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과 관습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 11:25~26)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

 

벌써 지난해가 되고 말았으니 한파로 오들오들 떨던 지난날을 잊게 되었다. 날씨가 따뜻해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 태양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3월 22일 입춘이 지나고 곧 부활절이다. 벌써부터 부활절을 알리는 상인들의 목소리는 크지만 마음에 다가오지 않았으나 이제사 부활절이 마음에 다가온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올해는 부활의 의미와 부활절 그리고 관습상 부활의 상징이된 계란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고자 했다.

부활에 대해서야 필자가 말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니 부활절에 간단히 살펴보자면 기독교 강요 제2권 제14장에는 부활절이란 우리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매년 지키는 절기이다. 그리고 또한 부활절 주간에는 부활주일을 지킨다. 이 부활절은 가장 오래 되고 큰 절기로서, 아주 고대로부터 지켜온 절기이다. 부활절을 교회에서 중요하게 지키는 이유는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 주제이기 때문이다. 부활절 이전 40일 간은 사순절(四旬節, Lent, 해당 항목 참조)로 지켜지며, 부활절은 부활주일 후 40일 간, 즉 승천일(Ascension Day)까지 계속된다. 초대 교회 때에 부활절은 초신자들(학습교인들)에게 세례를 주고, 범죄한 교인들 중 회개한 자들을 성찬식에 다시 참석케 해준 특별한 절기였다. 1-3세기에 알렉산드리아교회와 로마교회는 부활절 날짜의 계산법에 관하여 의견을 달리했었다. 그러나 니케아회의(A.D.325년) 이후에는 부활절의 날짜가 유대인의 유월절을 기준으로 하여 니산월 14일 경의 주일날로 결정되었다. 따라서 부활절의 날짜는 3월 21일 - 4월 25일 어간에 놓이게 되었다. 베데(Bede)에 의하면, 부활절에 해당하는 영어 Easter는 앵글로 색슨족의 한 여신(女神)인 Eostre -이 여신의 출제가 봄에 거행되었음- 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활절'에 대한 원래의 명칭은 Pascha인데, 이것은 유대인의 유월절(Passover)과 관련되어 있다.

 

부활절 날짜를 정하는 법에 대하여 알아보자: 춘분(3월 21일경) 다음의 만월(滿月: 부활절 달)이 지난 후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 부활절 달(paschal moon)은 황금수(서기 연수에 1을 더하여 19로 나눈 나머지 수)와 태양력과 태음력의 1년의 날수 차이(약 11일)로 계산하는데, 이는 천문학상의 만월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만일 이 만월이 일요일일 경우 그 다음 일요일이 부활절이 된다. 따라서 부활절은 대개 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가 될 수 있다.

 

부활절 관습: 부활절 의식에서 많은 민족적 풍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중에는 유럽인의 고대예식과 상징적 표현에서 전래된 것이 많으며, 부활이라는 주제와 관련있는 중동 이교도들의 봄의 축제들로부터 유래된 것도 있다. 이 풍습들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예를 들어 사순절 기간 동안 먹지 못하게 되어 있던 달걀이 이 의식에선 새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풍요의 상징이었고 후에 유럽에서도 역시 같은 상징으로 쓰였던 큰 산토끼가 북아메리카에 서식하지 않으므로, 그보다 작지만 인간의 풍요와 달의 주기(週期)를 상징하는 부활절 산토끼로 대체하여 준비한 달걀과 함께 둥지에 넣거나, 달걀을 멀리 감추어 아이들이 찾도록 하는 놀이가 부활절 풍습으로 이용된다.

 

한국의 부활절은 가톨릭교회에선 '예수 부활 대축일'이라 하여 전례서가 정한 대로 예식을 행한다. 이와는 달리 개신교에서는 1947년 교파에 관계없이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으나, 1960년대에는 분열과 대립으로 별도의 행사를 가졌다. 1978년 다시 통합되어 대도시별로 부활절 새벽에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달걀에 채색하고 장식하여 선사하기도 한다.

 

부활절의 계란의 유래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우린 각자 누구인가를 생각해보자. 작은 계란하나의 생명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랑 말이다. 우리는 누구처럼 살아가는가? 절대로 못된 신하 갖지 않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남편이 십자군 전쟁에 나간 사이 못된 신하에 의해 재산과 집을 다 빼앗긴 로자린이란 한 귀족출신 여인과 하인이 긴 여행과 추위로 지친채로 한마을에 도착 하였다.

그 마을 사람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선량하고 친절했던 로자린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마련해 줌으로 그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로자린에게는 소중한 닭 한마리가 있었다. 로자린은 닭을 정성껏 길렀다. 얼마 후 부활절이 다가오자 그녀는 친절한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어서 부활절 아침 일찍 마을 어린이들을 뫃아놓고 “ 자 여러분, 지금부터 숲에 가서 각자 자기나무를 만들어 놓고 오세요. 그리고 나서 함께 부활절 식사를 하도록 해요”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은 환호를 지르며 숲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와 아침식사를 마치자 다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숲속에 가보세요. 자기 나무를 찾아서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보세요” 숲을 다녀온 어린이들의 손에는 예쁘게 색칠한 달걀이 하나씩 쥐여 있었고 거기에는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손길을 믿어라.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있는 사람,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위하여 반드시 도와 주신다”라는 로자린 집안의 가훈이 쓰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부활절 선물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날 오후, 동네에 한 초라한 소년이 나타났다. 그 소년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집으로 달려가든 길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로자린은 그 소년에게도 계란을 쥐어주며 부모님께 드리라고 했다. 소년은 길을 떠났고, 한참 동안 길을 걷든 소년은 쓰러져 있는 한 병사를 만났는데, 이 군사는 굶주림과 병으로 지쳐 있어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소년은 오랜 망설임 끝에 선물로 받은 계란을 병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병사는 계란에 쓰여져 있는 글이 자기 집안의 오래된 가훈인 것을 발견하였다.

“이 계란을 누가 주었니?”

“저 윗동네에 사시는 한 아주머니가 주었어요.”

그 병사는 전쟁터에서 병들어 집에 돌아 왔으나 집과 아내가 없어져 방황하고 있던 로자린의 남편이었다. 소년의 이야기를 들은 병사는 결국 그 계란을 통해 사랑하는 아내 로지린을 만나게 되었다.

 

그날 이후 이 부부는 매년 부활절이 되면 계란에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였는데, 이것이 부활절 계란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 부탁의 말씀 --------------------

부디 이런 허황된 경력을 넣어서 수모를 당하지 않도록 해 주시길 바랍니다.

수도원을 하는 사람에게 고려수도원 원장 하나면 되었지 안나요?

그래서 이 글로 마지막으로 아시고 더 이상 욕을 먹고 싶지 않습니다.

승낙없이 수차례 이런 광고를 내보냄으로 인한 피해는 심히 괴롭습니다.

광고도 이제는 그만. 마음 내키지 않는 글 억지로 쓰는 것도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귀사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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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