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변형(變形)의 일치(一致)

 

 

변형의 일치라는 이름은 영적 결혼을 지칭하기 위해서 여러 저술가(著述家)들에 의해서 자주 사용되는 것이고, 이제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이름은,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친히 설명하는 영적 결혼, ‘사랑의 산 불꽃이라는 제목을 붙인 그의 저서 안에서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는 영적 결혼의 최고봉인 영혼의 최고 성장을 가리키기 위해서 보류된 용어로서 적절히 사용되고 있다.

성인의 말씀을 들어보자.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완덕의 최고 단계에 대해 말했는데, 그것은 영적 결혼을 통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변형되는 단계였다. 여기에서는 이 세상에서도 도달할 수 있는 하나님 안에서의 변화라는 완덕의 더욱 완전한 상태에 대하여 말하겠다. 이 노래들은 바로 이런 변화의 상태에서 훨씬 더 완전해지고 진한 사랑에 대하여 다룬다.”

한층 더 높고 더 완전한 이 사랑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더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성인은 한 가지 비유를 이용한다.

장작에 불이 붙는 것에 대한 설명에서 잘 볼 수 있었듯이, 비록 장작이 변화되었고 불과 하나가 되어 있다 할지라도 불이 더 뜨거워지고 장작이 불 속에 더 머무른다면 장작이 훨씬 더 뜨거워지고, 타오르면서 장작에서 불꽃이 튀어나오고 불길이 일어날 때까지 이루어진다.” 나무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일이 영혼에게 일어난다.

따라서 변형의 일치는 영적 결혼의 경우와 똑같은 하나님과의 합일이지만, 가능한 모든 활동들이 극도에 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 영혼이 사랑의 훈련 안에서 도달할 수 있는 극도의 한계이고, 이 한계를 넘어서면 영원한 생명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이 가장 높은 활동을 묘사하기에 적절한 표현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시적인 상징들을 이용한다. 성인은 화폭 위에다 몇 줄기의 대단히 빛나는 필치를 쏟아내지만, 어떤 논리도 그 내용을 연결시키지는 못한다. 이것이 , 사랑의 생생한 불꽃이여!’라는 시의 네 절이다.

여기서 한 절씩 그 메시지를 찾아보자.

 

첫째 노래

, 사랑의 생생한 불꽃이여. 이 사랑의 불꽃은 자신의 신랑의 영이며 바로 성령이시다. 이 느낌에서 영혼은 성령을 단지 보드라운 사랑 안에서 자신을 태워버리고 변화시키는 불로 느끼는 것만이 아니다. 그 외에도, 영혼 안에서 타오르고, 영혼에게 불꽃을 튀기는 불로 느낀다. 이 불꽃은 매 순간 불길이 일고, 영혼을 영광으로 젖게 하고, 거룩한 삶의 특성으로 영혼에게 힘이 솟게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랑으로 변화된 영혼 안에서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이다.”

변형의 일치의 특징은, 불길을 일으키는 것인데 사랑으로 타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때의 영혼의 의지는 저 불꽃과 하나가 된 사랑으로 강렬하게 사랑한다. 이렇게 영혼의 사랑의 행위들은 고귀한 것들이며, 하나의 행위일지라도 가치가 있고, 아직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생 동안 자기가 했던 사랑이 제아무리 가치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또 성령의 불꽃이 타오르는 것이 영혼에게 남겨주는 기쁨이란 매우 탁월한 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이 어떤 맛인가를 영혼이 알게 해 준다.

이제는 영혼이 자신의 유일한 사랑이신 하나님을 아무런 가리움 없이 만나뵙기 위해서 죽고 싶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놀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영혼은 다음과 같은 말로써, 자기 생명의 마지막 한 올마저 잘라버리시는 마지막 선물을 성령께 간청하고 애원하게 된다.

 

! 사랑의 생생한 불꽃이여!

부드럽게 상처를 입히고

내 영혼의 아주 깊은 중심에!

이제 당신은 무심하지 않고,

만일 원하신다면 이제 끝내주소서.

달콤한 만남의 장막을 찢어주소서!”

 

둘째 노래

이렇게 불꽃에 사로잡혀서 불타는 영혼에게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의 순결하심과 생명 안에서의 영혼 자신의 전적인 변형이다.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영혼은 자신 안에서 자신을 정화시키시고 사랑의 상처를 입히시기 위해서 자신의 본질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의 업적은 마치 불타고 있는 쇠, 다시 말하자면 불에 달구어진 인두의 역할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이 상처(종기)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에 달구어진 인두는 그것이 닿는 곳에 항상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과, 더 나아가서 불에 덴 상처가 아닌 어떤 상처에 인두가 닿게 되면 그 상처를 불로 태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좋겠다.

불의 지짐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항상 종기가 난다. 그것이 지짐의 특징이다. 종기 위에 느껴지는 것이 불이 아니라 할지라도 영혼에게는 불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사랑의 지짐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며, 만일 영혼이 초라함이나 죄로 다른 종기를 얻었다면 즉시 이 지짐이 영혼을 어루만져서 치유해준다. 그리고 그곳에 사랑의 종기를 남긴다. 이렇게 다른 것에 의한 종기까지 사랑의 종기들로 바뀐다.”

