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이 글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어둔밤 19~20장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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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사랑의 신비적 사다리의 단계

- 성 보나벤투라와 성 토마스에 따라서 -

 

 

 

영혼이 한 단계 한 단계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이 사랑의 사다리의 단계는 모두 열 개다.

 

1. 사랑의 첫째 단계는 영혼에게 유익하게 영혼을 병들게 한다. 이 사랑의 단계에 있는 아가서의 신부는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부탁이니 사랑하는 내 님을 만나거든 나는 사랑에 병들었다고 그에게 말해다오" (5:8)라고 한다. 그러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상사병이다. 그 이유는 이 병을 통해 영혼은 죄와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해 바로 하나님 때문에 맥을 못 추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다윗은 "정신의 구원을 기다리다가 내 영혼이 죽었나이다"(119:8)라고 하면서 잘 증언하고 있다. 병자가 모든 음식들에 대한 맛과 식욕이 떨어지고, 다음으로 얼굴색이 변하듯이 이 사랑의 단계에서 영혼은 모든 일들에 대한 욕구와 맛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답게 과거에 젖었던 생활방식과 색깔을 바꾼다. 다윗이 잘 이해시키듯이, 위에서 충분한 열기를 보내주지 않는 한 절대로 이 병에 걸리지 않는다. "하나님, 당신은 단비를 충족히 내리시어 당신께서 주신 메마른 땅을 옥토로 만드셨나이다" (68:9).

상사병에 걸린 영혼이 모든 일에 있어서 맥을 못 추는 것은 하나님께로 가기 위한 첫째 단계이며 기본적인 것인데, 영혼이 관상적 정화의 단계에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어떤 것에서도 기쁨을 찾지 못하고 기델 것도, 위로도, 앉을 곳도 없게 되었을 때 보게 되는 현상이다. 영혼에게서 모든 것을 없앰에 대해 말할 때 이미 충분히 설명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이 단계에서 즉시 둘째 단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2. 사랑의 둘째 단계는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끊임없이 찾게 한다. 아가서의 신부가 사랑의 첫째 단계에서 맥을 못 추게 되었을 때 밤에 자신의 침대에서 신랑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일어나 내 영혼이 사랑하는 그이를 찾으리라"(3:2). 영혼은 다윗이 충고하는 대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는다: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105:4) 영혼은 아가서의 신부가 야경꾼들에게 그분이 어디 있냐고 물은 뒤 즉시 그들을 떠났던 것처럼(3:3-4)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찾는데 그분을 찾을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 역시 무덤에 있던 천사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20:14).

여기 이 단계에서는 영혼이 무척 열심히 올라가는데 모든 것에서 신랑만을 찾고, 오직 신랑만을 생각하고, 오직 신랑에 대한 말뿐이고, 오직 신랑에 관계되는 일만 하는데, 먹거나 자거나 밤을 새울 때나 무슨 일을 함에 있어서도 영혼의 관심은 오직 신랑뿐이다. 이것은 바로 앞에서 말한 사랑으로 인한 초조함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제 영혼이 둘째 단계의 사랑에서 힘을 얻은 뒤 서서히 병에서 회복되면서 즉시 밤에 새로운 정화의 형태를 통해 셋째 단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뒤에서 말하겠지만, 다음의 효과들을 영혼에게 가져다준다.

 

3. 사랑의 사다리의 셋째 단계는 영혼이 일을 하도록 만들고 지치지 않도록 열을 넣어준다. 이에 대해서 왕이었던 선지자가 말힌다. "복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여, 당신 계명은 일에 욕심을 내라고 부추기나이다"(112:1). 사랑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만일 두려움이 이렇게 영혼에게 욕심을 부리라고 한다면 그 사랑 자체는 무엇을 할까? 이 단계에서 영혼이 자기 딴에는 신랑을 위해서 한 일이 시시하다고 여기지만 대단히 커다란 일이며,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만 미미한 정도밖에 안 되고, 하나님을 오랜 기간 동안 섬겨온 것 같지만 매우 짧은 기간이었다. 이러한 것은 영혼 안에서 서서히 타오르는 사랑의 불 때문에 그렇게 여겨지는 것이다. 야곱이 칠 년 동안 종살이를 하고 또 칠 년을 머슴살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짧게 여겨졌던 것은 사랑의 위대함 때문이었다(29:20-30). 피조물이었던 야곱이 사랑 때문에 이렇게 견뎌낼 수 있었다면 창조주의 사랑이 여기 셋째 단계에서 영혼을 얼마나 사로잡을 것인가?

