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21:17~29. 아합의 죄악에 대한 심판선언.             주제: 39. .      2019. 6. 30.

서론

      :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어 아합의 죄악(나봇의 포도원을 탈취한)에 대한 심판을 선포한다. (17~29)

배경 (21:1~16)

하나님께서 붙여준 아람 왕 벤하닷을 자기 뜻대로 살려줌으로써 선지자로부터 심판을 선고받았음에도

   아합은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신의 탐욕에 따라 악을 행한다.

   이런 아합의 통치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악한 것이었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 사건은

   그가 자기 땅과 이웃한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을 갖고 싶어하는 데서 비롯된다.

아합은 후한 대가를 제시하며 포도원을 팔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나봇은 조상의 유업을 파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일이므로 팔 수 없다고 거절한다.

   이 일로 인해 아합이 근심하자 그의 아내 이세벨은 거짓 증인을 내세워 그를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아  아합에게 준다.

   탐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왕권을 이용해 살인을 저지르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빼앗은 이 사건은

   아합의 왕권이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얼마나 부폐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다시 아합의 죄악을 질책하고 심판을 선언하신다.

 

1.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엘리야틀 보내신다. (17-19)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합이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내려가자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신다. (17~19)

이세벨의 계획대로 나봇이 죽음으로써 아합은 소원대로 포도원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포도원의 원래 소유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선지자 엘리야)을 나봇의 포도원으로 보내어 살인을 저지르고 땅을 빼앗은 아합을 정죄하셨다.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는 말은 이세벨의 계략으로 이루어진 모든 악행의 책임이 아합에게 있음을 밝혀 주는 것이다.

    아합이 일을 직접 계획하고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이 일을 그의 묵인 속에 진행된 범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선포하신 것이다.

아합이 탐욕을 채우기 위해 나봇을 죽이고 그의 기업을 빼앗은 것처럼 그도 같은 일을 당하리라는 것이다.

    아합과 이세벨이 저지른 죄악은 사람을 속일 수는 있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었고,

    이러한 사실은 장차 그에게 이루어질 심판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었다.

          (34:21~22; 15:3; 23:24)

 

2. 아합에게 심판이 선포된다. (20-26)

아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된다. (20)

"내 대적이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합의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엘리야를 대하는 아합의 태도는 그가 평소에 하나님의 선지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잘 나타나 있다.

"스스로 팔려"라는 말은 탐욕대로 아무런 거리낌없이 죄를 행했음을 가리킨다.

    당시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기 위해서 그곳에 간 상태였기에 늘 자신의 죄악을 지적하는 선지자가

    결코 반가울 리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아합의 예상대로 엘리야는 직설적으로 아합의 죄악을 질책한다.

엘리야는 아합뿐 아니라 이 사악한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이세벨에게 심판을 선포한다.

1) 아합에게 선포된 심판이다. (21~22)

아합에게 선포된 예언은 한마디로 그의 집이 완전히 망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로 바알 숭배에 빠지게 한 아합에게 속한 모든 자가 진멸 당할 것이다.

   ① 아합에게 속한 남자는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 진멸될 것이다.

   ② 여로보암과 바아사의 집이 망한 것처럼 아합 집도 그렇게 망하게 될 것이다.

여로보암의 집에 "생명 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진멸하셨고"(왕상 15:29)

    바아사의 집에 "남자는 그 족속이든지 그 친구든지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던"(왕상 16:11-13) 것처럼

    아합 집도 그렇게 멸망 당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심판받아 죽을 아합 집의 사람들은 그 시체조차 거두어지지 못할 것. (24)

당시 죽은 후에 시체가 매장되지 못하여 공중의 새나 짐승들에 의해 상하게 되는 것은 가장 큰 저주로 여겨졌다.

   여로보암과 바아사에 이어 아합 집안 사람들이 매장조차 되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말해 준다.

2) 이처럼 아합을 충동해 죄를 짖게 한 이세벨에게 심판이 선포된다. (23)

아합과 이스라엘을 돌이킬 수 없는 죄악으로 몰고간 이세벨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예언은 아합이 죽고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그대로 성취된다.

신하들에 의해 창밖에 던져진 이세벨의 시체는 개들에게 먹힘으로써 두 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 남은 것이 없게 된다.(왕하 9:30-37 참조)

주목할 것은 아합이 이런 끔찍한 심판을 받을 만큼 타락하게 된 원인이다.

아합이 바알 숭배에 빠져 여호와를 대적하고 온 백성들로 타락케 한 것은 바로 그의 아내인 이방 여인 이세벨 때문이다. (25-26)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아합의 죄를 얼마나 악하게 보시는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아합이 악한 죄를 짓게 된 원인은 바로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혼인함으로써  시작된 것이었다. (25)

이세벨은 아합으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돌이켜 바알을 섬기도록 했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박해했다.

    아합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며 무고한 자의 피를 흘려 탐욕을 채우게 된 배후에는 이세벨이 있었던 것이다.

3. 심판의 선포를 들은 아합이 겸비한다. (27-29)

1) 엘리야의 심판의 선고를 듣자 (이제까지 수없이 말씀을 들었지만 거역하던 아합이 놀랍게도)

                 마음을 겸비케 하고 하나님께 굴복한다. (27)

옷을 벗고 굵은 베로 동이고 금식을 하는 것은 죄를 애통해하며 뉘우쳤음을 의미한다.

비록 뉘우치고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지는 못했을지라도 아합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심판의 선고를 듣자 자신의 죄를 깨닫고

    이제까지 거역하고 반항하던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인정한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아합의 이런 겸비함을 보시고 자비를 베푸신다. (28~29)

하나님께서는 겸비한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아합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그에 대한 심판을 지연시켜 주신다.

   이로써 아합에게 선고된 심판은 그의 아들 여호람에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하나님의 이런 자비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하나님 앞에 겸비한 태도를 지속하지 못하고

   다시 말씀을 거스르면서 화를 자초한다.

묵상 및 적용

역사상 유례없는 악한 아합이지만 그가 겸비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셨다.

아합의 죄악을 생각하면 그는 도저히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였다.

   갈멜산에서의 분명한 증거에도 회개치 않았고,

   아람과의 싸움에서 두 차례나 승리를 주었음에도 불순종하여 아람 왕을 살려주었고,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는 죄악을 범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애통하자 자비를 베풀어 심판을 연기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징별은 구원을 위한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3:22)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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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