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와 일반인을 위한 설교집 』
                                  존 헨리 뉴먼

종교적 기쁨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 :10-11)

    오늘 우리가 축하하는 대축제에서 배우게 되는 교훈 두 가지는 고독감과 기쁨입니다. 그 어떤 날보다도 이 날은 천국의 우월성과 수용성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날입니다. 세상의 '역사가, 철학자, 시인의 말을 들어보면, 위대한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을 명예, 능력, 낯선 모험 등에 고정합니다. 치열한 투쟁과 위대한 운명을 꿈꿉니다. 최고의 삶이란 단지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지 선함 자체를 즐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 축제의 날을 기념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매우 새로운 장면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집니다. 첫째, 우리는 삶이 고통과 수고임을 기억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의 선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선은 발견되는 것이고 우리 가까이에 있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이 선은 성부의 가슴에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습니다. 그분은 땅 위에 있는 우리 가운데 선이 쌓이도록 하셨습니다.
     인간들은 더 이상 자신이 생각하는 선을 찾아 열심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이방인이 하던 것과 같이 미지의 축복을 추구하느라 이리저리 방황하다 위험을 만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우리는 더는 이 헛된 세상이 위대하고 고상하다고 말하는 그런 일들을 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무시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이 경멸하는 직위와 신분을 입으셨습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아들이 선택한 것보다 겸손하고 고상한 것은 없습니다
     성탄절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 교훈을 배웁니다. 헛된 것을 추구하며 낙심하기보다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호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기쁨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네가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천사는 이 말을 마치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심령들에게 전해진 복된 성령의 말씀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 은혜의 밤에 목자들을 깨우셔서 춥고 배고픈 기분을 위대한 기쁨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무엇보다 성령께서는 그날 밤에 일어날 일들을 처음으로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놀라운지요. 밤에 양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그 위대하고 기쁜 비밀을 보이셨습니다. 낮은 자, 친구 없는 자들에게 당신의 따뜻함을 보이신 것입니다.
     천사가 전해 준 소식에서 우리는 겸손과 기쁨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의심의 여지없이 목자들은 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심을 들었을 때, 왕궁에서 그리스도를 찾았을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중 하나가 되셨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감히 자신들이 그분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꿈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가 그분을 어디서 찾아야하는지 가르쳐준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어디라고 가르쳐 준 표적일 뿐 아니라 교훈이기도합니다

위대한 신비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우리도 그들과 함께 가봅시다 천사가 그들을 인도하였던 두 번째 위대한 기적 즉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관상해 봅시다. 누가는 복된 동정녀에 대해 그녀가 아기 예수를 강보로 덮어 구유에 눕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표적입니까? 천사가 목자를에게 반복해서 말합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태초부터 영원한 성부와 함께 영광 가운데 계셨던 천지의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바로 이 분이 어린아이의 신분으로 죄 많은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힘이 없는 아이의 모습으로 어머니의 팔에 안기셨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강보에 싸서 구유에 눕혔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지존의 하나님 아들이 육체가 되셨습니다. 비록 이전에 가진 그 존재됨은 유지하고 계셨지만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그분은 마치 자신이 더 이상 이전의 신분을 포기한 것처럼 육체가 되셨습니다. 마리아의 아이가 되는 일에 순종하셨으며 죽을 운명에 스스로 처하셨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시선을 아기 예수께 고정하고 그를 품 안에 안았습니다. 사람의 딸이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녀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얼마나 큰 겸손이 됩니까! 자신의 영광을 비워 인간이 되셨습니다. 약한 아기의 몸 자체도 충분한 겸손이었지만, 그분은 죄 없는 영혼에게도 가능한우리 본성의 허물과 불완전을 물려받으셨습니다. 우리가 감히 무한한 분에 대하여 성찰을 하면서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 질문할 수 있다면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감정, 인간의 슬픔, 인간의 바람이 처음으로 그분의 것이 되었을 때 그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얼마나 큰 신비입니까? 신비에 비례하여 은혜와 자비가 있습니다 은혜가 있듯이 이 은혜의 열매도 위대하게 마련입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

     형제 여러분, 이런 생각들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이 축제의 날에 이런 생각이 여러분 가정 위에 넘치기 바랍니다. 이런 생각이 여러분의 가정과 사회의 만남들 가운데서도 일어나기 바랍니다. 오늘은 기쁨의 날입니다. 기뻐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우리의 오염된 양심의 짐을 벗고,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우리 자신의 비천함과 불결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구세주 그리스도의 완전을 기뻐하십시다. 대신에 그의 영광, 의로움 순수함, 위엄. 넘치는 사랑에 대해서만 묵상하십시다. 우리가 주안에서 기뻐하고 모든 피조물에서 그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의 시간적 풍부함을 기뻐하고 그와 함께 우리 생각 속에서 이 땅의 즐거운 것을 즐기십시다. 우리는 그를 위해 친구와 함께 기뻐합니다. 그분이 우리 친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친구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살전 5 :9-10). 유쾌한 마음, 조화로운 기질, 달콤함, 온유함, 밝은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그분의 은혜를 입어서 그분의 빛 가운데 행합시다. 항상풍부한마음과새로운사랑을주시도록그분에게 기도합시다. 바로 이러한 풍부함과 힘으로 삶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비, 사랑, 양선, 희락의 중심이 되시며 원천이 되시는 그분과 우리 자신이 연합되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소생시키는 영

