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기도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6~28)

준비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관상생활

41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그러나 몇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눅 10:41~42)

관상기도에서 없는 것

"주시옵소서"가 없다.
구하여야할 것이 없어서 구하지 않거나, 교만해서 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구하기 전에 너희 쓸것을 너희 아버지게서 아신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다만 하나님의 사랑만 느끼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눅 12:29~30)


관상기도에서 구할 것

하나님의 은총으로 하나님과의 일치를 이룸이다.
"주님 나와 하나되어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온전히 주님을 사랑하겠나이다"
"주여 나에게 당신 자신을 주옵소서. 당신 가슴 속 은밀한 곳에 숨게 하소서"  (어거스틴의 기도)


............................... 넋두리 삼아 관리자의 기도 여정을 정리해 봅니다 ....................................


25년(1982년?) 정도 이전에 내가 중동에서 지하교회를 인도하며 함께 신앙생활 할 때의 일이다.
예배 때와 예배 마친 후 하나님의 임재를 확실하게 느낀 일이 몇번 있다.
어느 성탄절 날 우리의 예배 장면을 찍은 사진에는 강대상에 하얀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중동지역 특성상 십자가를 달지 못하고 몰래 드리는 예배였다.
우리의 소원이든 십자가가 선명하게 찍힌 것을 보고 너무 기뻐하였다.
귀국해서 신학교로 갔으니.........

신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삼각산에 올라 다니며 기도할 때의 일이다.
사실 밤새 기도하는 것이 너무 피곤하다.
나로서는 밤새 기도할 것이 별로 없었다. 왜 없었겠는가 ?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밤새드린 기도가 잠시 시간 지나간 것같이 쉬웠다.
어떨 때는 밤새 손을 들고 있었는데 팔이 아프지도 내려오지도 않았다.
대부분 처음에는 통성으로 기도 시작하는데 하다가보면
조용한 가운데 묵상 속에 들어가 있었다.
이것이 지금 알고 보니 관상기도였다.

어느 40일 약속기도를 마치는 날 아침 세 여인들의 떠드는 소리 그리 예쁘고 밝고 명랑했든가?
아침 마주칠 때 내게 목사님이라고 불러 주었다.
(강도사 고시 문제로 기도하며 떨어지면 사회로 돌아가겠다고 언제나 그리해 왔고 재자는 절대 붙히지 않기로 해 왔다)
나는 아니라고 했더니 자기들이 보니 목사란다.
잠시 후 조용해서 뒤돌아 보니 없어졌다.
불과 10여m 거리인데 어디로 갔을까 찾아 보아도 없다..............

1991년(?) 쯤 어느날밤 산에서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니
산길이 많이 떨어져 나갔고, 개울물이 강같이 흘러왔다.
집에 내려와 보니 아내는 걱정된 얼굴로 쳐다보다가 하는 말 "살아돌아왔네"
무슨 일이 있긴 있었나보다.
TV를 틀어 놓고 있는데(혹시 내 소식?) 온통 폭풍 피해 소식이었다.
간밤에 서울이 떠내려가라고 폭풍이 불고, 천둥 번개가 밤새도록 쳤단다.
태풍 사라호 이후에 처음이라나...
온통 거리는 가로수, 전주 등이 부러지고 무너지고 정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꼭대기에 있던 나는
비가 오는 줄도
천둥번개가 있는 줄도
폭풍이 부는 줄도
아무것도 몰랐다.
내 옷은 절대로 뽀송뽀송했다.
누가 이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것인가?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정신 이상자라 하겠지....!!!!

그 후로도  여러 차례 금식하며 기도할 때,
언젠가 장기금식 중(20여일 지난 후)  밥상이 들어와서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친 후 지금까지
밥먹지 않아  배고픔으로 허덕이는 일이 없다.

기도하다보면
잠을 잔것 같은데 분명히 자지는 않았고,
통성으로 기도를 시작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꿈을 군것같기도 하나 조용히 서 있고,
먼 나라에 갔다 온 것 같은 때가 간혹 있었는데 아마 그것이 관상기도였는가 보다.

그리고 수년 전에 왕건이라는 TV 연속극이 인기가 있을 때였다.
나도 간혹은 보았는데...

어느날 도선대사가 어린왕건에게 가르치는 모습을 보았다.
큰 도전을 받았다.

먼 하늘을 보는 자세로 조용히 눈을 감고 묵상하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오랜 시간이 흘러간듯하다.
대사가 왕건에게 “무엇이 보이느냐?” 물어니
왕건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니
대사가 더 기다리도록 수련시켰고....
얼마 후에 왕건이 대사에게 말한다.
대사님 “무엇이 보입니다”
대사는 왕건에게 “왕이되는 비젼을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 이후 중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도전을 받았다.
가끔 조용히 앉아 왕건이 흉내를 내기를 자주 하였다.

물론 나는 조용히 앉아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 어느 날 십자가의 예수님의 두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으며, 얼마나 울었든가? 그 후로는 다시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것이 관상기도였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습덕적 관상"이었다.