여기에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영혼의 사랑이 엄청나기 때문에 슬픔과 고통이 대단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영혼이 하나님을 위해서 천만 번 자신을 합당하게 버릴 수 있었다면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자기가 한 일이나 생각한 모든 것들이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길 때 오히려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 다른 놀랄만한 효과가 영혼에게 주어진다. 그것은 다른 이들과 자신을 비교해서 자신이야말로 초라하다고 확실하게여기는 것이다. 첫 번째 효과는 사랑이 하나님께 합당한 것들을 영혼에게 가르치고 있다. 두 번째 효과는 영혼이 지극히 높으신 주님을 위해 일하는 방법이 매우 초라하다는 것을 알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한 일들이 많지만 그 일들이 모두 결함들과 부족함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깨닫고, 그렇게 이루어진 일들에서는 혼란과 고통만 얻는다는 것도 안다. 이 셋째 단계에서 영혼은 다른 이들을 단죄하거나 자부심에 빠지거나 자기 자랑을 일삼는 것에서부터 멀어진다. 이런 좋은 효과들은 영혼에게 이와 비슷한 다른 많은 효과들도 가져다준다. 그래서 영혼은 이 단계에서 다음으로 이어지는 넷째 단계로 올라갈 힘과 용기를 얻는다.

 

4. 사랑의 사다리의 넷째 단계는 신랑 때문에 영혼에게 평범한 고통을 주지만 영혼은 지치지 않는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말하듯이, 아무리 무겁고, 심각하고, 대단한 일이라 할지라도 사랑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또한 이 단계에서 아가서의 신부는 마지막 단계를 보기 원하면서 "가슴에 달고 있는 인장처럼 팔에 매고 다니는 인장처럼 이 몸 달고 다니세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시샘은 저승처럼 극성스러운 것, 어떤 불길이 그보다 거세겠습니까?"(8:6)라고 말한다. 이것은 사랑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대단한 힘을 갖게 된 정신은 육체를 잘 제압하고, 나무가 여러 개의 잎들 가운데 하나를 대하듯 육체를 하찮게 여긴다. 여기에서 영혼은 절대로 아무런 위로나 기쁨을 다른 것에서는 물론이요 하나님께서도 찾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은총을 청하려고 애를 쓰거나 원하지 않는다. 이미 영혼이 받은 은총이 대단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고 있으면서, 비록 무척 힘이 든다 할지라도, 자신의 모든 관심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으며, 그분이 주신 은총을 위해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받은 것에 대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잘 섬길 것인가에 심혈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이 때에 영혼은 마음과 정신 안에서 이렇게 외친다: "! 나의 하나님,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당신께 위로와 기쁨을 찾고 있으며, 자신들에게 은총과 선물을 달라고 빌고 있습니까! 그러나 자기가 특별히 힘을 들여서 당신께 기쁨과 무엇을 드리려고 하는 이들은 매우 적지 않습니까! 나의 하나님! 이 잘못은 우리에게 새로운 은총을 주기 원하시지 않는 당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은총을 오직 당신을 섬기는 데 쓰지 않는 우리에게 있사오니, 당신께 청하건대 계속해서 은총을 주시기 바람니다!"

