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혼례」
                                존 루스브로윅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인도하셔서 보게 하신다

     지혜로운 처녀, 즉 세상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순수한 영혼은 흠 없는 양심의 등잔과 마음의 그릇에 자선과 덕행의 기름을 담는다. 그러나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위로와 새 선물을 가지고 좀처럼 오지 않으실 때마다 영혼은 나른한 졸음에 빠져 무기력해진다 밤이 깊어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을 때, 영혼 안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린다 "신랑이 오신다. 그를 맞으러 나가자!" 이제 우리는 이런 봄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우리 내면에 오시는 것에 대해, 영적으로 그를 맞으러 나가는 것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갈망으로 가득 찬 내적 훈련에 대해 네 가지 관점을 명료하게 설명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면 훈련을 통해 얻게 되는 도덕적 덕목과 열정적 삶에 대해 말할 것이다.

보는 것에 필요한 세 가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첫 번째 단어는 '본다'이다. 내적인 삶에서 초월적 시각을 얻기 원한다면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불같은 내적 열정이 없이는 외적 행위에서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 은혜의 빛이다. 둘째는 마음 안에 있는 모든 형상들과 근심을 제거하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모든 피조물에서 자유롭고 형상에 붙잡히지 않고,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세번째로 필요한 것은 의지의 자발적인 전환과 육체적인 능력과 영적 능력을 함께 모으는 일이다. 이것은 무절제한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하나님과 일치함으로, 그리고 이성의 영역으로 들어감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이성의 일치는 합리적 피조물이 초자연적 방법으로 얻은 하나님과의 숭고한 일치를 소유하도록 해 준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고 우리를 가르치셨으며 우리를 위해 사셨고 그 자신이 바로 일치에 이르는 길이 되셨다. 사랑의 연합으로 죽으셨으며, 천국에 올라가셔서 우리를 위해 동일한 일치를 열어 주셨다. 바로 이 일치를 통해 우리가 영원한 복을 소유하게 되었다.

자연적, 초자연적으로 우리 안에 존재하는 삼중적 일치

     주목하라! 모든 사람 안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삼중적 일치와 선한 사람들 안에 초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삼중적 일치가 있다. 가장중요하고 귀한 일치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갖는 일치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이 자신의 존재, 생명, 보존을 위해서 이 일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수준에서 피조물이 하나님과 분리된다면 무로 전락해 무가 되어 버린다. 이
일치는 우리가 선하든 악하든 상관없이 본질상 근본적으로 우리 안에 있다. 그래서 우리의 협력 없이는 우리를 성결케도 못하고 구원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이 일치를 우리 안에 그러면서도 우리 너머에 가지고 있다. 이 일치가 우리 존재와 생명을 유지시키고 그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일치도 본질상우리 안에 있다. 이것은 보다 높은 능력의 일치로, 이 일치에서 능력들이 능동적으로 일어난다. 이것은 영의 일치 혹은 이성의 일치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께 의존한다는 면에서 첫 번째 일치와 동일하다. 그러나 첫 번째의 일치가 존재와 연관되었다면 여기서는 활동성과 연관되어 있다 각 경우에 실체의 전체성에 따라서 영이 온전해지고 완전해진다. 우리는 이 일치를 우리 자신 안에 있지만 우리 감각의 활동 위에서 소유한다. 이 일치에서 기억, 이성, 의지의 능력이 나온다 즉 영적인 활동을 하는 우리의 전체 능력이 이 일치에서 나온다. 이 일치에서 우리의 혼이 영이라고 불리게 된다.
     본성상 우리 안에 있는 세 번째 일치는 육체적 능력의 근거다. 즉 우리의 육체적 생명이 시작되는 가슴의 이치다. 영혼은 육체 안에서 그리고 생명을 부여하는 가슴의 중심에서 이 일치를 소유하게 된다. 이 일치에서 육체와 오감의 활동이 흘러나온다. 여기서 영혼은 단순히 혼이라 불린다. 왜냐하면 이 혼이 육체의 형태가 되며, 육체에 생명을 부여하고 살아 있게 함으로써 육체를 활동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세 가지 일치가 사람 안에 자연적으로 있으며 하나의 생명과 왕국을 만든다. 이제 우리는 열정적인 내적 훈련들이 활동적인 삶의 훈련에 더해질 때이런 세 가지 일치가 어떻게 보다 아름답게 장식되고 소유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전체 삶에서 사랑과 바른 의도를 통해서 자신의 행동과 자신을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을 위해 드린다. 다른 모든 것을 제치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을 찾을 때 겸비함과 인내, 자기 -복종과 강한 확신으로 새로운 부유함과 선물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과연 이런 것들을 주실지, 안 주실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풍부한 갈망을 지닌 내적 삶을 위해 사람이 스스로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그릇이 준비되었을 때 물이 부어진다. 사랑의 영혼보다 더 소중한 그릇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보다 더 자비로운 물은 없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사람은 단순하면서도 올바른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모든 행함과 전체 삶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며, 또 이런 의도를 넘어서, 자신을 넘어서, 모든 것을 넘어서 하나님과 사랑하는 영혼이 중재 없이 하나가 되는 그런 최고의 일치에서 안식하게 된다.

