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자기부정

 

1.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핵심은 자기부정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 아니며 하나님께 속해 있다.

자기부정의 기독교 철학은 우리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속하였다. 하늘에 계신 교사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그 율법에 제시된 규범(規範)과 부합하도록 더욱 명백한 계획에 따라서 인도하는 것을 좋게 보셨다. 그 계획의 시작은 신자의 의무에 대한 개념인데, 그 의무는 그들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12:1) 드리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께 드릴 합당한 예배라는 것이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권고의 기초가 뒤따라오고 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는 권면이 나온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성별되어 바쳐졌으므로 이제부터는 그의 영광만을 위해서 생각하고 말하며 묵상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룩한 것을 세속되게 사용하면 반드시 하나님께 현저하게 손상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고(고전 6:19 참조) 주님의 것이라면 멀리 피해야 할 오류가 무엇이며, 우리의 삶의 모든 행동을 어디로 행해야 하는가는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성이나 의지가 우리의 계획과 행동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신을 따라 우리의 유익을 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속한 모든 소유를 잊어버리라.

반면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위해 살고 그를 위해 죽으라(14:8; 고전 6:19 참조).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지혜와 그의 뜻이 우리의 모든 행동을 지배하게 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따라서 그를 우리의 유일하고 합당한 목표로 삼고 생활의 모든 부분이 그를 향하여 나아가도록 힘써야 한다(14:8; 고전 6:19 참조). 자기가 자기 것이 아님을 배우고 자신의 이성에서 지배권을 빼앗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은 얼마나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사욕을 도모하는 것이 우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파멸시키는 전염병이듯이 유일하고 안전한 피난처는 어떤 것도 아는 체하지 않으며 아무 일도 자기 힘으로 행하려 하지 않고 주님의 인도만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으로부터 떠나 그의 모든 능력을 주님 섬기는 데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첫 단계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뿐만 아니라 육적인 생각을 버리고,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의 성령이 명하는 데 따라 완전히 돌아서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생명으로 들어서는 첫 걸음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철학자들은 바울이 말하는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라는 변화(4:23)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성만을 사람 안에 있는 지배자로 설정하고 그 소리를 청종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요컨대 그들은 사람의 삶의 행동을 이성에게만 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철학자들은 이성을 성령에게 양보하고 복종하고 굴복하라고 함으로써 인간 자기의 그 속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셔서 주장하시는 분으로 청종(聽從)하라고 명하는 것이다(2:20).

 

하나님을 향한 자기부정은 그의 뜻에 대한 헌신(獻身)이다.이제 자기부정의 주요 부분을 완전한 형태로 되풀이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현세 생활의 평안과 평온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과 우리 소유물들을 주님의 뜻에 맡기며 우리 마음의 소원들을 주님께 내어 놓고 길들이고 복종시키도록 할 것을 성경은 권고하고 있다. 부귀와 명예를 탐하고 권력을 추구하고 재물을 쌓으며 웅장하고 화려한 것을 도와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물건들을 모으는 일에 우리의 욕망은 미친 듯이 날뛰며 우리의 소원은 끝이 없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가난과 비천한 가문, 그리고 낮은 처지에 대해서는 놀라울 만큼 두려워하고 미워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런 상태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써 가면서 애써 노력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계획에 따라 삶을 꾸려 나가려는 사람들이 모두 얼마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야심이나 탐욕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한편으로는 가난과 비천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지칠 때까지 얼마나 교묘하게 애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경건한 사람들은 이러한 길을 따라가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지 않고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 번영하겠다는 욕망이나 소망이나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 다음에 주님께서 주시는 복에 안전하게, 그리고 확신 있게 자신들을 내어 던지고 안식을 얻어야 한다. 왜냐하면 육신이 그 자체의 노력으로 명예와 부귀를 추구하거나 혹은 부지런히 노력하거나 사람들의 호의로 도움을 받게 될 때, 아무리 육신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할지라도 분명히 이 모든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번영케 해 주시지 않으면 재능이나 노력도 우리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할 것이다.

그 반대로 주님께서 복을 주신다면 어떤 장애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 행복하고 호의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또한 주의 복이 전혀 없어도 우리는 어느 정도의 영광과 부귀를 얻을 수 있다(우리는 매일 불경건한 사람들이 엄청난 영예와 부귀를 쌓는 것을 보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티끌만한 작은 행복도 맛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복이 없으면 우리가 얻는 것은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결코 사람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것을 얻으려고 욕심을 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축복만을 신뢰하라.