사랑의 넷째 단계는 매우 높이 올라와 있는 상태이다. 여기에서 영혼은 진실한 사랑으로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정신으로 항상 하나님을 따르기 때문에 우리 스승께서는 영혼을 매우 달콤하고 미묘한 영적인 빛으로 비추시면서 영혼에게 여러 번, 매우 특별한 기쁨을 주신다.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거대한 사랑은 자기의 사랑을 받는 이를 돌보지 않거나 그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견뎌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이것을 이렇게 확인해준다: "사막에서 나를 따르던 시절, 젊은 날의 네 순정, 약혼시절의 네 사랑을 잊을 수 없구나"(2:2). 영적으로 말한다면, 여기에서 사막이란 영혼이 아무것에도 머물지 않고 고요하게 되면서 모든 피조물로부터 내적으로 벗어났음을 말하는 것이다. 넷째 단계는 이렇게 영혼을 불로 태우고 하나님을 갈망하도록 더욱 불을 지른다. 이는 다음에서 설명하는 다섯째 단계에 오르게 하려는 것이다.

 

5. 사랑의 다섯째 단계는 영혼으로 하여금 참을 수 없게 하나님께만 매달리고 갈망하게 만든다. 이 단계에서 영혼은 그렇게 사랑하는 신랑을 붙들고 그분과 일치를 이루고 싶은 열정 때문에 짧은 순간의 지체임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이 지난 듯이 지루하고, 괴롭다. 그리고 영혼은 항상 신랑을 찾을 궁리만 한다. 자신의 갈망이 이루어지지 않게 될 때에는 그 열망 때문에 매 순간 맥이 다 빠져버린다. 시편 저자는 이 단계에 대해서 "주님 계시는 곳이 그리워 내 영혼 애태우다 지치나이다"(84:2)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 사랑하는 영혼은 자기가 사랑하는 분을 뵐 수 없다면 죽을 지경에 이른다. 이런 상테를 라헬이 자식들이 보고 싶은 열망을 표현하면서 남편 야곱에게 하는 말에서 볼 수 있다. "자식들을 돌려주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죽을 것이라오"(30:1) 굶주린 개처럼 하나님의 도성에 가까이 다가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다(59:6). 이 굶주림의 단계에서 영혼은 사랑을 실컷 받아들인다. 배가 고픈 만큼 포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여기에서 또 다른 효과들을 가져다주는 여섯째 단계에 오를 수 있다.

 

6. 여섯째 단계는 영혼이 하나님께로 가볍게 달려가도록 하고,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서 많이 어루만져주셔서 맥 빠짐 없이 희망을 가지고 달려간다. 여기에서 영혼을 강하게 만들어준 사랑은 영혼으로 하여금 가볍게 날게 한다. 이 단계에 대하여 다섯째 단계에서 그랬듯이 이사야 선지자(40:21)는 야훼를 바라는 거룩한 사람들은 힘이 솟아나고, 독수리처럼 날개를 지니고 날 것이며, 지치지 않으리라고 한다. 이 단계는 시편(42:1)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영혼이 애타게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갈증을 느끼는 사슴은 날렵하게 물가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영혼이 이 단계에서 갖는 사랑 안에서 날렵해진다는 것은 영혼 안에 사랑이 무척 많이 확산되었기 때문이고 거의 완전하게 정화되었기 때문이다. 시편 역시 이런 상황을 죄도 없이 달렸다고 한다(59:4). 시편의 또 다른 곳에서도 같은 표현이 있다. "당신 계명이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하오니 그 길 따라 내달리리다"(119:32). 이 여섯째 단계에서 이어지는 일곱째 단계가 계속된다.

 

7. 이 사다리의 일곱째 단계는 영혼을 대담하게 만든다. 여기의 사람은 기다리기 위해 판단이 필요 없고, 몸을 숨기라는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고, 부끄러움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주시는 은혜가 영혼을 대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말하듯이 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전 13;7). 또한 모세가 자기 백성들을 용서해주든지, 아니면 손수 쓰신 생명의 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달라고 하나님께 청한 것(32:31-32)은 바로 이 단계에서 했던 것이다. 이렇게 영혼들이 기쁨을 가지고 청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 그래서 다윗은 "네 즐거움을 하나님에게서 찾아라.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시리라"(37:4)고 한 것이다. 이 단계에 있던 아가서의 신부도 대담하게 신랑의 입술로 자기 입을 맞춰 달라고 한다(1:2). 이 단계에서 영혼이 만일 에스겔처럼 자기에게 기울어지는 왕의 내적인 총애를 느끼지 못했다면(5:2; 8:4) 절대로 대담해질 수가 없다. 그래서 영혼은 항상 겸손을 간직해야 한다. 이제껏 올라온 단계들에서 떨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열정으로 하나님께 대담해지도록 이끌어준 일곱째 단계에서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주신이 대담함과 능숙함으로 여덟째 단계로 올라간다. 여덟째 단계에서영혼은 신랑에게 사로잡히고 신랑과 일치한다.

