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영의 능동적 정화

 

 

묵상 안에서 축적되어 왔고 또한 관상의 출발점이기도 한 예수께 대한 사랑,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일치의 길에서 새로운 한 걸음을 재빨리 내딛게 한다. 감각의 정화가 영혼 안에서 피조물들에 대한 정적인 면에서의 이탈을 불러일으키는 이 시기는, 더 적극적인 노력 -즉 영적으로 하나님께 집착하고자 하는 노력- 에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이 시기를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영의 능동적 정화혹은 영의 능동적 밤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인간의 영혼은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지성(知性)과 기억(記憶)과 의지(意志)이다. 영혼의 정화는 이 세 가지 능력들로 하여금 세 가지 향주덕(向主德, 믿음의 신덕 소망의 망덕사랑의 애덕)을 통해서 오로지 하나님만을 찾도록 만드는 데에 있다.

지성으로 하여금 신덕(信德, 믿음)을 통해서 오로지 하나님만을 인식하게 하고,

기억으로 하여금 망덕(望德, 소망)을 통해서 오로지 하나님만을 원하게 하며,

또한 의지로 하여금 애덕(愛德, 사랑)을 통해서 오로지 하나님만을 사랑하게 하는 데에 있다.

좀 더 분명히 설명해 보자.

우리의 영적(靈的)인 능력들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하나님 안에 있듯이 하나님을 차지할 수는 없다. 영혼은 이 여정에서 이해하는 것이나 기뻐하는 것은 물론이요 상상하는 것과 다른 어떤 감각을 통해서 하나님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에 의한 신앙과 기억에 의한 소망과 의지에 의한 사랑을 통해서 일치를 이룬다.

사실 우리의 영적 능력들은 피조물 안에서 그 고유한 대상을 찾기 때문에, 감각적인 실재 안에서 그 대상을 찾아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태초로부터 계시는 분, 창조되지 않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방향에 존재하시고 피조물들보다 무한히 높이 존재하시며 피조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이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우리에게 말한다. “높고 낮은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어떤 것도 하나님과 가까이 합치게 하거나 그분의 존재와 비슷한 것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비록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어떤 확실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적건 많건, 혹은 덜 또는 더욱 우선적이든,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어떤 본질적인 유사성도 없으며, 거룩한 존재와 피조물 사이에는 무한한 거리가 있다. 그래서 천상적이건 지상적이건 제 아무리 유사성을 많이 갖추고 있는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피조물들의 방식을 통해서 지성이 하나님께 이르기란 불가능하다.”

성인은 또 이렇게 말한다.

어떤 초자연적인 깨달음이나 지각일지라도 하나님과 사랑의 높은 일치를 위한 적합한 방법이 될 수 없다. 지성이 깨달을 수 있는 모든 것,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것, 상상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과 어우러지지도 비슷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비유를 들어보자. 만일 우리가 모래 위에서 사람의 발자국을 본다면, 어떤 사람이 그곳을 지나갔다고 추론(推論)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던 이상, 우리는 를 알 수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지성은 감각의 덕택으로 만물에 대해서 열려 있고, 거기서 하나님의 자취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현존을 -세상 안에서, 또 하나님의 속성들(아름다움선함슬기로움 등)을 가진 어떤 것들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현존을- 깨닫는다. 우리 지성은 피조물들 안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확인한다. 그러나 우리 지성은 그분을 만나지는 못한다! 우리가 모래 위의 발자국을 아무리 찾는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모습을 만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존재하시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향주덕, 즉 믿음소망사랑이다. 왜냐하면, 세 가지 향주덕(向主德)만이 인간적인 덕이 아닌 신적인 덕으로서, 피조물들 안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리를 실제적으로, 다른 중개 없이 성삼위 하나님께 결합시킴으로써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우리에게 말한다. 하나님과의 일치를, 하나님 안에서의 자신의 변형을 원하는 영혼은, “영혼의 세 가지 능력 지성기억 의지-를 믿음소망사랑에 맞춰서, 그리고 세 가지 덕에 해당되지 않는 모든 것을 어둡게 하고 벗겨 냄으로써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능동적이라고 말한 영의 혹은 정화이다. 능동적이라는 것은 영혼이 이 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편에서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짐작하건대, 하나님을 추구함에 있어서 자연이 영혼에게 준 모든 방법들을 완전히 포기하면서, 즉 영혼이 자신을 정화(淨化)시키면서, 영혼은 오로지 향주덕에만 의존해야 한다.

