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15, 에스라의 회개기도.              주제: 14. 기도. 2      019. 12. 29.


서론  : 포로 귀환하여 성전예물을 인계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에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를 인근의 바사 관리들에게 보냄으로써

                 그들의 협조를 얻어내는 일련의 일들이 있은 다음, 먼저 귀환한(4 1/2 개월) 백성들의 소식을 들은 것이다.

에스라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때는 주후 45851(7:9), 통혼 사건을 취급한 때는 같은 해 920(10:9)

먼저 귀환한 지도층들을 비롯한 많은 백성들이 유언을 어기고 이방 여인들과 통혼하여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고 당황.

범죄한 민족을 위한 에스라의 회개와 중보의 기도이다. 이 기도를 통해 여섯 가지를 알 수 있다.

 

1. 공동체로서의 연대감을 가진다. (5~6)

에스라는 충격을 딛고 일어나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했다.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는 오히려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받아 들였다.

     이것은 지도자로서의 책임감과 민족에 대한 사랑(공동체 감)을 보여준다.

공동체 감 : "우리"라는 말이 본 장에서 27회나 사용되고 있다.

믿는 자들은 자신만의 성결함으로 만족할 수 없다.

믿는 자들은 자신이 속한 시대와 민족 앞에서 믿는 자로서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32:32, 9:3)

 

2. 죄악을 고백함. (7)

에스라는 과거나 현재의 죄악을 덮어두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 민족이 하나님 앞에 내 놓을 것은 죄밖에 없음을 고백했다.

자기의 죄악을 철저히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은 회복의 시작이다.

믿는 자의 자기 죄고백은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정확히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거짓없이 서는 행위이다.

       (5:5, 28:13, 요일 1:9)

 

3.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함 . (8~9)

에스라는 죄 고백에 이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셨는가를 고백한다.

은혜의 대상이 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불순종으로 배반한 백성이다.

1) 얼마를 남겨두고 피하게 하시고,(국가는 멸망했으나 민족은 유지)

2) 눈을 밝히사 소생케 하심 : 소망,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심

3)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게 함 : 포로 귀환(1:1~4)

4) 하나님의 전을 세우고 수리하게 하며 울타리를 줌 : 다리오 6(주전 516)에 성전을 세움. 성전 수리(이스라엘에 든든한 울타리가 됨)

 

4.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함. (10~12)

회개의 중보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다

1) 이스라엘이 가서 얻을 땅은 우상을 섬기는 더러운 땅임

     (가나안 족속들은 전역을 걸쳐 우상을 섬기고 있다) 

                    (18:24~25)

2) 가나안 족속들과 통혼하지 말 것(우상숭배의 감염통로임)

             (34:15~16, 7:3~4)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없이 경고한 말씀을 어김으로써 결국 이방의 포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긍휼하심으로 이방의 포로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5. 죄악된 행위를 바로 잡겠다는 결단을 함. (13~14)

변화할 마음의 준비 없이 죄악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일은 오히려 가증스러운 일이 될 뿐이다.

진정한 회개의 기도는 이제까지의 모든 죄악을 끊어버리고 이제부터 올바로 행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이어야 한다.

에스라의 기도는 모든 죄악을 끊어버릴 그런 결단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10: 이미 취한 이방 여인들을 모두 내어 보냈다)

 

6.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의지함. (15)

그는 중보를 위한 회개기도(15)에서 직접 죄 용서를 간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이스라엘의 죄악 됨을 분명하게 대조 시켰다.

       (죄악이 너무 심해서 차마 용서해 달라 하지 못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전적으로 의지했다.

        (자비는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진노보다 용서를 좋아하심)

거듭된 용서에도 불구하고 그 용서를 무시하고 계속 죄악을 따르는 인간이 마지막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뿐이다.

 

결론  : 친구를 사귈 때부터 믿음의 친구를 사귀고, 믿음의 사람끼리 주 안에서 혼인하여 믿음의 집을 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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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