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인간의 영혼과 그 기능들

 

 

 

인간의 영혼과 그 기능들을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단어들, 즉 이성지성감성의지 등의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먼저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이해에 도움이 되시기 바란다.

이성(理性)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 실천적 원리에 따라 의지와 행동을 규정하는 능력. 자율적 도덕적 의지의 능력.

지성(知性) (심리) 인간의 지적능력. 사고하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 감각을 통해 얻어진 소재를 정리, 통일하여 새로운 인식을 형성하는 정신작용.

감성(感性) 자극에 대하여 느낌이 일어나는 능력. 감수성. (철학) 대상에서 감각되고 지각되어 표상을 얻게 되는 인간의 인식능력 오성(悟性)

* 오성(悟性) : 사물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판단되는 능력. 지성

* 오성(五性) : 사람의 다섯 가지 성정(기쁨노여움욕심두려움근심)

의지(意志) 어떤 일을 이루는 마음. (심리) 깊이 생각하고 선택결심하여 실행하는 능력. 의욕. (윤리) 도덕적 행위의 근원이 되는 내적인 욕구.

 

 

1. 영혼과 그 기능들

 

주제 : 영혼에 관한 철학자들의 견해는 아담의 타락에 비추어 볼 때 비판되어야 한다(6-8).

 

1) 영혼과 그 기능들

영혼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철학자들에게서 찾는다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플라톤(Plato) 이외에는 영혼의 불멸적 실체를 올바르게 확언한 자라고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Socrates)의 제자들도 이 문제를 다루기는 했었지만 그것을 명백하게 가르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견해는 보다 더 정확했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의 형상이 영혼 안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영혼의 힘과 기능을 현재 생활에 고착시켜 버렸기 때문에 육신 이외에는 그것에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았다.

한편 우리는 성경에 기초하여 이미 영혼은 비물질적인 실체다.”라는 사실을 가르쳤다. 이제 우리는 비록 영혼이 어떤 일정한 공간 안에 가두어져 있지는 않지만 육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마치 집 안에 있는 것같이 그 안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과 또한 영혼은 육신의 각 부분을 움직이게 하고, 그 기관들을 각기 활동하기에 알맞고 쓸모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활을 관할하는 데 있어서, 즉 지상 생활의 의무와 연관시켜서뿐만 아니라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일에 있어서 첫번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첨가해야만 한다. 비록 이 마지막 요점이 인간의 타락에서 분명히 인식되지는 않지만 일부분의 흔적은 그 사악함 속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인간이 자신들의 명성에 대해 그렇게도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수치심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러한 수치심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올바른 것을 경외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이것의 시작과 원인은 그들이 스스로 종교의 씨가 들어 있는 의를 존중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이해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천적(天的)인 생활을 명상하도록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인 것처럼 그것에 대한 지식도 영혼 속에 새겨져 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인 것이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과 연합됨으로써 완성되는 인간의 행복이 인간에게 숨겨져 있었다고 한다면 그는 실제로 그의 지식의 주요한 효용을 상실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영혼의 주요한 활동도 이러한 행복을 열렬히 갈망하고 있으며, 따라서 누구든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자신이 이 이성을 부여받은 자임을 더욱더 입증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 안에는 여러 영혼들, 즉 감각적인 영혼과 이성적인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는 그럴듯한 점이 없는 바도 아니지만 그들이 추측하는 근거가 전혀 증명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고생스럽게 사소한 논쟁과 쓸데없는 문제에 휘말려 들기를 원치 않는다면 이 견해를 단호히 물리쳐야만 한다. 그들은 몸 기관의 유기적인 운동과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 사이에는 큰 모순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마치 이성 그 자체가 역시 그 자체와 모순되거나 혹은 전쟁하는 군인들처럼 그 자체와 충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혼란은 본성의 타락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므로 이 사실에 근거하여 두 영혼이 (인간 안에)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실로 잘못된 일이다. 왜냐하면 기능들은 서로 간에 적절한 비율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기능들에 대해 세밀하게 논의하는 일은 철학자들에게 맡겨 두고 싶다. 우리에게는 단지 경건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단순한 정의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사실상 나는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바들이 참되고 흥미 있을 뿐만 아니라, 가르치기에 유익하며 재치 있게 종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또한 나는 열심히 그것들에 대해 배우려고 하는 자들을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다. 따라서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플라톤이 기관이라고 부른 오관(五官)’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에 의하면 이 오관에 의해 모든 대상이 마치 그릇에 부어지는 것같이 일반적인 감각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뒤따라 나오는 것이 상상력인데, 이것은 일반적인 감각에 의해 이해된 사실들을 분별하는 역할을 한다. 그 다음에는 일반적인 판단을 제공하는 이성,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이성이 광범위하게 생각하고 있는 바를 확고하고 침착하게 연구하면서 관찰하는 오성 이 뒤따라 나온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성과 이성, 그리고 상상력(영혼의 세 가지 인식 기능들)에 대응하는 세 가지 의욕적인 기능들이 있는데, 그것은 곧 의지와 성내는 기능, 욕구하는 기능이다. ‘의지는 오성과 이성이 제시하는 바를 추구하려고 하며, ‘성내는 기능은 이성과 상상력에 의해 제공되는 것을 파악하며, 또한 욕구하는 기능은 상상력과 감각에 의해 제시되는 것을 이해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것들이 사실이고 최소한 그럴듯한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것들이 우리를 돕기보다는 오히려 애매모호하게 만들게 될 것임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를 다루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능력들을 또 다른 방식으로 분류하고 있다. 즉 그 중 하나는 의욕적인 능력인데, 이것은 이성이 없을지라도 이성과 그 지배가 존중되는 능력을 말하며, 다른 하나는 지성적인 능력인데, 이것은 그 자체를 통하여 이성에 참여하고 있는 능력을 말한다. 나는 이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지는 않는다. 또한 행동의 원리에는 세 가지, 감각오성(悟性)’, ‘욕구가 있다는 견해를 굳이 반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철학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구분을 선택하는 편이 더욱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우 단순하게 말하기를 원하면서 영혼을 욕구오성(悟性)’으로 구분했지만 둘을 이중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후자를 종종 명상적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그것이 단지 지식으로만 만족하고 어떤 행동하려는 의향’ (키케로는 이것을 자발심이라는 용어로 표현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그것을 종종 실제적이라고도 말했는데, 이는 그것이 선이나 악에 대해 인식함으로써 의지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에는 선하고 올바르게 사는 생활방식에 대한 지식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그들은 전자(욕구)의지정욕으로 구분했으며 또한 욕구(βοληδις)가 이성에 순종할 때에는 충동(ὸρμή)’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욕구가 이성의 멍에를 벗어던져 버리고 방종함 가운데로 빠져 들게 될 때에는 정욕(πθος)’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이 그들은 언제나 자신을 올바르게 지배해 줄 수 있는 이성이 인간 안에 있다고 상상한 것이다.

