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평화의 도구』
                                 (앨런 페이턴)

하나님의 도구

                 "주여,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삼아주소서."  -성 프랜시스의 기도

     우리는 많은 기도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병자를 위해서,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절박하게 필요한 돈을 위해서, 시험에 붙기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그리고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한다. 또 우리는 죄 용서를 위해서, 우리를 넘어뜨리는 특정한 죄에 대한 승리를 위해서, 두려운 상환에서 도움을 얻기 위해 기도를 한다 특히 우리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 더 열심히 기도한다.
     나 자신도 그렇게 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성 아시시에게 갚을 수 없는 빛을 지고 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그의 기도를 할 때나 그의 기도를 기억할 때 나에게 있는 우울함과 자기 연민이 사라지고 믿음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자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 장엄한 인식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 인식은 너무나 장엄해서 나 자신에 대해 연민을 품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세상은 더는 누군가의 적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일하고 봉사하는 장소가 된다. 삶은 더는 비열하고 야만적이고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위해 이 세상을 비열하지 않은 곳으로 만드는 시간이 된다.
     우리는 즉시 우리 믿음의 현실로 돌아온다. 즉 우리가 소극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도구라는 현실이다. 인간과 하나님의 올바른 관계가 즉시 회복된다
     아시시의 프랜시스는 분명 자기 자신을 위해, 또는 자신의 성직자 직분을 위해서, 아니면 포르지우쿨라(porfiuncula)의 예배당과 오두막집들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모든 것을 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의 삶 전체, 그의 모든 재능과 육체적인 강건함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도구가 되도록 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도 나 자신에게 말한다. 기독교인이 증오, 상처, 절망, 그리고 슬픔에 대응하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자신의 무기력함을 벗어 던지고 자신이 사랑을 소유한 자, 용서하는 자, 희망의 전달 자, 그리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위로자가 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렇게 되기 원한다면 그렇게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이 글을 쓰면서 감옥에서 나와 세상으로 돌아가는 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는 평생의 어느 때보다 수감시절 동안 종교에 관심을 가졌다 교도소를 담당한 신부는 감옥을 떠나는 그에게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제 용서받았다고 확신 있게 말한다 그러나 그가 세상으로 돌아와 알게되는 것은 이 세상은 용서해 주지 않았고, 그의 과거를 잊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희망은 절망으로 변하고 믿음은 의심으로 변한다. 하나님도 그를 용서해 주지 않으신 것처럼 보인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막대한 책임이 주어진다. 그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행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가 되고, 적극적으로 동정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이 세상으로 돌아가 비극을 맞게 된 것은 '우리가 거기에 있지 않았기 때문' 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신비한 방법으로 일하시지만, 그 시간 대부분을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 그리고 그렇게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은 우리가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 : 제자들에게 오사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 26:40)

예수님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           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 :13)

닥 하마슬드 : 네 책임은 실로 무시무시할 정도로 크다. 네가 실패하면, 네가 하나님을 배반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류를 저버리실 것이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책임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안보위원회 회의 전날 저녁에 자기 자신에게 한 말

                   주여,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주인이 되게 하소서
             그러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 알렉산더 패터슨(영국의 교도소와 비행 청소년 선도 기관에서                                      개혁하는 데 평생을 바치고 큰 능력을 발휘한 사람)

     주님이여, 내 눈을 열어 다른 사람의 필요를 보게 하시고, 내 귀를 열어 그들의 절규를 듣게 하시며, 내 가슴을 열어 그들이 안식에 주리지 않도록 해 주소서.
     강한 자의 분노 때문에 약한 자를 방어해 주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시고, 부자의 분노 때문에 가난한자를 방어해 주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소서.
     사랑과 소망과 믿음이 필요한 곳을 저에게 알려 주시고, 그들을 그 자리로 데려가는 일에 저를 써 주소서 그리고 제 눈과 귀를 열어 오늘 당신을 위해 평화의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소서,

      하나님의 도구에 쓰임받지 못할 만큼 약하거나 악하거나 무가치한 사람은 없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출 3:11~12, 4:10~12)
     기독교인이라면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사실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에 대해 겸손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을 사양해서는 안 된다. 요한도 요단 강가에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마 3 :11) 그러나 예수가 그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오셨고,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하며 말리려 했다. 이에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요한은 감히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할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요 3 :11-15 참조).
     복음은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말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중 어떤 말씀은 놀랍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니 ! 모든 세상에 비치는 빛이라니 !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털 숫자까지 다 세셨다니 ! 이 말들은 이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는 무척 흥미로웠다. 상황이 아무리 암울하다 해도 그들은 세상의 빛이란 신분을 지닌 것이었다.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새로운 가치의 의식이 주어졌다. 특히 이는 여성들의 경우 더 그랬다. 예수님에 의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최초의 제자들에는 그 기쁨은 묘사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이와 똑같은 존재의 의미가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주어졌다. 그 누구보다 아시시의 프랜시스는 더 큰 기쁨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할 의미가 충분히 있었다.

