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번 설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우리의 일상적인 일이 영적인 일이 될 때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눅 10:38)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아래 앉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녀의 영혼을 감쌌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이 큰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열망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열망했으며,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른 채 소망했습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영생의 말씀으로부터 받게 된 부드러운 위안과 축복이었습니다.
     마르다가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사랑하는 예수님을 위해 봉사한 이유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나이에 따른 성숙함과 삶의 깊이로 인해 모든 외적인 일에 철저히 훈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외적인 일에 있어서 자기 자신만큼 적합한 사람은 없다고 믿었습니다 둘째는 사랑에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외적인 행동을 해내는 법을 알만큼 현명한 신중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그녀가 맞이하는 귀한 손님의 높은 권위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인 삶을 영위하는 스승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영적인 필요와 육적인 필요를 그 사람이 원하는 최고의 수준으로 충족시켜 주신다고 말입니다.

성숙한 마르다와 미숙한 마리아

     이에 마르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르다는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마르다는 힘든 일로 압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함으로 이 말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사랑의 친절함' 또는 '애정 어린 농담'이라 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들어 보세요!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를 마리아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마르다는 이미 오랜 세월을 더 살았으니까요. 연륜은 가장 숭고한 지식을 갖게 해 줍니다. 연륜은 기쁨과 빛이 더 잘 드러나게 해 줍니다.
     마르다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께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내 동생은 자기가 예수님의 사랑의 위로아래 앉아 있는 한자기가 원하는 것은 문제없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생에게 지금 이 사실을 알려 주시고, 어서 일어나 예수님으로부터 떠나라고 해 주세요!" 또, 그것은 비록 마르다가 깊이 생각해 본 이후에 한 말이긴 하지만 부드러운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마리아는 갈망으로 가득 찬 나머지 자신이 왜 그런 갈망을 갖는지도 모른 채 갈망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사랑스러운 마르다가 바로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로 족하다. 나와 너 모두 영원한 빛에 한 번 붙잡힘을 받았는데, 바로 그것이 그 '한 가지' 이니라." 빛과 성령은 영원한 빛 안에서 '한 가지' 입니다.
영원의 원

     '영원의 원' 이 무엇인지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정신은 하나님에 대해 세 가지 방식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여러 가지 '추구하는 목적'과 불타는 사랑으로 모든 생물체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주님은 사랑하시는 이 도읍에 나의 안식처를 마련하셨고,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다" (공동번역 집회서 24 :11)라고 한 말의 의미입니다.
     둘째는 자유롭고 구속되지 않은, 방향이 없는 방식입니다 이런 길에서 우리는 우리의 의지가 형태도 없이 들려 모든 세상 위로 옮겨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마 16:17)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셋째는 진정으로 우리가 '길'이라고 하는 것이지만 그 뜻은 '집에 있음'을 의미하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당신의 존재 안에 계심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리스도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 (요 14:6)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놀라운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밖과 안에 동시에 있는 것, 잡고 잡히는 것, 봄과 동시에 보여지는 것, 안고 또 안기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입니까! 바로 이것이 목적이며 영은 그 안에서 우리의 영원성과 하나가 되어 안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여전히 배우고 있었다

     마르다는 매우 실제적인 인물이어서 일을 하면서도 방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행위와 일로 영원의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행복은 사실 다소 간접적인 행복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고귀한 성품과 지속적인 근면, 그리고 미덕과 같은 것이 매우 필요합니다 또 마리아는 성숙하기 위해서는 마르다를 본받을 필요도 있었습니다. 그녀가 주님의 발아래 앉았을 때는, 아직 진정한 마리아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서야 비로소 미덕의 행위를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마리아가 주님의 발 아래 앉았을 때, 그녀는 아직 배우고 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후에 그녀는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저희로 하여금 진정한 미덕을 실행함으로써 주님의 길을 신실하게 따라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마리아가 아니라 마르다를 영적인 모범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가? 그가 말하는 '한가지 필요한 것' 은 무엇인가?


영성 훈련 1
     하루 혹은 하루 저녁만이라도 '마르다'가되어 보라. 다른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저녁을 준비하거나 집안 일을 해 보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함으로써 얻는 영적 유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말씀묵상 1
     누가복음10:3842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Heister Eckha.t,12fo-1328)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름이 존(John)이었을 가능성이 많지만 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로 불렸다. 그는 독일의 에트푸르트라는 도시 근방에 있는 도미니크 수도원에 입적했고. 1277년에는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했으며. 1280년에는 콜론에서 철학 공부를 했다.
     1293-1294년에 그는 파리에 있는 신학 대학 학사로서 피터 롬바르트(Peter Lorlbard)의 Sentencer(명문집)에 대한논평을 썼다. 파리에 있는 동안 그의 스승 중 한사람이 '위대한 앨버트(Alber the Great)' 로 추정된다 '위대한 앨버트' 는 토마스 아귀나스의 스승이었으며 동료 신학자들이 토마스의 저술에 대해 탄핵하려는 집단적 노력에 대항해서 아퀴나스를 옹호했었다.
     1294년에 에크하르트는 에트푸르트의 도미니크 수도원 원장과 튀린기아 교구 주교 대리가 되었다. 1302년에 파리에서 신학 석사가 되었고. 1303년에는 파리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1303-1311년 사이에 그는 색소니 수도원 관구장으로 일했고. 그 후 다시 파리로 돌아와 1311-1313년까지 신학 분야에서 두 번째로 섭정을 맡았다.
     그 후 10년 동안 그는 스트라스부르크의 도미니크 학문관(Dominican house of stu-dies)에서 신학 교수를 역임했다 설교자이자 영적 지도자였던 그는 도미니크 수녀회와 시토 수녀원의 수녀들과 베긴 수녀들에게 명성이 높았다.
     그가 역임했던 중책으로 볼 때. 그는 동료 도미니크 수도사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것이 분명하지만. 1326년에 문제가 발생했다 그의 가르침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콜론의 종교 재판장들이 공식적인 도전장을 보낸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그 재판장들은 자신의 저술을 심판할 자격이 없다고 반박하고 탁발수사
(mendicant friar)로서의 면제를 주장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옹호했다(실제로 그 재판장들 대부분은 에크하르트의 저술을 읽지 않은 채 요약문만 읽었다)
     콜론에서 판결이 불리하게 되자 에크하르트는 교황에게 직접 항소하기 위해 아비뇽으로 갔으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 문제는 에크하르트의 설교문에서 인용된 몇 가지 발언으로 일어난 것인데. 결국 그의 발언 중 약간에 대해서만 심판이 내린 것으로 종결되었다. 그 나머지 말들은 설명만 제대로 된다면 허락이 된다고 판결되었다. 결국 지금에 와서는 그에 대한 고소 자체가 모두 정치적인 동기에 의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와 같은 논쟁 때문에 에크하르트의 저술은 처음에는 복사나 참고물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14-16세기에 들어와 그의 생각은 존 타울러 (John Tauler) 헨리 수소(Henry Suoo), 그리고 존 루스브로윅(lohn Ruusbroec)와 같은 인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의 "영적 인도" 부분에 존 루스브로윅의 글이 실려 있다.
     오늘날 에크하르트의 글은 그의 신학적 견해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비전으로 전 세계적
으로 널리 읽히고 있으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