 

이제 이 세 가지 향주덕의 하나하나에 해당되는 행위들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이 훈련을 어떻게 수행하는지를 보도록 하자.

 

1) 지성(知性)의 정화

지성의 정화는 믿음의 훈련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자리 잡게 된다. 이 지성의 정화는 피조물들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발전되는 것만큼 하나님께 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발전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또 신적인 어떤 것들을 인식하기 위해서, 영혼은 지성을 통해서 습득한 모든 것들을 제쳐두고, 오로지 믿음이 하나님께 대해서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실, 믿음만이 존재하시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것처럼 신앙도 우리에게 그분을 무한하신 분으로 알려준다. 하나님께서 한 분이시고 삼위이신 것처럼 신앙도 우리에게 그분을 한 분이시고 삼위이신 분으로 알려준다. 하나님께서 우리 지성에게 암흑이신 것처럼 신앙 역시 우리 지성의 눈을 멀게 하고 지성의 눈을 부시게 한다.” 등등.

믿음만이 완전하고 결정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제시한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유일한 말씀이신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에게 주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 유일한 말씀을 통하여 다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더 이상 말씀하실 것이 없으시다.”

믿음만이 확실한 방법으로 또 모든 이들이 얻기 쉬운 방법으로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는 교회가 가르쳐주는 진리와 단순함으로 하나님의 진리들과 하나님의 신비들을 알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마음을 굳게 먹고 오로지 하나님께로만 향할 줄을 알아야 한다. 기가 막힐 정도의 위험에 빠지게 하는 다른 호기심들이나 이상한 것들에 끼어들지 않고 의지(마음)에 불을 많이 붙이는 것으로 충분하다(12:3 참조).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영혼의 논리적인 인식 전체를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그게 반드시 한 부분을 차지하게 마련이긴 하지만- 밤의 휘장으로 덮고, 오로지 믿음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하나님께 대한 참되고 확실한 인식만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 믿음의 덕(信德)의 발전은 기도 중에, 특히 묵상과 관상의 기도 중에 이루어지는데, 기도는 이제부터 대단히 순수한 믿음과 사랑의 행위가 되어야만 한다.

영혼은 창조된 모든 실재들을 신앙의 빛으로 해석하는 데에 익숙해져야 한다.

천지만물의 아름다움 안에서, 영혼은 하나님의 현존과 그분의 사랑을 알아본다. 들에 핀 꽃들은 신랑의 손길로 심어진것들인데, 이는 하나님의 작품이고 그분의 선물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그 아름다움과는 관계없이 영혼에게 무한히 소중한 것들이다.

성인은 또 이렇게 말한다.

 

나의 신랑이여, 산들,

숲이 우거진 호젓한 계곡들,

오묘한 섬들,

소리 내는 강들,

사랑 가득한 바람의 휘파람.”

믿음은 영혼으로 하여금 새로운 빛으로 천지만물을 관상하게 하는데, 이 새로운 빛은 사물들의 겉모양에 마음을 두지 않고 가장 참된 감각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그 창조주를 계시하도록 마련된 가장 정확한 성질을 알아보게 한다.

 

! 수정 같은 샘!

그 안에 당신의 밝은 용모를

별안간 그려주셨기에

내가 원했던 눈길을

내 마음 깊은 곳에 새기셨다오!”

 

하나님을 찾음은 항상 신앙의 빛 안에서 이루어지고, 이로써 영혼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주신 선물로 드러난 피조물들을 자연스럽게 차지하게 된다.

