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신은 인식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가 신을 인식할 수 없다면 관상기도는 행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면 하나님에 대한 어떤 존경이나 경건, 나아가서 하나님에 관한 경외심이나 신앙적 예배도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종교가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식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을까? 신학을 통하여 알아보자. 그리고 어떻게 신을 인식할 수 있는지도 알아보기로 한다.

 

 

1. 이해할 수 없으나 인식할 수 있는 하나님

 

기독교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해할 수 없는 분이라는 사실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알려질 수 있으며 그에 관한 지식이 구원에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교회는 소발의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11:7)라는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또한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40:18)라는 질문에 대하여 어떠한 답변도 있을 수 없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도 염두에 두고 있다. 교회는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라고 하는 말씀을 기뻐하고 있다. 이 구절들에 반영되고 있는 두 관념은 기독교 교회에서 항상 병행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출생하지 않으시고,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영원하고 이해 불가능하며, 불변적인 존재로 언급했었다. 그들은 신적인 존재가 제한이 없는 절대적 존재라는 옛 희랍의 관념을 거의 넘어서지 못했다. 그것과 함께 그들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로고스 안에서 드러내시며, 따라서 구원을 위해서도 알려지실 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4세기의 아리우스주의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유노미우스(Eunomius)는 하나님의 단순성, 즉 하나님께 있어서 인간의 지성에 의하여 온전히 알 수 없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교회의 인정받는 모든 지도자들에 의해서 부인되었다. 스콜라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을 구별하였고, 또한 우리는 본질적인 존재 안에 계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없으나, 그가 자신의 신적인 속성들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는 그의 본성과 본질에 대하여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않고 자신의 이성에 의하여 일반 계시로부터 참된 하나님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하여 스콜라주의자들에게 동의하지는 않았으나, 동일한 일반적인 관념들을 표현하였다. 루터는 거듭해서, 숨어 계신 하나님과 계시된 하나님으로서의 하나님에 관하여 언급하였다. 어떤 구절에서 루터는, 특별 계시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서, 계시된 하나님을 숨어 계신 하나님으로 언급하고 있다. 칼빈은 존재의 깊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그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따라서 그의 신성은 전적으로 모든 인간적인 감각들로부터 떨어져 있다라고 말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에서 그의 본성에 관한 어떤 것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조명하시는 성령의 영향하에서 오직 특별계시로부터만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헤겔과 슐레이어마흐에 의하면 고무된, 범신론적인 경향을 가진 내재적 신학의 영향하에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님의 초월성은 어조가 약화되거나 무시되었으며, 또한 명백하게 부정되었다. 세상의 수준으로 끌어내려진 하나님은 세상과 연속선상에 있게 되었고, 따라서 신비에 둘러싸여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 전달의 의미의 특별 계시는 거부되었다. 인간 스스로 존재의 깊이와 물질적인 우주,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에 관한 충분한 지식은 특별 계시 없이도 얻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내재적인 하나님의 외적인 현현에 불과한 것이다. 바르트(Barth)는 최근에 그의 목소리를 높여 신학에서 이러한 경향을 분쇄했는데, 그는 하나님이 자연이나 역사, 그리고 어떻든 간에 인간의 경험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며, 오직 성경 안에서 우리에게 전달된 특별 계시에서만 발견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숨어 계신 하나님에 관하여 강하게 진술하면서, 그는 칼빈보다 오히려 루터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개혁파 신학은 하나님께서 알려질 수는 있지만, 인간이 어떠한 방법으로도 철저하고 완전한 하나님 지식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하나님 지식을 소유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 나아가서 인간은 하나님을 적절한 의미의 말로 정의할 수 없으며, 오직 부분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어떤 고차원의 유()개념하에 내포될 수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논리적인 정의는 불가능하다. 동시에 인간은 자신의 삶에서 신적인 목적을 완전히 실현하기에 적합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주장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은 오직 신적인 자기 계시를 통하여, 그리고 오직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 의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 종교는 반드시 이러한 지식을 가정하고 있다. 이 지식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가장 거룩한 관계이며, 인간이 지고의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절대적 위대성과 존귀성을 의식하고 지극히 높고 거룩하신 분에 대한 자신의 철저한 무의미함과 종속됨을 의식하는 관계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종교가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식을 전재한다는 사실이 따라오게 된다. 만약 인간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존재에 관하여 어둠 속에 넘어져 있다면, 인간이 종교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존경이나 경건, 하나님에 관한 어떤 경외심이나 신앙적인 예배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2. 어떻게 신을 인식할 수 있는가?

