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어떻게 거룩한 단어가 작용하는가?

  거룩한 단어는 당신이 깊은 내면의 수준에서 생각하는 단순한 사고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받아들이는 것이다. 입술로 외우는 단어는 외적인 것이므로 이러한 기도와 상관이 없다. 상상 속의 사고는 내적인 것이며, 당신 의지의 충동을 나타내는 단어는 더욱 내적이다. 단어의 단계를 넘어서 순수한 인식으로 들어갔을 때에만 내면화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베다니의 마리아가 예수의 발꿈치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리아는 그에게 말씀하시는 분에게서 듣는 말씀들을 넘어가서 그분과의 일치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향심기도를 하려고 앉아서 거룩한 단어를 내면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거룩한 단어를 넘어서 그 단어가 지향하는 분, 즉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어떠한 관념도 넘어서, 절대 신비이신 하나님의 현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가고자 하는 열망 우리 안에 그분이 현존하시도록 우리를 그분께 열어 드리고자 하는 열망은 우리의 주관(主管)에 달려 있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어디로 갈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그분께 우리가 일치하도록 여러 가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으로 그분이 우리를 당신께 끌어당기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 안에 이미 진행되고 있는 어떤 행위에 자신을 여는가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현존에 동의하는 것 자체가 바로 그분의 현존이다. 거룩한 단어는 우리의 심적 인식의 수준을 넘어서 우리 존재의 원천,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에 계시는 삼위일체이신 분을 지향하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에 하나님은 하나의 사진이나 동상처럼 생명이 없이 계시지 않고 살아 활동하시며 계신다. 이 기도의 목적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끊임없이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활동과 접촉을 이루려는 데 있다.

  만일 당신이 이 기도를 여러 달동안 수련한다면 이 기도가 당신에게 맞는 기도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이 기도를 수련함으로써 얻는 경험을 대치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은 새로운 친구를 알게 되는 것과 같다. 만일 당신이 새 친구를 정규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면 빠르게 서로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도를 하루에 두 번, 아침 일찍 한 번 그리고 저녁 식사 전에 한 번 할 것을 권하는 것이다. 그 "대화'가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면 당신은 확실히 평화와 새로워짐을 경험할 것이다. 때로 그 대화는 야구 경기에 흥미가 없으면서 야구 스코어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과도 같다. 당신이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 흥미를 가지면 그 사람이 흥미로워하는 것에도 흥미를 갖는 것처럼 그 대화에 인내를 갖게 된다. 만일 당신의 장기적 목표를 하나님과의 우정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에 둔다면 별재미 없게 느끼는 기도의 시간도 당신을 부담스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근본적인 원칙은 매일 기도를 하는 것이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