그러므로 모든 일이 잘 되고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에 달려 있다는 것과 이 복이 없으면 각종 불행과 재난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부귀와 명예를 -우리 자신의 영리한 재치나 근면에 의존하거나 사람들의 호의에 기대거나 헛되이 상상한 행운을 믿음으로써- 탐욕스럽게 추구해서는 안 되며 언제나 주님을 바라봄으로써 그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가 우리를 위해 친히 마련해 주신 몫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사악함과 계략, 악한 술책 혹은 탐욕을 통해 재물을 움켜잡고 명예를 빼앗으며 이웃을 해치려고 달려가지 않게 될 것이다.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순진성을 버리게 하지 않은 사업만을 하게 될 것이다.

누가 하나님의 축복의 도우심이 사기와 강탈과 그 밖의 사악한 술책들 가운데 임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할 것인가? 이런 복은 단지 순수하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자에게만 뒤따르기 때문에 그런 복을 구하는 모든 사람들을 굽은 생각과 사악한 행동들로부터 되돌아서게 만든다. 그 다음에 이 복은 우리에게 굴레를 씌움으로써 더욱 부하게 되려고 하거나 야심적으로 명예를 얻고자 하는 지나친 욕망으로 불타오르지 않게 한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들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능히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얼마나 파렴치한 일이겠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술로 친히 저주하신 것을 복 주심으로 도우실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바라고 소원하는 대로 일들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상황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그 상황에 대해 초조해하거나 싫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이 곧 부와 가난, 멸시와 영예를 친히 분배하시는 하나님께 대항하여 불평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요약한다면 이미 말했던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축복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미친 듯이 찾는 것을 악한 술책을 써서 찾으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런 것이 자신에게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일이 잘 진행될 때에는 그 자신이나 그의 근면이나 노력행운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그 창시자이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그 공로를 돌릴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다른 사람들의 사업은 잘 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은 거의 진척되지 못하거나 심지어 뒤처진다고 할지라도 그는 침착하고 절제하는 마음으로 그의 낮아진 신분을 참고 견딜 것이다. 이런 사람에 비해 어떤 세속적인 사람은 자신이 소원하는 대로 일이 잘 되지 않은 중간 정도의 성공 때에만 참으려고 한다. 하나님의 축복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최고의 부귀나 권력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평화스럽게 맛볼 수 있는 위로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그의 구원에로 인도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하는 일들이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다윗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안다. 그는 하나님을 따르고 그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겼지만, 자신이 젖 뗀 아이가 어미의 품에 안긴 듯 하며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할 크고 기이한 일에 힘쓰지 않는다고 증거하였다(131:1-2).

 

하나님의 영광을 구함으로써 자기부정을 이룩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것들을 추구하지 않고 주님의 뜻에 속한 것을 추구하고, 또 그의 영광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들을 거의 잊어버리고, 우리들 자신에 대한 관심을 단호하게 제쳐놓고 충성되이 우리들의 열심을 하나님과 그의 계명을 위하여 바치려고 노력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크게 전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들에게 개인에 대한 관심을 내버리라고 명할 때에 단지 소유욕권세욕 및 사람들의 호의를 얻으려는 기분을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지워버릴 뿐만 아니라 야심이나 인간의 영광을 구하는 일체의 욕구나 기타 은밀한 역병들까지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신자는 틀림없이 전 일생을 통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짐하고,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같이 하여 그는 자기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결정과 판단에 맡기는 것처럼, 자기의 정신의 전체 의향을 하나님께 신실하게 바치게 될 것이니 그것은 그가 해야 할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배운 사람은 동시에 모든 헛된 생각을 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의 자기부정으로서 이것을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열심히 그의 제자들에게 부름받은 시작부터 명한 것이다(16: 24). 그들의 마음이 일단 안정되기만 하면 첫째, 교만이나 자만이나 허풍선을 떠는 것 등이다. 그다음으로 탐욕과 욕망과 사치나 향락이나 그 외 자기사랑 때문에 비롯되는 여러 가지 다른 악행들도 쪽 을 못 쓰게 되는 것이다(딤후 3:2-5). 이 반면에 우리들 자신들의 부정이 지배하지 않는 곳에는 어디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인 칭찬을 듣고 싶어하는 자들이나 가슴을 펴고 교만하게 돌아다니는 자들을 기뻐하시지 않고, 그 따위 자들은 이미 이 세상에서 자기 상급을 이미 받은 자들이요(6:2, 5, 16), “세리들과 창기들이 그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21:31)고 선언하고 계시는 것이다.