 

8. 사랑의 여덟째 단계는 영혼이 하나님을 꽉 붙들고 놓지 않게 한다. 이는 마치 아가서의 신부처럼 내 마음, 내 영혼이 사랑하는 임을 찾았으니, 나는 그분을 붙들고 놓지 않으리라(3:4)고 하는 것과 같다. 이 일치의 단계에서 영혼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자기 소원이 채워지지만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소원을 잘 채우지만 곧 바로 옛날로 돌아 가버리는데 하나님께서 떠나시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과 일치가 지속된다면 이승에서는 엄청난 영광일 것이며, 영혼에게 주어지는 그 기간은 아주 짧을 것이다. 대단한 소원을 지니고 있었던 다니엘에게 이 단계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셨다: "다니엘아 너의 단계에 머물러라 너는 대단한 소원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10:11). 이 단계에서 이미 완전한 이들의 단계인 아홉째 단계로 이어진다. 그에 대해 다음에서 말할 것이다.

 

9. 사랑의 아홉째 단계는 아주 부드럽게 영혼을 타오르게 한다. 이 단계는 이미 하나님 안에서 사랑의 불로 부드럽게 타오르기 시작한 완전한 이들의 단계이다. 완전한 이들이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성령께서 이들에게 부드럽고 달콤한 타오름을 선사하시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 대하여 그레고리오 성인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눈에 띄게 오셨을 때 사도들은 부드럽고 내적인 사랑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고 한다.

영혼이 이 단계에서 즐기는 하나님의 보배와 풍요로움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많은 책들이 쓰여졌다 할지라도 할 말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라면 뒤에서 약간 말을 하게 될 것이고, 여기에서는 단지 이 순간에서부터 사랑의 사다리의 마지막 단계이며 이미 이승의 삶이 아니라는 열째 단계로 이어진다는 것만을 말하겠다.

 

10. 사랑의 비밀의 사다리의 마지막 열째 단계는 영혼이 온전히 하나님을 닮게 한다. 영혼이 이승에서 살면서 아홉째 단계에 도달한다면 즉시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분명한 현시 때문에 육체에서 떠나게 된다. 그 숫자가 매우 적지만 이런 이들은 사랑을 통해서 완전히 정화되었기 때문에 연옥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이에 대해 마태는 "마음이 깨끗한 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뵙게 될 것이다"(5:8)라고 말한다. 방금 말했듯이, 이 현시는 영혼이 하나님과 온전히 닮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인데, 이는 요한 사도가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요일 3:2)라고 말한 대로이다. 영혼이 하나님과 같은 능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영혼이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이 하나님을 닮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참여를 통하여 하나님이 된다는 것이다.

 

비록 위에서 말한 단계들이 영혼에게 아직은 그렇게 비밀스러운 것은 아닐지라도 여기에서 영혼이 말하는 이 단계는 바로 비밀의 사다리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영혼 안에서 생기는 대단한 효과들로 말미암아 사랑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하나님께 닿아 있는 사다리의 마지막 단계인 분명한 현시의 최종 단계에서는 영혼이 온전히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영혼에게 숨겨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우리의 구세주께서 "그 날이 오면 너희가 나에게 물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16:23)라고 하신 것과 같다. 그러나 영혼이 아주 높은 단계에 있다 할지라도 아직도 그에게 감춰진 것이 남아 있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영혼이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을 온전히 닮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영혼은 사랑과 신비신학(관상)을 가지고 자기 자신은 물론이요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서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사랑은 불을 닮고, 불이 불덩어리의 안쪽으로 타들어가는 특성과 함께 항상 위로 올라가듯이 영혼은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이다.

 

 

거룩한 사랑의 신비적 사다리의 10단계.hwp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