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4:12~17   갈릴리 사역의 시작

세례와 시험을 거치신 후 갈릴리 지방에서 복음 전파 사역 시작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께서 모세의 홍해 도하에 해당하는 '세례'와 40년 광야 경험인 '시험'의 과정을 마치신 후 드디어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신다. 본래 시간적인 순서에 무관심한 편이었던 마태는 시험과 갈릴리 전도 시작까지의 근 1년에 가까운 예수의 유대 전도를 생략하였다. 공관복음서는 일관되게 예수의 갈릴리 전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

1. 전도의 근거지를 확보하심(12,13절)

예수께서 갈릴리 전도를 시작하신 상황에 대해 마가복음이 간략하긴 하지만 본서와 거의 일치하며(막1:14), 누가복음은 요한의 잡힘에 대해 생략하고 있다(눅4:14).

1) 요한의 사로잡힘
(!Akouvsa" de; o{ti !Iwavnnh" paredovqh아쿠사스 데 호티 요안네스 파레도데, 12a절)
예수의 갈릴리 사역은 세례 요한이 일년 이상 장기적으로 옥에 갇힘으로써 선구자의 활동이 막을 내리자 시작되었다. 즉 예수가 유대에서 활동할 때에는 요한과 함께 사역한 것이 되지만 이제 요한이 잡힘으로써 예수 혼자 사역하게 되었음을 마태는 기록하고 있다. 이 구절은 예수가 갈릴리에 돌아오시게 된 이유가 요한이 감옥에 갇혔기 때문이라는 뉘앙스를 함축하고 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인상을 주는 예수의 갈릴리로 오심이 요한의 사로잡힘을 '들으시고'에 해당하는 아쿠사스(!Akouvsa")라는 부정과거분사의 시제적 용법에 함축되어 있다(F.Rienecke). 이와 같은 마태의 기록은 세례 요한이 예수그리스도를 위한 선구자적인 사람이었다는 인식을 통해서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요한은 자신이 늘 말했던 것처럼 자신보다 능력이 더 크신 이가 올 때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는(3:11) 인물로 살다가 삶을 마칠 사람이었다.

2) 갈릴리 나사렛으로 물러가심
(ajnecwvrhsen eij" th;n Galilaivan아네코레센 에이스 텐 갈릴라이안, 12b절)
'물러가셨다'로 번역된 아네코레센(ajnecwvrhsen)은 본래 '가다, 출발하다'라는 뜻이었으나 때때로 '위험으로부터 탈출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H.H.Moulton & G.Milligan). 그러나 흠정역성경(KJV)은 이것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떠났다'라고 번역하고 있으며(TEV), 국제공인역(NIV)도 역시 '되돌아갔다'라고 약한 의미로 기록하지만, RSV나 NASB는 강한 의미로 '숨으셨다'라고 정확한 뜻을 살리고 있다. 이렇게 '위험을 벗어났다'는 의미가 아네코레센의 올바른 뜻이라면, 마태는 이 단어를 통해 그가 생략한 예수의 유대 전도 때의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예수께서는 같은 시기에 비슷한 장소에서 사역하던 요한이 잡힘을 들으시고 자신에게도 닥칠 위험을 피해 갈릴리 지방으로 물러나 그의 고향 나사렛으로(13절) 피신하신 것이다. 아직 예수가 잡히거나 사역을 중단당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3) 갈릴리 전도의 근거지가 된 가버나움
(ejlqw;n katwv/khsen eij" Kafarnaou;m th;n paraqalassivan ejn oJrivoi" Zaboulw;n kai; Nefqalivm:엘돈 카토케센 에이스 카파르나움 텐 파라달라씨안 엔 호리오이스 자불론 카이 네프달림, 13절)
누가에 의하면 예수께서 나사렛을 떠난 이우는 나사렛인들의 배척 때문이었다(눅4:29-31). 하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예수의 전도 사역이 잠시 위험을 피해 온 그의 고향에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수가 이주하신 곳은 가버나움으로서 다른 복음서들 역시 가버나움이 예수의 갈릴리 전도의 근거지가 되었다고 기록하지만, 그 이주를 기록한 사람은 마태뿐이다. 그래서 가버나움은 예수의 '본 동네'(th;n ijdivan povlin 텐 이디안 폴린, 9:1)가 되었다. 마태는 특히 메시야 예수가 가버나움에 거주하신 사실에 대해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F.F.Bruce). 이것은 특히 가버나움이 이방인들의 왕래가 빈번한 해변의 어시장이었다는 점에서 본서를 읽는 유대인 청중들에게 도전을 줄만 했다. 역시 이방인들인 동방 박사의 내방 때에도 그랬지만(2:1-12),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된 곳이요 복음 전파의 중심지가 유대 지방이나 그런 도시가 아니었다는 점은 바로 복음의 우주성, 즉 탈유대주의적 성향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실은 마태의 독특한 기사인 이사야 예언의 인용 부분(14-16절)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한편 예수께서 이곳 가버나움을 베들레헴과 나사렛에 이은 제3의 고향으로 삼으시고 정착해 사신 것은(katwv/khsen카토케센) 복음 전도를 위한 그의 열정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증거이다. 또한 복음 전도를 위한 합리적 사고 방식도 보여주신다. 성직자들의 고집과 편견이 가득했던 유대 지역이나 심한 지방색과 질투심과 편견을 가졌던 나사렛 지역이 아니라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고 비교적 큰 마을인 가버나움을 선교의 근거지로 택하셨기 때문이다.