최고의 일치에서 일어나는 조명

     인간의 영이 자신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그런 일치에서, 영원한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보라, 신랑이 오신다. 그를 맞으러 나가자!" 하고 말씀하신다. "보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진리의 빛인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를 통해서다. 아버지의 빛이신 그리스도 없이는 세상이나 천국에 빛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서 그분이 말씀하신다는 것은 빛과 은혜가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최고 능력들이 하나가 될 때 그리고 우리 영이 일치할 때 이 은혜가 우리에게 내려온다. 이런 일치에서 최고의 능력들이 은혜의 능력에 의해 능동적으로 모든 덕목 가운데 흘러 나가고 사랑의 묶임으로 다시 돌아온다. 은혜, 신적 은사, 능력 등이 피조물에 합당한 방법으로 행해진다면 모든 피조물의 능력 그리고 이 피조물의 시작과 끝이 자연적인 것이든 초자연적인 것이든 이 일치 안에 놓이게 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혜를 보다 높은 능력의 일치에 주심으로 사람은 능력, 부유함 은혜라는 수단을 통해서 덕목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게 된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은혜를 넘어 열락과 안식을 위해 주시는 반면, 자신의 은혜는 행함을 위해 주신다. 영의 이 일치는 우리가 하나님의 평안과 사랑의 풍성함 가운데 거할 때 주어진다. 여기서 모든 덕목이 끝나고, 영의 단순함으로 함께 하나가 된다.
이 조명을 얻기 위한 필요조건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헌신된 사람 안에서 영적인 방법으로 "보라"고 말씀하신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이 내적인 훈련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신적 은혜의 조명이다. 혼 안에 들어 있는 이 은혜는 등잔이나 다른 유리 그릇에 들어 있는 촛불과 같다. 용기를 통해 밝은 빛을 비추기 때문이다 즉 신적 조명은 선한 사람을 통해서 작용한다. 이 신적 조명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드러나게 된다. 또 이 사람의 덕과 모범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신적 조명이 드러난다. 하나님 은혜의 이런 발광은 즉시 안에서부터 접촉을 하고 움직이게 된다. 이 빠른 운동이 우리로 하여금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첫 번째 조건이다.
     이 첫 번째 조건에서 두 번째 필수 조건이 나온다. 두 번째는 인간 측면에서 나오는 것으로, 영의 일치와 사랑의 묶임에 의해 자기 안과 밖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능력을 하나로 모으는 데에 있다.
     세 번째 조건은 자유다 감각적 형상의 방해 없이 사람이 하고자 할 때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자기 내면에서 움직일 수 있게된다. 다른 말로하면, 사람이 쾌락과 고통, 얻음과 잃음, 고양과 겸비, 불안, 기쁨과 두려움 등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피조물에도 묶여서는 안 된다.
    이런 세 가지가 사람으로 하여금 내적 훈련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만약 이것들을 가지고 있다면 훈련과 내적 삶의 근거와 시작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 의지는 어떻게 전환되는가? 어떻게하면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편히 들어가 쉴 수 있는가?


영성 훈련 1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불안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지 생각하고 나누라.


말씀묵상 1
     마태복음25:1-13


.................................................................................... 루스브로윅(John Ruusbroec,1293-1381)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불안했던 14세기는 많은 영적 저자들이 나왔다. 탁월한 관상가인 존 루스브로윅도 그중 하나다. 이블린 언더힐을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기술의 명료성을 그에게서 배웠다.
루스브로윅은 오늘날 벨기에의 영토인 브루셀 인근 마을 루스브로윅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로부터 성결한 삶에 대해 배웠던 그는 11살 되던 해 집을 떠나 사제이며 수도사인 삼촌 존 힌카에르트(John Hinckaert)와 함께 살았다. 1317년에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브루셀에서 교구 사역을 위한 부사제로 활동했다
     루스브로윅과 삼촌 그리고 수도사이며 경건한 사람이던 삼촌의 친구 프랜시스 반 꾸덴
베르그(Francis van Coudenberg), 이 세 사람은 그로에넨달(Groenendaal)에 있는 소이 뉴 숲 속 은둔처에 들어가 살았다. 1349년에는 이 공동체가 확장되어 의전 수도회의 종교기관이 되었다
루스브로윅은 경건한 삶에 대한 저술에 몰두하였다. 그의 처녀작인 Spiritual Espousals(영적 혼례)는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The Kingdom of Lovers(연인들의 나라)는 헤른에 있는 카르투시안 수도회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는데. 그들은 좀더 깊은 이해를 위해 루스브로윅에게 설명을 요청했다. 이에 루스브로윅은 아주 많은 작품인 The Little Books of Clarification(명료성의 소책자)을 써서 그 요청에 응했다. 그는 모두 합해서 11편의 논문을 썼다. 일부 작품은 매우 학술적이고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관상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부 작품은 가볍고 대중적인 작품으로 이들 가운데는 The Book of Twelve Beguines(열두 명의 베긴 수도사들의 책)이라는 경쾌한 작품이 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