 

신앙의 빛 안에서, 인생의 온갖 고통들도 죽음의 고통도 온갖 환난도 유혹도 병고도 온갖 수고도, 마치 성부께서 원하신 것으로, 따라서 포기와 자녀적 신뢰심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나님께서 더욱 높은 완덕(完德)에 이르려는 이들에게 용광로의 불에 금을 담그는 것처럼 시험하시기 위해 이것들(영적인 어려움과 유혹, 그리고 여러 가지 방식의 슬픔과 고통)을 보내신 것이다.”

 

참조 :

영적 여정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알고 난 뒤에 즉시 피조물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이 그 순서이다.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탁월하심과 위대하심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2) 기억(記憶)의 정화

기억의 정화는 소망의 훈련을 통해서 영혼 안에 자리 잡게 된다.

기억이 좋고 나쁜 모든 종류의 지식을 축적하기 때문에 소망의 중심 자리가 된다. 그래서 영원한 행복에 대한 기억은 영혼으로 하여금 세속적인 것에서 이탈하여 하나님께로 들어 올리게 된다. 그래서 망덕이 기억을 정화하게 된다.

영혼이 하나님이 아니면서 기억할 수 있는 것들과 형상들에 대한 기억을 없애면 없앨수록 기억을 하나님께로 집중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것들에 대한 기억을 많이 비우면 비울수록 기억을 하나님을 기다리기 위한 것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모든 인식에 대한 기억을 비우고, 무한히 사랑스럽고도 행복한 하나님께 대한 기억으로 우리 영혼을 채움으로써,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기억의 비움은 완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알아듣기를 바란다. 우리의 의 책임들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가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일들이 있다. 그러나 한 영혼이 -가령 기도하는 동안과 같이- 하나님을 대면할 각오가 되어 있을 때, 영혼은 그가 듣고 보고 느끼고 맛보고 만져본 그 어떤 것도 마음에 간직해서는 안 된다.

통상적으로 열심 있는 사람이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듣거나 보거나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거나 만지는 모든 것들을 기억 속에 저장하거나 입력시키지 말고 오히려 즉시 잊어버려야 하며, 만일 필요하다면 다른 것을 기억하면서 효과적으로 잊어버리도록 애를 써야 한다. 기억 속에 그것들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나 형상이 남아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마치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지상의 것이나 천상의 것에 대한 어떤 개념(정보)에 매달리지 말고 기억은 자유롭고 아무런 걸림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마치 그런 기억력이 없었던 것처럼 훼방을 놓는 것이라면 잊어버림 속에 던져버리고 기억이 자유롭게 있어야 한다. 초자연적인 상태에서 모든 자연적(본성적)인 것을 이용하길 원한다면 도움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6:24).

침묵 안에서,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이 정화()’ 안에서, 거룩한 소망이 발전되는데, 이 소망은 결국 하나님께 쉽게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그래서 성인은 또 이렇게 말한다. 영혼은 기도를 하는 동안, 기억을 벙어리로 만들고 침묵을 지키게 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을 닫아버린 것이며, 침묵 가운데 정신의 귀를 오로지 하나님께만 열어 놓은 것이다. 이는 마치 사무엘이 말한 것처럼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라는 것과 같다.

영혼은 이렇게 아무런 걱정이나 고통이 없이 닫혀 있어야 한다. 닫힌 문을 통하여 육체적으로 들어오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지만 제자들은 그분이 들어오시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또는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으며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듯이(20:19 -20), 만일 영혼이 모든 지각들에 대해 의지와 지성과 기억의 능력들의 문을 닫고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영혼이 알지 못하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르게 영혼 안에 영적으로 들어오실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했듯이 평강의 강물이 흘러넘치듯이(48:18) 영혼 안에 평화가 가득할 것이다. 이 평화 안에서 영혼은 자기를 두렵게 했었고 무엇을 놓친다고 했던 모든 근심과 의심과 동요와 암흑이 없어질 것이다. 이때에 영혼은 기도에 대한 열정을 놓치지 말아야 하며, 벗어버림과 비움 가운데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곧 축복해 주실 것이다.

