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4~42, 내가 온 것은~.                           주제: 성탄.              2019. 12. 25.

서론

      : 복음을 위해 헌신한 전도자가 받을 상급. (34~42)
제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가족 간에 일어날 분란을 각오해야 한다.

분란에도 불구하고 주를 따라야 합당한 제자이며, 이러한 제자들에게는 응분의 보응이 약속된다.

 

1. 가족보다 주를 더 따름. (34-36)

예수께서 칼과 불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합당하게 살 때에는 불화와 갈등이 일시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자의 길은 이러한 불화를 감내하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1)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 (34)
화평의 정확한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 합하다, 연결하다에서 유래했을 것이라 본다.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예수께서는 화평을 주려고 오셨다(2:14). 그런데

     본문의 말씀은 예수께서 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진리와 천국 복음은 사람들을 결단으로 몰아가는데, 이 과정에서 불화가 생긴다.

적당히 절충하고 타협되어진 현실 때문에 공의와 진리를 바탕으로 자리를 잡아감에 있어서 일시적으로 진통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인하여 잠시 깨지는 화평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2) 가족간에 일어나는 불화. (35)

"그 아버지와"는 문맥상으로 보아 특정한 아버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를 '반대하는'(kata;;카타) 사람으로서

    일반적인 남성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화" 이 말은 단순한 불화의 정도를 넘어 미움이 있는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때로는 복음에 대한 반대가 가장 가깝고

    예의를 지켜야 할 대상으로부터 일어날 수가 있다.
3) 가족이 원수가 된다. (36)
"사람"이란 지금까지 복음 때문에 겪게 될 갈등과 불화에 대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34절에서 36절로 오면서

     그 갈등의 관계가 심화되어 감을 알 수 있다.

"불화원수"의 순을 따라 제자들이 봉착하게 될 어려움은 점점 더 커진다.

이러한 예수의 의도는 제자들이 만나게 될 어려움의 정도를 실감있게 그리기 위함일 것이다.

 

2.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름. (37-39)

십자가는 가장 가혹한 고통의 상징이다. 그런데 예수를 따를 때는 그런 고통을 각오해야 한다.
1) 주님께 합당치 않는 자. (37)
"사랑하는 자" 이 사랑은 아가페(ajgavph) 사랑이 아니다. 이것은 우정과 애정의 차원이다.

"나 보다 (가족) 더 사랑하는 자" 그는 제자의 길을 가기에 합당하지 않다.

     이 말은 평가 기준치에 미달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주님께 합당한 자는 주를 사랑하는 자이며, 주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그의 계명을 지킴에서 그리고

    그와 함께 고난에 참여함에서 확인 된다.
2) 주님께 합당한 자. (38)
"십자가" 그 지방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십자가의 잔인함과 처절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십자가를 담당하지 않음을 말한다.

분명한 것은 복음을 전할 제자들에게 십자가가 지닌 고난이 전해졌고,

    그 십자가의 고난에 대한 각오를 지닌 자여야 예수께 합당한 자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을 외면하거나 도외시하면서 바른 제자의 길을 간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3) 자기 목숨을 잃는 자. (39)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생명을 아끼는 자가 잃게 될 미래의 상태를 언급한다.

예수의 이러한 역설은 자주 나타난다(16:25; 8:35; 9:24; 17:33; 12:25).

오늘날에 이 역설이 지닌 호소력은 강하다. 누구든지 예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이 원리를 배워야 한다.

얻고자 해서 다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버려야만 얻어지는 것이 있는데,

 

3. 영접하는 자는 상급이 있음. (40-42)

예수의 제자가 되는 일은 고통과 핍박만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복음을 인하여 그리고 예수의 제자가 되므로 얻게 될 상급을 말씀하신다.
1) 제자를 영접하는 자. 40)
"영접하는 자" 예수께서 파송한 제자들을 영접하는 이 곧 예수를 영접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제자들은 마치 왕의 특사와 같다. 특사가 왕의 영에와 권위를 가지고 나아가듯이

    제자들은 예수의 영예와 권위로 임한다. 따라서 제자들에 대한 반응은 곧 예수를 향한 대답으로 간주되었다.

바울이 제자들을 핍박했을 때, 예수께서는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 하였다(9:4).
2) 영접하는 자의 상급. (41)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가 받을 상급에 해당하는 것을 받게 될 것이란 뜻이다.

    그런데 선지자의 상급이나 의인의 상급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는 것이 좋다.

여기서 말하는 상급은 선지자와 의인을 영접하는 자의 상급만이 아니다.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들에 대한 상급이 여기서 묵시적으로 제시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3) 소자에 대한 관심. (42)
"제자의 이름으로" 예수께서는 제자와 선지자 그리고 의인에 대하여 말했다. 그러나 여기에 그의 관심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부류가 있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하여 쉽게 간과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간과하지 않으시는 예수의 사랑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냉수 한 그릇" 예수는 가장 쉽게 잊을 수 있는 냉수 한 컵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계시다.

     주께서는 이 작은 것까지도 간과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지금 파송받는 제자들에 대한 상급이 짐작해 볼 만하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상급에 대한 언급은 제자들에게 상당히 고무적인 말씀이었을 것이다.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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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