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영적 약혼(靈的約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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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영적 약혼의 출발점에 도달한 영혼을 기다리는 것에 대해서 계속 설명하기 전에, 영혼 안에서 계속 무르익어가는 현실감각을, ‘하나님과의 새롭고 더 친밀한 일치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현실감각을 분명히 하기로 하자.

하나님의 은총으로 영혼이 세례 때부터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과의 일치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참여는 영혼 안에서의 하나님의 현존(임재)으로 말미암아 가능해진다. 영혼은 특히 믿음소망사랑(대신덕)의 실천으로 성장하고 충만해진다.(참조: 2장 하나님과의 일치의 삶)

하나님과의 새롭고 더 친밀한 일치, 믿음소망사랑의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한 세례에 의한 일치 그 자체이다. 영혼은 이미 천상 낙원에서의 복된 일치, 어떤 가리움도 없는 일치에 대한 어떤 체험에 참여하고 있다.

영혼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가장 완전하고 하나님께 가장 깊숙이 일치된 영혼이라 할지라도, 항상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끔 복되신 당신 현존을 영혼에게 잠시 드러내셔서 영혼을 당신께로 이끌어 주신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영혼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이 순간적인 발현(신비가들은 입맞춤접촉애무광선등으로 부름)들은 영혼 안에 사랑의 상처들을 남기고, ‘탈혼 상태황홀경’, 그리고 영혼의 날아오름을 불러일으킨다. 이 모든 것들은 영혼 안에서 지상적인 모든 욕망들을 소멸시키고 하나님께 대한 엄청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고, 하나님께 대한 이 엄청난 열망은 어떠한 가리움도 없이 하나님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영혼으로 하여금 죽기를 갈망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님의 섭리(攝理)에 의한 모든 계획의 목표는 분명히 우리 자신을 예수님 안에서 변형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모든 계획의 목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미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처럼 저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예수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변형시키는 것이다.

하나님만을 소유하기 위해 모든 것들에 대해 자신을 비운 영혼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미래의 일을 미리 맛보게 하시고, 그 영혼 안에 이미 실재하시는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는 순간적인 어떤 표징을 이 세상에서부터 영혼에게 주기 원하신다는 것이 어째서 그렇게도 놀라운 일인가?

이제는, 사랑에 빠진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서의 영적 약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보자.

신랑은 사랑의 상처를 입은 신부를 보면서, 그리고 신부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상처를 입는다. 연인들 사이에서는 사랑에 의한 하나의 상처가 둘의 것이 되며, 둘이 같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더 이상 견디실 수가 없어, 마치 상처 입은 사슴처럼 당신을 영혼에게 드러내시고, 하늘로부터 당신 신부에게 모습을 드러내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영혼을 당신께로 부르신다.

비둘기여, 돌아오라,

상처 입은 수사슴

언덕 위에서 머리를 내밀고

네 날개 바람으로 식힌다.”

아직은 결정적인 일치의 문제는 아니지만,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선택, 결정적인 이 선택이 바로 영적 약혼이다.

이 약혼 안에서 영혼의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가 영원히 결합되기 때문에, 영적 약혼을 의지의 일치라고도 부른다. 사실 하나님과 영혼의 의지가 자유롭고 고유한 공감대 속에서 이미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영혼은 의지의 은총을 통하여, 의지와 은총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소유하기에 이른다. 영적 약혼은 피조물에 대한 모든 애착이 철저하게 정화된 영혼 안에서 일어난다.”

영적 약혼이 이루어지기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존엄과 위대함으로 아름답게 해 주시고, 온갖 덕들과 선물로 꾸며주시고, 그리고 당신께 대한 영예와 앎으로 단장해주시면서 영혼에게 당신에 관한 엄청난 일들을 드러내신다.”