 

2) 근본적인 기능들로서의 오성(悟性)과 의지

그러나 인간의 배신에 대한 형벌로 말미암아 비롯된 본성의 타락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있는 철학자들은 인간의 두 가지 다양한 상태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교육방법으로부터 부득이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확정짓도록 하자. 즉 인간 안에는 우리가 현재 다루고 있는 주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두 가지 기능, 즉 오성과 의지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오성이 하는 일이란 각기 찬성이나 혹은 불찬성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물을 구별하는 것이지만, 의지가 하는 일이란 오성이 좋다고 선포하는 것을 선택하고 뒤따르면서도 그것이 찬성하지 않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마음(정신)은 결코 스스로를 움직이지 않으며, 다만 선택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세부적인 설명에 대해 굳이 재론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그는 이러한 선택을 욕구적 오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가 쓸모없는 문제에 휘말려 들지 않기 위해서는, ‘오성은 말하자면 영혼의 지도자와 통치자이며 의지는 언제나 오성이 명하는 바를 유의하고 그 자체의 소원에 있어서 오성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상을 아는 것만으로 만족하도록 하자.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실제적으로 동일한 것을 가르치고 있다. 즉 그에 의하면 욕구안에 있는 회피와 추구는, 정신 안에 있는 긍정이나 부정과 조금 비슷하다는 것이다.

오성이 어떻게 의지를 확고히 지배하는가는 다른 곳에서 살펴보게 될 것이며, 여기에서는 다만 이 두 기본 능력(오성과 의지) 중 어느 하나에 정식으로 예속되지 않는 그 어떤 능력도 영혼 가운데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는 사상만을 말해 주고 싶다.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감성을 오성 밑에 포함시키고 있다. 한편 철학자들은 이 둘을 구분해 말하기를, 감성은 쾌락으로 기울어지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감성적인 욕구는 지나친 소원과 욕망이 되며, ‘오성의 의도는 의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욕구라는 말 대신에 보다 더 일반적인 의지라는 말을 쓰고 싶다.

