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13. 하나님의 정의를 보리라.                     주제: 40. 소망.     2019. 9. 15.

서론 : 죄로 인한 탄식과 구원의 소망으로 인한 찬양. (1-20)

이스라엘의 죄악과 그로인해 닥칠 심판을 전해야 하는 선지자는 탄식이다.

   지도자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부패한 조국의 현실을 애통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탄식과 절망에 머물지 않았다. 비록 이스라엘이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을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해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킴으로써 최후 승리를 주실 것을 확신했으며, 이러한 확신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이렇게 탄식과 감사, 심판과 구윈이 대조적으로 그려지는 본문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성품의 놀라운 특성이 나타나 있다.

 

1. 죄로 인한 선지자의 탄식. (1-6)

미가는 유다 백성들의 죄와 영적 상태를 인해 탄식한다. 시편의 애가와 비교될 수 있는

   그의 탄식은 개인적 애가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의 탄식은 죄악된 현실 속에 있는

   모든 경건한 자의 탄식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탄식을 통해 드러난 부패상에 주목하라.

1) 사회 전체의 타락. (1~2)

미가의 탄식 속에서 그려지는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은 어두운 그림과 같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마음이 완전히 떠난 불경건한 사람들 가운데서 탄식하고 있다. (1~2)

"재앙이로다 나여"라는 표현은 죄악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 사회에 임할 재앙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을 나타낸다.

   추수가 다 끝난 과수원에서 먹을 수 있는 과일을 찾을 수 없듯이 이스라엘 어느 곳에서도 의의 열매를 찾을 수 없었다.

모든 열매를 다 따버린 과수원이나 포도원처럼 이스라엘에는 정직히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단 한 사람의 신실한 사람도 찾을 수 없다는 미가의 탄식은 불의한 시대를 사는 의인들의 고통을 보여준다. (왕상 19:10; 5:1-5)

2) 지도자들의 타락. (3-4)

이스라엘의 전적인 부패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지도자들의 타락상이었다. (3).

그들은 악 : 군장들은 돈을 받고 무죄한 사람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도록 재판장들에게 압력을 가했고

    재판장들 역시 뇌물을 받고 불의한 판결을 내렸다.

    권세를 가진 자들은 그것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채웠다. 그들은 악을 행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한 사회가 부패한 데는 가진 자들의 도덕적 타락과 권력자들의 부정이 전제된다.

   자리를 이용해 돈을 번 그들은 불의한 일에 그것을 씀으로써 사회 전반에 걸쳐 타락을 조장시킨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정직한 자가 오히려 어리석은 자로 여겨지면서 악을 위해 연합하고 공모한 자들로부터 압제를 당한다.

   이로써 악의 세력에 개인이 대항할 힘을 갖치 못하고 결국 의인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들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주목하라. (4).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도와주고 보호해 주어야 했다. 그들 가운데 가장 낫다고 하는 자들조차도

    "가시와 찔레"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약자들을 보호하는 사회적 제도나 심지어는 법도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착취의 수단이 되어버린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무시했음을 드러낸다.

"파수꾼들의 날", 즉 형벌의 날이 임한다. '파수꾼의 날'은 이스라엘의 파수꾼인 선지자들이 심판이 임하리라고

    경고한 날, 나라가 멸망 당하여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 날인 것이다.

3) 이웃과 가족 관계의 파괴. (5-6)

그들의 죄악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파괴 시킨다.

    친구나 이웃 심지어 가족 관계들까지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5~6)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때가 왔다. 이기심은 서로를 갈라놓으며 유대 관계를 깨뜨린다.

    타락한 인간들 사이에 신뢰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이 점층적으로 서술된다.

이웃 사람과 친구 관계의 불신에서 가장 가까운 부부간의 신뢰가 깨어지는 것으로 진전되고

    마지막으로 분신과 같은 부모와 자식 간의 신뢰까지 무너진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원수가 된다.

   죄는 모든 인간관계를 무너뜨린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된 이상 인간의 어떠한 결속도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2.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는 구원의 확신. (7-10)

가장 기본적인 삶의 영역까지 죄악으로 인해 망가진 상황을 탄식했던 선지자는 그 절망과 한탄의 자리에서

    새로운 빛을 본다. 즉 자신들에게서는 도저히 소망이 발견될 수 없음을 절감했지만 그것이 도리어

    그의 눈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한 것이다.

