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장소_』
                               마틴 루터

자기 목숨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마 6:25-7:11에 대한 설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
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6:25).

  맘몬(소유의 신)을 숭배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들어 보십시오. 그것은 우리의 목숨과 몸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며,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 걱정하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목숨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여기서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것처럼 어떻게 부자가 되고 어떻게 재물을 모으며 어떻게 재산을 증식시킬 것인지에 몰두합니다.
  그러나 맘몬을 숭배하는 죄는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입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생활을 하고 이를 위해 일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사는 한 그런 필요들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죄입니까? 그런 것들로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염려가 우리 마음에서 하나의 확신으로 자리잡게 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음식이나 의복이 아니라 마음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염려는 사물을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하게 하고 우리가 그 사물에 집착하게 합니다  "소유가 사람을 담대하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염려'란 마음이 사물에 집착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염려하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갈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이 마치 어떤 것에 대해서든 염려하는 것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회사와 각 부서들은 어떤 것이든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대해 염려합니다. 바울도 기독교 안에서의 영적 직무에 대해 말합니다.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롬 12:8) 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런 면에서 한 가정을 다스리는 가장은 자녀들이 올바르게 자라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만일 가장이 이 일을 태만히 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런 종류의 염려가 아닙니다. 이것은 탐욕과 명백히 구분해야 할 공적인 관심입니다. 자신을 위한 염려가아니라 이웃을 위한 관심을 말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고전 13:5), 남을 섬기기 위해 자기의 이익을 무시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사랑의 관심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적이며 신적인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이나 물질 숭배를 위한 염려가 아닙니다. 믿음과 사랑에 대항하고 심지어 공적인 관심조차 가지지 못하게 하는 염려가 아닙니다. 돈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사람은 이웃이나 이웃과 관련된 일에 대해 배려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런 탐욕스러운 염려와 물질 숭배를, 사람들을 하나님의 원수가 되게 하는 우상숭배로 여기시고 금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 가지 예화와 비유를 들어 우리에게 설명하십니다

우리의 학교 친구, 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f:26-27)

