부활절 의식은 종려주일로부터 시작되는 성주간(고난주간) 동안 행해지는 일련의 예배의식의 절정을 이룬다. 성주간에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 관례지만, 다른 때에도 성찬식을 행한다. 많은 교파들이 '세족(洗足)목요일'(부활절 전 목요일,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긴 날)에 성찬식을 행하는 관습을 지켜왔으며, 또 어떤 교파는 부활절 아침 정규 예배시간 전에 성찬식을 갖기도 한다.

 

많은 개신교교회들이 성금요일에 초교파적 연합예배를 갖기도 하는데, 이 예배는 그 지역 목회자협회의 후원으로 이루어진다. 많은 교단에서 이 예배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7언(言)을 중심으로 정오에서 오후 3시까지 진행되며 참여한 교파의 성가대·성직자가 주관한다. 이러한 초교파적 예배는 부활절 새벽예배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미국에서는 이 예배를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중계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이 일출(日出)예배의 기원은 알 수 없으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한 〈요한의 복음서〉 20장 1절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의 일이었다.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다"라는 구절에서 근거한 듯하다. 이 성서적 근거와 더불어 부활절 새벽예배는 죽음의 겨울에서 자연의 재생을 상징하는 봄의 새로운 탄생개념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부활절 관습

그리스도교인들이 성주간과 성금요일로 이어지는 여러 예배의식의 절정으로 지키고 있는 부활절 의식에서 많은 민족적 풍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중에는 유럽인의 고대예식과 상징적 표현에서 전래된 것이 많으며, 부활이라는 주제와 관련있는 중동 이교도들의 봄의 축제들로부터 유래된 것도 있다. 이 풍습들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예를 들어 사순절 기간 동안 먹지 못하게 되어 있던 달걀이 이 의식에선 새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풍요의 상징이었고 후에 유럽에서도 역시 같은 상징으로 쓰였던 큰 산토끼가 북아메리카에 서식하지 않으므로, 그보다 작지만 인간의 풍요와 달의 주기(週期)를 상징하는 부활절 산토끼로 대체하여 준비한 달걀과 함께 둥지에 넣거나, 달걀을 멀리 감추어 아이들이 찾도록 하는 놀이가 부활절 풍습으로 이용된다.

 

 

한국의 부활절

가톨릭교회에선 '예수 부활대축일'이라 하여 전례서가 정한 대로 예식을 행한다. '재의 수요일'로 시작되는 사순절은 성(聖)3일로 끝나게 된다. 성목요일에는 성사집행에 사용되는 성유(聖油)의 축성미사를 교구별로 주교좌 성당에서 드리며, 저녁에는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여 성만찬미사를 드린다. 그 후 그리스도의 부재(不在)를 나타내기 위해 보라색 천으로 십자 고상 등을 가린다. 성금요일에는 망부활미사(부활 전야예배)를 드리며 가능한 한 단식을 한다.

개신교에서는 1947년 교파에 관계없이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으나, 1960년대에는 분열과 대립으로 별도의 행사를 가졌다. 1978년 다시 통합되어 대도시별로 부활절 새벽에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달걀에 채색하고 장식하여 선사하기도 한다.

 

 

부활절 계란의 유래

출처 : 인터넷 http://blog.daum.net/pasaduck/17041091

어느날 정장을 한 귀족 부인이 시녀 한명을 데리고 마을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긴 여행과 추위로 몹시 지쳐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로자린으로 본래 귀족집안 출신이었는데, 남편이 성지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전쟁에 나간 사이 못된 신하에게 재산과 집을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선량학 친절했던 로자린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마련해 주어 그 마을에서 살게 되었는데 로자린에게는 귀한 닭 한마리가 있었다.

그녀는 닭을 정성껏 기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부활절이 다가오자 그녀는 친절한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어서 부활절 아침 일찍 마을 어린이들을 뫃아놓고

“ 자 여러분, 지금ㅂ부터 숲에가서 각자 나무를 만들어 놓고 오세요. 그리고 나서 함께 부활절 식사를 하도록 해요”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은 환호를 지르며 숲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와 아침식사를 마치자 다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숲속에 가보세요. 자기 나무를 찾아서 거기에 무어시 있는지 모세요” 쉐 다녀온 어린이들의 손에는 예쁘게 색칠한 달걀이 하나씩 놓여 있었고 거기에는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손길을 믿어라.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있는 사람, 그림고 아름다운 것을 위하여 반드시 도와 주신다”라는 로자린 집안의 가훈이 쓰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부활절 선물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동네에 한 초라한 소년이 나타났다. 그 손ㄴ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집으로 달려가든 길이라고 했고, 이 이야기를 들은 로자린은 그 소년에게도 계란을 쥐어주며 부모님께 드리라고 했다. 소년은 길을 떠났고, 한참 동안 길을 걷든 소년은

쓰러져 있는 한 병사를 만났는데, 이 군사는 굶주림과 병으로 지쳐 있어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소년은 오랜 망설임 끝에 선물로 받은 계란을 병사에게 건네 주었다. 그런데 병사는 계란에 쓰여져 있는 글이 자기 집안의 오래된 가훈인 것을 발견하였다.

“이 계란을 누가 주었니?”

“저 윗동네에 사시는 한 아주머니가 주었어요.”

그 병사는 전쟁터에서 병들어 집에 돌아 왔으나 집과 아내가 없어져 방황하고 있던 로자린의 남편이었다. 소년의 이야기를 들은 병사는 결국 그 계란을 통해 사랑하는 아내 로지린을 만나게 되었다.

 

그날 이후 이 부부는 매년 부활절이 되면 계란에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였는데, 이것이 부활절 계란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 11:25~26)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