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영적인식과 작용

 

1. 정신구조에 떠오르는 사고


  관상기도를 인간의 의식 수준과 비교하여 언급할 수 있다. 의식 수준에서 하는 기도를 구송기도와 명상기도라고 한다면, 관상기도는 무의식 상태에서 드려지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다음 그림에서 무의식의 수준에서 드리는 기도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정신구조에 떠오르는 생각들.jpg

위 그림에서 보면 개인무의식의 영역에서 떠오르는 좌우측의 거품은 기도 중에 떠오르는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들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대체적으로 무의식의 영역인 개인의 삶의 경험에서 유래한다. 기도 중에 경험하는 내용이 과거의 기억에서 유래된 경우 더욱 강화 시켜주거나 혹 나쁜 기억은 상처를 싸매주고 치유하는 정화의 과정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외의 다른 생각이나 이미지도 있을 수 있다. 그림의 점선 아래 부분에서 떠올라오는 가운데의 거품으로 표시된 집단무의식이다.
  
집단무의식은 특정 인종이나 문화에는 그 문화의 유구한 역사 속에 형성된 공통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융은 이해한다. 곧, 인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원형적 특성이나 아시아, 아프리카 등 특정 대륙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신화적 이미지나 내용이 이에 해당한다.
  
관상기도 중에 매우 강력한 감정적 체험이 있는 경우, 그 경험이 집단 무의식적 이미지가 아닌지 검토해 볼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 중에 경험하는 모든 강력한 체험이 집단무의식적인 것은 아니다.
  
만약 기도 중에 어떤 체험을 하게 되면 다만 그대로 바라보면서 마음의 동요 없이 주님의 사랑 안으로 돌아가야 한다. 관상기도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체험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관상기도의 실천에 바람직하지 못하다. 관상기도는 체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이 효과적인 관상기도의 실천에 매우 중요하다.

   관상기도의 어려움은 기도의 침묵 가운데 내면에서 사정없이 떠오르는 생각, 이미지, 느낌 같은 분심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장 잠심과 분심에서 잘 이해하였으리라 믿는다.
  
관상기도 중에는 끝임 없이 떠오르는 분심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는 앞장에서 거룩한 단어로 처음상태로 돌아가라 햇다.


2. 영적인식과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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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은 인간행위의 선악을 결정한다. (막 7:21~23, 마 15:18~20)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21~23)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마 15:18~20) 

1). 마음은 인간 이성의 근원이다 * 사고(막 2:6), 깨달음(마 13:15), 생각(마 9:4)
2). 마음은 인간 감성의 근원이다
    
* 기쁨(요 16:22, 엡 5:19), 애정(눅 24:32), 욕망(마 5:28)
3). 마음은 인간 영혼의 근원이다
     * 양심(행 2:37), 의지(롬 6:17), 믿음(막 11:23, 롬 10:10),   죄(마 15:18, 막 7:21~23)

어떤 사람들은 관상기도가 "침묵기도"라는 말을 듣고, 이와 같은 침묵기도에서 그 사람의 영혼의 역할은 침체하고, 활력을 잃은, 활동이 없는 상태로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침묵기도에서는 그 영혼이 소리를 내어 입으로 하는 기도에서보다 더 높고 포괄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어떻게 그것(보다 더 높고 포괄적인 역할)이 가능한가?

영혼은 활동적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고요한 침묵 가운데 머무를 수가 있다.
이것은 바로 주님께서 친히 그 영혼을 움직이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영혼은 성령님의 움직이심에 반응하여 활동하게 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그러므로 "침묵기도"에 들어가는 것은 당신이 모든 활동을 중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당신의 혼(soul)이 당신의 영(spirit)의 움직임에 의하여 활동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는 데에는 에스겔서(겔 1:19~21)가 도움이 될 것이다.

"침묵기도"는 활동을 금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영의 거룩한 활동을 촉진시키고 격려한다. 또한 침묵기도는 당신이 영혼의 낮은 차원의 활동을 억제시킨다. 그러므로 침묵기도는 하나님의 영에 절대 의존적이어야만 한다. 당신 자신의 활동의 자리를 대신하여 성령님이 활동하도록 내어주어야만 한다. 이러한 자리바꿈은 당신의 동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당신은 성령님과 자리바꿈에 동의를 하는 동시에 당신 자신의 활동을 중지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활동이 조금씩, 조금씩, 결국에는 완전히 당신의 영혼의 활동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게 되어가는 것이다.

