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버지에 관하여"
                                    시몬 베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다. 우리 안에 실재하는 것 중에서 그분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없다. 우리는 그분의 소유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분께 우리가 속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보는 방향만 바꾸면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가 미치지 못할 만큼 무한히 먼 거리에 계심을 아는 것으로 기뻐해야 한다. 그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악이 설사 우리의 존재 전부를 덮는다 할지라도, 하나넘의 순결함과 복됨과 완벽함을 결코 더럽힐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을 지을 능력을 가지신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다. 그분의 이름은 인간의 입으로 말할 수 없다. 그분의 이름은 바로 그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초월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인간은이 이름에 다가갈 수 있다. 그 이름은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질서 속에 빛나고 있으며 , 인간의 영혼 안에서 내면의 빛으로 빛나고 있다. 그 이름은 그 자체가 거룩이다 그 이름 외에 어디에도 거룩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기를 기도할 때 우리는 완전한 실재로 영원히 존재하는 어떤 것을 구한다. 그것을 몇 만 분의 일이라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정말로 존재하는 그것을 오류 없이 영원히, 그리고 우리를 위한 중보 기도 자로부터 독립적으로 구하는 것, 그것이 완전한 간청이다.

나라가 임하옵시며

     이것은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지만 아직 여기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기도다. 하나님 나라는 지성을 가진 피조물의 영혼이 모두 성령으로 완전히 채워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성령의 바람은 임의로 부는가? 우리는 그분을 초청해야만 한다. 그분을 초대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나 임재해 달라든지 아니며 우리 또는 어떤 사람에게 임재해 달라고 해서도 안 된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갈망하는 외침이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심한 갈증을 느낄 때, 물 마시는 행위를 자신과 연관지을 수도, 물 마시는 행위를 생각할 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오직 실제적인 물 그 자체만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물에 대한 상상은 우리의 존재 전체에서 터져나오는 절규와 같은 것이다.

