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19~23   보물을 하늘에 쌓음

신앙적 가치관의 정립

1-18절까지의 내용이 사람들의 종교적 삶에 관한 경고의 신앙적 지침이었던 것에 반해 이제부터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한다. 먼저 눅12:33,34과 병행을 이루고 있는 본 단락은 세속성, 가시성, 임의성을 상징하는 땅과 거룩성, 불가시성, 영원성을 상징하는 하늘과 대비시키고 있다. 이것은 비유적으로 이기적 탐욕의 충족을 위한 세속적 가치 추구의 무상함과 확고한 영원성, 안정성이 보장된 신앙적 가치 추구의 결과를 명확하게 대조시킴으로써 이중적 가치 추구의 불가함을 설파한다. 이는 곧 사람들이 현세적인 삶 속에서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한편 여기에 의거해서 성도들로 하여금 이러한 극단적인 두 가지 추구에 대해 전인격적 결단을 통한 단호한 신앙적 선택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1. 세속적 가치 추구의 폐해와 신앙적 가치 추구의 유익(19-21절)

눅12:33,34과 병행을 이루는 본문은 현세적인 삶의 안주와 이기적 탐욕의 충족만을 위해 보이는 것, 곧 일시적이고 임의적일 수밖에 없는 세상적 소유의 탐닉이 가져다 주는 결과적인 허망함을 '땅'(th'" gh'"테스 게스)이란 상징을 통해 피력함과 동시에, 이와는 대조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히11:1)에 의거한 신앙적 가치 추구의 온전한 유익이 하늘(ouvranw우라노)이란 상징 속에서 기술된다.

1) 세속적 가치 추구의 폐쇄
(Mh; qhsaurivzete uJmi'n qhsaurou;" ejpi; th'" gh'", ... kai; o{pou klevptai dioruvssousin kai; klevptousin메 데사우리제테 퓌민 데사우루스 에피테스, 게스…카이 호  클레프타이 디오뤼쑤시 카이 클레프투, 19절)
여기서 '보물'(qhsaurou;"데사우르스)이 가치 추구의 대상물을, '땅'(th'" gh'"데스 게스)이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세속적 가치의 속성을 각각 상징하고 있는 것이란 점에서 본문은 부정사 메(Mh)의 반복적인 동작을 명령할 때 사용되는 현대 명령법이 결합된 형태의 메네사우리제테(Mh; qhsaurivzete쌓아 두지 말라)와 함께 중지할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쌓기를 그만 두라;Turnur). 한편 여기서 휘민(uJmi'n너희를 위하여)은 20절(너희를 위하여)와 동일하게 개인적인 이익을 가리키는 여격 인칭대명사로 자신에게 있어 궁극적이고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가를 이하 문장과 함께 암시하는 전제의 역할을 한다(Wycliffe). 세스(sh;"좀)와 브로시스(brw'si;"동록)는 성경의 용례상 흔히 세상적 가치의 불완전성과 일시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등장한다(사51:8약5:2,3). 이는 곧 원어상 '보이지 않게 하다', '사라지게 하다'란 뜻의 아파니제이(avfanizei해하며)와 함께 세상적 가치 추구의 결과적 헛됨과 무상함을 적절하게 표현해 준다. 또한 '구멍을 뚫다'(dioruvssousi디오뤼쑤시)는 원어상 '흙을 파내다'란 뜻으로 당시 대부분의 집벽이 흙으로 되어있던 사실에 근거한 비유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헬라어는 '도적'(kleptai)을 '흙을 파내는 자'란 뜻의 토이코뤼코스(toivcoruvco")와 병행에서 사용한다. 따라서 본문은 세속적 가치의 내적 위험(좀, 동록)과 외적 위험(적)을 함께 내포하고 있기에 이러한 내적, 외적 위험의 경고는 세속적 가치의 불완정한 속성을 잘 반영한 것이다. 실로 본문은 배금주의와 물질 만능 사상이 팽배한 오늘의 상황 속에 영원을 사모해야 하는 성도들 각자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지향하고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의 실상임을 암시하고 있다.