그 즈음부터 수도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이버수도원을 시작하였다.
수도원에서 나는 여러 가지를 종합하면서 결국 단순기도에 정진하기로 하였는데...
그 후로도 자주 조용히 앉아서 그 때 그 예수님 보려고 했으나 .....
다른 기도 내용도 그런 모습으로 늘 소원의 형상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그리 많이 습덕한 기도는 못되었다. 힘들고 어려웠다.

그 후 수도원과 관련하여 관상기도에 대한 이론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책에서도 영성훈련과 관련하여 관상기도라는 것이 있는데 최고의 기도란 정도만 알았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이리 저리 조사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천주교에서는 관상기도가 보편화 하다시피 하고 있고
성도들도 8일 피정, 30일 피정 이라고 하는데...
기독교에서는 관상기도라는 말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책에 기도의 종류로 소개될 정도였다.
그래서 천주교 계통의 서점에서 관상에 관계되는 책을 대부분 구매 하였다.
지금 서적이 59권(몇일 후면 5권이 들어옮) 논문이 한 20여권 된다.
대부분 천주교 논문이지만 그 중엔 목원대에서 나온 석사 논문도 있었다.
모두 복사해서 책으로 묶어 놓고 읽었다.
그래도 아직 관상기도에 대해서 깊이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한신 대학교 권명수 교수가 이끄는 관상 수련회를 알게 되었다.
일년에 두 번 수련회를 갖는데 행운으로 네 번째부터 지금까지 참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관상에 대한 기초 이론을 조금씩 정립(주부적, 습득식)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관상기도를 한다고 기도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기도해온 것이 관상기도였다. 그런데 관상기도 중 습덕적 관상이었다.
습덕적 관상이란 내가 노력해서 무엇인가를 보는
다시 말해서 내가 노력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이다.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 수련회에 참석해서 쉬운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주부적 관상”이라는 것이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고 하나님께서 찾아와서 나와 일치(하나됨)해 주시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화(변형, 영화) 되어가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너무 쉽고 성경적이고 좋았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나 혼자 가만히 앉아 있도록 그냥 버려두면 얼마나 좋으랴!
내 속에서 거짖 자아가 한 없이 솟아오르고 뜨오르는 생각들.....
눈뜨고 성찰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과대망상증 같이 중요하고 긴급한 것들로 부탁쳐 오는가 하면...
아뭏던 나는 아직도 관상가가 되지 못하였음을 고백한다.
나는 지금도 관상기도를 연구하고 수련 중에 있다.
여기 수도원을 통하여 공부하고 수련하고 있다.

정리하면 나는 오래전부터 습득식 관상기도 대로는 주부적 관상기도를 나도 모르게 해왔다.
그러멩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애를 태웠다.
뒤늦게나마 이론을 접하여 자료를 정리하고 혼자 연습하다가
뜻밖의 좋은 기회로 확실한 방법(주부적)을 터득(권교수님의 몇 차례의 수련회를 통하여)했다
그리고 모든 자료(?)를 정리하고 관상기도가 이것이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남은 생을 이일에 투신하는 것이 사명으로 알고 헌신하리라 결심하게되었다.

언젠가 우리 주님이 나와 하나 되어 주심으로 황홀경에 이를 것이다.
다만 지금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조용히 앉아서 기다릴 뿐이다.

나의 관상기도란 것이 별로 신통치 않다.
다만 아직도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내가 조용히 믿음으로 앉는 것과
내 앉은 그 자리에 하나님의 임재와 아울러 나와 하나되어 주실 소망과
주님을 향한 나의 온전한 사랑을 지향하여 조용히 앉아 기다릴 뿐이다.

나는 지금도 앉아서 기다리고....
주님은 언젠가 오셔서 하나 되어 주실 것이고....

그것이 전부 다입니다.

2006년 1월  18일 새벽 1:35.   박노열


GOD Bless you


추신 :  2009. 2. 4

* 최초작성일은 2004년 어느 겨울밤(성탄절 몇일 전) 기도를 마치고  보니 
   관상기도를 하게된 이유가 궁금해서 정리해 본 것인데( 그래서 년도 숫자 등이 정확한 데이터가 아닙니다)
   컴의 자료들을 옮기고 홈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내용 수정없이 그대로 옮겼군요.
   지금 수정하고 싶으나, 원문 그대로 두기로 합니다.
   특별히 차이점은
    2006년이면 관상기도 자료집을 만들었을 때이고 이때는 책이 120여권을 읽고 정리햇는데....
   그리고 지금은 약180~190권을 소장 중인데....
   기록년도가 2004년인데.....
   이 홈페이지를 시작한 것이 2002년 4~5월인데....
   내용중 연도는 지금도 정확히 알수가 없음(자료를 살펴서 정리하면 추정은 할 수 있겠지만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아쉽군요)
   왕건드라마 이전에도 관상기도를 해 왔고 그 때 크게 도전 받은 것인데...
   이전에도 습득식을 해 왔지만 사실은 습득식보다 주부적 관상기도가 더 많았는데....
   이런 몇가지 표현이 조금 고치고 싶은 부분이지만 그대로 두고 추신으로 몇 가지 사항을  수정합니다.
                                                                           2009년 2월 4일    박노열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