3) 자유로운 선택과 아담의 책임성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에 정신을 주셔서 그것으로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각기 구별하며, 이성의 등불의 인도를 받아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피해야 할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하셨다. 이러한 이유로 철학자들은 이 지도적인 능력토 헤게모니콘’(τὸ ἡϒεμονικόν, 원리적인 구분, 지도력)이라고 불렀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에 의지를 결부시킴으로써 이 의지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도록 책임을 부여했다. 인간은 본래적인 상태에서 이러한 탁월한 은사들을 부여받고 있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성오성현명판단력은 그의 지상생활을 지도하는 데 충분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들에 의해 인간들을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 욕구를 지도하고 모든 유기적인 운동들을 관할할 수 있는 선택이 첨가되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의지는 이성의 지도에 완전히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본래적인 순수함 가운데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 그가 원했더라면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밀하신 예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여기에서 다루려고 하는 주제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의 여부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실제적으로 어떤 것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담은 만일 그가 원했다면 능히 설 수가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그 자신의 의지에 의해 타락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의지는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었으며 끝까지 견딜 수 있는 항구성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쉽사리 타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선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파괴시킴으로써 자신의 축복들을 상실할 때까지 그의 마음과 의지 속에는 최고의 정직함이 깃들어 있었고 모든 식별력이 순종을 위해 적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여기에서부터 철학자들은 큰 흑암 가운데로 빠져 들게 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폐허 속에서 건물을, 그리고 흩어진 파편들 속에서 잘 어울리는 구조물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이 선과 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었더라면 이성적인 동물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원리를 고집했다. 또한 그들은 만일 인간이 자신의 생활을 자신의 계획대로 조절하지 못했더라면 덕과 악 사이의 구별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만일 인간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었더라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하늘과 땅을 혼동했다고 해서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입으로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고백하면서도, 잃어버린 바 되고 영적인 불행 가운데로 빠져 버린 인간에게서 아직도 자유의지를 찾고 있는 자들은, 철학자들의 견해와 천적(天的) 사이에서 타협을 시도함으로 완전히 오류 가운데로 빠져 들어갔고, 이로 말미암아 하늘이나 혹은 땅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앞으로 적절한 곳에서 더욱 잘 다루게 될 것이다. 지금은 다만 이 한 가지 사실만을 명심하도록 하자. 곧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에는 그의 모든 후손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그의 타락한 상태에서 기원되어 유전적인 타락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영혼의 개별적인 부분들은 올바르게 창조되었고 그의 정신의 건전함은 확고했으며 또한 그의 의지는 마음대로 선을 선택할 수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그의 의지는 그 힘이 약하기 때문에 말하자면 불안전한 위치에 놓였다고 반론을 제기한다면, 그의 위치(그의 본래적인 순수성에 있어서의)는 어떤 변명이라도 물리치기에 충분했다고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를 지을 수도 없고 또한 죄를 지으려고도 하지 않는 인간을 만들어야만 하셨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틀림없이 그러한 본질은 보다 더 탁월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하나님이 이러한 본질을 마땅히 사람에게 부여해야만 하셨던 것처럼, 이 요점에 대해 하나님과 더불어 논쟁을 벌이려는 것은 더욱더 불법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자신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내의 능력으로 인간(아담)을 붙들지 않으셨는가는 그의 계획 속에 감추어져 있으며 우리는 다만 진실함 가운데서 지혜로워야 하는 것이다.

사실상 인간은 그가 원했을 때 능력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의지는 소유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지에는 인내가 뒤따라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고의로 자신의 파멸을 초래할 만큼 능력을 받았기 때문에 결코 핑계를 내세울 수 없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자신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얻도록 하기 위해 인간에게 중간적이고 일시적인 의지를 반드시 부여해야 될 어떤 필연성을 느끼지는 않으셨다.

 

 

2. 인간 : 영혼의 본성적 능력

 

1) 인간 영혼의 본질

모든 영혼은 단순하기 때문에, 연장(延長)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연장을 그 고유 특질로 가지고 있는 물체일 수 없다. 영혼은 생명의 제일 원리이며. 생명은 인식운동두 가지로 표명된다. 고대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물체가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영혼은 있으므로,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없다. 따라서 물체이다.’ 오류다! 물체는 그것이 물체인 한 생명의 제일 원리일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다면 모든 물체들은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물체(예컨대 심장), 즉 영혼을 현실적으로 가지고 있는 물체는 살아 있다. 그러므로 영혼은 물체가 아니다. 어떤 물체의 현실력이다.

