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산상수훈』
                                 히포의 어거스틴

마음을 정결하게 함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과 관련된 가르침 중에 하나로 금식을 들 수 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금식할 때에도 자기 과시가 배어들지 않고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바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기 과시는 마음을 분리시키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추는 데 필요한 순수하고 정직한 영을 갖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흥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d:Id-18) .

     이러한 가르침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내적인 기쁨을 얻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외적인 보상을 구하며 이 세상에 순응함으로 축복에 대한 약속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약속은 내적인 것이기 때문에 더 공고하고 오래 지속된다. 그리고 그 축복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의 형상에 부합하도록 만드셨다.

외식의 두 가지 얼굴

    하지만 이번 장에서는 외식이 물질적인 호화찬란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삼베옷의 칙칙함 안에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외식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가장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위험스럽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육체를 지나치게 가꾸고 옷이나 다른 것으로 요란하게 치장해 사람들의 눈에 띄려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세속적인 사람으로 낙인찍는 행위다. 그가 아무리 경건한 척한다 해도 아무도 속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이 검소하고 경건하게 사는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기 위해 삼베옷과 재, 즉 가난함을 지나치게 드러내면서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의 진정한 동기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가 정말 재물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사람들에게 자신이 의도하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그러는 것인지를 우리는 그가 하는 다른 행동들을 통해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역시 예수님은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조심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사람은 그 열매로 알 것이니라" 하고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이 양의 탈을 쓴 늑대인지 아니면 순전한 양인지는 그가 그럴듯하게 자신을 포장하여 이루어 낸 것이 무너져 버리거나, 이루려 했던 것이 아예 거부당할 때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교묘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옷차림으로 다른 사람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양의 탈을 쓴 늑대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는 단순히 사기꾼들도 별 필요 없이 옷을 자주 바꿔 입어, 방심하고 있는 사람들을 속인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금식할 때 기뻐하라

     그러므로 여기서 흔한 질문이지만 다음 성경 구절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는 묻게 된다. "하지만 금식할 때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음으로, 금식하는 모양을 사람에게 보이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외적 행위를 금식 중에도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금식을 제대로 하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이 이 말씀에 반대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는 행위는 속 사람의 행위를 의미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기쁨을 의미하고, 얼굴을 씻는 행위는 청결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음과 정신에 내적인 기쁨이 있을 때는 사람이 머리에 기름을 바른다. 영혼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머리가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다른 모든 부분을 지배하고 통제한다는 인식은 옳은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육신적인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외부에서 기쁨을 찾지 않는 사람이다. 종속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 육신이 결코 완전한 인간의 머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제자인 바울 사도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을 들어 보라. "누구도 자기 몸을 미워하지 않았으며"라고 말하면서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라고 한 것은 육체가 앞서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금식할 때에는, 금식을 통해서 자신이 세상의 쾌락을 멀리하고 그리스도 아래 순복하게 한다는 사실을 내적으로 기뻐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기 원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금식하는 사람은 자신의 얼굴을 씻을 것인데 이는 마음을 청결히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네 몸을 씻어라" 하고 말씀하시며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 (사 1:16)라고 명하신다. 이러한 더러움, 하나님의 눈을 거슬리게 하는 더러움으로부터 우리의 얼굴을 씻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 (고후 3:18)기 때문이다.

성결한 마음

     또한 우리가 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들에 집중하다 보면 우리의 영적인 눈이 상처를 입어 침침해질 때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분열시켜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도에 맞추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그들로부터 얻으려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동기는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행복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일시적인 필요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선한 행위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우리의 관심을 기울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건한 삶에서 자신의 필요를 위해 형제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는 분명 사랑의 영으로 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은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해야 하는 사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분열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스스로 막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시각에 의해서만 확실하고 지속적인 축복을 얻을 수 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철저하게 은밀하게 금식할 때 실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면 어떤 것인가?



영성 훈련 1
     은밀한 금식과 기도의 효과를 일기장에 쓰거나 영적인 친구에게 말하라. 그리고 자신이 하는 기도나 금식에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동기가 조금이라도 숨어 있지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 보라.



말씀묵상 1
     마태복음 4:1-6



........................................................................... 히포의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354-430)
      히포의 어거스틴은 바울 이후 기독교로 회심한 사람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북아프리카의 누미디아(Numidia)에서 기독교인인 어머니와 이방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피는 기독교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고 세례도 받지 알았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래서 아들을 성적인 방탕에서 구하려고 했으나(그는 오랫동안 아들이 있는 유부녀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실패하고 말았다.
     카르타고(Carhage)에서 철학과 수사학을 공부한 후 어거스틴은 로마로 가서 수사학을 가르쳤다. 일 년 후에 어거스틴은 밀란에서 교수로 임명되었는데. 이 곳에서 세 가지 요소의 영향을 받아 그는 개종하게 되었다. 그것은 밀란의 암브로시우스 주교와 신 플라토니즘 그리고 바울 사도의 글이다.
     점차 어거스틴은 회심의 은혜를 체험하고. 387년에 아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수도사와 같은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 후 대중의 압력으로 사제가 되기는 했지만. 계속 수도사 생활을 했다. 결국 그는 주교까지 되었다.
     주교로서 어거스틴은 여행을 40-50번이나 했다. 백여 편에 가까운 논문을 집필했으며, 200통의 편지. 그리고 500편의 설교문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의 작품 중 대부분은 여러가지 이단과의 싸움에 대한 기록이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그의 영적인 자서전인『참회록』이며 장편의 철학서인 『하나님의 도성』이 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