사랑의 인두 곧 성령께서는, 당신이 접촉하신 영혼이 다른 불행이나 죄들로부터 이미 다른 상처를 입었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 영혼으로 하여금 사랑의 상처를 입도록 내버려두신다. 이렇게 해서 다른 원인들에 의해서 생긴 상처들은 사랑의 상처들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은, 정화되고 성령에 의해서 불태워져서 이렇게 기도한다.

 

! 달콤한 지짐!

! 선물인 종기!

! 부드러운 손길! ! 오묘한 어루만지심,

영원한 생명을 맛보게 하시고,

모든 빚을 갚아주시고!

죽이면서 죽음을 삶으로 바꾸셨네.”

 

셋째 노래

영혼이 이 변형의 일치의 상태에서 자기 주변에 퍼뜨리는 불길들은 영혼으로 하여금 사랑의 활동을 하게 하고, 영혼을 완전히 정화시킨다. 게다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아름다움에 대해서 영혼을 밝혀주면서 영혼을 거룩한 지혜로 가득 채운다.

하나님의 유일하고도 단순한 존재 안에는 모든 덕들과 엄청난 속성들이 있다. 그분은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시며, 선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의로우시고, 강하시면서 사랑스러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더욱더 많은 속성들이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영혼은 이 불꽃을 등불들이라고 부른다. 이 등불들 안에서 영혼은 타버리고, 이 등불들로 인해서 영혼은 하나님을,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보시고 즐기시는 것처럼, 그 내면으로부터 뵙고 즐기게 된다.

 

넷째 노래

그렇지만 사랑의 활동 한가운데에 있는 이 사랑의 불꽃 안으로 영혼이 이끌려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휴식 안에, 또 영혼 자신이 신랑이신 하나님을 누리는, 마치 자기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님과도 같이하나님께서 자신 안에 계심을 느끼는, 그런 평화 안에 영혼은 잠겨 있게 된다.

! 자기 가슴 속에서 하나님께서 쉬시면서 머무심을 항상 느끼는 영혼이 얼마나 행복할까! ! 그런 영혼에게 아직도 아주 작을지라도 오점이나 잡음이 있다면 신랑의 품속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일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모든 소일거리를 끊어버리고 거대한 고요함 속에 머무는 것이 영혼에게 얼마나 적합한 일인지! 신랑은 통상적으로 자기 영혼의 실체 안에서 신부를 껴안은 채 잠자고 있는 것처럼 계신다. 그래서 영혼은 이것을 잘 느끼고 늘 기뻐한다.”

당신 신부를 기쁘게 하시기 위해서 영혼 안에서 친히 일어나신다(깨어나심움직이심).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움직이지 않으신다 할지라도 영혼에게는 움직이는 것으로 여겨진다. 영혼은 하나님에 의해 새로워졌고 움직여졌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고, 영혼이 자기 안에서는 거룩한 삶과 존재와 모든 피조물의 조화를,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는 그들의 움직임을 대단한 새로움으로 바라본다.”

하나님의 이 깨어남(일어나심하나님 체험)에서 영혼이 알고 느끼는 것을 말로 표현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여기에서 깨어남이란 자기 마음속이라고 말하는 영혼의 실체 안에서 하나님 체험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영혼 안에서는 절대로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수천 개의 덕들의 소리와 탁월함의 거대하고 힘이 있는 소리들이 들린다.

완덕에 이른 영혼에게 신랑이 해주시는 깨워주심 안에서 일어나고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완전한데 모두 신랑이 이루어주시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깨어나면 숨을 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영혼이 하나님 안에 계신 성령의 숨결로 기이한 즐거움을 느끼는 가운데 영혼은 지극히 영광스러워지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영혼이 체험하게 되는 특별한 기쁨을 설명하는 일 역시 전혀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불어 넣어주시는 그 숨결 안에서 신성에 대한 숭고한 깨달음의 깨어남을 통하여 신랑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깨달음과 같은 비율로 성령을 영혼에게 불어 넣어주시고, 그때에 성령 안으로 최고로 깊게 영혼을 빨아들이신다. 그리고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본 것에 따라서 거룩한 미묘함과 우아함으로 영혼과 사랑에 빠진다. 그 숨결은 선과 영광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그 숨결 안에서 영혼을 선과 영광으로 가득 채우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오하심 안에서 모든 언어와 감각을 뛰어넘어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능한 가장 강렬한 사랑의 교통에 대해 영혼의 눈을 열어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영혼은 겨우 이렇게 중얼거리게 된다.

 

얼마나 유순하고 사랑스러운지!

내 마음 속에서 깨어나시고

은밀하게 홀로 머무시는 곳,

당신의 감미로운 숨결 속에

선과 영광 가득하고,

나를 얼마나 미묘하게 사랑하시는지!”

 

이것이 바로, 예수께 대한 사랑으로 걸어온 무()와 전(), NadaTodo의 길이 충실한 영혼들을 인도해주는 목적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영혼들이 많기를 원하신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께서 모든 이들을 위해서 강생하셨고 모든 이들을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모든 영혼들이 다 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기를 바라신다!