 

인간 영혼은 육체로부터 독립적으로 그 자체 자립하는어떤 것이다. 왜냐하면 지성적 인식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 지성적 인식을 통해서 모든 물체들의 본성을 안다. 그러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영혼은 물체에 속하는 어떤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 다른 물체들의 본성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입맛 쓴 사람이 다른 맛들을 지각하지 못하듯이 말이다. 이처럼 지성적 인식이 신체적 기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물들의 영혼은 신체로부터 독립된 어떤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감각적 인식은 언제나 신체와 더불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영혼은 인간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지고, 영혼의 기능만이 아니라 감각적 인식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혼이 생명체의 원리이므로, 인간을 이루는 모든 것은 영혼에게 언급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영혼을 인간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인간은 형상(形相)인 영혼과 질료(質料)인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육은 나의 개체의 것이지만, 그저 단순히 ()’은 모든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혼은 질료를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영혼이 다만 형상일 뿐이라면 지성적인 인간 영혼은 더 더욱 그러하다. 영혼은 예컨대 ()’을 돌의 절대적 형상적 근거 속에서 인식하는 것이지, 이 돌의 구체적 감각적 근거 속에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혼 속에 사물들의 절대적 형상적 근거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영혼은 영적 형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결과되는 것은 인간 영혼은 불멸적이라는 것이다. 실상 영혼은 육체로부터 독립적인 어떤 것이다. 따라서 육체의 파멸은, 육체의 우유들과 물리적 형상들에 일어나듯이, 그 자체 필연적으로 영혼의 파멸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영혼이 질료와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었더라면, 질료가 형상으로부터 분리될 때 존속을 그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직 형상뿐이므로 존속이 그치려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터인데, 이것은 불가능하다. 본성이 우리에게 충동하고 또 속임수일 수 없는 영원성의 갈망은 불멸성의 표지이다.

그러나 인간 영혼은 천사와 같은 종()에 속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일반적 작용들은 천사들의 것과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2) 영혼과 육체의 결합

인간 육체의 실체적 형상은 인간의 지성적 작용과 지성적 생활의 원리인 지성적 영혼 즉 인간의 영혼이다. 이처럼 지성(영혼)은 육신(질료)에 직접적이고 내밀하게 결합된다. 인간 육신의 실체적 형상’(=인간에게 종()적인 존재를 주는 것)이 지성이라는 것은 인간 본성으로부터 알려진다. 우리에게 있어서 인식한다는 것은 종()의 특징적인 것이고, ‘형상은 종을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성적 생명의 원리들은 아베로에스(Averroes)가 생각했듯이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단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는 유일한 행동유일한 실체적 형상유일한 존재, 따라서 유일한 한 사람만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성적 원리들은 인간 육체들이 있는 그만큼 많다.

또한 영혼이 육체의 실체적 형상이므로 각자에게 오직 하나가 있을 뿐이지, 플라톤이 생각했듯 간()에 생장혼, 심장에 욕망혼, ()에 인식혼 등 세 개의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각자는 삼중의 존재일 것이고 대단한 강도로 작용하는 세 가지 다른 작용들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을 것인데, 실제에 있어서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지성적 영혼은 인간 신체에 존재를, 종적 존재를 주는 실체적 형상이므로 그것만이 실체적 형상으로서 있다. 감각혼생장혼 같은 것이 거기 전제될 수 없다. 왜냐하면 숫자에 있어 더 큰 수가 더 작은 수를 포함하듯이 지성적 영혼은 제일 높은 등급의 것이므로 하급 영혼들이 하는 것과 다른 기능들까지 다 행한다.

인간 육체는 지성적 영혼을 실체적 형상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적절하게 조직되어 있다.

그러나 영혼으로부터 형상을 갖추게 되는 육신은 어떠한 우유적 성품조차도 미리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영혼이 그 제일 원리요 실체적 형상이기 때문에, 영혼에 앞서 육신은 실체도 아니며, 존재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실존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단일체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실체적 형상(영혼)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인간은 영혼 때문에 한 단일체이다. 그러므로 영혼이 신체에 결합되기 이전에 영혼 자신의 어떤 중간 매체적 육신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의 실체적 형상인 지성적 영혼은 육체 전체에 걸쳐, 즉 모든 부분 부분들 속에 있다. 왜냐하면 영혼이 떠나고 나면 육체는 전체로서도, 부분으로서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영혼이 모든 부분들 속에 있다면 그것은 고스란히 즉 온전히 각 부분들 속에 있는 것이다. 작용의 총체성이 아니라 실체의 총체성이 있는 것이다. 예컨대 시각 능력은 눈() 속에서 그 기능을 펼치지 다른 기관 속에서 펼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영혼의 일반적 능력

