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고독』
                                   도로시 데이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자선

     디트로이트에 있는 어느 여성의 집은 마르다의 이름을 따서 '마르다의 집'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이 집에서 이민자 가정들, 임금이 높다는 소문을 듣고 북부로 올라온 남부 지방 가정들을 돌본다. 이 집에는 넓은 방이 여덟 개 있고, 각 방마다 아이들이 있는 한 가족이 살고 있다. 그러나 집이 비좁아 남편들은 프랜시스의 이름을 따서 지은 '성 프랜시스의 집'으로 가야 했다. 때로 방 안에 한 가족이 다 있을 수 없어 아래층의 거실과 응접실로 밀려나오기도 한다. 유색인이 백인 어린이들을 돌보고, 백인이 유색인 어린이들을 돌보며, 부모들은 집과 일자리를 찾아다닌다. 그렇게 궁핍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은 형제가 된다.
     그렇다. 우리는 가난한사람들과 근로자들과 함께 살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거리나 대중 집회에서 만난 것이 아니다. 여러 해에 걸쳐 워싱턴,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해리스버그, 피츠버그, 뉴욕, 로체스터, 보스턴, 워시스터, 버팔로, 트로이, 디트로이트, 클리브랜드, 톨레도, 아크곤, 세인트 루이스, 시카고, 밀워키, 미네아폴리스,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오3랜드의 빈민가, 공동주택, 그리고 합숙소에서 같이 살며 알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는 저 아래 루이지애나의 후마에서도 같이 살았다. 이곳에서 제롬 드롤렛(Jerome Drolet) 신부님은 흑인과 백인, 새우 껍질 까는 인부, 어부, 부두 하역부, 그리고 선원들과 함께 일을 하셨다.
     교회가 그 많은 선교사들을 통해 두메산골과 마을까지 뻗어 갔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뻗어 갔다. 때로는 교회나 우리 신문의 독자들을 통해, 또는 조합의 직원들이나 조직이 필요한 사람들을 통해서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실직자, 병든자, 취업이 불가능한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조직 안에서 동료 간의 유대로 뭉친 노조가 있는 근로자와, 조직이 없고 극빈한 상황에서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비참할 정도로 대조된다.

가슴이 찢어지는 상황

     그들이 헐벗고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적인 양식이 없어서 뿐 아니라 영적인 양식과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의식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시에서 운영하는 숙소와 병원, 또는 우리가 운영하는 자선의 집에서 줄을 서야 하는 그들은 참으로 빈궁한 자들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자원 봉사를 지원하여 왔다가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가 버린 예가 수없이 많다. 우리가 방이나 재정이 없어서 그러한 수치스러운 일을 반복해서 지켜봐야 하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다.
    나는 피터에게 물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생각했던 '자선의 집'인가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최소한 이 집이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워 주기는 할 것입니다. "
    가난한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행동이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수치심을 느껴 이 일에서 떠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스러움을 견디는 것은 우리가 회개해야 할 한 부분이다.

모든 인간은 형제다

     "모든 인간은 형제다." 모든 인간의 가슴에 반향을 일으키는 이 강력한 외침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듣는가. 이 말은 바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마 23 :8). 이것은 혁명적인 부르심으로서 나중에는 음악도 만들어졌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의 마지막악장에 그 유명한 후렴인 "모든 인간은 형제다"라는 말이 나온다. 바로 그 형제들에게 가는 것은 기독교 진통과 혁명 전통에서 가장순수하고 높은 수준의 행위이며, 형제 사랑의 시작을 의미한다.
     사람들로부터 분리되지 않는 것, 작은 공동체나 자기 자신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사람들을 형제로 볼 때, 서로에게서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며 또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기독교적인 삶의 다른 부분플과 봉사가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



영성 훈련 1
     가까운 무료 급식소나 고아원에 찾아가서 자원봉사를 해 보라 그 일을 하면서 든 생각이나 자신의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해 일기에 기록하라



말씀묵상 1
     마태복음25:31-46



............................................................................................도로시 데이 (Dorothy Day,1897-1980)

     도로시 데이의 일생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보여 준 봉사와 같은 것이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복음 전파를 위해 감옥에 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의 기독교
정신은 기도와 복음에 대한 연구로 깊이 심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로시 데이를 열정적인 사회 운동가로 기억하지만. 그녀가 주창한것은 분파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기독교가 온전히 하나 되기를 원했다 즉 기독교의 헌신. 기도와 영성의 깊이 인류애, 창조적인 것과 창조된 것에 대한 찬미 이 모든 것에서 하나의 완전함을 원했다.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시카고에서 성장한 도로시 데이는 도시의 가난한 동네의 모습과
냄새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러한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서 작가이자 사회주의자로 평생 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뉴욕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면서 무신론적 사회주의에서 기독교로 바뀌었고. 로 마천주교 신앙을 택함으로써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피터 모린(Peter Maurin)과 공동으로 가톨릭 근로자 운동을 창립한 그녀는 맨해튼의 남부 이스트사이드에 자리를 잡고.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선 사업을 하고 The Catholic Worker(가톨릭 워커)라는 신문을 통해 수백만 뉴욕 시민을 위해 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톨릭 근로자 운동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데이의 글은 자기 집 문 앞에서 하는 실제적인 일만큼이나 기독교적 섬김에서 중요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적 사회 질서를 위해 우리는 우선 기독교인을 확보해야 한다."
     가톨릭 노동자 운동을 결성하면서. 그녀는 아시시의 프랜시스처럼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중생과 변화로 인도하고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변화시키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는 The Catholic Worker 에도 썼듯이, "신비주의자들과 성인들이 회피했던 진리의 샘의 뚜껑을 열 때가 되었다"라고 생각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