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관상에 이르는 길

* 더 자세한 것은 관상기도 박노열 편저 제15장 pp. 123-150. 참조

"신앙생활의 핵심은 그 원리나 조직에 있지 않고 내적 수련에 있으며, 그 내적 수련의 중심은「관상기도」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안에 계시지만 우리는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이 인간 조건의 두드러진 착각이다. 영적 여정은 이것을 치유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우리는 기도가 메마른 것을 하나님께서 부재하셨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침묵은 하나님의 첫번째 언어이다. 그 외의 것은 어설픈 번역인 것이다. 그 언어를 알아듣기 위해 우리는 조용히 앉아서 하나님 안에 쉬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내적 고요에로 이끌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감각이나 이성이 아니고 직관적 기능에 넣어 주시는 순수한 믿음의 결과에서 온다. 처음에 우리는 건조함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순수한 믿음의 훈련에 익숙해지면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겸손이라고 하는 두 가지 열매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자신의 글에서 기도의 단계를 7궁방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영성신학자 조던 오먼은 데레사의 7궁방을 9단계로 세분화하여 기술하고 있다. 무지의 구름의 저자는 4단계를 말하나 마지막 단계는 천국에서 이루어질 일로 이 땅에서의 3단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기도의 3단계를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관상에 이르는 데는 세 단계의 삶(정화, 조명, 일치)이 있다.

아주 오래된 기독교 전승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사랑을 탐구하며 성숙해 가는데 세 단계 또는 세 가지 길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정화의 길, 조명의 길, 합일의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첫 단계는 두 번째 단계에 포함되고 첫째, 둘째 단계는 세 번째 단계에 포함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사실상 삶의 대부분을 이 세길 사이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위에 말한 길 중에 둘이나 심지어는 세 가지 길을 동시에 밟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과정에 있는 단계는 이 세 가지가 전부입니다.

1) 정화의 길이다. (능동적. 자신을 비우기)
     우리는 하나님께 끌리면서도 세속의 유혹과 죄의 습성, 윤리적 약점 또는 단순한 무지로 말미암아 사랑을 찾는 길에서 어떤 때는 뜨거워지고 어떤 때는 차가워집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무엇 무엇을 해 달라고 청하는 기도로 드러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시작입니다. 걸을 수 있게 되기 전에 먼저 기는 법부터 배워야 하니까요. 이 길을 정화의 단계(사랑하기)라 합니다.

성경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고 했다. 우리가 자유의 영이신 성령님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속해 있는 우리의 존재의 정화를 의미한다. 회심 자체가 매우 급작스럽게 혹은 매우 감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정화의 작업은 지속적이고 의지적인 노력을 통하여 이루어져 가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와 내주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비우기를 힘써야 한다. 정화의 단계는 외적 감각의 정화, 내적 감각의 정화, 정욕의 정화, 지성의 정화, 의지의 정화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과 유혹은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영성생활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내면의 정화가 이루어지면, 우리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본성이 알려지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대한 깨달음이 오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조명의 단계에 접어든다. 

2) 조명의 길이다. (수동적, 사랑하도록 맡기기)
     조명의 길에서 사실상 관상기도가 시작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 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열심히 찾게 됩니다. 종교는 문화 이상이며 진정한 삶의 길입니다. 우리는 도중에 잠시 미끄러지고 넘어져서 정화의 길로 되돌아갈 수도 있지만, 필요하면 언제라도 자진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달릴 수 있으려면 먼저 걷기부터 해야 합니다. 이 길이 조명의 단계 (사랑하도록 맡기기)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은총의 능력을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죄악의 길로 다시 빠질 수도 없고 모든 문제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맑고 밝은 내적인 평화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과는 정반대로 내적인 소동을 경험한다. 전에는 결코 생각지도 못했던 범죄의 가능성과 하나님을 배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내적인 비젼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다 선명하게 인지하며, 여전히 그 길을 걷는데 많은 장애물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지속적인 자기 포기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정화단계에서의 정화가 능동적인 것이라면, 조명단계에서의 정화는 수동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3) 일치(합일, 하나 되는)의 길이다. (사랑 나누기)
    조명의 단계를 지나며 자아는 더욱 고양되고 확장되면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현존 안에 깊이 거하며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자신이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바로 완성의 단계인 일치의 단계(사랑 나누기)에 이르게 된다.

이때 하나님의 현존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마치 위에서 부터 내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밑에서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다. 빛나는 구름처럼 우리를 감싸기도 하고 우리 안에서 솟아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상상과 기억이 점차로 사라지면서 깊은 평정의 감각을 갖게 된다. 모든 기능이 잠잠해지고 하나님 안으로 빠져들어 하나님 안에서 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일치의 기도'이다. 이것은 성인들의 길이지만 우리 모두 부름 받은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길에 한 발을 (아니면 두 발을 모두) 들여놓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벗이여, 어쩌면 그대는 이처럼 높은 단계에 그대 자신을 올려놓기가 두려울지도 모릅니다. 아마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 하거나 “이 세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특별한 벗들만을 위한 자리”라고 말하겠지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대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세 번째 길은 오로지 하나님의 특별한 벗들만을 위해 예비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그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대를 부르신다는 사실을 모릅니까? 하나님께서 그대를 사랑하시는 까닭에 그대는 하나님의 특별한 벗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교만이 아닙니다. 그저 솔직한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거룩함의 길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거룩함은 그대가 획득해야 하는 무엇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이미 그대를 위해 얻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그것을 받아들이고 간절한 마음으로 두 팔을 벌려 주님을 향해 달리십시오. 세 번째 길에 걸맞는 특별한 종류의 기도가 관상기도입니다. 이 작은 책은 그대를 이 같은 하나님과의 사랑어린 합일로 차분히 인도하여 그 문지방을 넘어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