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의 창조』
                                 조지 맥도널드

영적 우둔함의 원인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막8:21)

     갈릴리 바다동편에서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4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바다 건너편에서 바리새인들과 마주치셨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믿지 않았다.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아니라 몰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에 가서 음식을 가져왔으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딱 하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예수님이 또 기적을 일으키시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동안 제자들 중 한사람이 빵을 사 왔을지도 모른다.
     아직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들의 영향을 받지 못하게 하려고 제자들에게 그들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셨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전에도 들은 적이 있는 비유를 다시 말씀하셨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잠재적이고 지속적인 힘이 있는 누룩비유다. 예수님은 하늘나라가 음식 속에서 음식을 차츰차츰 부풀리는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이라는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때 음식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던 제자들은 누룩이라는 말을 들을 때 떡을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룩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은 아마 떡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누룩에 대한 예수님의 경계를 음식의 부패에 대해 경계하시는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재자들은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음식을 준비해 오지 않았기 때문일 거야" 하고 생각했다 바리새인의 누룩과 같은 누룩이 제자들의 마음에 일어나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목격한 예수님의 기적을 제자들은 벌써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기적을 기억함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예수님이 뜻하신 것에 대해 제자들이 오해한 원인은 확신의 결여였다. 예수님은 떡으로 일으키신 두 번의 기적과 필요 이상으로 많은 양이 남았던 것을 제자들에게 상기시키셨다. 제자들은 이 두 번의 기적 중한 번을 좀 전에 보았다. 그러나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제자들의 마음에는 의심이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은 이 기적들의 중심이 되는 계시를 잊어버리거나 아예 깨닫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 기적들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과 긍휼이라는 영원한 사실이 들어 있다. 제자들은 매번 몇 사람이 왔고, 떡이 몇 개 있었고, 몇 광주리가 남았는지 그 수는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떡을 다 나눈 후에도 20배 이상이나 남게 한 그 사랑(Love)은 잊어버린 것이다.


기적의 교훈

     어린아이와 같은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고 이들의 대답을 들으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알지 못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절대적인 논리에 관계된 모든 것을 뛰어넘는 논법으로 그들에게 물으신 것이다.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떡의 누룩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가침에 대해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뢰하는 자는 이해할 수 있다. 마음이 평온한 자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이 기적을 통해 주시고자 한 교훈은 곧 자연적인 교훈이며 가치 있는 유일한 교훈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것과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실 수 있고, 이미 공급하셨고, 또 공급하시리라는 것이다. 이것을 제자들은 몰랐던 것이다. 기적의 능력은 예수님의 사역을 확실히 증거했다. 그러나 기적을 일으키는 사랑은 그것을 더 훌륭하게 증거했다. 증거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심장고동 소리다.

기적의 이유

    예수님이 제자들을 질책하신 이유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기적을 보고 난 후에도 떡을 가지고 고심했다. 우리는 쉽게 우리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쉽게 우리를 용서하시리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기적은 성부 하나님의 일상적인 일로서 작지만 순식간에 행하신 것이기에 우리도 받아들일 만한 것이다. 이 기적의 교훈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할 때 도움은 하나님의 손안에 항상 있다는 것이다. 기적의 의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다. 즉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님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한다고 믿을 가치도 없다. 하나님에 대한 다른 개념을 가질 가치가 없다. 하나님 아들의 사명은 자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믿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용서하셨지만 만일 예수님을 주시지 않았다면 큰 은혜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보다 못하다면 사람들을 사람에게로 그냥 돌려보내는 것이 되며, 실존의 본질적인 슬픔을 위로하지는 못하셨을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만, 선물로써 이 슬픔을 본질적 기쁨으로 바꾸실 수 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을 주기 위해 오신 것이다.