영혼의 작용들과 이 작용들의 모든 원리들은, 즉 활동들과 상대적 능력들은, 영혼 자체 또는 영혼의 본질이 아니다. 천사들에게 있어 그렇지 않을 뿐 아니라(59.2) 인간에게는 더 더욱 그렇지 않다. 이것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영혼을 가진 자는 늘 살아 있는데, 능력들이 만일 영혼과 동일시된다면 영혼을 가진 자에게는 언제나 모든 생명적 작용들이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영혼을 가졌으면서도 생명 작용들에 관한 한 어떤 것은 작동 중이고 어떤 것은 가능태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영혼은 작용의 원리들인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 영혼은 제일 현실로서 제이 현실인 작용에로 방향 지워져 있다. 그리고 영혼은, 생명을 작동하고 있지 않고 다만 가능태로 가지고 있을 뿐인 육체의 제일 현실인 것이다.

영혼의 능력들은 여럿이다. 영적 피조물과 물체적 피조물의 경계선상에 있는 인간은 많은 능력들에 상응하는 많은 활동들(actus)을 가지고 있다.

능력들은 활동들의 원리이다. 이 활동들은 대상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대상과 활동에 따라 능력들은 서로 다르다. 대상이 그것에 대해 원리이거나 원인일 경우 능력은 수동적이다. 그러나 대상이 종점이거나 결과일 때 능력은 능동적이다.

 

뛰어난 품위에 따라 말하자면, 먼저 오는 것은 지성적 능력들이다. 그러나 기원에 따라 말하자면 먼저 오는 것은 감각 능력들이다. 지각질서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시각 능력이다.

 

작용 능력은 작용 주체의 능력이다. 따라서 육체에 속하지 않는 기능의 주체는 영혼뿐이다. 유기체적 기능의 주체는 영혼에 결합된 육체, 즉 인간 복합체이다. 육체가 그 실체적 형상인 영혼을 지니지 않았다면 유기체적 기능의 주체일 수 없을 것이기에, 유기체적 기능들도 역시 영혼에서 연원된다.

 

능력들은 서로서로 의존한다. 자연 질서에서는 동물이 먼저이고 인간은 나중이다. 따라서 지능은 외감(外感)에 의존한다. 그러나 행위의 질서에서는 외감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지성적 영혼이다. 따라서 외감은 지성에 의존한다. 죽게 되었을 때, 육체에 속하지 않은 기능들은 활동적인 채로 남지만, 유기체적 능력들은 다만 뿌리로, 즉 잠세태로 남을 뿐이다.

 

4) 영혼의 세부 능력

영혼 속에서 다음 다섯 가지 기능들이 구별된다. 생장 기능(그 대상은 영혼에 결합된 육체이다)감각 기능욕구 기능장소 이동 기능(여러 측면에서 고찰되는 다른 실재들도 이 기능들의 대상에 포함된다)지성적 기능(그 대상은 보편적 이다). 그리고 순수 물체적 자연을 능가하는 정도에 따라 영혼은 다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생장혼감각혼지성혼. 또한 생명체들의 등급에 따라 네 가지의 생활양식이 구별된다. 생장작용감각작용장소이동작용지성작용.

 

생장능력, 존재를 취득하고, 완전한 발전에 이르고, 유지 보존하는 육체의 세 가지 목적에 따라서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출산능력성장능력양육능력.

 

기관(器管)들은 능력들에 잘 어울리도록 되어 있다. 다섯 개의 외감(外感) 기관이 있으므로 감각 기능도 다섯 부분을 가진다.

 

완전한 동물의 생명은 사물들이 현존하지 않을 때에도 이 인지(認知) 능력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감각혼(感覺魂)은 사물의 감각상을 받을 뿐 아니라 그것들을 기억하고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감과는 다른 기관들이 필요하다. 왜 양()은 늑대를 피하는가? 눈이 늑대에게서 달갑지 않은 색깔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영혼의 어떤 감각이 늑대를 자연적 원수[=천적]로 인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혼의 이 감각들 또는 내감(內監)들은 네 가지다: 공통감각(여러 상이한 감각들을 한데 모은다)환상 또는 상상(한 칠판에 모으듯 감각들을 보존한다)기억(그것들을 지나간 경험으로서 인정한다)평가 능력(대상이 해로운지 이로운지 판단한다).

