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를 본받아 ]
                                  토마스 아 켐피스



고독과 침묵

  일을 놓고 시간을 내서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보라. 그 시간중 일부분이라도 과거에 하나님이 당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되새겨 보는 데 보내기 바란다. 그 외에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상적인 삶에 대한호기심은 잊어버리자. 살아가는 기술을 알려 주는 책보다는 영적인 책을 읽는 데 시간을 더 들이라. 일상적인 대화와 한가로이 추구하던 일상
사로부터 벗어나라. 새로운 사업을 계약하는 일도, 이전에 하던 사업 이야기들도 멈추라.
  이렇게 해 보면 묵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아주 많아질 것이다. 대부분의 성인들이 이렇게 했다. 그리고 가능한 여럿이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피하고 하나님과 둘만의 은밀한 시간을 보냈다.

군중을 뒤로하고 떠나라
  고대 철학자이자 극작가였던 세네카(Seneca)는 신이 난 무리와 함께 식자들과 외출을 할 때마다 완전히 목이 쉬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편지 중 하나(7번째 편지)에 그렇게 쓰여 있다. 우리도 때때로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몇 시간 또는 며칠씩 계속 목청껏 떠들어 대면서 그런 경험을 한다 이것은 거의 병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말하기 좋아하는 병의 치료약은 무엇일까? 대화는 줄이기보다는 완전히 끊어버리기가 더 쉽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경호원과 함께 시장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집에서 혼자 있는 게 더 쉽다. 분명한 사실은 무엇인가? 내면성과 영성을 원하는 사람은군중을 뒤로하고 떠나 예수님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조용한 시간을 충분히 보내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없다. 입을 다무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사람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없다. 사병으로서 살아남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장군으로서 성공할 수 없다. 말씀에 순종해 보지 않은 사람은 말씀을 경외할 수가 없다

안전함을 느끼지 못함
  안전함을 느끼고 싶다면 양심이 있어야 한다. 성인들이 한 일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미덕과 자비로움의 빛이 흘러나왔지만 그들의 혈관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흐르고 있었다. 그럴때도 그들은 영적인 불안과 세속적 스트레스로 인한 발작에 쉽싸여 있었다.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안전함을 느낀다해도 곧 자만심과 추측의 늪을 지나 낙심의 웅덩이에 빠져 버린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외면으로는 수도사처럼 겸손하고 은둔자처럼 거룩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면으로는 들끓는 불안과 불안전한 느낌 속에서 살아간다. 최소한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유혹도 도움이 된다
  명성이 높은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자주 깊은 위험에 빠졌으나 그 사실도 모른 채 지나갔다. 그들은 선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감을 자연적인 한계 너머로 확장시켰다. 여기서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따금은 유혹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인내심의 극한까지 유혹을 받아보면 내적인 절망을 폭발하고 외적인 위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일시적인 기쁨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 세상에 몰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우리 모두 그렇게 하지만 선한 양심이 있는 사람은 모든 집착에 뻗은 촉각을 잘라 내고 신성하고 유익한 것에 대해 묵상한다.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평온함의 바다에 자신의 배를 띄우는 사람이다.

슬픔도 도움이 된다
  하늘이 주는 위로를 향해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확실한 계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계단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가슴의 진정한 슬픔이다. 그리고 이 슬픔을 자신의 작은 침실 안 말고는 어디서 발견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침실 안에서 우리는 세상의 소음을 차단할 수 있다. 시편 작가는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 (시 4:4) 하고 말한다. 길거리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을 침실에서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기도한 적이 많은 침실은 거하기에 참으로 즐거운 장소다. 기도한 적이 별로 없는 침실은 금단의 장소이다. 하나님을 믿어 마음이 벅차올랐던 시절에는 침실에서 고독을 찾고 고요함을 방해하는 요소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그 방은 오랫동안 함께 지내 온 늙은 개나 오래 신은 구두처럼 편안하고 우리 자신을 반겨 주는 기분이 드는 곳이다.