이 행복한 날에 영혼에게는 전에 지니고 있던 사랑에 의한 격렬한 초조함과 불평이 없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영혼에게 온갖 보배들로 장식되면서 사랑의 부드러움과 감미로움, 그리고 평화의 상태가 시작된다. 영적 약혼 상태에서 자기 신랑과 함께 즐기고 나누는 사랑의 평화롭고 달콤한 움직임과 교류(드러냄)를 말할 뿐이다.”

이 선물들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선물, 하나님을 소유하는 마지막 선물로 마무리된다.

영적 약혼에서는 신랑의 방문을 통하여 영혼이 신랑을 기꺼이 즐기고 있지만 아직도 신랑의 부재나 마음의 동요, 그리고 열악한 부분과 악마의 괴롭힘을 겪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영적 혼인에 이르면 없어진다.

영적 약혼의 시기 동안에, 사랑하는 님의 방문이나 선물들의 교환은 자주 일어난다.

수차례 반복되는 신랑의 방문에서 영혼은 자기 정신 안에서 신랑의 빛에 의해 밝게 드러나는 모든 덕행들을 본다. 이때에 영혼은 놀랄 만한 즐거움과 사랑의 맛을 합쳐서 하나의 아름다운 꽃다발처럼 신랑에게 바친다.”

이 모든 선물 교환이 관상기도를 통해서 더 잘 이루어진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관상기도는 충실히 실천될 것이고, 영혼이 모든 일에 있어서, 약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참되고 충만한 사랑의 동의(同意)로써 자신의 거룩한 정배이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따르려고 애쓰는 매일 매일의 모든 행위들에 미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사실 이 순간에 기도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18:1) 하신 예수님의 계명을 완전히 실현시키면서, 또 정화를 동반한 기도가 되면서, 끊임없는 기도에로 향하게 된다. 실제로 이 마지막 기도는 여기서 피조물들로부터 달아나는 부정적인 모습을 버리고, 기도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하나님께 대한 애착이라는 긍정적인 모습을 열어주게 된다.

거기에다가 약혼의 시기에 영혼은 오로지 사랑하는 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들을 원하게 되기 때문에, 영혼은 자신 안에서 영혼들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 그 자체로 불타게 된다. 예수님의 성심 안에 불타는 이 열정은 사사로운 편애가 없는 보편적인 열정이고, 기도하고 실천하는 열정이며, 특히 십자가 상의 예수님과 함께 속죄하는 열정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는데, 혼자만 천국에 가는 것은 그에게는 사소한 일로 보이는 것이다.

자비로우신 예수님의 도우심 안에서 영혼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포기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열정과 짝을 이룬다. 영혼은 이제 자기 자신도,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죄들도, 또 자신의 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 “전에는 자신의 죄와 다른 이들의 죄 -열심이 있는 이들이 (영성가들이 습관적으로) 더욱 많이 느끼곤 하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고통의 물결이 되어 영혼에게 들이닥쳤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록 그런 충동이 있을지라도 영혼에게 고통이나 정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부터는 영혼이 하나님께 의탁하기 때문이고, 영혼이 가능한 모든 것을 다 했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치유해주려 하신다는 것을 영혼이 알기 때문이고, 영혼이 이 착한 목자의 어깨에 메여 자신을 내맡긴 채로 당신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간청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신랑은 감성과 악마의 손아귀에서 자기 신부를 구해내고 자유롭게 해주려고 무척 열망했다. 마치 착한 목자가 잃었던 양을 찾아서 여기저기 몹시 헤매다가 찾은 양을 자기 어깨에 메고 즐거워하는 것과 같다(15:5). 이렇게 사랑 가득한 목자인 영혼의 신랑이 얻어냈고, 완전하게 된 영혼, 원했던 결합과 일치 안에서 자기 손에 쥔 그 영혼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은 놀랄 만하다.” 이것은 정말 놀랄 만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은 영혼을 당신 팔에 안아 인도하시면서 영혼을 자기 신부, 그리고 마음의 기쁨 인 영혼을 영적 결혼이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치에로 들어가게 하신다.

 

2-9 일치의 시작.pdf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