 

5) 지성적 능력

지성은 바로 영혼이 아니라 영혼의 한 능력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식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현실적으로 인식 활동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작용들을, 생장활동 기능들까지도, 지성의 기능이라고 부를 수야 없지 않겠는가!

인간 지성은 하나의 수동적 능력이다. 실상 창조주인 신의 지성은 우주에 대해서 원리 즉 현실이다. 그러나 더더군다나 지성적 실체들 가운데서도 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 지성은 사물들에 관해, 특히 인식에 있어서 가능태에 있다. 즉 인식 가능하다. 그 자체는 글씨가 쓰여질 수 있는 백지(白紙)’와 같다. 거기엔 아직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또한 능동 지성도 있다. 이 능동 지성은 모든 사물의 류와 종을 인식하기 위해 그 본성 또는 본질을 추상(抽象)’하는 활동을 한다. 이 활동은 지성으로부터 볼 때는 필수 불가결의 것이다. 플라톤과 함께 우리 지성이 그 자체로 인식할 수 있는 분리된 형상들’(이데아의 세계)이 있다고는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본질들을 인식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그 구체적 조건들로부터 추상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따라서 능동 지성은 각자 영혼의 고유 작용이다. 그러나 인간 영혼은 오직 일부만이 지성적이므로 그것이 지성적인 것은 무한 지성()에 참여함으로써이다.

그러므로 만일 능동 지성이 각자의 영혼에 고유하다면 무수한 수의 영혼들이 있는 것이지, 모든 이에게 공통인 유일한 영혼이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기억은 지성에도 속한다. 지성이 어떤 관념을 가지게 될 때 거기로 되돌아갈 수 있고 또 감각보다 더 굳게 보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인상에 대해 과거에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능력은 오직 감각 기억에만 속한다. 왜냐하면 인상은 구체적 주변 환경과 연결되어 있고, 이것은 외감에 속하지 보편자를 대상으로 삼는 지성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지성적 기억은 지성과 구분되는 별도의 어떤 능력이 아니다. 그 대상에 차이가 없으므로 관념들을 소유하게 된 지성 자체의 보조 기능일 뿐이다. 그리고 이성도 지성과 구별되는 능력이 아니다. 지성 자체의 단계적인식에 관련된 기능인 것이다.

상급 이성과 하급 이성은 두 개의 능력이 아니라 동일한 것이다. 다만 대상이 다른 것이다. 전자는 영원한 것에 대한 지혜가 그 대상이고, 후자는 시간적 사물들에 대한 지식이 대상이다.

 

인식도 이성처럼 지성과 구별되는 다른 능력이 아니다. 다만 지성의 활동 기능이다.

사변적 지성과 실천적 지성의 두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전자는 바로 인식하는 것이고 후자는 인식된 것을 행동에 옮긴다는 점에서만 구별된다.

 

분별력도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도덕 원리들에 대한 습성적 인식이다.

 

또한 양심도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막 행하려는 행동을 도덕 법칙과 관련시키는 활동이다.

 

6) 욕구 능력

영혼 속에 어떤 욕구 능력들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영혼에는 인식 능력이 있는데, 이것에 상응하는 경향이 뒤따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감각 인식이 지성적 인식과 다르듯 감각적 욕구도 지성적 욕구와 다르다. 따라서 두 개의 다른 능력들인 것이다.

 

 

7) 관능(감각적 욕구)

인식에서는 사물이 주체에로 향하고, 경향에서는 주체가 사물로 나아간다. 감각 인식에 좌우되는 경향을 두고 관능또는 감각적 욕구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때로는 해로운 것으로부터 피하려고 하고 거기 저항하려 들고, 또 때로는 매력 있는 것을 따르며 그 장애물들을 제거하려드는 데에서 결정되므로, 관능의 능력은 두 가지이다. 탐욕적인 능력과 분노적인 능력.

이들은 내면 활동에 있어서는 지성에, 아니 더 정확히는 이성에 복종하고, 외부 활동에 있어서는 의지에 복종한다.