2) 신앙적 가치 추구의 유익
(qhsaurivzete de; uJmi'n qhsaurou;" ejn oujranw'/데사우리제테 데 휘민 데사우루스 엔 우라논, 20절)
세속적 가치의 상징인 '땅'과 대조적으로 '하늘'(oujranw'/우라노)이 갖는 거룩성, 불가시성, 영원성의 상징을 통해 신앙적 가치 추구의 완전한 유익과 절대적인 안정성을 19절과 동일한 문맥에 부정불변사 우테(oujte)와 우(ouj)의 반복적 삽입으로 강조하고 있다.

3) 가치 판단의 결과
(o{pou gavr ejstin oJ qhsaurov" sou ... hJ kardiva sou호푸 가르 에스틴 호 데사우로스 휘몬…헤 카르디아 휘몬, 21절)
여기서 장소를 나타내는 불변사 호푸(o{pou)는 19절의 '땅'과 20절의 '하늘' 모두를 지칭한다. 이는 곧 '마음'(kardija카르디아)이 전인격적인 좌수로서 인간의 삶의 질과 행동 양식을 규정한다는 당시의 사상에 비추어 세속적 가치 추구와 신앙적 가치 추구의 결과가 극단적으로 상반된 삶의 양태로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상반된 삶의 양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과, 완전한 구원과 축복이라는 또 하나의 상반된 결과를 노출시키게 되는 것이다.

2. 몸의 등불로서의 성한 눈(22절)

눅11:34-36과 병행을 이루는 구절이다. 먼저 눈이 상징적으로 인간의 도덕적 행동 양식을 결정하는 마음을 가리킨다는 점(philo)에서 본문은 23절, 19-21절과 내용상의 연관성을 가진다. 곧 그 마음이 지향하는 바가 세속적 가치인가 신앙적 가치인가에 따라 그의 도덕적 삶의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먼저 올바른 눈(마음)이 지향하는 결과를 밝히고 있다.

1) 몸의 등불인 눈
(JO luvcno" tou' swvmatov" ejstin oJ ojfqalmov"호 퓌크노스 투 소마토스 에스틴 호 옵달모스, 22a절)
'눈'(ojfqalmov"옵달모스)은 유대인들의 관념적 내적 감정이 외적으로 표출되는 장소란 점에서 '마음의 창'으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여기서의 '눈'은 인간의 도덕적 양식을 결정하는 '마음'에 대한 상징으로 쓰여진 것이다. 그러나 문자적 의미에서의 '눈' 또한 그 보는 것에 따라 마음의 상태를 결정짓는 동인(動因)이 된다는 점에서 본문의 '눈'은 문자적, 상징적 의미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의미의 '눈'이 인간의 내적, 외적 행동을 규정하고 지칭한다는 점에서 '눈'은 '몸', 곧 그의 전인격과 전삶에 대한 등불로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2) 성한 눈
(eja;n de; oJ ojfqalmov" sou aJplou" h/게안데 호 옵달모스 수 하플루스 헤, 22b절)
여기서 '성하면'(aJplou"하플루스)은 원어상 '접힌 곳이 없는'이란 뜻에서 파생된 말로 '순수한'(KJV, Slngle), '단순한'(Simple), '명확한'(Clear), '건전한'(Sound) 등의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한 눈'이 문맥상 그의 전생애에 내적, 외적 유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그러한 유익을 줄 수 있는 '건강한' 눈이나 마음의 상태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겠다(RSV, Sound;NIV, good). 곧 이 성한 눈은 전문장과의 연계하에 오직 신앙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마음의 상태를 밝히는 것이다. 실로 이러한 상태만이 영원한 유익인 하늘의 상급을 받게 하는 근거가 된다.