2. 예언을 이루심(14-16절)

마태는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 달리 예수의 가버나움 정착을 의미있게 다루면서 그 일이 구약 예언에 근거한 매우 중요한 일임을 시사하고 있다.

1) 예언의 자유로운 인용
(i{na plhrwqh'/ to; rJhqe;n dia; !Hsai?ou tou' profhvtou levgonto" ... Galilaiva tw'n ejqnw'n, 히나 플레로데 토 흐레덴 디아 에사이우투 프로페투 레곤토스…갈릴라이아 톤 에드논, 14,15절)
이 부분(14,15절)은 마태의 독특한 기사로 사9:1,2의 인용이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복음서 기자들이 70인역을 인용하는데 반해, 마태는 이 부분에서 히브리어 본문에서 자유롭게 인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구약 본문의 상황에 매이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사실상 바울 등 신약 저자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본문에서 마태는 본래의 구약성경이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요단강 저편 해변길과 이방의 갈릴리'와 연결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항목들 모두를 연결시켜 16절의 '빛을 보았고'와 '빛이 비취었도다'에 연결되도록 하였다. 구약 본문에는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마태는 예수가 정착하신 가버나움과 연관있는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이 장차 가지게 될 의미에 대해서 암시적인 전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야말로 빛을 드러내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태뿐 아니라 신약 저자들은 예수그리스도가 모든 일의 중심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신약성경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야 말로 진정한 진리요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i{na plhrwqh'/ to; rJhqe;n히나 플레로데 토 흐레덴)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예수가 이루신 독특한 방법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뜻한다.