  예수님은공중의 새를 우리의 학교 친구이자교사로 삼으십니다. 복음서에 보면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참새가 가장 현명한 인간에게 신학자와 설교자가 됩니다. 이 사실을 매일 우리가 보고 들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는 아주 불명예스럽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이렇게 우리를 책망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이 비천한 인간들아! 너희는 집과 돈과 재물을 가지고 있다. 해마다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풍성한 곡식을 거둘 뿐아니라 온갖 종류의 곡식을 얻는다. 그러나 평안을 얻지 못하고 언제나 궁핍에 대해 염려한다. 만약 너희가 스스로 공급하며 너희 눈앞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없다면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일상을 염려로 물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전히 매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다. "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공중에 있는 작은 새만큼 많은 교사와 설교자가 있습니다. 새들을 통한 생생한 예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우리는 새가 하늘을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고우리의 불명예를 울려 대는 것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눈을 들 수도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돌같이 굳어진 우리는 매일 수없이 많은 설교와 찬양을 들음에도 불구하고 무관심합니다.
  사랑스러운 작은 새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보십시오. 자신의 목숨에 대해 전혀 염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서 오는 양식만 기다립니다. 사람들은 종종 그들의 노래를 들으려고 새장에 가둡니다. 그러면 새들은 양식을 풍성히 얻게 되므로 이렇게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 나도 풍성해졌다. 양식을 어디서 얻어야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구나. 이제 나는 부자 주인을 만났으니 내 곡간이 가득 차겠군.' 그러나 새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들은 공중에 있을 때 더 행복해하고 더 즐겁게 재잘거립니다. 이른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주님께 드리는 아침 기도와 찬송의 노랫소리는 더 멋지고 즐거워 보입니다. 그들 중에 누구도 창고에 있는 곡식에 대해 모릅니다. 단지 사랑스럽게 노래할뿐입니다. 끊임없이 찬송을 부릅니다. 그리고는 모든 염려를 우리 주 하나님께 맡깁니다. 아직 양육이 필요한 어릴 때에도 새들은 이렇게 합니다.
  작은 새의 노랫소리를 듣는 것은 언제나 훌륭한 설교를 듣는 것과 같습니다. 그 새는 복음서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단순한 말이 아니라 살아 있는 행동과 모범으로 교훈을 줍니다. 밤새 노래하고 목청이 터져라 노래합니다. 새는 끊임없이 보호받아야 하기에 별로 편하지도 않고 살기도 힘든 새장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나무에 앉아 있는 것을 훨씬더 행복해합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주님의 부엌에 있는 것이 더 좋아. 그분은 천지를 만드셨고 요리사이시며 주인이시지 매일 그분의 손으로 수없이 많은 작은새들을 먹이고 양육하시지. 왜냐하면 그분은 단지 곡식 한 자루만 갖고 계신 것이 아니라 온 천하를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이야."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먹을 것에 대해 전혀 염려하지 않는 들의 작은 새들을 하늘 아버지께서 친히 먹이시는 것을 보지 못하느냐? 그런데 너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너희도 먹이신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느냐? 그분이 너희에 대해 염려하시지 않겠느냐? 그분은 너희를 자녀 삼으셨고, 자녀들에게 말씀과 모든 피조물을 주셨는데 단지 너희의 종인 작은 새들보다 더 귀한 너희를 돌보시지 않겠느냐?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새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시고 매일 그들을 먹이신다. 마치 하나님이 오직 새들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 관심을 쏟으신다. 그들이 날아다니며 세상에서 아무 염려 없이 노래 부르는 것을 즐거워하신다. 새들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노래하고 지저귀지요. 하지만 내가 먹어야 할 곡식 한 알에 대해서도 몰라요. 아직 빵도 구워지지 않았고, 곡식은 파종도 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내게는 부자 주인이 계신답니다. 그분은 내가 노래하고 잠잘 때 돌보아 주시죠. 모든 걱정보다 더 많은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죠. 그래서 모든 사람의 걱정은 해결될 것입니다 "
  새들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과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아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더욱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와 같이 새들의 비유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훌륭한 예화가 됩니다. 합리적이며 성경까지 가진 우리가 새를 모방할 만한 지혜조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작은 새들이 매일 노래 부르는 것을 듣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우리의 부끄러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서 벗어난 후 인간은 비뚤어지고 어리석게 변했습니다. 피조물 중에 인간보다 현명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말하거나 글을 쓸 수 없는 한 마리의 작은 새도 성경에 따르면 인간의 신학자요 주인이 됩니다. 인간이 성경을 갖고 있고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어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학자, 백합화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28-30)

