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13~20   소금과 빛의 비유와 율법의 완성자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영향과 선하고 거룩한 율법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대한 중요한 책임을 주로부터 부여받았다. 이 책임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가가 기준이 된다. 주께서는 매우 구체적인 표현으로 아무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책임 범위를 명시하셨다. 또한 본문에서 주님은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이해와 관련하여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1. 세상의 소금과 빛(13-16절)
소금과 빛에 관련하여 사용된 '세상'(kovsmo"코스모스)은 땅을 의미하지 않고 세상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가 어두울 때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어느 때보다도 중시된다.

1) 세상에 대한 책임과 변질에 대한 경고
(JUmei'" ejste to; a{la" th'" gh'": eja;n de; to; a{la" mwranqh'/, ejn tivni aJlisqhvsetai휘케이스 에스테 토 하라스 테스 게스 에안 뎉 할라스 모란테 엔 티니 할리스데세타이, 13절)
할라스(a{la")는 호머(Hommer) 이후로 소금을 뜻하며, 시적으로는 바다를, 속담으로는 오랜 친구들을 의미한다. 소금이 양념과 방부제로서 지니는 특성과 의약상의 가치는 오늘날만큼이나 고대 세계에서도 보편적인 것이었다. 헬라 사람들은 소금을 '신과 같은 것'(Qei'n, 데이온)이라고 하였다(W.Barclay). 라틴시에는 "태양과 소금보다 더 유용한 것은 없다"(Nil utilius sole et sale)라는 구절이 있다. 예수 당시에 소금은 순결을 연상케 하였고, 가장 일반적인 방부제였으며, 음식에 맛을 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유용한 사람들로 인정받아야 하고, 삶의 기쁨과 행복을 전달해 줘야 한다(롬15:2갈5:22,23). 에안(ejavn만일)은 종속절의 초두에 오는 접속사이며, 가정법과 함께 사용되는데 어떤 환경하에서 기대되는 바를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모란데(mwranqh'/그 맛을 잃으면)는 모라이노(mwraivnw어리석은 것을 드러내다, 무미하게 만들다)의 단순과거 가정법 수동형으로 일회적으로 발생하는 동작을 나타낸다. 따라서 '맛이 없어진다면'이라는 의미가 된다(A.T.Robertson). 수리아와 팔레스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가운데 하나는 소금이 그 독특한 맛을 잃어 버려진 채로 쌓여 있는 모습니다(B.Scotts). 그리스도인들의 신앙도 이처럼 변질될 가능성이 다분하므로 세속과의 타협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 필요하다(약4:4).

2) 세상을 비추는 빛
(JUmei'" ejste to; fw'" tou' kovsmou휘메이스 에스테 토 포스 투 코스무, 14절)
코스모스(kovsmo"세상)는 '세계, 인류'를 의미하는데, '우주'로서 쓰인 이 단어의 첫 번째 용례는 우주 자체보다는 오히려 전체성을 이루고 있는 질서를 가리키다가 후대에 이르러 이 질서에 의해 이루어진 우주를 가리키게 되었다(H.Sasse). 계시의 빛이 없을 때 이 세상은 영적인 암흙 상태가 된다(Smith).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의 영역이 어두움의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중시된다(엡5:11). 포스(fw'"빛)는 문자적 의미에서 전이되어 '착한 행실'을 가리킨다. 빛은 보는 매체이고 보아야 할 목표이다. 빛은 자유, 구원, 희망을 가져다 준다. 영적 빛은 하나님의 현현을 동반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들(엡5:8)이므로 빛의 열매를 내도록 힘쓰는 것이 마땅하다. 의로움과 착함, 진실함으로 세상을 비추지 못하면 사람들은 여전히 영적인 흑암 가운데서 행하게 되어 있다(엡6:12).