침묵과 고요함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고요함과 침묵 속에서 성숙하며, 성경 말씀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게 되고, 매일 밤 주님을 향한 헌신의 눈물을 흘린다. 조용히 있는 법을 터득해 갈 때 이미 그 사람은 창조자에게 그만큼 더 가까이 가게 되고 세상의 북새통으로부터는 멀어진다. 친구나 친척들로부터 멀어질 때 하나님과 천사들은 그 사람에게 찾아오신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침실에 가만히 누워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방법이다. 또 하나는 자신의 영적인 삶은 뒤로하고 거리를 배회하며 신나는 일과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이것은 나쁜 방법이다. 쇼핑을 자주 다니지 않는 신앙인은 칭송받을 만하다. 쇼핑을 가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눈과 마주치는 일을 피하거나, 그의 태도를 통해 사람들이 그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는 신앙인 역시 칭찬받을 만하다.

질병과 슬픔
  밖에 나가서 볼 필요가 없는 것을 보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은 말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7). 우리의 욕망은 우리에게 무도회 행진을 약속해 주지만 결국은 무력 진압의 행진으로 인도할 뿐이다. 오전에 내딛은 경쾌한 발걸음이 오후에는 질질 끌려다니는 꼬리로 바뀌어 버린다. 요란 법석 속에 밤을 새우고 나면 아침이 되었을 때 혼돈만이 남는다. 다시 말해 그것은 질병과 슬픔이다. 더 말할 필요가 있는가? 모든 육체적 기쁨은 애무로 시작되지만 그 끝은 공처럼 돌돌 말려 죽게 된다. 다시 그 질문을 하겠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수도원 안에서는 볼 수 없지만 수도원 밖에서는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늘과 땅과모든 자연을 보라. 이것들로부터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

평화와 고요
  외적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것 중 태양보다 더 오래 남을 것이 있는가? 혹시 당신이 외적 세계의 어딘가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런 만족에 우리는 가까이 갈수도 없다. 만일 당신이 세상의 모든 것을 모아 고요한 하나의 삶 속에 집어 넣을 수 있다면, 그 삶의 천막이 아무리 크다해도 삶은 여전히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시편 작가는 말한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 122:1). 자신의 죄와 방종에 대해 기도하라. 허황된 사람들이 저지른 허황된 일을 용서하라
  하나님이 당신에게 준 말씀을 바라라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마 6:6) 사랑하는 친구 예수님을 불러 같이 있어 달라고 요청하라. 골방에서 그와 함께 거하라.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는 그러한 평화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지혜로 말해 보면 이렇다. 당신이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그 무성한 소문에 대해서도 듣지 않게 된다. 차라리 집에 있으면서 복된 무지를 누리는 편이 낫다. 밖에서는 최신 뉴스를 들을 수 있는 기쁨이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 그 결과로 우리는 해결해야하는 혼란스러운 문제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묵상을 위한 질문 :
  당신의 삶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과도한 활동들은 무엇인가? 전화가 많이 걸려 와 부담을 주는가? 편지 쓸 일이 지나치게 많은가? 사람들과의 약속들 사이에 빈 시간이 많은가? 이와 같은 '외적인 삶' 에 심하게 묶이는 것에 대해 토마스 아 켐피스가 걱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성 훈련 :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분주한 일상에서 밀려오는 두려움이나 피곤함을 극복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두세 가지 정도 정하라. 예를 들어, 하루쯤 뉴스를 듣지 않거나 읽지 않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고 억지로 수도사의 삶을 흉내낼 필요는 없다. 다만 토마스 아 켐피스가 말하는 진정한 지혜를 마음에 깊이 새기기 바란다.

말씀묵상 :
  전도서 1:1-14









.............................................................. 토마스 아켐피스(Thomas a Kempis, 1379-1471)
  토마스 아켐피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교육하고 돌보는 일에 헌신하는 네덜란드의 종교 공
동체("Brethren of the Common Life" )의 회원이었다. 그는 종교 및 세속의 글을 필사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한 지부인 자신의 신앙 공동체에 속하고자 하  는 젊은이들을 위한 영적 지도자로 평생을 보냈다.
  1441년에 처음 출간된 그의 저서 『그리스도를 본받아(The Imitation of Christ)(크리스
찬 다이제스트 외 역간)는 헌신에 대한 고전적 작품으로서 수세기에 걸쳐 존 번연(John
Bunyan)의 『천로 역정(The Pilgrim's Progress)』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외 역간)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미쳤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14-16세기까지 로마 천주교를 휩쓸었던 '오늘의 헌신(devotio modema)' 이라는 영적 운동을 나타내는 완벽한 표현으로 불려 왔다. 이 책은 묵상과 내적 삶을 강조하며 바쁘게 매달려 살아가는 외적 삶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