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20:31~43, 불순종에 대한 심판.                  주제: 27. 불순종.    2019. 6. 2.


서론 : 아합의 통치 (1) : 아람을 두 차례나 물리치는 은혜를 입고도 아합은 불순종한다. (20:1-43)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막강한 아람 군대를 두 번씩이나 물리치고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깨닫지 못한 채 어리석게도 아람의 군대의

   거짓된 굴복에 속아 넘어가 벤하닷과 조약을 맺고 그를 살려 줌으로써 아람을 완전히 진멸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이 일은 아합의 인간적 실수라기 보다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서 그분의 영광을 가로채는 죄악이었다.

   이로써 아합은 선지자로부터 장차 아람의 손에 죽으리라는 심판을 선고받는다.

 

1. 아합이 벤하닷의 속임수에 넘어감. (20:31-34)

두 차례에 걸친 승리로 하나님의 능력이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그 사실을 통해 깨우치지 못하고

    벤하닷의 속임수에 넘어가 이스라엘은 아람을 완전히 진멸할 기회를 놓친다. (31-32)

굵은 베를 입는다는 것은 참회와 애통을 나타냄으로써 긍휼을 구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패한 아람 왕의 신복들은 굵은 베를 입고

   자신들이 침략한 것을 뉘우치고 있으며 항복하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관대한 처분을 얻어내고자 한 것이다.

결국 그들의 속임수는 성공한다.

    두 차례의 승리가 모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는 것을 잊고 한껏 교만해진 아합은 이들의 속임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람 왕 벤하닷을 "형제"라고 말한 것이다.

아합은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신 하나님을 잊었다.

   그는 자신이 승리의 주체자인 양 관용을 구하는 아람 왕의 신하들에게 짐짓 호기로운 반응을 보인다.

   이런 아합의 반응에서 여지가 있음을 파악한 아람 신하들은 계속 애원한다. (33-34)

"징조로 여기고"라는 말은 베로 허리를 묶고 목에 줄을 동여맨 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아람 왕의 신하들에 대한

    아합의 태도가 호의적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엄청난 수의 아람 군대를 두 차례나 물리친 데다가 이제 그들이 비굴한 태도로 애원을 하자

    아합은 이 일을 이루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경솔한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사실 벤하닷이 제안한 것은 전쟁에서 폐한 자로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합은 그 제안에 흡족해하면서 벤하닷을 병거에 태워 높이기까지 했다.

아합이 이처럼 벤하닷을 살려주고 그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여 약조를 맺은 것은 교만으로 인한 순간적 실수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의 판단은 나름대로 당시 중근동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것이었다.

    앗수르의 살만에셀 3세가 아람 족속을 대적하여 움직이고 있었기에 아람과 약조를 맺어 우호 관계를 맺으면 앗수르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을 한 것이다. (Expositor's Bible Commentary, Vol4, p. 157).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이었을 뿐 아합에게 두 차례의 이적적인 승리를 주신 하나님의 뜻은 전혀 무시한 것이었다.

 

2. 아합에게 심판이 선포됨. (35-43)

벤하닷을 살려준(불순종) 아합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자신의 판단대로 행한(불순종) 데 대한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포할 선지자를 새우신다. (35-37)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의 뜻대로 맨하닷을 살려 준 아합에게 심판을 선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무리 중에 한 사람을

   세우신다. (35~37)

친구에게 자신을 치라고 하면서 그대로 하지 않자 심판을 선포하는 선지자의 행동은 아합의 불순종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선지자가 친구를 향해 자신을 치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적인 정의 때문에 말씀대로 행하지 않은 그에게 심판이 내린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판단에 따라 거부한 그의 행동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벤하닷을 살려 준 아합의 죄를 상징하고,

   그의 죽음은 곧 아합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아합의 죄와 그에 대한 심판을 말씀의 형태가 아니라

   실제적인 사건을 통해 실물교훈으로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실물교훈은

   ① 선지자로 하여금 아합에 대한 심판을 생명을 걸고 단호하게 선포하게 했을 것이다.

   ② 그 예언 대상인 아합으로 선지자의 예언이 확실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했을 것이다.

2) 선지자가 아합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한다. (38-43)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아합에게 전할 심판을 암시했던 선지자가 이제 직접 아합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다. (38-40).

선지자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사로 가장한 선지자가 아합에게 부탁한 판결 내용은

   어떤 사람이 포로 한 명을 맡으면서 그를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경우 그 생명을 대신하든지, 은 한 달란트를 내야 한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 포로를 잃게 되었으니 어찌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이 사건에 대한 평결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 죄 값이 너무나 명백한 사건이기 때문에 아합은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41-43) 명쾌한 판결을 내린다.

   * 당시 은 한 달란트는 전쟁터에 나간 종으로서는 도저히 지불할 수 없는 엄청난 금액으로 결국 죽어야되었던 것이다.

아합이 판결을 내리자마자 선지자가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면서 아합의 판결대로 선포한다.

   ① 벤하닷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키도록 명한 포로였으며,

   ② 아합이 자의적으로 그를 살려준 것은 명백한 죄였으므로 이제 그 죄 값을 치러야 한다.

말씀에 불순종한 책임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 것이다.

    자신의 죄와 그에 따르는 심판을 스스로 고백함으로써 도무지 피할 수 없게 된 아합은 당할 심판을 인해 근심했을 뿐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3:19; 8:22; 55:7; 18:31)

 

묵상 및 적용

선지자가 아합에게 판결을 부탁하여 그의 죄악을 깨우친 방식은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를 지적했던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다윗이 즉시 회개, 자복한 반면 아합은 근심할 뿐이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지적하시는 것은 그를 정죄해서 멸망케 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멸망에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질책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해 무지했던 아합은 이런 사실을 몰랐기에 근심만 했을 뿐 회개하지 못했다.

아합의 모습은 죄의 짐을 지고 고통당하며 멸망을 향해 치달으면서도

   구원의 길을 외면하는 타락한 인간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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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