이제 심판이 임할 것이나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신실하심은 그러한 인간의 절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원의 소망이 되기 때문이다.

1) 주님께 대한 신뢰. (7)

선언의 형태지만 미가의 기도는 절망적 상황에서 믿는 자들이 취할 태도를 보여준다. (7)

미가는 백성들의 죄악과 불성실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붙든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의 믿음이 세 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①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그는 소망 가운데 주를 바라본다고 말한다. "오직 나는"이라는

        말 속에는 비록 세상은 타락하고 불신실하지만 자신은 그것에 의해 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조된다.

       경건한 자는 주변 모든 사람들이 불신실할 때에도 그들의 영향을

       받거나 흔들려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에도 그의 기준은 세상이나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바라본다는 것은 기다린다는 뜻이다. 믿는 자가 기다리는 것, 즉 그의 소망이 되는 것은 언제든지 하나님뿐이다.

   ③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낙심하고 불평하는 대신 그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리라는

        확신 때문이다.

(25:21; 2:24; 22:23; 왕하 19:20; 대상 5:20; 대하 20:9; 9:28;

22:24; 31:22; 40:1; 42:11; 29:12-14)

2) 위대하신 구원자. (8-10)

(1) 선지자는 어둠 중에라도 회복의 시간을 기다리며 위대하신 구원의 소망의 주를 바라본다. (8).

""는 물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선지자 자신을 가리킵니다. 대적을 향해 "나로 인해 기뻐하지 말지어다" 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범죄로 인해 벌을 받겠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엎드러지고 어두운 데 앉게 되겠지만 그대로 버려두지 않고 구원을 주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쓰러짐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빛이 올 때 어둠이 물러가듯 구원의 빛이 되신

    하나님께서 고난으로 상징되는 그분 백성의 어둠을 몰아내 주실 것이다.

(2) 하나님 안에서 구원의 소망을 발견한 선지자는 이제 인내할 힘을 얻는다. (9).

유다 백성들이 당하는 징계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징계를 당하고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환난을 상징하는 "어두운 데"와 구원을 가리키는 "광명"이 대조를 이루면서 구원과 회복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강조되고 있다. "신원"(리브)이란 말은 '변론하다. 쟁변하다'라는 뜻으로 비록 범죄하였을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킬 때 그들을 의롭다고 변론하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의미한다.

(3) 구원으로 인도하실 그 때에 대적들이 파멸을 보게 될 것이다. (10).

대적들이 멸망을 당함으로써 해방을 얻게될 때 그들은 마치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빛 가운데로 이끌림을 받는 것과 같을 것이다.

대적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벌하셨으나 다시 그들을 더 큰 복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볼 때에

    이스라엘을 조소했던 자신들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묵상 및 적용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는 버림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유다를 징계하신 목적은 분노의 표현이 아니라

    그분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을 미워하셔서 파멸시키려 하신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믿는 자는 시련에 직면했을 때,

    그것이 비록 자신의 허물과 죄악의 결과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갖고 

     두려워하거나 절망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 그분은 징계를 통하여 우리를 어둠 가운데서 광명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

 

3. 구원의 날에 이루어질 일들. (11-13)

하나님 안에서 구원의 소망을 발견한 선지자는 그날에 펼쳐질 하나님의 섭리와 영광을 그리고 있다.

1)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이다. (11).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 성벽은 느헤미야 때에 재건되었지만 이 예언은 단지 그 사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장차 메시야의 통치 때에 이루어질 일을 바라본다.

    왜냐하면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재건한 성벽은 예전 성벽보다 확장된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올 것이라는 12절의 예언도 당시에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벽의 확장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하며, 그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시작되어

    지금도 확장되고 있으며 그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2)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러 올 것이다. (12).

앗수르와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국가들을 대표한다. 그 날, 즉 하나님의 구원의 날에는

    모든 이방 민족들이, 심지어는 이스라엘의 적들까지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써 이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종족이나 국가의 차별 없이 온 땅의 거민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까지 계속될 것이며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때에 그분을 믿는 모든 백성들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

3) 심판이 있을 것이다. (13).

끝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백성들에게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 땅"은 가나안 땅이나 바벨론 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온 땅(the earth)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백성들은 그로 인해 심 을 받게 될 것이며 그 땅은 황폐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있을 심판에 관해서는 이사야도 예언하고 있다.

        (25:30; 25:32-33; 25:41; 24:1)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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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