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추구함
                               <A.W. 토저>

무소유의 축복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하나님이 땅위에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먼저 인간을 위해 세상을 만드셨다.  이 세상은 인간에게 유익과 기쁨을 주도록 만들어져 인간은 존재를 유지하고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  창조물에 대한 창세기의 기록을 보면 이런 것들은 단순히 "것들(things)"이라고 불렀다. 이것들은 항상 인간의 외부에 있는데 인간을 도울 때 그 의미를 지녔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 외에 어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성역이 있었다. 인간 안에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수천가지 선물들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죄로 인해 복잡해졌다. 죄가 하나님의 선물들을, 영혼을 파멸하는 잠재력을 가진 원천으로 바꾸어 버렸다.
   우리의 근심은 하나님이 당신의 성소에서 강제로 쫓겨나시고 그 자리에 사물들이 들어 온 때부터 시작되었다.  인간의 마음속에 사물들이 자리 잡았다. 이제 인간은 본성상 마음속에서 평안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이 왕좌를 차지하지 못하시고, 도덕적으로  어둠침침한 곳에서 완고하고 공격적인 고리대금업자들이 서로 가장 높은 왕자를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영적 문제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다.

사물의 독재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마 16:24~25)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사물들이 마음을 독재하지 못하게 하라는 의미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 진리를 분석해보자.  우리의 마음속에는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자리를 내어 주게 되는 원수가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은 이 원수를 '목숨', '자기' 또는 우리가 말하듯이 '자기목숨'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원수의 진정한 특성은 소유욕이다.  '얻다'와 '이득을 내다'라는 단어가 이를 말해준다. 이 원수가 우리 마음에 살도록 허락하면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를 거부하고 포기하면 결국은 아무것도 잃지 않고 영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보존하게 된다.  이 원수를 무찌를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아라."

정결치 못한 사랑

   때때로 영적 삶에 대한 신약 성경의 이러한 원리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좋은 예를 칮을 수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팔복에 대한 첫 번째이자 가장 훌륭한 주석을 볼 수 있다. 동시에 순종하는 삶의 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이 늙었을 때 이삭이 태어났다. 거의 할아버지가 된 나이에 낳은 자식이라 아브라함의 기쁨이요 우상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허리를 구부려 갓난 아이인 이삭을 팔에 안은 순간부터 그는 열심 있는 사랑의 종이 되었다.  이 사랑의 힘에 대해 하나님은 아무 말씀 못하시고 아브라함의 마음에서 밀려 나가셨다.  아브라함을 이해할 만도 하다.  이 아이는 아브라함 마음의 신성한 모든 것을 상징했다.  하나님의 약속들, 즉 오랜 세월 메시야를 갈망하는 꿈에 대한 약속과 소망을 말하고 있었다.  아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버지의 마음은 점점 더 아들의 삶과 밀착되어서 그 관계가 위험 수위에 도달하게 되었다.  바로 이 때, 정결치 못한 사랑의 결과로부터 그들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창세기의 저자는 그날 밤, 이 노인이 하나님과 함께 밖으로 나가 브엘세바 근처 언덕에서 겪은 고뇌를 부각시켜 보여 주지는 안는다.  그러나 우리는 별들 아래  엎드려 홀로 극심한 갈등을 겪는 아브라함을 충분히 상상할 수는 있다.
  인간 영혼에 닥친 이런 숙명적인 고뇌는 아브라함보다 크신 분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경험하시기 이전에 아브라함 외에는 누구도 겪지 못했을 것이다. 차라리 노인을 죽이셨으면.....
아마 그것이 수천 배는 더 쉬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도 많고, 또한 죽는다는 것이 오랫동안 하나님과 동행해 온 사람에게 그다지 큰 시험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점점흐려지는 눈으로 자신의 혈통을 이어 오래 전에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성취해야 할 아들의 건강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은 참으로 달콤한 기쁨이었을 것이기에 말이다.

