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반지」
                             J. B.필립스

신약 성경에서의 세 가지 발견

      이백 년 전, 정확히 1754년에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은 '발견(serendipity)'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실론(Ceylon)이라는 고대 이름에서 파생된 이 단어는 '행복하게 해 주는 기능과 우연에 의해 찾은 예기치 않은 발견' 이라고 정의되었다. 내가 복음서들을 번역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서신서들을 번역하면서 얻은 '행복하고 예기치 않은 발견' 에 대해 먼저 얘기해야겠다.

발견 1 내가 언급할 첫 번째 표현은 "긍흘에 풍성하신" (엡 2 :4)이라는 표현이다.
     물론 이것은 모든 이에게 비밀이 아니었지만 내게는 훌륭한 보석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텍사스 타이쿤은 '기름이 풍부하다' 라고 말하듯이, 바울은 하나님이 '긍휼에 풍부하시다'고 말한다. 이방세계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기독교 복음은 신들에 대한 두려움, 운명에 대한 두려움이나 생명 그 자체를 하나님의 사랑과 신뢰로 바꾸려고 했다. '긍흘에 풍성하다' 는 것은 고대 세계에서 복된 소식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복된 소식이다.

발견 3 때때로 나는 "두려움과 떨림" (빌 2 :12)이라는 표현을 가지고 고민한다.
     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바울이 불안과 긴장의 상황속에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두려움이 사랑을 없애고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신약 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두려움의 옛 개념들을 없애고 사랑과 신뢰의 새로운 개념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헬라어 단어 '두려움'이 '경의' , '경애' 또는 '존경'의 의미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떨림"이라는 단어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령님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쓸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을 준 것이 아니라 사랑과 능력의 영을 주셨다고 쓰도록 영감을 주셨다. 그분은 우리가 긴장상태에서 살아가게 하신 것은 아니다. 약간은 억지이지만 나는,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표현이 오늘날 일부에서 통용되고 있다 할지라도 약간은 상투적인 표현이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내가 번역을 계속하면서 이 표현은 다음과 같은 경우가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디도가 자신을 받아들임으로 격려를 받았고 새로워졌다고 보고할 때,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떨림"으로 영접했다고 말한다(고후 7:15). 여기에서 이 표현은 단지 적당한 존경을 표한다는 전통적인 뜻 외에는 별 뜻이 없다. 우리가 디도에 대해 잘 모르지만 기독교사역자가 긴장과 불안 속에서 격려하고 새로운 힘을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기독교 노예들에 대한 바울의 권면에서 같은 표현이 나온다(엡 6:5). 이 문맥에서 바울이 뜻하는 것은 '두려움과 떨림' 보다는 훨씬 더 큰 성실함과 책임감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여기서 나는 바울이 단어들을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전달하기를 원할 때는 독자들이 이 단어들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특별히 강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든 성경  주석가들이 다루고 있는 '육체의 가시' (고후 12 :7) 말고는 다른 육체적 연약함이 영웅 바울에게는 없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전 2 :3)는 구절에서 우리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육체적으로 병이 들기도 했고 겁나기도 했다고 시인하는 솔직한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두려움과 떨림"은 완전히 문자 그대로 표현된 것이다.

발견 9 수년 동안 나는 예기치 못하게 즐거운 것들을 많이 발견했다.
    그 중에는 단지 신약 성경의 서신들에 대한 내 지식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를 드러내는 것도 있다. 이 글은 내 개인적 고백으로, 내게 신선하고 놀라울 정도로 분명하게 다가왔던 몇 가지 발견들이다.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 자신도 어느 정도 완벽주의자 성향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 자신에게 주의하지 않으면 이 완벽주의적 강박관념은 교만한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어떤 경우에는 불행하게도 자신에게 비관적이 되게 한다. 이런 마음상태에서 나는 죄 사함의 교리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독재적이고 과대해진 내가 나 자신을 저주하고 긍휼을 베풀지 않게 된다.
     요한은 지혜롭게 지적한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일까보냐" (요일 3:20). 이 말은 부드럽지만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유익한 견책이 된다. 하나님은 지혜와 사랑의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무한히 위대하시기에 우리와는 달리 인간의 행동에 관련된 모든
요인을 아신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그럴 때 우리는 정직하게 고백해야 하고 가능하면 보상해야 한다. 그러나 정말이지 비난만 할 수는 없는 많은 요인들이 우리 삶에 있을 수 있다 유전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성장 환경도 우리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런 요인들이 좋든 나쁘든. 무관심한 것이든 훌륭한 것이든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잘못이나 우리가 가진 두려움과 분노가 전적으로 유전이나 환경, 성장 배경에서 온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위대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단순하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요한은 말한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진대, 우리 자신을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높고 위대한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묵상을 위한 질문 1
     필립스에게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된 것처럼 당신에게 문제가 되는 성경 구절이 있는가? 그 구절에 대해 연구해 본 적이 있는가?



영성 훈련 1
      당신이 속한 모임의 멤버들과 일주일 동안 현대어로 번역된 성경을 읽어 보라 그런 후에 느낀 점이나 새롭게 발견한 관점을 함께 이야기해 보라.
말씀묵상 1
     고린도후서 7장



............................................................................................J. B. 필립스(J.B. Phillips,1906-1982)
     존 버트람 필립스는 영국 국교회 신부로서 신약 성경을 현대어로 번역하여 잘 알려졌다.  고전 분야에서 우등생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그는 런던에서 전쟁 중 박물관 관리자로 일 했다(나중에는 교구 목사가 되었다)
     젊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필립스는 많은 이들이 흠정역 성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바울 서신 중 한 권을 현대어로 번역했다 모
든 교인이 이를 기뻐했다. 그의 친구C.S. 루이스는 "옛날 사진을 깨끗이 닦아낸 후 사진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긍정적 반응과 번역 과정에서 얻은 좋은 경험 매문에 필
립스는 성경 전체를 현대 영어로 번역했다 이 번역본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또
그는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기 위해 책을 썼다.  Your God is Too Small(당신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1953),  Plain Christianity(평범한 기독교)(1957).  A Man Called Jesus(예수라 불리는 사람) (1959) 등이 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