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2:12~25. 엘리사의 사역의 시작.           주제: 44. 사명.     2019. 10. 20.

서론 : 엘리야의 사역은 끝나고 그의 뒤를 이어 엘리사가 새로이 사역을 시작하는 내용이다.

 

1. 엘리사의 선지 사역의 시작. (12-18)

엘리야의 승천 이후 그의 뒤를 이은 엘리사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갑절의 영감을 구했던 엘리사는 엘리야의 승천을 봄으로써 그 소원을 이루게 되는데,

    그에게 부어진 갑절의 영감은 그가 엘리야가 남긴 겉옷으로 요단강을 가르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1) 엘리사가 슬퍼하다. (12)

엘리야는 갑절의 영감을 요구하는 엘리사에게 만일 자신의 승천을 보게 되면 그 요구가 응락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엘리사가 엘리야의 승천 장면을 본 것은 그의 소원이 허락되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베풀어졌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는 엘리사의 부르짖음은 아버지처럼 의지하던 스승과의 혜어짐에 대한

    개인적 슬픔의 표현인 동시에 엘리야가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서 이스라엘을 보호하던 존재였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엘리사는 그렇게 의지하고 사랑했던 스승이 이제 지상에서의 삶을 끝냈다는 것을 깨닫자 큰 슬픔을 느끼며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37:34; 7:6)

2) 엘리사가 요단 강을 가르다. (13-14)

엘리야의 승천 후에 엘리사에게는 그의 겉옷이 남겨져 있었다. 그것으로 요단강을 가르기도 했던 엘리야의 겉옷은

    모세의 지팡이처럼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엘리야의 겉옷이 엘리사에게 남겨졌다는 것은 엘리야와 함께했던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이제 선지자 사역을 수행할 엘리사에게

    옳겨졌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그들을 섬길 새로운 일꾼을 준비하셨다. (14)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을 들고 요단강을 건너왔을 때 스승이 했던 것처럼 그것으로 요단강물을 치며 하나님을 불렀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이 말은 엘리야에게 능력을 베푸셨던 하나님께 자신에게도 그 능력을 베풀어 줄 것을

     호소하는 간구였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의 이 간구에 응답하셨고 이로써 엘리야가 했을 때처럼 강이 갈라지고 길이 열렸다.

엘리사의 첫번째 이적인 이 사건은 엘리야에게 능력을 주셔서 그를 종으로 쓰시던 하나님께서 이제 엘리사와 함께하여

    같은 능력을 부어주시고 그를 통해 일하실 것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3) 엘리사가 후계자로 인정받았다. (15-18)

스승의 승천을 목격하고 그의 영감을 이어받은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강을 가르고 건넘으로써

    엘리야의 뒤를 잇는 선지자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 된다. (15).

엘리사가 요단강을 가르고 건너오는 것을 목격한 50명의 선지 생도들은 엘리야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사에게 옳겨간 것을

    알고 엘리사를 새로운 지도자로 영접했다

그들은 엘리야의 승천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16-18).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선지 생도들은 하나님께서 단지

     엘리야의 영혼만  취해 가신 것으로 알고 어디엔가 버려져 있을 그의 시신을 찾아내어 장사지내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① 이에 대해 엘리사는 찾을 필요가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지만 그들의 계속된 간청에 마지못해 허락한다.

   ② 엘리야의 시신을 찾으러 갔던 선지 생도들은 허락받은 3일 동안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와 엘리사로부터 책망을 듣는다.

   ③ 사실 인간이 육신의 죽음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간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로서. 선지생도들이 엘리야의 승천에 대해 쉽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④ 엘리사는 엘리야의 승천이 단지 영혼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몸을 가진 채로 하나님께로 옮겨진 것임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2. 엘리사의 이적. (19-25)

엘리야의 승천 이후 새로운 선지자로 인정받는 엘리사가 행한 두 가지 이적이 소개되고 있다.

   ① 물이 좋지않아 고통을 당하고 있는 여리고 주민을 위해 먹을 수 있는 물로 바꾸어준 것이고,

   ② 자신을 조롱하는 아이들을 징벌한 것이다.

1) 여리고의 물을 고치다. (19-22)

당시 여리고 성읍 사람들은 물이 좋지 않아 고생을 했었는데 자신들의 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성읍 거민들의 요청으로

   엘리사가 그 물을 고쳐준다. (19-20).

   ① "나쁘다(ךע: )"는 해로운, 유해한 이란 뜻을 가진 것으로서 사람들에게 해를 준다는 의미다.

        여리고는 경치가 아름다운 지역이었으나 물이 좋지 못해 토산이 제대로 익지 못했다.

   ② "토산"의 의미는 ', 나라, 주민'이다.

   ③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동물이나 사람이 유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물이 좋지 못해 토산이 익지 못한다는 것은 나

          쁜 물로 인해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여리고의 물이 좋지 못한 원인을 여호수아의 저주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견해도 있다(6:26)

     중요한 것은 여리고 거민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엘리사가 자신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엘리사는 그들의 요청대로 엘리사는 여리고 성의 물을 고쳐주는데, 아주 특별한 방식을 사용했다. (21-22)

묵상 및 적용 :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하시는 일에 사람이 믿음으로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무슨 일이든 그 일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사람들의 믿음과 헌신을 사용하신다.

2) 자신을 조롱하는 아이들을 저주한다. (23-25)

여리고 성읍의 물을 고쳐줌으로써 하나님의 큰 은혜의 역사를 보여주었던 엘리사가 이번에는 그를 대적하며 조롱하는 아이들을

    저주함으로써 죽게한다.(23~24).

벧엘을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신전을 세운 곳 중의 하나로 대표적인 배교의 성읍이었는데,

    엘리사가 이곳을 갔을 때 젊은 아이들이 그를 "대머리"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 대머리여 올라가라" 여기서 "올라가라"는 것은 엘리야처럼 승천해보라는 조롱이다.

      엘리사의 외모에 대한 이런 공개적인 조롱의 태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멸시이며 도전이었다.

엘리야의 승천을 조롱거리로 삼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임을 말해 준다.

    따라서 엘리사는 이들에게 저주를 선언한다. 이러한 태도에 엄격한 처벌이 필요했다.

두 가지 이적을 통해 영적 권위를 인정받은 엘리사는 갈멜로 갔다가 사마리아로 간다. (25)

묵상 및 적용 : 죄에 깊이 빠진 부모 세대로 인해 자식 세대까지 오염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벧엘의 아이들의 조롱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심각한 죄악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저주와 징벌은 그 세대의 이스라엘을 행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경고다.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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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