누가복음에는 위와 같은 사실에 대한 아주 좋은 예가 있다. 당신은 마르다가 주님을 위하여 매우 옳은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마르다를 꾸짖으셨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눅 10:41~42).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마리아는 그녀 자신의 생각과 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다는 자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움직이심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의 영혼은 자연적으로는 안식이 없이 분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루어지는 것은 거의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1-42) 하셨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선택한 것은 무엇인가?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그녀의 생명이 되시도록 자신의 일을 중단하고 예수님의 발치에서 평온하고 조용한 안식을 선택했던 것이다.

"마리아의 예"는 누구든지 마리아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서는 당신 자신과 당신 자신의 모든 활동을 중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당신의 활동을 중지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는 주님을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생명이 들어올 때에는 당신의 생명이 자리를 비키고 내 드려야 한다. 바울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고 말했다.

침묵 속에서 주님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의 영혼이 스스로, 즉 성령의 활동과는 달리 별도로 활동하게 되면, 그 영혼의 활동은 타자에 의하여 강요되어 긴장에 싸이게 된다. 실제로 기도 속에서의 영혼의 노력은 언제나 염려와 애쓰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당신의 영혼이 움직이고 있는 때를 쉽게 구별해 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당신의 영혼이 당신의 존재의 더 깊은 어떤 것(성령님)에 반응하여 움직이게 된다면, 그러한 활동은 마치 당신이 전혀 노력을 하지 않는 것처럼 자유롭고 쉬우며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당신의 영혼이 내면세계로 향하여 성령님께로 고정되어지면, 바로 그 순간부터 주님의 영이 내적으로 이끄시는 힘은 매우 강력해진다. 사실 당신의 영(spirit)이 당신의 혼(soul)을 이끄는 힘은, 다른 어떤 힘보다 강해진다. 특히 당신을 다시 표면으로 돌아가도록 잡아끄는 어떤 것들보다도 훨씬 강력하다. 실제로 중심으로 돌아가는 속도에 있어서 영혼이 성령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빠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침묵 속에서도 영혼은 활동하는가? 그렇다. 그 때의 영혼의 활동은 아주 승화되고 자연스러우며 평온스럽고 자발적이기 때문에, 마치 영혼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돌아가는 바퀴와도 같다. 당신은 돌아가는 바퀴를 관찰해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바퀴가 천천히 돌아갈 때에는 바퀴의 모든 부분이 잘 보인다. 그러나 바퀴가 점점 더 빨리 돌아감에 따라 거의 아무것도 확인할 수가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고 있는 영혼의 모습이다.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고 있을 때에는 그 활동이 영적이며, 매우 고양되어있다. 그 영혼은 평온으로 충만해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영혼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수록 영혼의 중심에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더 빨리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은 혼(soul)이 영(spirit)에게 복종하고, 움직이며 지시를 하는 존재는 성령(the Spirit)이시기 때문이다.

당신을 당신의 내적인 부분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을 끌어당기시는 행위(섭리)로 당신이 하나님께로 달려 나가게 한다. 이끌림을 받아 나가는 것은 영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영에게 말씀하신다. 주님은 주님만이 친히 거하시는 곳인 당신의 중심을 이끌어 당기시는 것으로써 주님을 따르도록 당신을 부르신다. 따라서 당신의 영이 가장 먼저 이끄심을 받게 된다. 그 다음에 당신은 그 중심으로부터의 이끄심을 따르게 된다. 당신은 의식의 방향과 당신의 영혼의 모든 힘을 주님께로 집중시킴으로써 그렇게 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성령께 전적으로 의지하라. 이것이 언제나 당신의 주된 관심사여야만 한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행 17:28)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주 복잡하다. 우리의 영혼들은 아주 다양한 활동들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떠나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하나님의 단일성과 통일성으로 들어갈 수 있기 위해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침묵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될 때에는 하나님의 뜻의 다양한 면들을 수행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 때 하나님과의 그러한 연합의 상태를 떠날 필요는 없다. 하나님과의 하나됨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뜻의 다양한 면들이 수행될 수가 있는 것이다.

간단한 "침묵의 기도"가 당신을 어떠한 자리로까지 인도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