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의 선물 ]
                            앤 모로 린드버그


말이 없는 해변, 별이 반짝이는 잔치

  아무리 말로 주장해도 관계를 질식시킬 수는 없다 긴밀한 관계는 가벼운 접촉으로 길이 든다. 우리는 같은 리듬에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벼운 접촉 이상은 필요하지 않은 무용수들처럼 하루하루 살아왔다.
  좋은 관계는 무용과 같은 패턴을 가진다 그 근거가 되는 규율도 몇 가지가 같다. 예를 들어 보자. 파트너들은 서로를 꽉 잡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모두 같은 패턴으로 자신 있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컨트리 댄스처럼 복잡하긴 하지만 경쾌하고 빠르고 자유로운 움직임이다. 많은 접촉은 패턴을 구속하고 동작을 경직시키며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전개하는 아름다움을 통제하게 된다.
  이 패턴에는 소유로 인한 구속이나 매달리는 팔이나 무거운 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다만 스치면서 건들릴 듯 말듯하는 접촉만 있을 뿐이다. 서로팔짱을 끼기도 했다가 얼굴을 마주보기도 했다가 등을 대기도 하지만 그중 무엇이든 상관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파트너가 같은 리듬을 타고 함께 패턴을 만들며 그 패턴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서로 춤을 계속 진행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한 패턴이 주는 기쁨은 창조의 기쁨이나 참여의 기쁨뿐 아니라 그 순간의 삶에서 오는 기쁨이다. 가벼운 접촉과 순간의 삶이 서로 엮인다.

가슴에 사랑이 넘쳐흐를 때
  하지만 이러한 무용 테크닉을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는가? 그 테크닉은 왜 그리도 어려운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머뭇거리거나 넘어지는가? 나는 바로 앞 순간에 향수를 느끼며 매달리거나, 다음 순간을 향해 탐욕스럽게 매달리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어떻게 하면 벗어 버릴 수 있을까? 그것은사랑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가슴에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그 안에 두려움이나 의심, 망설임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리고 두려움이 없을 때 무용을 할 수 있다. 각 파트너가 온전히 사랑함으로 자신의 사랑에 대한 대가로 상대방이 자기를 사랑하는지 물어보는 것을 잊을 정도가 된다면, 자신이 사랑을 하며 그 사랑의 음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면, 바로 그때 그 두 사람은 같은 리듬에 맞추어 조화롭게 무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르고나테우스의 관계, 즉 두 사람의 무용수가 완벽하게 박자를 맞추어 만드는 비밀스러운 패턴은 이것이 전부인가? 그 두 사람은 좀더 폭넓은 리듬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눔과 고독사이, 친밀한 것과 추상적인 것 사이, 특정함과 우주사이, 가까운 거리와 먼 거리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시계추의 자연적인 진자운동에 박자를 맞추어야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관계가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이 되게 하는 것은 이러한 두 양극 사이를 움직 이는 시 계추의 진자 운동이 아닐까? 예이츠(Yeats)는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경험은 "서로사고를 깊이 나눈 후 접촉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은 이 두 가지 모두 관계에 필요하다.

혜어짐과 연합
  첫 번째 접촉, 즉 사적이고 특정한 일에서의 친밀한 접촉(예를 들어, 부엌에서 집안일을 하거나 모닥불 옆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 그리고 그 다음 단계인 비인간적이고 추상적인 거대한 물결에서 친밀함의 상실(예를 들어 고독한 해변, 하늘에 있는 별들의 잔치) 두 파트너는 끌어당기면 서도 자유롭게 하며, 분리시키면서 연합하게 하는 거대한 우주의 바다에서 표류한다. 좀 더 성숙한 관계, 고독한 두 사람의 만남은 이런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르고나테우스는 친밀함, 특정함 그리고 기능성으로부터 추상적이고 우주적인 것으로 진자 운동을 한 후 다시 개인적인 것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양극사이에서 편안하게 운동하는 시계추 이미지에는 전체 관계에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해결의 열쇠가 있지 않은가? 관계의 날개 달린 삶, 그 영원한 조수, 그 불가피한 간헐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힌트가 여기 있지 않을까?