2) 어두운 지역의 소외된 자들에게 전도하심
(oJ lao;" oJ kaqhvmeno" ejn skovtei fw'" ei&den mevga, kai; toi'" kaqhmevnoi" ejn cwvra/ kai; skia'/ qanavtou호 라오스 호 카데메노스 엔 스코데이, 토이스 카데메노이스 엔 코라 카이 스키아 다나투, 16c,c절)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자들을 찾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함이었다. 이사야의 예언은 이스라엘왕 베가 때에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이 침범하여 곤란을 겪다가 해방된 상황을 조망하고 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생명과 구원의 빛을 얻을 것이다. 오늘날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따라 소외된 자들을 향한 복음 전파를 위해 교회와 개인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3) 빛되신 그리스도
(fw'" eimevga, fw'" ajnevteilen aujtoi'"포스 에이덴 메가 포스 아네테일렌 아우 토이스, 16b,d절)
마태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함은 영적인 어두움과 사망의 그늘 아래 놓여 있던 곳에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새로운 빛이 비추어진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A.H.McNeile). 이 빛은 성경에서 지정한 지식이거나(시36:9)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생활(엡4:15,24), 기쁨(시97:11) 등을 가리키지만 흑암의 세력에 대한 반대어로 쓰인 '빛'(fw'"포스)이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요1:9사49:8).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둠의 세력에 있던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참다운 지식을 가지고 구원의 기쁨으로 가득 차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바로 빛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므로 그 빛을 세상에 널리 전하는 사명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3. 복음 전파의 메시지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17절)

예수께서는 갈릴리 전도를 위한 근거지를 확보하신 후 드디어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신다. 비록 1년 동안이나 유대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셨지만 이 갈릴리 지방에서의 첫 전파는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1) 공식적인 갈릴리 전도의 시작
(!Apo; tovte h[rxato oJ !Ihsou'"아포 토레 에륵사토 호 예수스, 17a절)
'이때부터'에 해당하는 아포 토테(!Apo; tovte)는 신약에서 마태 외에는 누가만 1회(눅16:16) 사용한 표현으로 마태가 자주 쓰는 매우 중요한 부사이다. 먼저 본절에서는 예수의 공식적인 갈릴리 전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고, 두 번째 등장하는 16:21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신 시점이고, 26:16은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기 시작한 때이다. 즉 이 단어를 통해 마태는 예수의 공적 사역, 수난 예고, 수난의 동기 등 매우 중요한 예수 생애의 전환점을 명시한 것이다.

2) 천국을 선언함
(khruvssein kai; levgein ... hJ basileiva tw'n oujranw'n케뤼쎄인 카이 레게인…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17b,c절)
'전파하여'에 해당하는 케뤼쎄인(khruvssein)은 3:1에서 세례 요한의 설교에 대해서도 사용된 단어로 마태가 이 단어를 예수의 천국 전파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것은 이미 옥에 갇힘으로써 중지된 요한의 사역을 예수가 이어간다는 것을 나타낸다. 본래 이 동사는 '대사(大使)'에 해당하는 케뤽스(khvrux)에서 파생했다. 즉 이 동사는 '준비하면서 외치는 대사의 외침'을 뜻한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이 동사는 대사 혹은 선구자가 아닌 예수의 선포를 묘사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마태가 이 단어를 예수에게 적용하는 것은 세례요한의 사역을 잇는 예수의 사역 곧 하나님 나라의 복음 사역의 연속성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이것은 예수의 메시지가 요한의 것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3) 회개하라는 복음을 전파함
(Metanoei'te: h[ggiken ga;r메타노에이테 엥기켄 가르, 17c절)
이 메시지는 바로 세례 요한의 메시지와 일치한다(3:2). 세례 요한은 천국의 도래와 함께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선포하였었다(F.F.Bruce). 그러나 선구자요 대사인 요한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외친 것과 그리스도가 오셔서 직접 선포한 외침이 같을 수가 없다. '회개하라'에 해당하는 메타노에이테(Metanoei'te)는 히브리어 슈브(bWv돌아서다, 회복하다, 새롭게 되다)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과 아울러 그 생활의 성향도 변화됨을 뜻한다(G.F.Moore). 세례 요한이 이 메시지를 전하면서 세례를 베풀 때 그에게 온 많은 사람들에게 각각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지적해 준 것도(눅3:7-18) 바로 회개의 근본적인 의미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러한 회개의 권유를 통한 천국의 입성이야말로 복음의 핵심 내용이며 모든 청중들이 깊이 새겨야 할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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