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에 이르는 문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 42:1~2)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내게 묻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지도 않는다. 내게 하나님이 계신지 아닌지도 모른다. 왜일까?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이 하나님을 알았다면, 오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않겠는가? 그 때 시편기자와 같이 말할 수밖에 없으리라.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 42:3)

   오늘 우리는 선진들이 남겨놓은 유산이나,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을 이해 할 수가 없다. 당시의 사람들의 당시의 습관을 이미 알고 기록한 내용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무슨 말인지 설명 없이도 알았지만 오늘 우리는 많은 부분을 연구하고 조명해 보아야 알 수 있다. 혹은 그래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관상 수련도 마찬가지이다. 관상수련에 대한 단순하고 실제적인 면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적인 지침을 해야만 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은 관상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 그러나 방법을 안다고 다 수련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관상 수련은 그 자체가 내면적인 것이며 영적인 것이다. 따라서 방법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일 것이다.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약 1:17). 그렇다면 우리가 할일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뿐이다.

   사람이 방법만 찾다가 보면 바리새인의 모습을 본받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겉모양에 대하여 말씀 하시면서 그 속을 말씀 하셨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 34~36)
   사람은 일시동안은 의지의 힘으로 선의 모양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곧 부주의한 일들로 인하여 우리 마음의 실상을 드러내고 말게 될 것이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든지 선이면 선, 악이면 악, 원한이면 원한이 그대로 나올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력은 잠간 부주의하거나 방심하는 순간 튀어 나오게 된다. 막을 길이 없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의지는 외적인 것을 다룰 수는 있지만 내적인 심령에 필요한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적인 변화이다. 이 내적 변화를 일으킬 수가 없다. 이 내적 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받을 수 있는 큰 선물이다. 우리 자신으로 하나님 나라의 의에 이를 수가 없고 이를 수도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은혜를 받는 방법으로 ?영적 삶의 수련?을 우리들에게 주셨다. 이 수련(훈련)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실 수 있게 한다.
   육을 위하여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얻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둔다(갈 6:8). 관상 수련은 성령을 위하여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관상 수련은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일하실 수 있고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곳에 우리를 가져다 놓는 것이다. 수련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관상 수련은 하나님의 은혜, 은총의 통로이다. 우리는 이 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놓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수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 은총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수련이다. 누구든지 수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통로에 놓여지길 바란다. 하나님의 지속적 축복을 받기 위하여는 개인의 삶이나 단체의 삶에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일련의 선택적인 행동을 지속적해야 한다.

   우리는 단지 선물을 받았을 뿐이지만 우리 속에서부터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전에는 자비를 베풀기가 그렇게 어려웠지만 이제는 자비를 베푸는 일이 쉬워졌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변화이다. 그것은 이전에는 우리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사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령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새 습관을 맡으셨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내부 성소에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재"(갈 5:22~23)가 저절로 밖으로 흘러나온다. 이제는 우리가 감추려고도 나타내려고도 수고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선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선과 친절이 우리의 본성의 일부분이 되었기 때문에 선과 친절을 베풀기를 그만두는 일이 어려운 수고가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삶의 자연적인 활동이 성령의 열매를 나타낸다.
   주의할 일이 있다. 이런 저런 말씀들을 취해서 율법으로 전환시킨다면 그 순간 우리는 예수께서 바리세인들을 향하여 하신 엄중한 선언을 들어야 할 것이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 23:4)  이 일에 대하여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은 이것이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6).  이 일이 스스로 해결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길 되시고 진리 되어 주시고 생명 되어 주시기로 약속하셨으니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당신과 나는 진정 변화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변화된 사람을 원하신다. 내 자신이 먼저 변화되면 온 우주가 변할 것이다. 우리 인생의 내적변화를 위하여 우리의 최선의 수련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인생의 내적 변화를 위하여 당신을 관상수도회로 초청합니다.
                                       2007.  2.  28.

                                              고려수도원  박노열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