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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에 의해 세워지고, 테레사와 십자가의 요한에 의해 개혁된 가르멜 수도원의 영성은  이 두분의 영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가르멜의 영성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삶에 나타난 영성을 바라봄으로써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본문은 그들의 소ㅓㄴ에 의해 기록된 것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많은 도움이 될 것을 판단하여 여기 올립니다.


가르멜 영성에 나타난 완덕의 삶

 

양상룡, (서울: 기쁜소식), pp.67~84.

 

 

 

완덕을 지향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필수적인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조화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이러한 조화를 이끄는 것이 바로 기도이다. 따라서 기도는 우리 신앙인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첫째 요건인 동시에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올바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에게 기도와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기도가 삶인 동시에 삶이 또한 기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기도의 참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기도와 삶이 일치될 수 없고 따라서 기도는 기도이고 활동은 활동으로 여겨질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기도와 활동의 조화를 결코 찾아볼 수 없다.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요건이며 또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요건이다. 따라서 이렇게 참다운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또한 삶과 활동을 통해서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도하는 영혼이라고 불리는 가르멜 수도자들의 완덕을 지향하는 삶은 어떻게 표출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관상 수도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간혹 어떤 이는 관상 수도자들은 사회와 이웃에 대해 무관심하고 자기만의 성화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기도의 참의미를 깨달지 못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방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그러한 것이다. 그렇다면 관상 수도자들의 완덕을 지향하는 삶, 본장에서는 관상 수도자들인 가르멜 수도자들의 삶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며, 또한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인가를 그들의 수도회 정신을 통해서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1. 가르멜 수도회의 정신적 유산

 

예언자적이며 관상적인 엘리야는 바로 가르멜 수도회 정신과 삶을 이끄는 교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가르멜은 엘리야 예언자를 거울로 보기에 수도회 소명을 "관상하고 관상한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라(Contemplah et contemplationem aliistradere)."라는 순수 관상과 사도직, 즉 은수자적인 삶과 사목적인 삶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가르멜 수도회의 영성은 성녀 데레사의 정신, 특히 성녀의 신비적인 은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기도와 현실적인 관상, 초대 규칙과 성경 말씀을 따르는 삶은 간택된 작은 단체의 형성으로 가르멜의 쇄신의 계획이 이루어졌으며 복음의 '작은 무리'를 본받아 "기도와 엄격한 가난 위에 가르멜 수도회가 1562년에 세워졌다." 성녀는 교회의 삶을 그 시련과 일치에서의 분열, 특히 성체께 대한 모독과 사제직 모독을 제거하려고 신비적으로 통한 내적인 체험을 통하여 가르멜 개혁에 대한 계획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으며 더욱 명확한 뜻을 주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도와 엄격한 생활로 일관된 첫 봉쇄 수녀들의 삶을 통하여 교회 봉사의 한 목표를 삼았다.