     축복된 부활의 날이여, 예부터 축제의 여왕이라 부르는 날이여, 경의를 표하기에 충분하도록 기쁨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나이다! 주께서 일어나셨을 때, 슬픔은 지나가고 제자들은 아직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교회에는 사랑과 기쁨, 신앙이 가득했습니다! 옛날, 기독교인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아침 인사로 부활을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웃에게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셨습니다. " 그러면 인사를 받은 사람은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비겁한 제자 시몬에게도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을 보이셨습니다. 순종하겠다고 고백하면서도 번번이 그분을 부인하고 죄와 세상을 쫓았던 우리에게도 그리스도는 살아서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다른 방식으로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 시몬 베드로에게 "그리스도는 참으로 사셔서 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 그의 신앙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자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축복을 나누어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교회에 나타나셔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축복을 나누어  주십니다. 이 축복을 아는 사람들은 복됨니다. 거룩한 교회 안에서 구세주를 발견하는 사람들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한,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율법을 지키고 있는 한 우리는 오늘도 겸허하게 기뻐할 것입니다.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기쁨,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더 큰 기쁨으로 기뻐할 것입니다.
     비난과 신성 모독이 가득한 이 시대에 우리는 참으로 깨어서 순종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바로 그 진지함 때문에 우리의 평안과 기쁨은 더 깊어
지고 충만해질 것입니다. 어느 것도 그리스도를 품은 사람들을 해칠 수 없습니다. 시험, 유혹, 원수의 모욕, 세상재화의 상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 :39).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사도들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말했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수세기에 걸쳐 그 말씀을 통해 위로를 얻고 있습니다 이 세상보다 강하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압도하신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그와 함께 고난받는 사람들, 초대 교회의 모든 신앙인과 순교자의 역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팔이 짧아 구원하지 못한 것이 아님을 압니다. 신앙과 사랑이 땅 위에서 참되게 제자리를 찾습니다. 그의 은혜가 교회에 넘칩니다. 그의 능력은 연약함 가운데 완전하게 됩니다. 서리가 내린듯 머리털이 허옇게 센 늙은이에게도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주셨습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노룻 하니" (계 20:4) 하고 말씀하십니다.
사탄이 위협을 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인내하며 마음을 지키십시다 잠잠하십시오. 작든 크든 모든 일에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목표를 세우십시오. 매일 매일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부름의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러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 6:34).




묵상을 위한 질문 1
     우리의 영혼을 보다 유쾌하고 순결하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겠는가? 어떻게 하면 일상 속에서 '축제의 기분' 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영성 훈련 1
     성탄절. 부활주일과 관련한 종교적 관습을 말해 보라. 우리의 기쁨을 최대한 표현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는가?



말씀묵상 1
     베드로전서 1.3-9




..............................................................................존헨리 뉴먼(John Heruy ffeoFman,1801-1890)

     존 헨리 뉴먼의 Parochial and plain Sermons(교구와 일반인을 위한 설교집)는 원래 여덟권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한 권으로 묶였다. 이 설교들은 뉴먼이 성공회 신부로 있던 옥스퍼드의 동정녀 마리아 교회에서 주일과 축일에 한 설교들이다 뉴먼이 평생 탐구한 영적 주제들이 이 설교에 담겨 있다. 이 설교들은 그의 지적 능력과 시심. 도덕성. 영적 통찰 등을 보여 준다.
     뉴먼은 말년에 가톨릭 교인들로부터 옥스퍼드에 대학 세우는 일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이 일에 열심을 내지 않았다. 영국 국교회와 가톨릭이 갈등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대학교는 성공회의 보루였지만. 점점 더 많은 가톨릭 학생들이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하고 있었고, 로마 가톨릭에 대한 종교적 편견이 막사라지기 시작 할 때였다. 뉴먼은 종교 분파의 비극을 다시 불러올 마음이 없었다. 그의 사상과 이론이 종교적 논쟁을 종종 일으켰던 것은 사실이나 기독 신앙의 핵심적인 문제를 정확히 짚어 냈다. 뉴먼은 회의주의와 기독교의 세속화에 대해 염려하고 비판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