첫째, 불경건과 세상 욕심을 버릴 것. 여기서 불경건이라고 하는 말은 미신을 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간절히 두려워하는데 모순되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적인 욕심은 육신의 정욕과 같은 것이다”(요일 2:16; 2:3; 벧후 2:18; 5:16). 그리하여 율법의 두 돌판에 모두 연관시켜 그는 우리에게 우리들 자신의 본성을 벗어 버리고 우리의 이성과 의지가 지시하는 일체를 거부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근신경건을 추구할 것.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의 행동을 근신의 및 경건 등 세 가지 부분으로 귀착시킨다. 이 중에서 근신은 의심할 것 없이 정절과 절제뿐만 아니라 금생(今生)에 있어서의 선(즉 물질)을 순결하게, 그리고 검소하게 사용하고 또 가난을 인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요, ‘의로움은 각 사람에게 자신의 것을 돌려주기 위하여(우리들의 이웃과 교제하는) 공정한 의무를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13:7). 다음에 따라오는 경건은 우리가 세상의 불의로부터 구별할 때에 참된 거룩함으로 하나님과 연합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일들이 분리될 수 없는 끈으로 꽉 묶여 있을 때에 그들은 완전한 상태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자기부정은 우리 이웃에게 바른 태도를 갖도록 해 준다.

자기부정이란 것은 부분적으로 사람들에게 관한 것이고, 부분적(근본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람들을 대할 때 행동이 우리들보다 낫게 존중할 것을 명하고 있고(2:3), 또 전심으로 선을 행하도록 하라고 했을 때(12:10), 여기서 우리에게 명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먼저 자연감정을 비우지 않는 한 우리의 마음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 된다.

첫째, 자기사랑을 없앨 것. 우리들은 모두 이러한 맹목으로 자기사랑에 빠져 있기 때문에 각각 자기를 뽐내며 한편 자기 앞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회개할 필요가 없는 어떤 것을 주었다고 하면, 우리는 그것을 신뢰하고 당장 고자세의 마음을 취하는데, 이것은 비단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데 그치지 않고 교만으로 터져 버릴 정도가 된다. 우리를 엄습해오는 악행들을 애써 다른 사람들로부터 숨기고,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니고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아양을 떨고 심지어 때로는 그것들을 덕인 것처럼 위장할 때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신들 속에서 칭찬하고 있는 것은 같은 은사들이나 그것보다 더 훌륭한 것들이 나타나게 되면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속하여 눌리지 않기 위하여 이들 은사들을 과소평가하거나 헐뜯는다.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에게 양보하고, 서민들은 귀족들에게, 종들은 주인들에게, 무식한 자들은 유식한 자들에게 양보를 한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낫다는 우월감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 자는 하나도 없다.

둘째, 겸손할 것. 그리고 각자 개인은 혼자 으쓱해져서 자기 품 가운데 일종의 왕국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성품이나 몸가짐을 혹평하지만 일단 논란이 벌어지기만 하면 속에 있던 독기를 뿜어내고야 말기 때문이다. 다투기를 좋아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이 극히 치명적인 전염병을 우리의 속 내부로부터 뽑아내려면 성경적인 가르침에 의해 뽑히는 것 외의 다른 치료법은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재능들은 우리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임을 기억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자랑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신들의 배은망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묻기를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7)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죄악을 부단히 검토하면서 겸손으로 불러들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들 안에 무엇 하나 자랑할 것이 남지 않을 것이요 낮아져 자신을 버려야 할 것만을 보게 될 것이다.

