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관상기도의 실천

 

   관상기도의 실천은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에 대한 응답이다. 플랑드르의 신비가인 루이스브렉(Jan van Ruysbroeck)은 관상기도를 실천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합에 대한 소망을 갖고 기도하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것(주님과의 연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모든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역사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서 행하시는 것들 중 첫 번째 것은, 그들 모두를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부르시고 초청 하신다”고 말한다.71) 그래서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관상기도를 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을 부르시는 은혜의 한 표현이라고 믿고 순종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관상기도는 머리로 배울 수 있는 기도가 아니고 가슴으로 배울 수 있는 기도이다.

   관상기도를 하는 성도는 침묵 속에서 하는 일은 주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내면의 분심을 처리하여 영혼을 정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관상 기도를 꾸준히 성실하게 실천해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의 세계가 맑은 호수 같이 고요와 평화 가운데 주님의 뜻을 자신의 삶에 육화시켜가는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게 된다.


1. 관상기도의 전제

   관상기도의 실천에 중요한 전제가 있다. 

1) 주님은 이미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전제하고 있다.
   관상기도를 함으로써 주님의 현존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 가운데 이미 현존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깨어 민감한 상태로 준비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2) 주님은 기도하는 ‘나’를 온전히 아심을 믿는다.
   그렇다면, 내가 나를 온전히 의식하기 시작할 때, 주님을 의식할 가능성이 더 있음을 확인하고 관상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의 할 도리를 하는 것이 관상기도의 실천이며, 기도할 때 성령의 도우심을 요청하며 성령의 이끄심대로 따르려고 해야 한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임재 해 계신다고 믿기에 우리 내면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주님과 투명하게 대면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우리는 관상기도에 관심과 애정을 보이며 이 기도를 행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2. 마음의 자세

1) 믿음과 신뢰이다. 
   무엇보다 관상기도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관상기도가 수준에 이르게 되면, 아무런 기도를 했다는 느낌이 없이 기도를 마칠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럴 때 “내가 기도를 과연 제대로 한 것인가? 아니면 그냥 멍하니 시간만 소비하고 만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런 느낌이 듦에도 불구하고 관상기도를 지속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기도는 하나님의 언어인 침묵을 통해 실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도를 지속해서 하려면, 이런 가운데 나와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그런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만 기도 중에 생기는 여러 가지 분심과 회의를 이겨내고, 주님과 참다운 관계에 들어가도록 인도하는 사귐의 기도를 통해,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기도를 지속해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마음속에 “오 주여!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라는 마음으로 기도에 임한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경우(눅 10:38~42)처럼, 주님 앞에서 주님을 기다리며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해결해주신다는 믿음과 희망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3) 기도의 시간을 즐긴다.
   주님 앞에 있는 이 시간,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 속에 오셨음을 믿고 다른 외부적 일에 조바심, 초조, 불안을 버리고 기도의 시간에 평안하게 그분과 함께 즐기는 것이다. 마치 어린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모든 것을 엄마에게 맡기고 아기 자신은 존재 그 자체를 느끼며 해맑게 살아가듯이 말이다.


3. 몸의 자세

   기도는 온 마음과 온 정성과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기에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기도 자세가 요구된다. 몸에 관하여 동서양의 모든 기도 수련에서 공통되게 추천하는 일관된 원리는 “등을 똑바로 세우지만 긴장하지 않는 것”이다.  다리를 접거나 포개서, 마루나 방석에 앉든, 혹은 똑바로 의자에 앉든 또는 기도의자를 이용해서 무릎을 꿇고 앉든지 간에, 그 기본 의도는 혈액순환이나 호흡을 방해하지 않는 반면에 의식을 적절하게 집중하고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런 모든 준비들은 나와 친밀하게 현존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한다는 믿음을 확고히 하고 깨닫도록 돕는 수단이다.

1) 가장 중요한 것이 허리의 자세이다.
   척추를 곧게 세우면, 내장의 압박이 그만큼 줄고 복압력이 생겨 호흡이 편해지고 정신도 안정된다. 뿐만 아니라, 온 몸의 긴장이 사라지며 마음이 집중되고 스스로 초연해지므로, 피로가 가시고 평온이 유지된다. 이 자세의 가장 중요한 유익은 몸의 자세가 안정되면 마음도 따라 바르게 된다는 점이다. 이때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몸에 생기가 충만해질 뿐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찾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2) 자세에 제한은 없다.
   어떤 자세도 가하다. 그러나 장소에 따라 가장 편한 자세를 선택함이 좋을 것이다. 의자에 앉든 바닥에 앉았을 때도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그렇다고 졸음이 올 정도로 편안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기도의자를 사용하여 무릎을 꿇고 앉아 허리를 곧게 펴고, 머리를 곧게 세우고 눈을 감고 침묵 가운데 기도하는 것도 한 방편이다. 이런 자세 속에서는 호흡도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호흡이 중요하나 호흡에 지나치게 관심 같지 않는 것이 좋겠다. 오히려 기도 중에 분심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 기도하는 자세 >