3) 모든 사람에게 비치는 등불
(uJpo; to;n movdion ajll! ejpi; th;n lucnivan, kai; lavmpei pa'sin toi'" ejn th'/ oijkiva/. ou{tw" lamyavtw to; fw'" uJmw'n e[mprosqen tw'n ajnqrwvpwn휘포 톤 모디온 알 에피텐 뤼크니안 카이 람페이 파신 토이스 엔 테오이키아 후토스 람프사토 토 포스 휘몬 엠프 로스덴 톤 안드로폰, 15,16절)
휘포(uJpo;)가 장소에 대한 목적격과 함께 쓰일 때 일반적 의미의 '아래, 밑에'라는 뜻과 세력, 통치, 지배, 명령 등의 '아래'를 의미한다. 모디오스(movdio"말)는 곡물을 되는 용기를 가리킨다(W.Baner). 이 예화는 가난한 농가의 생활상과 관계가 있다. 그 집은 방이 하나뿐이어서 조그마한 등 하나로 집안 전체를 밝히기에 충분하였다(F.F.Bruce). 등불을 말 아래에 두는 일은 없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은둔코자 해서는 안 된다. 세상 속에 주를 증거해야 한다(행1:8). 오이키아(oijkiva/집)는 오이코스(oi"집)보다 좁은 의미로 쓰여서 오로지 집만을 가리키나 신약은 이 단어를 집뿐 아니라 가옥을 지칭할 때에도 사용하고 있다(10:12). 심지어는 '재산'을 가리키기도 한다(막12:40). 람프사토(lamyavtw비취게 하여)는 람포(lampw비취다)의 부정과거 명령법으로 비취게 한다는 어떤 사건, 사실에 대한 동작을 명령한다. 이는 예수의 제자들이 처신해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통하여 하늘 아버지로부터 받은 빛을 그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세상에 비취도록 허락된 사람들이다(Tdnt). '람프사토'가 명령형이라는 사실은 주의 권고가 지닌 권위와 비중을 잘 알게 한다. 등불을 켜는 목적이 집안을 밝게 비추는 것이든, 주께서 성도를 새로 지으신 목적 중 어느 하나도 이 세상의 어두움을 내어 쫓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빛을 비추는 것은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다. 빛의 근원이요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Smith).

2. 율법을 완전케 하려고 오신 그리스도(17-19절)

율법에 관한 주의 교훈은 복음서의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율법의 영원성을 제시하시며, 여러 번에 걸쳐서 유대인들이 소위 율법이라고 규정한 것들을 파괴하셨음에도 랍비들이 넘어설 수 없는 외경심을 가지고 율법에 대해 언급하는 것처럼 보인다(W.Barclay).

1) 율법을 완전케 하려 오신 예수
(Mh; nomivshte o{ti h&lqon katalu'sai to;n novmon h] tou;" profhvta": oujk h&lqon katalu'sai ajlla; plhrw'sai메 노미세테 호티 엘돈 카탈뤼사이 톤 노몬 에 투스 프로페타스 우크 엘돈 카탈뤼사이 알라 플레로사이, 17절)
노미세테(nomivshte생각지)는 노미조(nomivzw생각하다, 간주하다)의 단순과거 가정법으로 본문에서는 부정사 mhv(메;아니)와 함께 명령이나 권고를 표시한다. 이는 그리스도를 과격주의, 율법 파괴주의자로 오해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옳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그분에 대해 지독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사사건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곤 했다. 카탈뤼사이(katalu'sai페하러)는 카탈뤼오(kataluvw파괴하다, 무효케 하다)의 단순과거 부정사인데, 부정사는 목적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그리스도는 구약 전체를 일컫는 율법과 선지자를 무효케 하고자 오신 것이 아니다, 그분의 행동이 율법학자의 행동과 상치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되, 율법이나 예언을 무가치하다고 폐기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사34:16).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신약이 나오기까지는 구약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플레로사이(plhrw'sai완전케 하려)는 단순과거 부정사로서 목적의 의미로 쓰였다. 주께서 자신을 율법의 완성자로 말씀하신 것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다만 형식적으로 지킨 것과는 달리 본래의 의의(意義)대로 완전히 이루고자 오셨음을 공포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율법은 완성하고 그것이 나타내려고 하였던 깊은 의미를 완전히 보여주시려고 오셨다(McNeile).

2)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는 율법
(ijw'ta e}n h] miva keraiva ouj mh; parevlqh/이오타 헨 에 미아 케라이아 우 메 파렐테, 18절)
이오타(ijw'ta일점)는 희랍어 모음문자(i)이며, 히브리어 알파벳 가운데서 가장 작은 글자인 요드(y)를 표시하기 위해 쓰였다. 케라이아(keraiva뿔, 획)는 글자의 한 부분으로서의 '뿔, 모양 혹은 돌출부)를 가리킨다(W.Bauer). 파렐데(parelqhv/없어지지)는 파레르코마이(parercomai지나가다, 사라지다)의 단순과거 가정법으로 단순한 과거 사실을 나다낸다. 우 메(ouj mh;:반드시…아니하고)는 미래의 사건을 가장 결정적으로 부정한다. 여기서 이 말은 알파벳의 이오타(i)도, 쉼표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Moffat).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기 때문이다(딤후3:16).

