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18:1~12. 종교개혁과 신앙.                          주제: 20. 신앙.      2019.11.17.

서론

      : 히스기야의 통치(1)-히스기야의 개혁과 앗수르의 침략. (18:1-37)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할 당시(주전 722) 유다는 아하스를 이어 히스기야가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유다의 선왕들 중에서 그 업적과 신앙은 매우 긍적적인 평가를 받는데 그의 통치에 관한 평가와

   가장 대표적인 업적인 종교개혁, 앗수르의 침략에 관해 다루고 있다.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은 이전의 선왕들도 제거하지 못했던 산당을 비롯하여 곳곳에 있던 주상들모세의 놋뱀까지 제거하고

   율법에 근거한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는 철저한 것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기울고 있는 유다의 운명을 완전히 돌이키지는 못한다.

히스기야 통치 중반기에 일어난 앗수르의 유다 침략북왕국에 이어서 남왕국 유다 역시 쇠락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 히스기야의 통치와 개혁. (1-8)

1) 히스기야의 통치와 개혁. (1-8)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 3년에 아하스에 이어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위에 오르는데

   그는 여호와 앞에 정직한 왕으로서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한다.

(1) 통치 시기. (1-2)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이 된 때는 이스라엘 왕 호세아 3, 즉 주전 729년이다. (1~2)

    히스기야가 아하스와 함께 통치한 기간은 14년이다(주전 729-715).

단독으로 통치한 기간이 18년이고(주전 715-697) 노년에 이르러 아들 므낫세와 함께 11년간 통치했는데(주전 697-686),

   통치 기간을 합하면 29이 된다(주전 715 ~686년까지).

히스기야는 "여호와는 강하시다"는 뜻으로서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들을 많이 체험한다.

(2) 통치에 대한 평가. (3)

성경의 평가는 여호와 앞에 정직히 행한 왕으로서 그의 경건은 "다윗왕"과 비교될 정도였다.(3)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윗처럼 행한' 히스기야와 같은 유다의 왕으로는 아사(왕상 15:11). 여호사밧(대하 17:3), 그리고 요시야(왕하 22:2)가 있다.

   그리고 이 중에서 마지막까지 신앙을 유지한 왕들은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이다.

    이들 세 명은 유다 왕국의 선한 왕들이다.

선한 왕들의 아들들은 유감스럽게도 아사의 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악한 왕들이었다.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은 아버지의 좋은 점을

    본받아 여호와 앞에 정직히 행했으나, 히스기야요시야의 아들들은 자기 아버지의 길을 버리고 악한 왕들을 본받았다.

묵상 및 적용

    : 유다의 역사를 살펴보면 부왕이 악한데 그 아들은 선한 왕이거나 부왕이 선한데 그 아들은 악한 왕인 경우를 종종 본다.

히스기야의 경우:

   ①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이스라엘 열왕들처럼 노골적으로 우상을 숭배한 악한 왕이었다. 그러나

   ② '다윗처럼 온전한'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사실들은 성품이나 신앙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달려 있음

    보여준다. (18:20-21,24)

(3) 종교 개혁자 신앙. (4-6)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했던 히스기야는 유다를 개혁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취한다.(4)

히스기야의 개혁은 유다에 깊이 뿌리내린 거짓된 예배를 정화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노골적인 우상 숭배와 같지는 않았어도 유다 역시 순수한 여호와 신앙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런 신앙적 부패를 척결하고 바른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한 히스기야는

    이를 위해 과감한 조치들을 취한 것이다.

히스기야는 오랜동안 하나님께서 지적하셨으나 그 어떤 왕도 제거하지 못했던 산당을 제거하고

    곳곳에 세워진 우상들을 파괴했으며 백성들이 숭배하던 놋뱀을 부수었다.

    그의 개혁에 관한 내용[역대기(대하 29~32)에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① 우상들을 파괴하고 산당을 헐었다.

   ②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부숴버렸다.

   ③ 성전 예배를 회복했다.

   ④ 유월절 절기를 회복해 범국가적으로 성대히 지켰다.(대하 30)

   이 같은 개혁 조치는 성경에서 특별한 평가를 받는다. (5-6).

 

히스기야에 대한 신앙적 평가.

   ⑤ 여호와를 의지함에 있어 그를 따를 왕이 없었음

   ⑥ 여호와께 연합(달라붙다)하여 떠나지 않았음 : 하나님께 대한 성실을 유지하였다는 것.

   ⑦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켰음 : 그의 개혁은 철처허 말씀에 근거한 것이었다.

(4) 축복으로 인한 형통함. (7-8)

하나님께서는 그의 온전한 헌신에 축복하셨고 그것은 군사적 형통함으로 나타났다(7~8).

    당시 유다는 애굽과 앗수르라는 막강한 세력 사이에 끼여 있었다.

   중동 무역로의 매우 중요한 교차점에 위치한 유다를 지배함으로써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기를 원했다.

히스기야는 유다가 아하스 때부터 앗수르에 바쳐오던 조공을 거부하면서 앗수르를 대적했다.

   뿐만아니라 히스기야는 친 앗수르 정책을 취하던 블레셋을 쳐서 그 지경을 점령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는데도, 히스기야가 반 앗수르 정책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심으로써 형통함을 주셨기 때문이었다.(21:22; 삼하 8:14)

 

2. 사마리아의 멸망. (18:9-12)

앗수르를 대적하는 유다와는 달리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다. (9~12)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가 세 가지

   ① 말씀에 불순종함: 여호와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했다.

   ② 언약을 파기함: 하나님과 이방의 신들을 겸하여 섬김으로써 언약을 깨뜨렸다.

   ③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율법)을 거스려 듣지도 행치도 않았음

             : 그 땅에 보내사 경고케 하신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히스기야의 통치와 관련해서 사마리아의 함락과 그 원인다시 언급되고 있는 것에 대해

   ① 하나님의 백성은 그 국가적 운명이 국력이나 외교 정책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 이스라엘은 여호와 앞에 불성실한 왕들이 다스리므로 결국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반면에,

        유다는 비록 많은 왕들이 그릇된 길로 행했지만, 히스기야와 같은 선한 왕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했기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강대국으로부터 지켜 주셨다는 것이다.

   ② 히스기야가 통치하던 시대의 상황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 북쪽 지역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던 이스라엘이 멸망함으로써 유다는 세력을 팽창시키려는 강대국 앗수르와 직접 부딪치게 되었다.

 

유다는 바벨론으로, 이스라엘은 앗르르에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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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