 

4. 기도의 시작 방법

   만일 관상기도를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기를 원한다면, 다음과 같이 시작하십시오. 우선  항상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엄격한 순종을 실천하십시오. 순종이 없으면 양심이 깨끗할 수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서 양심을 깨끗이 보존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관하여, 둘째는 영적 아버지에 대하여, 셋째는 사람들과 물건들에 대해 양심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상충되는 일을 행하지 않아야 합니다.
   영적 아버지와 관련해서는, 그분이 명하는 것을 더하거나 감하지 말고 그대로 행하며, 그분의 목적과 뜻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에 관해서는, 당신이 싫어하는 일 및 당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그들에게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건들과 관련해서는.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이나 의복을 남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듯이 하여 양심이 당신을 책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1) 어디서 기도할 것인가? (기도의 장소)
   기도자가 완전히 혼자서 사사로이 있을 수 있는 장소, 방해를 받지 않을 만한 장소, 너무 시끄럽지 않은 곳. 예수님께서는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막 6:6) 라 하셨고, 예수님 자신도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눅 5:16)
   그러나 예수께서도 언제나 뜻대로 외딴 곳에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생각하면, 우리도 어느 정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막 6:30이하) 다른 사람과 함께 한 장소에 있다거나 한 방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권할 만한 일이 못 된다.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 자체가 벌써 심리적으로 강한 분심이 되고, 완전한 긴장 이완에 방해가 된다.
   만약에 가능하다면, 교회나 자기 방에서 기도할 것이다. 보통으로 교회는 이러저러한 일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될 가능성이 너무 많기 때문에, 자기 방에서 기도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옥외에서 좋은 장소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의가 산만해지거나 중단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곳이어야만 한다.

 (2) 얼마 동안 기도할 것인가? (기도 시간의 길이)
   매일 한 시간을 온전히. 매일 한 시간의 '묵상'기도가 대부분의 수도규칙들이 전통적으로 규정한 시간이다. "기도 시간이 너무 짧으면, 여러 가지 공상을 버리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으로 시간이다 지나간다. 막 준비가 되어서 정말로 기도를 시작해야 할 때에 벌써 그만두게 된다."  하루의 한 시간은 우리 삶의 시간 전체의 약 4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활동적이고 바쁠수록 그만큼 더 '하나님 앞에서 긴장을 풀고 쉬기 위해서는' 온전한 한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의 이 기도가 우리의 신경과 정서에 꾸준히 영향을 미쳐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만약 바쁜 생활을 한다면, 고요와 침묵 속에서 매일 우리 '영혼을 치유하고' '성령께 우리를 열어' 드려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어떤 선행보다도, 이런 식의 매일의 침묵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철저히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하신다. 그러므로 이 더 높은 무지의 구름에 전력을 다해 열심히 파고드십시오. 휴식은 나중에 취하십시요.

 (3) 언제 기도할 것인가? (기도의 때)
   실제로 언제 기도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각자의 소임과 임무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이들은 이른 아침을 좋아한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35)     만약 이른 새벽에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깨어있을 수 있다면, 새벽의 고요함은 정말로 큰 보상이 된다. 어떤 이들은 잠자기 전, 저녁의 고요한 시간을 좋아한다. 이 시간에는 긴장을 풀기가 쉽고, 그리스도와 함께 '한 시간 동안 깨어 지킬 수' 있어서 좋다. 가급적이면 잠자기 직전에는 숙면을 위해서 피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한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온전히 한 시간을 기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들을 희생해야 할 것이다. ‥‥.
  장거리 버스 여행 중이나 기차 정거장에서도 한 시간의 기도를 할 수 있다.
  각자가 언제가 기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인지 때때로 점검해야 할 것이다.


5. 반드시 알아야할 교훈

1) 영성생활의 본말을 전도해서 은사 자체에 지나치게 몰두하거나 집착해서는       안 된다.  영성생활의 주된 목적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사랑으로 연합함이 가장 큰 목적이고,
   (2)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존재를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2) 영적으로 체험된 것 중에서 순수 관상으로써의 하나님에 대한 직관적 지식      (환상vision, 계시revelation), 영적언어(locution), 영적느낌(spiritual feeling)은 하나님의 자기전달이므로 수동적으로 받아야 한다. 즉 외적감각이나, 내적감각의 개입 없이 오직 초자연적 방법으로 주어진 영적지식으로 받아라. 다른 은사들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의 판단에 따라 거두어 가시기도 한다.(고전 13:8)
  *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의 마지막 우상은 신령한 은사들에 대한 집착이다.
3) 인간은 하나님이 정하신 지고의 영광된 목표 앞에서 아직 도상적 존재이        다. 자기가 현제 도달한 어떤 고상한 영적 상태에서 자만하거나, 자족하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야  한다.

   * "오직 하나님 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