변형의 일치의 체험은 세상을 떠나지 않으면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방식이며 세상 안에 존재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변형의 일치 단계에서는 더 이상 정서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정서의 변동도 사라진다. 정서가 그 이전과 같거나 더 강할 수도 있지만 정서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일은 없어진다. 우리는 아직 죄를 지을 수 있음을 인식하지만 죄를 짓도록 하는 자극은 없어졌다. 거짓 자아와 정서의 지배로부터 자유를 얻는 일이 끝났다.

이런 상태의 의식은 잠시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온 삶을 자동으로 감싸 주는 영구적인 인식이다. 이 단계에서 새로운 차원에서 모든 실재를 지각하는 의식의 재구성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모든 구분과 체험을 무한히 초월하신다. 이 세상의 어떤 하나님 체험도 하나님 자신은 아니다.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체험은 다만 하나님의 현존을 나타내 줄 뿐이다. 변형의 일치단계에서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에너지가, 우리가 그것을 체험하든 하지 않든 관계없이 언제나 우리에게 방사된다. 육체는 덕의 수련, 그리고 감각과 영의 정화를 통해 준비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일치는 관상기도 때만이 아니라 길을 걸어갈 때나 음식을 먹을 때 등 우리의 모든 활동, 심지어 아주 평범한 활동 속에서도 나타난다. 외적 내적인 실재들은 모두 하나님 안에 뿌리를 두고 하나님을 나타내기 때문에 하나가 된다.

변형의 일치는 거짓 자아를 무너뜨림으로써 맺게 되는 열매다. 거짓 자아가 사라지면 곧 변형의 일치가 일어난다. 이제 자신을 포함하는 모든 것에 대한 비소유적인 태도가 형성되는데, 그것은 무엇이든지 소유하려 드는 자기중심적 라는 것이 더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삶의 좋은 것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현존으로 가는 디딤돌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제 성령의 에너지가 정점에서 다른 모든 기능으로 여과되어 들어가서는 외적인 감각들을 정화해 줌으로써 경험하는 모든 감각들을 통해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을 알아보게 만든다. 그리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있는 진실하고 아름다우며 선한 것들이 투명해진다. 변형의 일치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질병과 외적인 시험에 대한 참을성으로, 극심한 고독, 그리고 바쁜 목회 활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평범하지 않은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신성한 일치가 좋은 것을 향해 방출하는 에너지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변형의 일치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여정의 첫째 목표이다. 이것이 드물게 이루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관계(하나님과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우주)를 이러한 시각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법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변형의 일치에 이르는 근본적인 수단은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 사랑이다. 영적 여정의 다음 부분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라고 하시고 곧 이어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17:21)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배우는 것이다.

 

 

현재 번역 혹은 시중에 보급된 시는 보편적으로 최민순 역으로 되어 있으나, 최근 방효익 신부께서 새 번역으로 사용하고 있어 아래에 표시한다. 시의 번역에 따라서 글의 용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방효익 역을 사용하였다.

 

방효익 역

최민순 역

1

! 사랑의 생생한 불꽃이여!

부드럽고 상처를 입히고

내 영혼의 아주 깊은 중심에 !

이제 당신은 무심하지 않고,

만일 원하신다면 이제 끝내주소서.

달콤한 만남의 장막을 찢어주소서!

, 내 영혼의 가장 깊은 속에

부드러이 살라주는

사랑의 산 불꽃이여!

다시는 너 매정할 리 없으니

, 이만 끝내어다오, 소원이로다.

녹아나는 이 만남의 휘장을 찢어다오.

2

! 달콤한 지짐!

! 선물인 종기! ! 부드러운 손길!

! 오묘한 어루만지심,

영원한 생명을 맛보게 하시고,

모든 빚을 갚아주시고!

죽이면서 죽음을 삶으로 바꾸셨네.”

, 서늘한지고, 탄 자국.

, 고마울사 이 상처.

, 섬섬한 손길, 오 보드라운 접촉!

영원한 생명 맛들이고

모든 빚 다 갚아지나니

너 죽이며 죽음을 목숨으로 바꿨노라.

3

! 불의 등불들!

그 광채들 안에서

감각의 깊은 동굴들은

어둡고 눈이 멀었던,

기묘한 우아함으로

연인에게 빛과 열을 같이 주네!

! 불이여, 들불이여

그 슴벅이는 빛들에

캄캄 어둡던 감각의

깊숙한 동굴들이

황홀한 고움과 함께

빛과 열을 그 님께 받들어 드리나니

4

얼마나 유순하고 사랑스러운지!

내 마음 속에서 깨어나시고

은밀하게 홀로 머무시는 곳,

당신의 감미로운 숨결 속에

선과 영광 가득하고,

나를 얼마나 미묘하게 사랑하시는지!

은밀히 내 품안에

홀로 계시면서 어이 이리

고이 사랑스레 잠깨시는고.

지선(至善)과 영광이 출렁이는

그대 향기로운 숨결로 어이 이리

살며시 나를 사랑에 매시는고.

 

 

2-12 변형의 일치.pdf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