성녀는 "만일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고 또 교회를 위하여 살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 모아 주신 그 목적에 보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명심해야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성녀는 남자 앤발 가르멜의 새로운 창립을 제안하였고, 그들의 활동 안에서 가르멜 수녀들의 새로운 사목직의 가능성을 주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신으로 결합한 사람들을 통하여 사목적인 카리스마로 교회가 요구하는 것을 조달해주는 특수한 사목직을 이행하게 하였다. 특히 사목직으로 이 빛을 받은 수도자들을 통해 선교적인 기도의 정신으로 모든 것을 행하고, 관상의 열정으로 준비되고 영적 친밀로써 가르쳐진 남자 수도자들을 통하여 선교 사업에 관여하기를 원하였다. 따라서 가르멜 수녀들은 남자 수도자들을 데레사적인 열성의 정신으로 관상 생활과 사목 생활에서 보호 발전시키며, 이로써 성녀 데레사는 남녀 모든 가르멜 수도회의 삶을 갱신해서 새로이 튼튼한 쇄신의 삶으로 이끌고자 했다. 따라서 가르멜인은 하나님과의 자녀적이요 우의적인 친밀 안으로 인도되는 묵상생활에 불리고 봉사함으로써, 묵상기도로써만이 아닌 삶 전체가 기도가 되도록 불린 사람이다. 그러므로 가르멜 수도자는 교회 봉사를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자신을 연마해야 한다. 이것은 사목적인 지향을 고무함이며 가르멜의 카리스마자체이니 바로 가르멜 수도자의 기도요, 봉헌된 모든 삶의 본질인 것이다. 그리고 수도자들의 교회 봉사는 말과 행동을 통한 필요한 모든 방법으로 일해야 하며 교회의 필요에 따라 각각의 영혼 사정에 따라 봉사에 충실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된 상태에서 이룩되는 사목적인 탁월한 방법을 목표로 삼고, 이러한 모든 것에 힘입어 미온적인 상태에서 행하는 수천 번의 노력보다는 교회 안에서 효과직인 사랑으로 행하는 단 한 번의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가르멜 수도자는 이러한 관상과 실천적인 사목을 완수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형제적인 공동체 삶 안에서 뭉쳐지며 이것을 통해서 정신적인 단합과 행동적인 연대성의 보장하에 교회를 위하여 하나가 됨을 증거하며 형제적인 사랑으로 완덕과 연결시켜야 한다. 따라서 가르멜의 사목 활동은 기도와 관상에 전심함으로써 내적인 데서 우러나온 것이어야 한다. 이렇듯, 가르밀의 사명은 하나님과의 내적인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자신과 이웃의 성화와 가치를 관상적인 방법을 통하여 실천하고 또 증거하는 데 있으며, 이러한 순수 관상적인 삶은 교회의 사도적 봉사와 언제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침묵, 고독, 사막의 삶은 기도 안에서, 현실적인 참 안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만나게 한다. 이 현존의 체험은 바로 이웃과 공동체와 교회 안에서 하나님 백성의 일치를 가져다주며 하나님 안에 일치된 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2. 가르멜 수도자들이 추구하는 완덕의 형태

 

가르멜 수도회의 완덕을 추구하는 모습은 두 가지 정신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1:8; 1:2)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라는 정신과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하나이다"(왕상 19:14)라는 선조 엘리야의 정신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이 두 가지는 관상의 템과 외적인 사도직의 중용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영혼이 하나님과의 일치로부터 섭취되는 영양분은 사도직 증거의 삶에 있어서 복음이 말하는 지혜이고 뿌리이기에 가르멜의 영혼에게 기도는 삶의 바탕이 된다. 여기에 근거하지 않는 애덕이나 사도직은 바로 속화(俗化)되거나 아니면 자기만족과 교만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2.1. 관상의 삶-주님의 법을 밤낮으로 묵상하고 깨어 기도하라

 

이는 개인적의 측면에서 완덕을 추구하는 모습이다. 즉 가르멜 수도자들은 순수 관상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선조 엘리야에게 나타나실 때 크고 강한 바람 속에서도 지진 속에서도 또 불길 속에서도 아닌 고요한 말씀 가운데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다(왕상 19:9-13). 즉 하나님은 고요한 관상가운데 당신을 계시하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과 엘리야의 만남이 우리가 추구하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모습이며 이는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여러 저서와 가르침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성녀 데레사는 인간의 영혼을 일곱 개의 궁방으로 나누어 가장 내밀한 7궁방의 안에 바로 하나님이 계시며 영혼은 그곳에 계신 하나님과 일치되기 위해 자기를 비우고 관상 생활 안에 하나님과 온전한 합일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십자가의 성 요한 역시 이러한 데레사적 영성을 '감각과 영의 정화'로씨 가르치고 있다.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온전히 인간적인 자아로 가득 차 있었으나 불완전한 감각과 영의 정화를 통해 조금씩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자신을 채움으로써 온전히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다는 전()과 무()의 영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무화(無化)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밖에서 찾을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내 안에서 관상 생활과 기도를 통해 그리고 불순물로 가득 찬 자신을 정화시킴으로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완덕을 추구하는 가르멜 수도자들의 삶의 목표는 내 안에 내재하여 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의 체험과 그분과 일치, 즉 신화(神化)의 살을 지향하는 삶인 것이다. 이러한 신화의 삶은 관상 생활, 즉 밤낮으로 주님의 법을 묵상하고 깨어 기도하는 삶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2.2. 사랑을 전하는 삶-나는 살아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 불타 있노라