 

8) 의지(意志)

의지는 그의 목적인 선 일반 그리고 또한 그 목적에 필요한 유일 수단인 것에로 흐르는 자연적 즉 필연적 기울음을 갖는다. 그러나 이것은 폭력이 아니다. 폭력이란 자연적 경향을 거스르는 운동이다. 이 자연적 경향은 하나의 내면적 원리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폭력은 어떤 외부적 원리로부터 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목적에 필요한 유일 수단이 아닌 개별적 선들을 향해서는 의지는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경향을 가지지 않는다. 제일 원리들에 필연적으로 밀착하는 지성처럼 의지는 제일 원리들에 필연적 연관을 갖지 못하고 나중에 가서야 증명에 이르게 되는 진술들에 밀착한다.

 

지성은 그 자체로의지보다 더 고상한 능력이다. 그것은 대상 때문에 그렇다. 왜냐하면 먼저 참된것이 오고 다음에 선한것이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것에 있어서는 의지가 지성보다 더 고상하다. 예컨대 신을 사랑하는 것이 신을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상하다.

지성은 인식 대상을 선으로, 목적으로, 의지에 제시하는 한에 있어서 의지를 움직인다. 그러나 보편적 목적 질서에 있어서 으뜸가는 작위자(作爲者)인 의지는 지성을 포함한 모든 능력을 움직인다 - 다만 생장능력들만 빼고 말이다.

 

의지에서는 관능에서와 같은 분노나 탐욕적 능력들이 구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성적 욕구인 의지는 특수선이 아니라 보편선을 그 대상으로 가지기 때문이다.

 

9) 자유의지(自由意志)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지 않았다면 계율과 금령(禁令)들은 존재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아래로 굴러 떨어지긴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돌멩이와 같지 않다. 또한 본능적으로 평가 능력으로써 늑대를 천적으로 인정하고 늑대를 피해 도망치는 양()과도 다르다. 인간은, 본능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유들을 종합검토해서 찬반 사항에 따라 그리고 자유로운 판단으로써 그 어느 편에든 몸을 실을 수 있기에, 판단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구체적 사물들의 경우 이성이 자유롭게 의견을 가질 수 있듯이, 의지는 자유롭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다.

 

자유의지는 자연적 성품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경향을 부담지울 것이고 따라서 자유의지 자체에 모순될 것이다. 또한 취득된 습성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대단히 강한 경향(예컨대 무절제한 폭주(暴酒)인 데 반해, 자유의지는 선택에 있어 냉정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의 능력이라고 말해야지, 하나의 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실은 지나가는데, 그것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의 특성인 선택은 어떤 것이 더 좋은지 조사하고 판단하는 인식과 (좋다고 판단된 것을 받아들여 유익한 어떤 것에로 기우는) 욕구로부터 결과 된다. 유용한 것은 선이다. 선은 욕구의 대상이다. 자유의지는 따라서 욕구적 능력이다.

그러나 자유의지는 이성이 지성에 대해서 가지는 관계를 의지에 대해서 가진다. 왜냐하면 지성(오성)은 단순 인식이고 이성은 논증을 통한 인식인 것처럼, 의지는 단순 욕구이고, 자유의지는 선택하는 욕구이다. 따라서 이성이 지성(오성)으로부터 구별되는 능력이 아니듯이, 자유의지도 의지와 구별되는 별도의 능력이 아니다.

 

 

3. 인간의 본성적 능력

 

인간의 두 본질은 육신(물질적 부분)과 영혼(영적인 부분)으로 되어 있다.

 

1) 육신

육신은 외부세계를 지각할 수 있는 능력(오감)과 지각된 사물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지각(知覺)감각(感覺)을 통해 이루어지고, 사랑()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1) 감각(感覺)
감각은 사물의 구체적인 성질(색깔모양 따위)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감각적인 대상의 위치()에 따라 외적 감각과 내적 감각으로 구분된다.

외적 감각 :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오감)

내적 감각 : 뇌를 통해서 외적 감각이 우리 안에 일으킨 인상(印象)들을 감지한다.

* 기억 : 감각이 없어도 내심으로 되살아나게해준다.

* 상상 : 내심으로 어떤 형상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두 가지 이상을 합성). 감각으로 지각된 것이 없으면 불가하다.

 

(2) ()

욕이란 감각의 정()을 의미한다. 이 정을 통해서 감각에 상쾌한 것에는 끌리고, 불쾌한 것에는 반발한다(네 가지 외에도 여러 가지 욕이 있다).

* 상쾌한 것(기쁨희망) : 끌림

* 불쾌한 것(두려움고통) : 반발

 

이란 우리 안에 상쾌한 혹은 불쾌한 인상들이 있을 경우에, 외적 혹은 내적인 감각들을 통해서 되살아난 인상들 때문에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위해 감각적 지각들을 통제하는 은총으로 하여금 우리의 욕(격정)들을 통제할 수 있다.