 

3) 의지(意志)의 정화는 사랑의 훈련을 통해서 영혼 안에 자리 잡게 된다.

믿음의 덕으로 지성이 정화되고, 소망의 덕으로 기억이 정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사랑의 덕으로 의지가 정화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니다(2:20). 사랑의 덕을 통해서만 신앙 안에서 이룬 일들이 생기가 있고 커다란 가치를 지닐 것이며, 사랑이 없이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죽은 신앙이 된다.

영혼의 힘은 영혼의 감관의 능력들과 감정들, 그리고 욕구들에 있는데 이 모든 것은 의지에 의해 다스려진다.

하나님과 일치에 이르기 위한 모든 움직임은 의지의 욕구들과 감정들로부터 의지를 정화시키는 데 있다. 인간의 유치한 의지로부터 거룩한 의지로 바뀌어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지의 정화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감각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모두 끊어버린다는 것이다. 즉 모든 집착에서 또는 모든 정에서 이탈해야 한다. 십자가의 요한은 감각적인 정화보다 영적인 정화가 훨씬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한다. 그 이유가 바로 영적인 것까지도 끊어버림에 있다. 감각적인 모든 욕망이 영혼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영의 능동적 정화에서는 영성인에게 유익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까지 완전히 끊어버려야 하는데, 여기에는 더욱 큰 고통이 따른다. 영혼이 지닌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의지에도 애착이 있고, 이 애착의 종류에 따라 가져도 무방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모두를 끊어야 한다는 것은 참 고통이다.

의지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과 영예가 되는 것에만 기뻐해야 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영예는 복음적 완덕에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 외의 것은 인간에게 아무런 가치나 유익함이 없는 것이다.

사람이 기뻐해야 할 것은 사물들에게서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있고, 모든 것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과 영예를 위하여 애쓰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열심 있는 사람들은 사물로부터 얻는 아무런 기쁨과 위로가 없이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의지의 정화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를 가능하게 한다.

우리로 하여금, 우리 안에 또 우리 형제들 안에 살아 계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하고,

하나님께서 태초에 우리를 사랑하셨고 또 항상 우리를 사랑하시는 바로 그런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하고,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들이나 행복 때문에가 아니라, 당신께서 하나님이시고 당신이야말로 우리에게서 가능한 모든 사랑을 받으실 만한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하며,

천지만물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의지를 받아들이고 실천함으로써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한다.

 

이 사랑의 훈련 안에서 영혼은 다음 두 가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영혼은 자신의 사랑을 피조물들에게 매어두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피조물들은 요정(妖精)들처럼, 그 매력들로써, 오로지 하나님께만 바쳐져야 할 이 사랑을 전부 혹은 일부라도 차지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피조물들은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만 사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피조물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도에 따라 우리에게서 사랑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우리를 끝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모든 사랑의 행위들에 수반되어야 하는 너그러움과 열성과 정열을 억압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믿음소망사랑의 이끌림을 받은 영혼은, 자신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들 안에서 -자신은 대수롭지 않은 존재가 되고- 오로지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의 영광만을 찾게 되고, 영적인 밤의 어두움 안에서, 또 피조물들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품고 있던 헛된 사랑 안에서, 점점 자신이 사라져버림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그 영혼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과의 최초의 진정한 만남을 체험하게 된다.

! 이끌어준 밤이여!

새벽보다 더 다정한 밤이여

! 합쳐준 밤이여!

신랑과 신부를,

신랑 안에서 변화된 신부!”

이렇게 해서 영혼은, 피조물들에 대한 무질서한 애착들을 정화시키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것들을 실천하고, 믿음소망사랑의 삶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것들을 실천하면서, 하나님께서 영혼 안에 이루어 주기를 원하시는 훨씬 더 능력 있는 정화와 성화의 힘을 받을 준비를 갖추게 된다.

 

  2-3 영의 능동적 정화.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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