뜻이 이루어지이다

     우리는 과거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어떤 일이든지 간에 지금까지 이루어진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은 전능이라는 말에도 함축되어 있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이든지 일단 일어난 후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거기에다 우리가 더할 수도 뺄 수도 없다. 따라서 이 구절은 가능한 어떤 일에 대해 치솟는 욕구를 가졌다가 그 후에 이미 이루어진 것을 다시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말씀의 거룩함 같은 영원한 실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순서대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일이 시간 내에 하나님의 뜻과 완벽하게 그리고 영원히 일치되기를 구한다. 일어난 일은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라고 바랄 뿐 그 외에 다른 것은 구하면 안 된다. 이미 일어난 일이 우리가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셨기에 일어난 것이며, 일의 과정에 대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그 자체가 절대적인 선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우리의 소망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과 연결되는 것은 영적인 일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의 영적인 기복과 우리가 사랑하는 자들의 영적 기복은 다른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만, 하늘 아래 이곳에서 곧 일어날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영적인 기복은 광활한 사건들의 바다 안에서 나타나는 세부적인 것들이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닌다. 과거의 실패는 이미 일어난 일이므로 우리의 소망은 일어났어야 하는 일에 대해 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러한 소망을 미래, 즉 그 일이 과거가 되는 시간으로 확장해야 한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구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영생에 대한 소망을 위해 다른 소망은 버려야하지만 영생 그 자체를 위해서는 포기함으로 구해야 한다. 초월에 집착하는 것조차도 안 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여기서 양식은 초자연적인 떡을 말한다. 우리의 양식은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를 달라고 구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분은 우리 영혼의 문 앞에서, 들어오고 싶어하시며 언제나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동의를 강요하지는 않으신다. 우리가 동의해야 들어오신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원하지 않게 되는 순간 즉시 그분은 퍼나신다. 내일을 위해 우리의 의지를 묶어 둘 수도 없다. 내일도 내 의지에 상관없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도록 계약을 맺을 수도 없다 그분이 임재 하시도록 우리가 동의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임재다. 동의는 행위다 동의는 실제적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동의는 현재 시제다. 미래에 적용될 수 있는 의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바가 없다.
     우리는 양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끌어들여 살아가는 존재다. 에너지를 받으려 애쓰면서 에너지를 다 써 버리므로 에너지가 매일 재생되지 않으면 우리는 약해지고 움직일 수도 없게 된다. 문자그대로의 '양식' 외에도 모든 동기가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돈, 야망, 생각, 장식, 명성, 권력, 사랑하는 사람들 등. 행동을 위한 능력을 불어넣는 이 모든 것이 양식과 같다. 우리가 집착하는 모든 대상이 문자적 의미의 '양식' 과 합쳐져서 이 세상에서 일용할 양식이 된다.
     하늘에 원천을 둔 초월적 에너지가 있는데, 이 에너지는 우리가 원하는 즉시 우리에게 흘러 들어온다. 그것이 진정한 에너지다. 그 에너지는 우리의 정신과 육체 작용을 통해 행동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바로 이 양식을 구해야 한다. 구하는 순간 하나님이 그 양식을 주시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함 받았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당한 부당한 행위에 대한 보상을 포함할 뿐 아니라 잘한 일에 대한 보상도 포함하며, 우리가 사람이나 일에 기대하는 모든 것과,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없으면 실망하는 것에도 적용된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과거의 일로 인해 미래에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권리들이다. 이러한 주장을 우리는 버려야 한다.
     우리가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다는 것은 과거를 송두리째 포기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미래가 아직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순수하고 완전한 상태이며, 우리가 모르는 끈으로 과거에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의 상상력으로 연결한 끈으로부터는 완전히 해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런 일이 일어날수 있으며, 특별히 나에게 일어날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과거의 모든 삶이 무익하고 헛된 것이었다고 여기게 될 미래를 위해 우리가 준비됨을 의미한다. 과거에 거둔 열매를 단숨에 모두 포기할 때, 우리는 과거에 우리가 범한 죄가 끔찍한 악의 열매를 맺지 않도록 기도할 수 있다.
     죄를 용서한다는 것은 영적 궁핍 , 영적 벌거벗음, 영적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일 때, 우리는 우리 안의 죄가 깨끗이 씻긴 새 생명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할 수 있다. 하나님께 우리 죄에 대한용서를 구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악한 본성을 씻어 달라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용서는 정화(淨化)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고, 초자연적 양식을 받고, 악에서 깨끗해진 후에는 이제 우리의 영혼은 모든 미덕에서 가장 뛰어난 미덕인 진정한 겸손을 위해 준비된다. 겸손이란 완전한 영혼이라도 이 세상에서는 시간과 변화의 영향 아래 놓여 있음을 아는 데 있다. 그 영혼은 우리가 전체적으로 자아(ego)라고 부를 뿐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영혼의 초자연적 부분이라고도 말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야 겸손할 수 있다.
     우리의 아버지는 가능한 모든 간구를 받으신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은 기도를 우리는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의 받으심과 기도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인간의 관계와 같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진정한 변화가 영혼 안에 일어나지 않고서는, 각각의 말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며 한번에 기도를 다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과 직접 만날 가능성에 대해 마음이 항상 열려 있는가?


영성 훈련 1
     우리는 주기도문을 급하게 또는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암송할 때가 있다. 주기도문을 천천히 외우며 각각의 구절과 단어의 의미를 묵상하며 진심으로 기도해 보라.



말씀묵상 1
     누가복음 11:1-9


..................................................................................................시몬 베유(Simone Weil,1909-lf43)
     시몬 베유는 프랑스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정치적으로는 급진파로. 현재 20세기의 뛰어난 신비주의자로 꼽히고 있다. 유태인으로서 파리의 중산층 의사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1930년대 다양한 노동자 운동에 참여했다. 그 시대에 일어난 반 유대주의 박해에 쫓겨 그녀는 프로방스로 갔고. 그곳의 티봉 농장에서 농사짓는 인부로 일했다. 거기서 그녀는 기도와 하나님 그리고 성찬식의 관계를 발견했으나 박해를 받고 있는 유대교에 속해 있어 정식으로 크리스천 되는 것은 주저했다
     1938년 솔렘느에 있는 트라피스트 사원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혔다"고 고백한다. 그 후로 예수님의 사랑과 신성을 믿게 되었고.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철학을 공부하고 교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시몬 베유는 예수 그리스도 체험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기도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 관상적 체험 등에 대해 남긴 그녀의
많은 글들은 다양하게 수집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글은 Waiting for God(하나님
을 기다리며)이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