 

2) 영혼

영혼도 육신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경험하는 것에 대해 지각하고 사랑하는 작용을 한다.

영혼이 지각하는 작용으로는 지성기억이 있다.

이미 지각된 사물들을 사랑하는 작용으로서는 의지가 있다.

 

(1) 지성(知性)

지성은 추상적인 성질(사물자체의 개념)들을 인식할 수 있는 영혼의 능력을 말하며, 구체적인 성질들을 지각하는 육의 능력은 감각이다.

지성이 특정한 구체적인 사물(버찌)에 추상적인 개념(착하다, 선하다)을 적용시킬 때, ‘감은 붉다’, ‘요한은 착하다하는 식의 판단이 나온다. 같은 방법으로 지성(知性)은 선함위대함무한함 등의 보편적인 개념들을 만들어 낸다.

* 어떤 사물을 지각할 때 실제로는 그 사물과 구별된 상태를 나타낸다.

* 어떤 사물을 지각할 때 자신에게 동화시킨다.

 

(2) 기억(記憶)
기억은 지성이 만들어 낸 개념들을 보존하는 능력이다.

* 강렬한 영성적 노력의 대상으로서 설명된다.

 

(3) 의지(意志)
의지는 지성에 의해 인식된 좋은 것을 사랑하는 능력이다.

* 의지의 근본적인 특성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는 어떤 것, 무엇을 하도록 결심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선택한 것에 책임이 있다.

* 어떤 사물을 자유롭게 원하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그 사물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의지적 행위를 동시에 사랑의 행위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성의 행위와 의지의 행위의 상반되는 특성들

 

1) 추상적 개념을 통해 어떤 사물을 지각할 때.

* 지성은 그 사물에 의식적으로 일치됨이 없이, 실제로는 그 사물과 구별된 상태로 남아 있다.

* 의지는 어떤 사물을 사랑할 때, 그 사물과 실제로 일치되거나, 혹은 실제로 일치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은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과 일치하려 한다.

 

2) 어떤 사물을 지각할 때.

* 지성은 지각된 그 사물을 개념화함으로써 자신에게 동화(同化)시킨다.

* 의지는 어떤 사물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이 그 사물에 동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사랑하는 자(주체)를 그가 사랑하는 대상(객체)에로 동화시키고 그 안에서 사랑하는 자를 변모시킨다.

 

3) 사랑의 대상(객체) 안에서 사랑하는 자(주체)를 그 사랑의 대상(객체)에 일치시키고 변모시키는 이 사랑의 특색들은 영성적 교의의 바탕이 된다.

* 영혼에게 요구되는 피조물들에 대한 이탈의 실현이든, 하나님과의 일치의 실현에든 면밀히 적용시킨다.

 

관계법칙

여러 가지 능력들(감각지성기억의지)이 지각과 사랑의 구체적 행위들을 해 나가는 데에 작용되는 3가지 법칙이 있다.

1) 감각을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지성(知性)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 감각은 영혼의 문틀

2) 먼저 인식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욕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의지가 무엇을 요구할 때는 지성을 통해서 그에게 보여야 한다. (의지가 지성에 종속)

* 어떤 사물에 대한 인식은 의지에 의해서 방해를 받을 수도 있고, 결정이 될 수도 있다.

 

3) 은 지성에도 의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론 : 의지의 우위성(優位性)

의지가 인간에게 있어 가장 고상한 능력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이유들은

 

1) 여러 가지 능력들(감각지성기억)이 그 지각한 내용을 의지에게 제공함으로써 의지에 봉사하기 때문이다.

 

2) 모든 다른 능력(욕을 포함한 모든 능력들)의지가 명하는 것을 행함으로써 의지에 복종하기 때문이다.

 

3) 의지야말로 거룩한 사랑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진 대로, 영혼을 하나님과의 일치에로 들어 올릴 수 있는 일치의 능력이고 변형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4) 의지는 자유로움으로써 우리가 책임성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하고, 인격적으로 존중할 만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제, 영혼에게 방해물이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희생함으로서, 또 그런 희생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행하도록 우리에게 명함으로써,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키워나가는 데 있다.

십자가의 요한에 의하면, 다른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로지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다.

 

저녁에,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빛과 사랑의 말씀 59)

 

 

 

  1-4 인간의 영혼과 그 기능들.pdf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