  여기에 또 다른 예와 비유가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가축들이 밟고 먹이로 삼는 들의 작은 꽃들이 우리의 신학자와 교사가 되어 우리를 더욱 당황스럽게 합니다. 꽃들이 사랑스런 색으로 자신을 꾸미며 자라는 것을
한번 보십시오. 어떤 꽃도 어떻게 자라야 하는지, 어떤 색으로 꾸며야 하는지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꽃들이 자기 몫에 대해 염려하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색으로 입히십니다.
  예수님은 솔로몬의 모든 영화도 이 꽃 하나만 못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많은 시녀들을 거느리고 금과 진주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왕비도 꽃보다 못합니다. 솔로몬보다 더 부자이거나 영광스럽거나 아름답게 치장한 왕이 없습니다.  솔로몬이 지닌 모든 우아한 장식과 위엄도 들에 있는 장미꽃이나 바이올렛과 같은 꽃과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 주 하나님은 당신이 아름답게 꾸미려고 택한 사람을 꾸미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만들거나 견줄 수 없는 참된 장식, 참된 색깔입니다. 설사 순금과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며졌다 해도 꽃들은 여전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작은 새들을 꾸며 주시는 하늘의 주인께서 만드신 장식을 이 땅의 재단사들과 자수 놓는 사람들이 만든 것보다 훨씬 더 좋아하지요."
  하나님이 많은 꽃들을 온갖 색깔로 입히고 꾸미셔서 그 꽃들이 이 세상 모든 장식보다 더 우아하게 되었는데, 왜 그 하나님이 우리도 입히신다는 믿음을 갖지 못합니까?  들의 꽃들과 풀들이 우리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하루 이틀 피어서 사람들이 보게 하고 그런 다음 시들어 말라 버리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까? 그것들은 예수님 말씀처럼 '아궁이에 던져져' 불태워지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 주 하나님은 이런 작고 일시적인 것들도 매우 가치 있게 여기셔서 당신의 선물들을 주시고 이 땅의 어떤 왕이나 인간보다 더 아름답게 꾸며 주십니다. 꽃들은 금방 시들어 사라지기 때문에 이런 선물들은 낭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가장 귀한 피조물입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고 우리에게 만물을 주셨습니다. 이생뿐 아니라 영생을 우리에게 주기 원하십니다. 이제 들의 꽃들을 많은 색깔로 입히시고 공중의 새들을 사랑스런 깃털로 입히시는 하나님이 우리도 입히신다는 것을 믿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불신앙이 얼마나 가증한 일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꽃과 새들이 우리에게 설교하며 사랑스럽게 우리에게 웃음을 지어 줍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게 해 줍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설교하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항상 탐욕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영원히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럽게도 각각의 작은 꽃들이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앞에서 우리의 불신앙을 정죄하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우리는 하나님이 땅에서 살고 자라는 모든 피조물을 어떻게 기르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며 아름답게 꾸며 주시는지 매일 목격합니다. 이제 이런 예화들을 통해 불안과 불신앙을 버리고 우리는 이방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불안과 욕심은 하나님을 모르거나 하나님에 대해 상관없는 이방인에게나 어울리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처럼 이것은 참으로 우상 숭배입니다(엡 5:5, 골 3:5)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너희 아버지가 너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음식과 옷이 필요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신다. 이것을 감히 의심하지 말아라. 만약 아버지께서 이런 것을 모르신다면 너희가 염려하고 스스로 어떻게 먹을 것을 찾을지 걱정할 이유가 있지만,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아시기에 너희를 버리지 않으신다. 그분은 신실하시고 너희를 특별히 돌보신다. 공중의 새들을 돌보시는 것처럼 돌보신다. 그러므로 너희의 염려와 근심을 잊어라. 염려와 근심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일을 이루는 것은 염려와 근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관심에 있다. "
  우리는 염려와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 없는 사람들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자녀들에 대해 염려하듯이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염려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서 들에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요람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자고 있는 밤 동안에 풀잎 하나 자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몫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주시는 분임을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불안과 스트레스 때문에 위축된 적이 있는가? 그럴 때 어떻게 하는가? 마틴 루터의 설교를 통해 예수님이 이 문제에 대해 당신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영성 훈련 :
  일주일동안 새들의 소리를 듣고 관찰해보라. 새들의 단순한 삶을 통해 당신이 배울 점과 삶에 적용할 점이 무엇인지 기록해 보라

말씀묵상 :
   마태복음 6:25-34 ; 7:7-11


........................................................................ 마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
  마틴 루터는 개신교 종교 개혁자 중에서 세상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신학. 교리. 설교, 영성 형성 등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썼다. 그뿐 아니라 깊은 영성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루터는 독일의 광산 지역인 섹손 지방의 아이스레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그를 잘
교육시켜 그가 법률가로서 출세하고 지역의 유지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루터는 어거스틴 수도회 수도사가 되어(1505년) 20년을 보냈다. 루터의 광범위하고 논쟁적인 저술 때문에 교회와 세속 당국은 치열하게 투쟁하게 되었다
  루터는 사역을 하면서 원리들에 대해 강조했다. 특히 전체 개신교의 근간이 된 성경의 우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언어와 열정에 있어서 극단적이었다 그의 많은 글과 견해들은 신학 논쟁의 극심한 소용돌이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유명한 논문 "인간 자유 의지의 노예 상태에 관하여"는 에라스무스의 견해에 방어하기 위해 쓴 것 그에게서 나온 생각 중에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영원한 죄인이며 영원한 의인(SimuIJustus et Peccator)' 이라는 개념이다. 즉 기독교인은 의롭다고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많은 사람들이 죄를 향해 갈 수밖에 없는 성향을 다루고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루터의 저술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큰 영향을 미첬다. 존 번연과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죄렌 키르케고르와 본 회퍼 등 시대를 움직인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