인생의 밀물과 썰물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매순간 똑같은 방식으로 시종일관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바로 이런 것을 요구한다. 인생, 사랑, 관계에 밀물과 썰물이 있다는사실에 대해 우리의 믿음은 너무나 적다 우리는 밀물에서는 그 흐름에 기뻐 뛰고, 설물에서는 두려움으로 저항한다. 그 파도가 다시는 밀려들어오지 않을까두려운 것이다. 우리는 영원성과 지속성을 주장한다 사랑에서도 그렇듯이 삶에서도 계속되는 것은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바로 성장과 움직임이다. 다시 말하면 무용수들이 서로 자유로운 움직임 가운데 스쳐가는 동안 스칠 듯 말 듯한 접촉만 하지만 같은 패턴을 만들어 가는 파트너라는 의미에서 자유로움이 지속된다.
  삶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것은 소유하는 것이나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 심지어 희망하는 것에도 있지 않다. 관계에서 안전이란 이전의 관계에 대해 향수를 가지고 돌아보는 것에 있지도 않다. 또 두려움이나 기대감을 가지고 앞으로 그 관계가 어떻게 될지를 예측해 보는 것에도 있지 않다. 관계에서 안전성은 현재의 관계 속에서 살며 현재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 관계 역시 섬과 같은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관계를 있는 그대로, 한계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 마치 바다에 둘러싸여 물결이 끊임없이 찾아왔다가 또 떠나가는 섬처럼.

가장 중요한것
  우리는 인생의 밀물과 썰물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숨이 막히도록 조용한 조수가 숙명적인 우리 인간이 미치는 곳 아래의 또 다른 생명을 드러내고 있는 이 해변에서는 그 방법을 이해하기가 쉽다. 이런 불안한 순간 속에서는 바다 밑에 있는 비밀스런 왕국을 갑자기 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낮은 갯벌에서는 따스한 물결 속을 걸어 다니면서 큰 고둥이 다리 위로 뛰어오르는 것이나 진흙 속에 조각된 대리석 메달, 물거품 속에서 반짝이는 조개가 나비의 날개처럼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고요한 시간은 너무나 아름답다. 방금 전 밀물로 인해 뒤엉킨 검은 해초까지 다시 닿으려 물살이 소용돌이치며 해변 위로 밀려드는 바다의 귀향만큼이나 아름답다.
  아마도 나에게는 해변에서의 삶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이것이리라. 그 조수의 사이클 하나하나가 확실하며, 파도의 사이클 하나하나가 확실하며, 관계의 사이클 하나하나가 확실하다. 그러면 나의 조개껍질은 어떡하나? 그것은 내 주머니 속에 모두 집어넣어 버리면 된다. 그 조개껍질은 바다가 뒤로 밀려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이클을 영원히 따른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묵상을 위한 질문 :
  당신이 일상의 책임과 의무들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런 시간에 어떤 것들이 하나님을 느끼고 바라보게 해줄 수 있을까?


영성 훈련 :
  일주일에 일정 시간을 고독한 시간으로 할애하라. 예를들어 점심시간 30분이나토요일 오후 몇 시간을 고독의 시간으로 가져 보라. 그 시간 동안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것을 기록하라

말씀 묵상 :
   잠언 31.10-31





............................................................. 앤 모로 린드버그(Anne Morrow Lindbergh,1907-)
  앤 모로 린드버그와 남편 찰스 린드버그의 아버지는 미 상원 의원이었다.
  찰스 린드버그는 1927년 5월 20-21일에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을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린드버그 부부는 1928년에 결혼식을 올린 후 세계 일주 비행을 하며 항공 역사를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이 여행 중 앤 모로는 항법사와무전 기사 역할을 했다. 한번은 미국에서 라브라다. 그린랜드, 아이슬랜드. 아프리카, 남미를 여행하며 모두 21개국 약4.680킬로미터를 비행하기도 했다. 앤은 이 항공 여행에 대한 글을 써서 출판해 인기를 얻었다.
  늘 세계의 이목을 끈 린드버그 부부는 언론의 주 관심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1930년 첫아들이 아직 갓난아기일 때 유괴당하여 사체로 발견되었을 때는 언론의 동정을 받았다. 1932년에 그들은 둘째 아들을 낳았다. 앤 린드버그의 후기 작품에는 그녀의 기독교 신앙이
좀 더 분명히 나타나 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