순종하는 사랑

   이 아이를 어떻게 죽인단 말인가! 자신의 반항적이고 상처받은 마음은 차치하고라도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창21 12)는 약속과는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불같은 시험이었지만 그는 실패하지 않았다. 이삭이 잠들어 있는 텐트 위로 아직 별들이 빛을 발하고 있고, 새벽녘에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기 전에 아브라함은 마음을 정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아들을 바치리라. 그런 다음 하나님이 아들을 다시 살리시리라고 믿기로 했다. 이것은 히브리서에 쓰여 있는 대로 어두움 속에서 고통스러운 아브라함의 마음이 찾은 해결책이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그는 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가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 갈등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비밀을 제대로 감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이 해결책은 "누누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5)는 말씀과 잘 일치한다.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있는 그 노인을 아시기에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셨다. 그런 후에야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하셨다. 당황해하는 그에게 하나님은 마침내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아, 이제 됐다. 내가 정말 그 아이를 죽이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네 마음의 지성소에서아들을 떼어 내어 아무런 도전 없이 내가 통치하려는 것뿐이었다. 네 사랑 안에 있는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기 원했다. 이제 네 건강한 아이를 데려가라. 그 아이를 네 장막으로 데리고 가라. 네가 네 외아들을 내게 아끼지 않았으니 이제 네가 나를 두려워하는 줄 알겠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한 음성이 그에게 들렸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에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창 22:16~18)

복종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머리를 들어 그 음성에 응답했다 그리고 산 위에 강하고 순수하고 위엄 있게 섰다.  지고자의 친구요 그의 아끼는 자로서 하나님께 특별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그는 완전히 굴복한 자요.  순종하는 사람이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들 안에서 드렸다.  하나님이 바로 이것을 취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삶의 주변에서 시작하여 점차 안으로 들어가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자르고 들어가 단 한번의 행동으로 일을 끝내려 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경제적인 방법과 시간을 택하신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마음은 무척 아팠지만 효과적이었다.
   나는 아브라함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가난한 사람은 실로 부자가 아니었던가? 그가 이전에 소유했던 것들이 아직 그의 손에 있지 않은가? 양과 낙타와 소 그리고 모든 종류의 소유를 아직 갖고 있지 않은가? 아내, 친구들, 가장 아끼는 아들 이삭도 자기 옆에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  여기에 영적 비밀이 있다.  포기의 학교에서만 배을수 있는 마음의 달콤한 신학이 여기 있다.  조직 신학에 관한 책들은 이 점을 간과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이를 이해한다.
   고통스러웠지만 복된 그 경험을 한 후 아브라함에게 '나의' 또는 '내 것'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예전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이 말들이 뜻하는 소유에 대한 개념이 아브라함의 마음에서 사라진 것이다.  사물들이 영원히 밖'으로 내던져졌다.  이제 사물들은 외적인 것이되었다. 그의 마음속은 사물들에게서 자유로워졌다.  세상은 '아브라함이 부자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노인은 미소를 지을 뿐이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의 참된 보물은 내적이며 영원한 것이었다.

포기의 길

   만약 우리가 정말 하나님과 친밀하게 성장하면서 그분을 알기 원한다면 포기의 길을 가야 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추구한다면 하나님은 이내 우리에게 시험을 주실 것이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그것이 시험인줄도 모르고 있었다.  만약 그가 택한 길 말고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구약성경 전체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틀림없이 하나님은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람을 찾으셨겠지만 아브라함이 당한 손실은 말할 수 없는 비극이 되지 알을 것이다.  앙자택일의 길만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모든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아버지 당신을 알기 원합니다.  그러나 겁쟁이인 제 마음은 제가 즐기던 것들을 포기하기를 두려 합니다.  제 속에서 피흘림 없이 이것들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이런 분리됨에 대한 공포를 당신에게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당신 앞에 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아끼던 모든 것, 그래서 이제는 제 삶의 한 부분이 되어 버린 모든 것을 제 마음에서 제거해 주옵소서. 제 안에 들어오셔서 아무 대적 없이 거하옵소서.  
   당신의 발이 닿는 곳을 영화롭게 하소서. 제 마음은 이제 빛을 비추는 태양이 더는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께서 빛이 되시기에 이제 더는 어두움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묵상을 위한 질문
;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우리가 '의존', 또는 '집착'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 마음의 잘못된 '의존' 을 바로잡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영성 훈련
; 과거에 과도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경험이나 방법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라.

말씀묵상
; 창세기 22:1~18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