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입이 내게 있으면"
                                찰스 웨슬리

하나님께 영광, 찬양과 사랑을 영원히 드리세
천군 천사들과 지상과 천국의 교회여

이 기쁜 날 의의 영화로운 해가 떠오르네
어두운 내 영혼을 밝히시며 평안으로 채우시네

법적 싸움이 끝나고 근심이 멈추네
참된 생명이 다시 태어났네

생애 처음으로 나는 성결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네
그분을 내 구세주, 주님이라고 부르도록 성령께서 힘을 주셨네

주님의 보혈이 내 영혼에 스미어 구속의 은혜를 내리셨네
하나님의 아들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어, 나 위해 죽으셨네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하신 분임을 난 확신했네
그분의 약속이 내 마음에 새겨질 때,
나는 이미 천국 시민으로 허락되었네

(한글 찬송가 23장)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1절)

내 은혜로우신 하나님 날 도와주시고
그 크신 영광 널리 펴 다 알게 하소서 (2절)

내 주의 귀한 이름이 날 위로하시고
이 귀에 음악 같으니 참 희락되도다 (3절)

내 죄의 권세 깨뜨려 그 결박 푸시고
이 추한 맘을 피로써 곧 정케 하셨네 (4절)

그가 말씀하실 때, 나는 그 음성을 듣네 죽은 자가 새 생명을 얻네
애통하는 자, 상한 심령이 기뻐하고, 비천한 자가 믿음을 얻네

귀머거리들아! 그에게 귀를 기울이고, 벙어리들아! 그를 찬양하라
느슨해진 혀들아 열심히 움직이라
소경들아 주의 오심을 보라 절름발이들아 기뻐 뛰라

너희 민족들아 그를 쳐다보라
너희 타락한 족속들아 하나님을 소유하라
오직 신앙으로 구원을 얻으며 은혜로 의롭게 되라

너희 모든 죄가 예수께 놓여 있음을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했노라
그의 영혼이 모든 인간의 영혼을 위해 대속물이 되셨네

창기, 세리, 도둑들아! 거룩한 승리에 가담하라
믿음이 있는 죄인만이 많은 죄에서 구원을 얻네

살인자와 모든 지옥에 있는 것 같은 자들 정욕과 교만의 아들들아!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위해 돌아가심을 믿으라
나 위해 돌아가셨네

너희 관원들아 알지어다
죄가 용서되었음을 느끼고, 여기 지상에서 천국을 소망하라
천국을 이루는 사랑을 소유하세




묵상을 위한 질문 1
     예배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깊은 예배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영성 훈련 1
     찰스 웨슬리의 찬송들을 불러 본다. 누군가 피아노 반주를 하면 좋겠지만, 그의 찬송가는 대부분 귀에 익은 것이므로 반주 없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찬송을 부른 후 제목을 기록하고, 어떤 곡이 당신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는지 써보라.  테이프나 CD를 통해. 위대한 전통 찬송가들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들어 보라.



말씀묵상 1
     시편 150편

..................................................................................... R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1707-1788)
     찰스 웨슬리는 형 요한 웨슬리와 함께 18세기에 일어난 가장 역동적 부흥 운동인 감리교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그는 영국 국교회에서 갱신 운동을 하다가 감리교를 설립하고 그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린컨샤이어에서 태어났으며 웨스트민스터 학교와 옥스퍼드에 있는 그리스도 처치 칼리
지에서 공부했다. 그곳에서 그는 헬라어와 라틴어로 된 고전들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찰스는 1728-1729년 겨울. 영적인 각성을 경험하고 '흘리 클럽(Holy Club)' 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사실 당시에 주변 사람들은 그들(요한과 찰스 두 형제)을, 마치 좀이 옷을 먹듯 성경을 먹는다고 하여 '성경의 좀들' 이라며 비웃었다. 또 성경 연구와 금식. 교제. 기도 등 경건 훈련을 너무도 엄격히 한다고 해서 '방법론 자들(Methodists)' 이라 부르기도 했다.
     1735년 찰스는 그의 형 요한 웨슬리가 신대륙 조지아 주의 선교사로 가는 것을 돕기 위해 국교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 선교는 요한 웨슬리와 소피아 홈킨스의 이루어지지 않은 연애 사건으로 영락없이 실패하고 말았다. 찰스와 요한은 영. 육이 모두 지친 상태로 영국에 돌아왔다.
     1738년 5월 모라비안 형제들의 사역을 통해 찰스는 하나님과 '화해' 를 했다. 사흘째 되던 날. 요한 웨슬리는 훗날 "내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라고 고백한 그의 유명한 Aldersgate 체험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함께 영국 사회를 혁명으로 이끈 위대한 감리교 부흥 운동을 준비하였다 찰스는 탁월한 웅변 설교가였으나 찬송가 작가로도 활동했다. 실제로 그는 8천 곡 이상의 찬송을 썼고, 이것은 감리교 운동을 부흥시키는데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1749년 찰스는 사라 귀인(Sarah Gwynne)과 결흔했다 여덟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중 두 명의 아들과 딸 하나만 생존했다. 아들 찰스 2세와 새뮤얼은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랐다. 새뮤얼은 아버지의 음악적 재능을 이어받아 많은 음악을 작곡했는데. 대부분의 작품은 바하( J.S. Bach)의 성향을 띠었다.
     말년에 찰스는 두 가지 문제로 형 요한과 갈등을 빛게 되었다. 하나는 목사 안수를 하겠다는 형 요한의 결정에 찰스가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고. 또 하나는 찰스가 요한과 그레이 머레이 (Grace Murray)의 결혼을 반대한 것이었다. 찰스는 결국 감리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주옥같은 찬송가들은 오늘날까지 기독교 역사의 귀한 보배로 남아 있다.
     널리 알려진 노래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 (찬송가 55장). "천사 찬송하기를" (126장). "예수 부활했으니" (154장). "비바람이 칠 때와' (441장) , "만 입이 내게 있으면" (23장) 등이 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