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참된 관상가는 활동생활을 중시하지 않고, 남들이 자기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자기를 험담하는 자들을 반박하지 않는다.

    누가가 우리에게 전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 주님께서 마리아의 자매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 계시는 동안 마르다는 내내 그분의 식사준비로 바쁘게 움직인 데 반해서, 마리아는 줄곧 그분의 발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온통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그녀는 언니의 분주한 활동(이것은 선익하고 성스러운 일로서, 활동생활의 첫번째 단계가 바로 이것 아니겠습니까?)에도, 그분의 더없이 귀하고 신성하고 완벽한 육신에도, 그분의 아름다운 육성과 말씀들(이는 활동생환의 두 번째 단계이자 관상생활의 첫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만큼 일종의 발전인 셈입니다.)에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찾고 있었던 것은 오직그분의 인성에서 나오는 말씀들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분의 신성에서 나오는 지고한 지혜, 그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을 다하여 이 지고한 지혜를 응시했습니다. 그리고 보거나 듣는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마냥 고요하게 거기 앉아서 심원한 환희와 절박한 사랑으로 자신과 하나님사이에 가로놓인 이 드높은 무지의 구름 속으로 열심히 팔을 내뻗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이승에서는 제아무리 순결하고, 제아무리 황홀한 기쁨 속에서 하나님을 관상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중재 역할을 하는 이 고상하고 경이로운 구름이 반드시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사랑의 은밀한 움직임들을 수 없이 체험했던 곳도 바로 이 구름 속이었습니다. 왜냐고요? 왜냐하면 우리가 지상에서 터득할 수 있는 가장 높고 가장 성스러운 관상의 경지가 다름 아닌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단계' (눅 10:41)에 있던 마리아는 지상의 그 무엇도 움직이도록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자매 마르다가 우리 주님께 불평하면서 모든 일을 자기 혼자서 하도록 놓아두지 말고 마리아에게 일어나서 자신을 거들도록 해 달라고 청했을 때 마리아는 그저 더없이 얌전하고 조용하게 앉아만 있을 뿐 언니에게 보일 수도 있었을 반발감이나 불만의 기미는 털끝만큼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로서는 자매 마르다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할 일이 있었으며, 그래서 언니를 위해 틈을 내거나 언니의 불평에 대꾸할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나의 벗이여, 우리 주님과 이 두 자매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 -그들의 상호작용과 말과 행실은 그때 이래로 교회 안에 출현한, 그리고 심판의 날까지 출현하게 될 모든 활동가와 관상가의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네 삶을 그녀의 살과 조화시켜야하는 관상가들의 전형이요, 마르다는 동일한 입장에서 활동가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