 

모든 존재자가 자기 원리에 접근하면 할수록 더욱 완전한 것이라면, 이성적 피조물에게 있어서도 그 존재의 완전성은 그 존재의 원리인 신 안에서가 아니라면 발견될 수 없다. 그런데 본성상 인간은 뚜렷한 지성을 갖추고 있고 신은 단순유(單純有)이기 때문에 가지적이므로(아니 최고 존재이고 최대로 단순하므로 최고도로 가지적이다), 인간은 그 지성을 신에 고정시킬 때 완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성인들의 경우처럼 이미 완전한 이들은 분명히 신을 본다(: 직관).

그러나 어떻게?

 

인식이 가능하려면 주체에게 인식 기능이 있어야 하고 또 대상은 그 상 혹은 유사상()을 통해 주체에 결합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의 신의 경우, 지성 기능의 원리이자 지성적 ’(: 직관)의 대상이긴 하지만, 그의 무한 존재성 때문에 어떤 상()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성이 신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신에 유사해질필요가 있다. 영광의 빛이 필요하다. ()이나 환상을 가지고는 신에 이를 수 없다. 눈과 환상은 물질적이고 신은 영적이기 때문이다.

 

자연적 인식에 있어서 사물들은 인식 주체의 본성에 유사하게 인식된다. 즉 인간은 물질 속에 개별화되어 있는 본성들을 인식한다. 추상기능을 통해 그것들을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천사들은 비물질적 본성들을 지각한다. 그러나 신의 본성은 자립유(自立有)’이기 때문에 천사들의 포착 능력도 벗어난다. 따라서 오직 신 자신만이 자연적 인식으로써 신 본성을 인식할 수 있다.

 

피조된 지성이 신 본성을 인식하려면 인식 능력이 증폭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영광의 빛은 우리를 신과 유사하게 만들어 준다. 신은 이 영광의 빛을 각 사람의 사랑에 비례하는 보상으로서 준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남보다 이 빛을 더 많이 소유할 수 있다.

 

신은 완전하게 인식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무한자 신은 무한히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영광의 빛을 받아야 하는 피조된 지성은 유한하다. 따라서 신은 이해될 수 없는 채로 남는다.’ 따라서 저승(彼岸)에서는 비록 사물들이 신 안에서 보이긴 하겠지만, 피조된 지성으로서는 신 안에서 모든 것을, 즉 신이 행하고 있고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인식할 수는 없다.

신적 본질 속에서 보이게 되는 사물들은 그 본성 속에서 보이는 것이지 그 상()들을 통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모두 한꺼번에 동시에 한 눈길 속에 제시되어 보이게 된다(영광의 빛과 비례해서 그 범위에는 차이가 있다).

 

이승(此岸)에서 우리는 물질적 육체 속에 영적인 존재를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그리고 또 우리의 인식도 이것에 알맞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감각적 피조물들을 통해서 인식한다. 그러나 피조물들을 통해서 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결코 신 본질을 직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승에서는 아무도 신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물질 사물들을 통해서 이 사물들은 (신이 그 원인인) 결과들이고 거기엔 원인으로서 신이 있다는 것, 또 거기서 여러 관계들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인식에 있어서는 정신력과 사물의 비물질적 유사상들이 함께 작용한다. 신은 (예언자들의 경우에 일어나듯이) 어느 한 가지를 더 강화하고 또 다른 것들을 주입해 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은총을 통해서 신적인 일들에 대한 아주 높은 경지의 인식을 가질 수 있다.

 

 

1-5 신은 인식할 수 있는가.pdf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