3) 계명을 대하는 바른 태도
(luvsh/ mivan tw'n ejntolw'n touvtwn tw'n ejlacivstwn kai; didavxh/ ou{tw" tou;" ajnqrwvpou" ... poihvsh/ kai; didavxh/, ou|to" mevga" klhqhvsetai뤼세 미안 톤 엔톨론 투톤 톤 엘 라키스톤 카이 디닥세 후토스 투스 안드로푸스…포이에세 카이 디닥세 후토스 메가스 클레 데세타이, 19절)
뤼세(luvsh버리고)는 뤼오(luvw풀다, 깨뜨리다, 폐지하다)의 단순과거 가정법으로 '버린다'는 사실 자체를 표현하고 있다(W.Bauer). 엘라키스톤(ejlacivstwn지극히 작은 것)은 미크로스(mikro"작은)의 최상급으로 '가장 작은 것'을 가리킨다. 엔톨레(ejntolhv계명)는 계명이나 율법을 의미한다. 주께서 주신 계명은 인간의 객관적인 평가에 관계없이 모두가 권위있고 가치를 지닌 것이다.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율법의 특별한 명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쓰일 때 매우 엄숙한 종교적 의미를 지닌다(G.Schrenk). 히브리어에서는 주로 미츠바(hb;zmiCommand)나 페쿠딤(mydiWqP]Precepts of God)의 번역어로 나타난다. 계명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롬7:12). 포이에세(poihvsh행하며)는 '포이에오'(poievw행하다)의 단순과거 가정법으로 단순히 '행한다'는 사실 자체를 표시한다. 70인역(LXX)에서는 이 말이 하나님의 창조자로서의 활동과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활동 등에 대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남을 가르치거나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면 먼저 주의 교훈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만 하고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다(23:3). 율법의 사소한 요구를 피하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작은 상급을 받게 된다.

3. 좁고 협착한 천국의 문(20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義)에 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안이하게 일상에 대처하려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종을 울려 준다.

1)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
(perisseuvsh ... plei'on페리슈세…플레이온, 20절)
페리슈세(perisseuvsh낫지)는 페리슈오(perisseuvw탁월하다, 뛰어나다)의 단순과거 가정법으로 단순히 사실을 표시하며, 강물이 둑을 넘쳐 흐르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이다(A.T.Robertson). 플레이온(plei'on더)은 폴뤼스(poluv"많은)의 비교급으로 수나 양에 있어서 '더 많은'을 의미한다. 이는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의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의 의보다 월등하게 탁월해야 함을 나타낸다. 결국 율법을 문자대로 준수하려는 율법적인 의를 가지고서는 천국 입성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사람도 의롭게 될 수가 없다(롬3:20). 유대인들도 모세의 법전을 단지 외형적이며 비영적(unspiritual)으로 적용시킬 뿐이었으므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다(롬9:31).

2) 그리스도인의 의
(uJmw'n hJ dikaiosuvnh휘몬 헤 디카이오쉬네, 20절)
디카이오쉬네(dikaiosuvnh:의)는 70인역(LXX)에서는 강력한 법적 및 언약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히브리어 체덱(qr,x,righteousness)의 역어이며, 이는 인간의 의와 관련될 때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전1:30). 이러한 의는 정통적 경건주의자들의 형식적인 삶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므로(엡2:8,9), 아무도 스스로 자랑하거나 자만해서는 안 된다. 신자의 의의 근거는 그리스도이시다(롬3:21,22,Wycliffe). 스스로 얻은 의는 참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3)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
(ouj mh; eijsevlqhte우 메 에이셀데테, 20절)
우 메(ouj mh;못하리라)는 강한 부정을 나타낸다. 에이셀데테(eijsevlqhte들어가지)는 에이세르코마이(eijsevrcomai들어가다, 들어오다)의 단수과거 가정법으로 연속이나 확장의 의미가 없고,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를 표현한다.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가진 의, 즉 율법적인 의를 가지고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음을 강력하게 경고하는 말씀이다. 인간은 율법의 요구에 대해 무능력하며,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함이 불가능하다(W.Barclay). 율법의 요구를 이론적으로 완전히 만족시킨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의의 수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유대 경건주의의 함정이 이것이었다. 그들은 일의 순서를 바꿔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후에 원하는 것들을 해야 한다(22:36-38, Augus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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