아버지의 공급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1). 이 말씀을 사람들에게 주신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은 사람들의 눈과 손과 입에 똑같은 교훈을 주신 것이다. 사람들은 이 교훈을 잘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떡은 기억하지만 아버지는 잊어버렸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학에서 로고스(말씀) 자체를 곧잘 잊어버린다.
     제자들은 기적의 교훈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 날의 양식을 걱정하며, 예수님이 누룩에 대해 말씀하시는 순간 떡을 떠올린 것이다. '예수님이 다른 것을 의미하실 수 있을까?' 연결점은 아주 분명하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적을 상기시키신 이유는, 제자들이 기적의 참된 가치를 깨달은 후에는 예수님이 뜻하신 것을 놓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적은 제자들에게 자신들을 항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설명해 준다. 즉 사랑의 돌보심 없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일 수 없음을 말한다.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서

     제자들의 염려는 그 날을 위한 것이었지 내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내일'이라는 말은 미래의 모든 것을 뜻하는 말이다. 다음 시간, 다음 순간은 우리의 손에서 수백 년쯤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있다. 다음 몇 분을 위하는 것은 그 다음 날이나 수천 년 뒤의 어느 날을 위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다. 오늘 준비해야할 것은 오늘의 의무다. 일을 끝내야 하는 순간은 무언가 하고자 하는 순간이다. 다음이란 하나님이 만드시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떡이 부족하다는 것은 무관심에서 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님의 즉각적인 재 공급에서 온 것이다. 만일 제자들이 통찰력이 부족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예수님이 꾸중하실 일은 아니다. 예수님은 바로잡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이런 저런 과실이 아니라 증오에서 무례함에 이르기까지 모든 악의 뿌리가 되는, 하나님 없는 삶의 근본적 악을 폐하시기 위해서다.

즉각적인 의무

    하나님은 사람이 어떤 일을 잊어버리는 것을 용납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이성이나 기억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행동의 주인이다. 의무를 기억하면서도 이를 행하지 않고 뒤로 연기했다가 잊는다면 그때는 책망 받을 만하다. 만일 순간에 대한 즉각적 의무에 자신을 두지 않으면 예상이라는 것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의무를 결단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예상만이 올바르다. 어제 잘 이뤄진 일을 근거로 하여 내일의 일이 잘 맞추어질 것이다. 미래에 대해서는 이미 이루어진 일이 천사장의 선견(先見)보다 더 중요하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4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이천 년 전에 일어난 이 기적은 당신과 예수님의 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영성 훈련 1
     예수님의 누룩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 실제로 빵을 만들어 보라, 이런 활동은 맥도널드가 복음서의 이야기를 창조적으로 해석함으로 그 의미를 알아보는 것과 같은 연구 활동의 한 방법이다.



말씀묵상 1
     마가복음 8:1-21



.............................................................................. 조지 맥도널드 (George bfacDonald,1824-1905)
     조지 맥도널드는 빅토리아 시대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고 많은 글을 쓴 창조적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에버딘 출신으로.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가 자유롭게
활동하는 설교가이자 강연자가 되었다 비록 그가 병약하고 빈곤했으며 실패로 어려움을 당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었으며 밝고 쾌활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855년 그는 시적 비극을 그린 작품인 Within and Without(안파 밖)을 책으로 발간했고 후에 직업으로 문학 활동을 하면서 소설. 시 , 요정 이야기. 하나님 탐구에 대한 기독교적 비유 등을 저술했다.  Phantastes : A Faerie Ronance for Men and Women(환상들: 남녀를 위한 파에리 로망스) (1858)와  Lilith(릴리스)(1895). 이 두 작품은 다른 많은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C.S. 루이스는 자신이 회심하고 문학을 추구하도록 영향을 준 사람으로 맥도널드를 꼽았다.
     아이들을 위한 그의 책 중에 가장 훌륭한 것은 At the Back od the North Wind(폭풍의 등에 업혀) (1871)이다.  The Princess and the Goblin(공주님과 난쟁이) (1872)과 그 속편  The Princess and Curdie(공주님과 커디 소년)(1873)는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기독교 작품으로 Unspoken Sermons(말하지 않은 설교)는 3권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