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카르트는


에카르트는 1260년 독일 호크하임에서 태어나 1328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에 관해서는 전혀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생애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가 10대에 도미니코회에 들어가 사제가 되기 위하여 공부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의 작품에 정통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그 시대 사람들은 대부분 교회의 가르침을 전통 진리로 받아들였으나 신비주의자들은 여기에 회의를 품고 진리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들도 그 당시는 배척을 받았으나 삶을 마친 후에는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로마 카톨릭 전통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빌라의 테레사와 십자가의 요한이 있고, 개신교에서는 존 에슬리, 제코프 보엠, 조지 팍스를 들 수 있다.
13세기에는 아퀴나스도 신비주의자로서 상당히 의심을 받는 위치에 있었다. 아퀴나스가 가톨릭 신학자 사이에서 높이 평가받은 이후에도 에카르트가 명성을 찾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두 사람은 본질적으로 같은 신비주의자였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가장 뛰어난 신학적 능력을 타고 났으면서도 "신학대전"이라는 위대한 작품 완성을 거절한 것은 아무리 아름다운 말이라도 하나님의 본성을 표현하는 데는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신비체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에카르트는 35세 때 에어 푸르트 수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때 처음으로 "영성적 가르침의 말씀"을 저술 했는데, 내용은 에어푸르트 수도원에서 에쿠하르트 수사가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제자들의 질문에 답한 것으로 이 글의 많은 부분을 그기서 인용했다. 이 글은 한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여정과 영성적인 삶에 관한 그의 기본적인 경륜에 대해 제자들에게 답한 것으로 매우 실질적인 내용이 닮겨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영적 삶을 시작할 때 느끼는 것들과 공통점이 많다.
에카르트는 수도자나 신부를 위한 전문적인 영성서적을 쓴 것이 아니라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들었기 때문에 일반 사람을 위해 섰다.
교황 요한 22세가 별세하기 전 마이스터 에카르트를 인정함으로써 그는 천주교회의 의혹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또한 교황 요한 바울 2세도 자주 인용함으로써 그의 가르침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바가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준 셈이다. 그는 카톨릭이었지만 동방과 서방의 신비전통에 중요한 다리를 놓아 주었다. 에카르트의 저서는 십자가의 요한이나 아빌라의 테레사와 같은 다른 신비주의자들과 달리 완전히 크리스천적인 것은 아니다.
때때로 그의 사상은 선불교와 비슷한데 그것은 그의 말씀에 크리스천적인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가 사용하는 언어가 전통 성서적인 이미지에서 사용하는 용어보다 훨씬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에카르트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오랜 시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다른 신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이 살았던 당시 교회의 전통적 해석과 그가 겪은 신앙체험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도미니코회에서는 에카르트의 천재성을 인정해 유명한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게 했으며 그는 여기서 석사학위를 받음으로써 마이스터가 그의 이름에 계속 따라다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곧 영국 도미니코회 부원장이 되어 많은 의무와 책임을 부여 받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축복과 위로에 관한 책"을 집필 했으며 이 묵상집의 많은 부분을 거기서 인용했다. 전통주의자들에 의하면 "축복과 위로 에 관한 책"은 여러 가지 비극적인 운명에 처한 헝가리 여왕을 위해 쓴 것으로 고통과 악, 위안보다는 영성적인 작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불행에 대처할 수 있도록 명백한 제시를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 두 책 "영성적 가르침의 말씀"과 "축복과 위로에 관한 책"은 매우 실질적이며 영성적 삶의 본질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에카르트는 진정한 신비주의자였지만 제자들에게 시적이며 감상적인 상상력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영성적인 삶의 길을 인식하고 그 길을 따라가는데 필요한 작업에 관한 실질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그의 글이 독자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주고 강한 호소력을 지닌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예리하게 찌르기 때문인데, 바로 이것이 그가 평생 동안 의혹의 눈길을 받아야 했던 까닭이기도 했다. 그는 하나님만이 실체이며 그 밖의 것은 고착해야 할 수단이거나 오히려 장애물이라고 강조했는데 이것이 선불교와 비슷하다. 종교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질은 희미해지고 에카르트는 본질적인 문제, 즉 유일한 실체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