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신앙생활 / 내적수련

                                               e-세상의 빛 원고

 

관상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나 되어 주시는 은총의 삶을 추구하는 필자에게내적수련에 대한 글을 요청하였으나 단순히 내적수련이라는 주제를 다루기엔 어려운 부분 같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한 방편으로서내적수련에 대해 조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마치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이나 고양이 길들이듯이 사람의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길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들과는 달리 사람은 각기 내면의 자아가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혹자는 반대할지 모르지만 필자는 사람이 태중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체험한 모든 일들이 내면에 기억되어 이것들이 자아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의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으로 압니다. 이것을 우리는 거짓자아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거짓자아로 충만해 있기에 예수님께서 공생애 시작하시면서 먼저 외치신 것이 회개하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를들면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혹은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9:45~47, 18:8~9).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려면 찾고자하는 방향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거짓자아를 버리고 내면의 수련을 하기 위하여 애쓰지 않으면, 영적으로 왕성한 상태는 일시적인 위로를 줄뿐이며, 이것이 사라지면 같은 문제를 안고 그곳으로 되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는 내면의 요소를 수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거나 마음먹는가에 따라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마음이나 생각을 바꾸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돈만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드는 사람이 있다 합시다. 이 사람이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기로 결심했다면 어떤 상황이 일어날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사람의 성품을 바꾸어 주님의 성품으로 변화되게 하는 것이 내적수련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본성 때문이지요. 이런 일은 하나님의 성령의 은총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정화하면서 하나님 은총을 기다려야 합니다. 조용히 자신의 거짓자아를 들어내며 주님의 은총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하나님의 현존)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11,21)

 

주께서 우리와 하나 되어 주신다는 것은 사랑의 주께서 사랑으로 우리와 하나 되어 주십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내적수련을 쉬지 않고 있습니다.

 

영적 성장을 위하여서는 물론이요, 영적변화를 추구합니다. 거짓자아가 끈질기게 따라다니기 때문에 어떤 열정적인 기간이 끝나면 우리의 낡은 유혹들은 다시 고개를 듭니다. 그렇기에 내적수련은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총으로 내면의 영적변화가 일어나면 지속됩니다. 주님이 하십니다. 이러한 내면의 수련을 위해서는 진정한 믿음과 갈망이 필요합니다.

 

내면의 수련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주께서 내면의 변화를 이루어주신다는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곧 실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갈망하고 오직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나아가시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하나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랍니다.

 

이는 어떤 수련의 시간이나 질량에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이 보시기에 적합한 때에 은총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알려하십시오. 그리하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나 여기 있다고 얼굴 비추이실 것입니다. 한 가지 충고드릴 것은 하나님은 보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려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판단하시어 그분께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영적 욕심마저도 버려야 하나님을 관상(觀想)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관상(觀想) 즉 하나님을 본다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영광이시라 우리가 하나님을 보기엔 불가합니다. 다만 우리가 음식 맛을 본다할 때 이는 맛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혀로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의미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한다는 의미로 알아야 합니다. 저희 수도원으로 찾아오시는 분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눈으로 보려합니다. 그분들은 환상이나 환청 등 눈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현상일 뿐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임재(현존) 인식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임재(현존)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 더 좋은 신앙생활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나무라거나 방향을 바꾸어 주시지 않아도 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여주려고 애쓰시겠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긴급히 하실 일이라든가 특별한 소명이 있을 때에야 다르겠지만 일상생활에서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뜻을 기다리며 조용히 기다리며 언제나 순종하기 위하여 귀를 기울이고 대기하는 성도가 더 잘하는 신앙생활이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5:8)

마태복음 5장 산상보훈에서 주님의 모든 복은 천국에 들어가는 복이지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복은 단 한 가지 마음을 청결케 하는 것입니다. 내면의 수련은 곧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을 청결케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다리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6:33)

 

우리 내면을 정화하고 조용히 하나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현존 가운데서 그분의 뜻을 깨달았다면 이제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여 행하시면 됩니다.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필요한 것은 주의 성령이 함께 하시며 주님의 뜻을 행하는데 도와주시기를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주께서도 감람산에서 세 번 기도하실 때 주의 성령이 도와주실 것을 구했으나 저와 여러분들이야 날마다 밤낮으로 구해도 보족하리라 믿어집니다.

 

외형지향적인 오늘의 세상에서 많은 성도가 천주교 불교로 전향하는 이유를 보십시오. 그들은 내면의 종교따라 간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를 살펴보시면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것이 보일 것입니다.

진정한 내면의 수련 즉 금욕주의는 세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모든 것을 받아들여 이것들을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지면 관계로 마쳐야 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삶의 핵심은 그 원리나 조직에 있지 않고 내적수련에 있습니다. 모든 성도님께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관상적인 삶을 각자의 현장에서 이루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성도에게 은총을

 

 

   

원고가 부실하여 죄송합니다.

 

 내적수련.hwp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