3) 성한 눈을 소유한 결과
(o{lon to; sw'mav sou fwteino;n e[stai흘론 토 소마 수 포테이논 에스타이, 22c절)
앞 문장에서 언급한 성한 눈을 소유한 결과로써의 유익이 언급된다. 여기서 '온 몸'은 이미 언급된 바 있듯이 사람의 전인격과 전삶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밝을 것이요'(fwteino;n ejstai포테이논 에스타이)가 종교적, 도덕적 올바름의 상징적 묘사라는 점에 비추어 본문은 앞서 언급한 '성한 눈', 곧 신앙적 가치 추구에 전력을 다하는 자는 그 결과로 그의 전인격과 삶이 온전한 종교적, 도덕적, 올바름의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영원한 하늘의 유익을 얻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한편 역설적으로 본문은 그러한 올바른 형태의 전인격을 소유한 자라야만 참된 신앙적 가치를 판별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그 가치 판단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역동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3. 몸의 등불 역할을 하지 못하는 눈(23절)

22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구절로 신앙적 가치 추구에 전념하는 성한 눈과 대조시켜 본문은 세속적 가치 추구에 전념하는 상태를 묘사하는 '나쁜 눈'과 그러한 눈의 소유로 드러나게 될 절망적인 결과를 피력한다.

1) 등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나쁜 눈
(de; oJ ojfqalmov" sou ponhro;" h/데 호옵달모스 수 포네로스 해, 23a절)
본문에서 22절의 '성하면'과 대조적 의미로 쓰여진 '나쁘면'(ponhro;"포네로스)은 '악한', '악의적인'(evil, KJV)이란 원어상 의미 외에 '병약한', '(재물에 대해) 인색한'(LXX역)등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바, 이는 곧 '성한 눈'의 경우와는 달리 신앙적 가치 추구에만 전념하지 못하고 세속적 가치 추구에까지 미련을 두는 이중적 안목(시관 눈의 경우와 같이)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병든 눈은 결국 진정한 지향점을 찾지 못한 채 영적 소경의 상태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24절).

2) 나쁜 눈을 소유한 결과
(o{lon to; sw'mav sou skoteino;n e[stai홀론 토 소마 수 스코테이논 에스타이, 23b절)
'맑음'으로 언급된 '성한 눈'의 결과적 유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구절로 '나쁜 눈'의 결과가 '어두움'(skoteinov"스코테이노스)으로 나타난다. 곧 여기서 '어두움'(스코테이노스)은 완전한 암흑으로써 지척을 분간치 못하는 상태를 암시하는 말인 바, 나쁜 눈을 소유한 자는 결과적으로 진정한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영적 안목을 상실하게 되며 이로써 그의 전인격과 삶(온 몸)이 무모한 방황 속에 버려지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실로 이러한 자는 그 어두움으로 인해 실족하고 넘어지며 궁극적으로 영원한 사망의 심판적 형벌 속에 던지워지게 되는 것이다.

3) 결과적 경고
(eij outo; fw'" to; ejn soi; skovto" ejstivn, to; skovto" povson에이 운토 포스 토 엔 소이 스코토스 에스티, 토 스코토스 포손, 23c절)
다시 한번 나쁜 눈의 부정적 결과에 대한 경고가 부가적으로 기술된다. 먼저 '네게 있는 빛'(to; fw'" to; ejn토 포스 토 엔 소이)에서 '빛'(토 포스)은 원어상 일반적인 '빛'을 가리키는 말이나 본문에서는 22절에서와 같은 '등불'(oJ lucno"호 뤼크노스)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등불'이 성한 눈, 곧 신앙적 가치 추구의 결과로 주어지는 전인격과 삶에 대한 올바름의 상징적 형태란 점에 비추어 본문은 그러한 올바름을 상실한 채 어두움, 곧 그의 전인격과 삶이 악의적인 동기와 행동이 결과로 표출되고 드러날 때 그 결과가 얼마나 절망적인가를 '대단히 심중함', '대단히 큰', '얼마나 많은'이란 뜻의 상관 대명사(포손;얼마나)와 함께 반어법적으로 강조하여 경고한다. 한편 22,23절을 포함해서 19-21절에 언급된 신앙적 가치 추구의 결과적 유익과 세속적 가치 추구하는 24절과 연관된다. 결과는 오직 단 하나만의 진리를 판별하고 그에 따른 온전한 판단과 실천의 삶을 촉구하는 24절과 자연스러운 내용적 연관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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