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수동적 관상기도

 

 

위험한 오해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무미건조함을 통해서 영혼을 인도하시는 그 수동적 관상’ -혹은 감각의 수동적 밤’- 은 우리가 이미 말한 그 능동적 관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능동적 관상은 묵상의 완성과 같은 것으로서, 우리 각자의 합당한 노력에 의해서 성취될 수 있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무미건조함이 앞서거나 동반되는 것은 아니었다. 반면에, 수동적 관상은 묵상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부터 일어난다. 이는 영혼이 이런 상태를 유발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이, 오로지 하나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결과이다. 수동적 관상은 특히 가장 심각한 무미건조함 안에서 일어나고 발전되는데, 말하자면 모든 감각적 위로의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 새로운 경험에 있어서 영혼이 하나님에 의해서 인도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동시에 확인되어야만 하는 세 가지 징표들을 열거한다.

영혼은 자신 안에서 보게 되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상상력과 함께 사색을 하거나 묵상을 할 수 없으며, 전에 그랬던 것과 같은 맛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영혼은 이제 더 이상 상상이나 추리를 통해서 어떤 것에서 다른 어떤 것에로 분주하게 돌아다닐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영혼이 상상이나 추리의 과정으로부터 열매를 얻어낼 수 있는 동안에는, 묵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영혼이 안과 밖을 가릴 것 없이 특별한 일들에 감각이나 상상력을 끌어들일 의욕이 전혀 없음을 보게 될 때이다. 영혼이 다른 것들에 의도적으로 상상력을 적용하는 것이 싫어진다는 것이다.”

묵상을 할 수 없게 된 영혼들은, 다른 특정한 대상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거나 그런 것들로부터 어떤 맛을 느끼려는 욕구마저도 갖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이따금 자기 탓 없이 고통스럽게 상상력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님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피조물들의 맛을 즐기던 상태로부터 돌아섬으로써 스스로 얻던 온갖 재미들을 느끼지 않게 된다.

영혼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스러운 집중을 하게 되면서 아무런 특별한 생각이 없이 내적인 평화와 고요함과 쉼 속에 혼자 있는 것이 좋아진다. 여기에서는 다만 사랑이 가득한 전체적인 깨달음과 집중만이 있을 따름이다.”

가장 확실한 징표로서는, 영혼이 특별히 어떤 것을 심사숙고함도, 이런저런 생각들로 돌아다님도 없이, 사랑스럽고 보편적인 조심성과 내적(內的)인 평화, 그리고 고요함과 안식 안에 하나님과 함께 머무르는 맛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즐거움은 감각적인 것(실제로 감각은 하나님에 의해 가장 극심한 무미건조함 안에 놓이게 된다.)이 아니라,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우리에게 설명하는 바와 같이 영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주의하도록 하자.

이런 상태가 시작되는 처음에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스러운 인식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혼이 이런 안식의 상태(, 온갖 추리의 정지 상태)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스럽고 보편적인 이 인식이 영혼 자신 안에서 더욱 성장되고, 이 안에서 영혼은 다른 모든 사물들 안에서보다 더 큰 즐거움을 찾아내게 된다. 왜냐하면 이 인식이 그에게 평화와 안식과 위로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성인은 또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수동적 관상의 은혜를 받은 영혼은 감관의 능력들을 통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즉 특별한 행위를 통해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단지 받아들이는 가운데 사랑이 가득하고 평화스러운 깨달음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이제는 감관의 능력들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영혼이 스스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윽한 기쁨과 깨달음이 움직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무엇을 느끼거나 보려고 원하지 말고 단지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 신경을 쓰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수동적으로 하나님께서 은총을 건네주신다. 더 분명히 말하면 영혼의 지각적인 모든 형상들과 영상들이 비워졌고 정화되었다면 완덕의 상태로 변화되면서 순수하고 단순한 빛 가운데 머물게 된다. 이미 순수해지고 단순해진 영혼은 하나님의 아들의 순수하고 단순한 지혜 안에서 변화된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 빠진 영혼에게 본성적인 것이 없어진다면 영혼의 본성이 비워진 상태로 있을 수 없으므로 자연적으로, 그리고 초자연적으로 거룩한 것이 주어진다.” 영혼이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게 되는 때에는, 다른 것을 느끼려고 하거나 보려고 함이 없이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가(畵家)의 행동과 같다. 화가가 얼굴을 그리고, 색칠을 하고, 배경을 검게 칠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덧칠을 하기 원한다면 결코 그림을 끝내지 못할 것이며, 그리던 그림을 망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영혼이 내적인 평화와 쉼 안에 머물기 원하면서 어떤 작업을 하거나 무엇에 매력을 느끼고, 혹은 다른 것에 집중한다면 즉시 자기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하게 될 것이며, 감각의 허전함과 메마름만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기댈 것들은 이 관상의 길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 있는 영혼은 자기 감관의 능력들의 작업들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오히려 이런 것이 빨리 없어지는 것을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영혼은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주부적 관상(注賦的 觀想)의 작업이 방해받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더욱 평화로운 풍요로움이 주어질 것이다.

이런 상태에 있는 영혼에게 하나님은, 마치 눈을 뜨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의 열린 눈에 빛이 들어가는 것처럼, 당신 스스로 들어가신다. 영혼은 오로지 다른 인식과 추리작용을 개입시키지 않는 일에만 전념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온전한 헐벗음과 영의 가난 안에 머무르면서,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단순하고 순수한 지혜 안에 스스로 변모될 것이다.

그래서 영혼은 -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지성을 잠잠하게 하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스러운 눈길 안에 머무르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휩싸인 거룩한 안식과 평화는 하나님의 오묘하고 숭고한 인식과 함께 조금씩, 그러나 신속하게 주입될 것이다.

 

2-8 수동적 관상기도.pdf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