셋째, 상호 존중. 또 한편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는 하나님의 은사들을 무엇이든 존중하고 존경하여 그것들이 깃들고 있는 사람들을 높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들에게 그것들을 부여해주어 존경을 받도록 해 주었으니만큼, 그것들을 박탈해 버린다면 우리에게 커다란 부패인 때문이다. 우리 이웃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고 만인 봉사(萬人奉仕) 정사를 가져야 한다. 즉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고, 악행에 대하여는 선행으로 갚고 우리를 욕하는 자들에게 복을 빈다는 것(5:44)에 이르는 길은 한 길밖에는 없다. 즉 우리는 그 사람의 악을 생각하지 않고,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형상이 그들의 죄악을 취소시키고, 또 제거하고 그 아름다움과 위엄을 가지고 우리를 끌어 그들을 사랑하고 포용하도록 해 주는 것이다.

 

자기부정은 역경을 견디는 힘을 준다. 경건한 마음을 지닌 사람의 평화와 인내는 여기 한정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생활에서 당하는 모든 일들에까지 미쳐야 한다. 자신을 주께 전적으로 드리고 생활의 모든 부분을 남김없이 하나님의 뜻에 맡긴 사람만이 자신을 충분히 부정했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마음을 진정시키는 자는 자신을 비참하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 가운데 우발적인 사건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성품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질병들이 반복해서 우리를 괴롭힌다. 혹은 전염병이 퍼지기도 하고, 전쟁의 재난에 잔인하게 휩쓸려 들어가기도 하며, 얼음과 우박이 일 년 농사를 망치게 하여 흉년이 들게 하고 가난에 빠지게 한다. 그런가 하면 아내와 부모자녀이웃들을 죽음에 빼앗기기도 하고, 우리의 집이 불에 태워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건들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저주하고, 그들이 태어난 날을 미워하며, 하늘과 대낮의 햇빛을 싫어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며, 모독하는 말을 잘하는 자는 하나님이 불의하시고 잔인하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에 있어서 믿는 자는 하나님의 친절하심과 참으로 아버지와 같으신 자비하심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경건 생활의 규칙은 선악간 운명을 정하고 지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뿐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은 무책임한 힘으로 경솔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행복과 불행을 가장 정연하고 공정하게 배정하신다고 믿는다.

 

 

2. 자기를 포기하고 내어드림

 

영혼이 어떻게 하나님과 일치(연합)될 수 있을까? 그것은 영혼이 자아를 포기함으로써, 즉 깨뜨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에 자기를 포기하고 내어 드림으로써 하나님께로 흡입되어 일치된다. 그렇다. 본래 영혼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아를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도록 겸손히 내어드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기도의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깊고 내면적인 경배인 것을 확신한다. 우리가 내면 깊이 주님께 경배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기도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믿는다. 진정한 기도의 핵심적인 요소는 필연적으로 경배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도에는 경배만큼이나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요소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철저한 자아포기(자기부정)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핵심적인 문제이다. 더 나아가서 철저한 자아포기 없이는 진정한 기도란 없는 것이며,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리에 들어갈 수도 없으며, 또한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 가지신 계획(하나님의 뜻)대로 당신을 인도해 나가실 방법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철저한 자기포기가 필요한 것이다.

 

영혼은 자아를 포기함으로써, 즉 깨뜨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에 자아를 포기하고 겸손히 내어드림으로써 하나님께로 흡수되어 일치하게 된다. 그렇다. 하나님께 완전히 포기하고 내어드리는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경험하며 또한 지속적으로 그 안에 거하려고 한다면 자아를 포기하는 것이 아주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당신이 절대 주권적인 하나님께 경의를 표현해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자아를 깨뜨려 완전히 없어지게 하는 것으로써만 가능하다.

당신이 직접 자아의 영역에서의 모든 삶을 중단하는 시기가 있어야 한다.

당신은 자신의 삶을 포기함으로써 주님께서 임하시는 길을 예비해야 한다. 주님께서 친히 당신의 생명이 되실 수 있도록, 당신의 전 존재를 내어드리고, 더 이상 당신의 자아 가운데 사는 것을 중단해야만 한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졌음이라”(3:3).

 

당신의 자아를 던져 하나님 안에 감취어지게 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배워야 할 기도인 것이다.

 

사랑하는 독자여! 실제로 존재하는 진리는 전부와 전무(the All and the Nothing)뿐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거짓일 뿐이다. 하나님은 전부이시고 당신은 전무이다. 당신이 하나님께 합당한 경의를 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자아를 없애는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일이 있자마자 곧 하나님께서 들어오신다. 전부와 전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기로 한다.

 

1-7 자기부정.pdf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