      길을 잃은 이들에게 제가 길을 찾아주게 해 주소서.
      목적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목적을 주게 하소서.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영원히 계속되는
      치유와 구원 속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음을 가르치게 해 주소서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첫째는 우리가 쓰임 받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약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은 아무리 약한 자라도 쓰임을 받고자 원하는 사람을 쓰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필요하다면 그들에게도 이러한 진리를 확신시켜 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프랜시스의 일화를 소개한다.

     성 프랜시스가 숲 속에서 기도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마세오 형제를 만났다. 마세오는 프랜시스가 얼마나 겸손한지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 조롱하는 태도로 그에게 말했다. "왜 당신 뒤에, 왜 당신 뒤에, 왜 당신 뒤에, 왜 당신 뒤에?" 성 프랜시스가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그러자 마세오 형제가 대답했다. "왜 모든 세상이 당신을 뒤따르며, 모든 사람이 당신을 보고 싶어하고, 당신의 말을 듣고 싶어하고, 당신에게 복종하고 싶어하지요? 당신은 잘생기지도 않았고, 귀족 태생도 아니고,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닌데, 어째서 전 세계가 당신을 만나려고 달려오는 것입니까?"
     이 말을 듣고, 성 프랜시스는 영혼에 기쁨이 충만하여 얼굴을 하늘을 향해 들고, 한참동안 마음을 하나님께 둔 채 그대로 있었다. 그런 후 자신에게로 돌아와서 그는 무릎을 꿇고 찬양을 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는 뜨거운 영으로 마세오 신부를 보며 말했다. "왜 나에게 오는지, 왜 나를 보고 싶어하는지, 왜 내 말을 듣고 복종하고 싶어하는지 알고 싶습니까? 왜 세상이 나에게 달려오는지 알고 싶습니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은 어느 곳에서나 악과 선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이, 심지어 거룩한 인간의 눈도 모든 죄인 중에서 가장 죄인인 나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남보다 죄가 하나라도 더 있으며 더 부족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하려고 하시는 그 놀라운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인 저를 택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세상의 고귀함과 장엄함, 힘과 아름다움, 그리고 지혜를 혼동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모든 미덕과 선함이 피조물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영화를 얻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광을 돌리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하나님께만 모든 명예와 영광이 영원히 있을지니라!"
     그러자 마세오 형제는 이 겸손하고 열정적인 대답에 속으로 두려움을 느꼈고, 성 프랜시스가 겸손에 뿌리내린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_The Little Flowers of St. Francis of Assisi
                                    (아시 시 의 성 프랜시스의 작은 꽃들)

     주여, 제가 당신에게 기꺼이 쓰임받기 원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나의 무가치함을 아는 나의 지식이 결코 당신에게 쓰임 받음을 거부하지 않게 하소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제가 언제나 기억하게 하시어 내가 영원히 당신에게 쓰임 받게 하소서.
     그리고 나의 눈과 마음을 열어 오늘 당신을 위한 평화의 일을 할 수 있게 하소서.




묵상을 위한 질문
     '순종'과 '적극적인 사회적 저항은 서로 반대 되는 개념처럼 보인다.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가 어울릴 수 있을까?



영성 훈련
     인종 차별이나 성 차별 등 사회적인 부당함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을 펼치고 있는사역 중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해 보라. 그런 사역에 참여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라.



말씀묵상
     마태복음5:13-16







................................................................. 앨런 페이턴(Alan raton,1903-1988)

     앨런 스튜어트 페이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네이탈 대학(University of Natal)에서 공부했다. 1968년 불법으로 선언되기 전까지 남아공화국 자유당의 대통령을 역임했다. 인종 차별의 공공연한 반대자였던 페이턴은 그 해에 Instrument of Thy Peace(당신의 평화의 도구)라는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은 아시시의 성 프랜시스의 유명한 시에 기초한 짧은 명상 21편을 모은 것이다 성 프랜시스의 시와 성경에 대한 성찰은 페이턴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앨런 페이턴은 그의 소설 Cry,the Beloved Country(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이여)로 더 많이 알려졌다. 이 소설 역시 인종 차별이라는 부당한 사회 구조에 대한 저항의 내용을 담고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스티븐 쿠말로라는 흑인 목사로. 그는 누이 거트루트와 아들 압
살롬을 찾아 가난에 찌든 고향 네이탈의 느돗세니를 떠나 요하네스버그로 간다. 여기서 그는 거트루드가 창녀로 살고 있고 아들은 백인 농부 제임스 자비스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쿠말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들은 사형 선고를 받는다. 쿠말로는 거트루트의 아들과 압살롬의 임신한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 소설은 쿠말로와 자비스의 화해로 끝난다. 그와 화해하면서 자비스는 가난한 흑인들을 도와줌으로써 아들의 죽음을 보상하기로 결심 한다.
     이 책은 1948년에 출판되어 지금도 세계적으로 많이 읽히며. 인종간의 이해를 촉구하는 감동적인 글로 평가받고 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