 

이는 공동체적 측면에서 완덕을 증거하는 삶의 형태이다.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바알의 사제들과 대항해 목숨을 걸고 대결하였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불타는 사랑은 실천적인 것이다. 즉 마태복음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37)는 정신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39)는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22:34-40)이 분리될 수 없듯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하며 또한 이웃 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충실성 안에서 참된 사랑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목숨을 바쳐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15:13)는 예수님의 말씀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이처럼 선조 엘리야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불타는 사랑의 정신은, '사랑을 증거하는 삶의 근간을 이루어 주며 이는 '기도하는 삶'과 더불어 가르멜 정신의 또 다른 토대를 이루고 있다. 즉 가르멜 수도 공동체의 삶을 통해서 요구되는 포기와 이탈에 대한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가르침은 자기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추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에 대한 사랑 안에서 그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집착에서 벗어날 때 이웃과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실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적 삶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이며, 그런 삶을 살 때에만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고 더불어 순교가 가능하다.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결여된 상태에서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조그마한 것도 이웃을 위해 바칠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의 전 존재인 목숨을 이웃과 하나님을 위해 바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르멜 수도자들이 추구하는 기도하는 삶과 사랑을 전하는 삶의 두 가지 형태는 결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있는 삶이 아니다. 매일 매 순간의 삶 안에서 하나님 현존의 체험은 바로 생활 안에서 이웃 사랑이라는 형태로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 체험을 생활 안에서 실천하는 삶이 바로 가르멜 수도자의 삶이며, 이렇게 기도가 삶과 연관되는 살을 살아야 하므로, 가르멜 수도자를 기도하는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다.

 

 

 

3. 가르멜 수도자로서 완덕의 삶을 이루는 근본 요소들

 

완덕을 추구하며, 증거자적 살을 살아야 하는 수도자로서 가르멜 수도자들에게 요구되는 삶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과의 일치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덕들 가운데서도 특히 겸손함, 단순성, 복음삼덕이라고 할 수 있다.

 

 

3.1. 겸손

 

겸손은 내적 삶의 바탕을 이루는 기본 덕이며 또한 모든 덕의 근본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자신의 저서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정화의 첫 단계는 이러한 영혼의 겸손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완덕을 추구하는 영혼이 첫 단계에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자기를 끊고 비워야 하는 고통이다. 그런데 초기 단계의 영혼에게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영혼이 자신의 것을 찾고, 하나님 아닌 피조물에 무질서한 애착을 갖기 때문에 즉 자기를 죽이고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다른 형제의 뜻에 자기를 죽이는 겸손이 부족한 데서 이러한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적 여정의 초심자에게 십자가의 성 요한은 자아 포기, 이탈, 맛있는 것보다 맛없는 것을 택하라고 가르치는데, 이는 바로 영혼이 그러한 정화의 과정을 통해서 겸손을 키우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3.2. 단순성

 

가르멜 영성에서 단순성은 '신뢰''믿음'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소화 데레사의 삶 안에서 잘 엿볼 수 있다. 소화 데레사는 24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았지만, 위대한 성녀가 될 수 있었다. 이는 성녀의 하나님께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성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9년간의 수도생활 그것은 바로 극심한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성녀는 어린이와 같은 단순함을 지니고 그 어려움과 고통을 주님 안에서 이겨 됐다. 성녀는 하나님을 찾는 등반의 비유에서 "나는 어린아이라서 그렇게 험난한 산을 혼자서는 올라갈 수 없어요. 하지만 예수님이 나를 안고 올라가시니 나는 아무 걱정도 없어요."라고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의탁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즉 자신의 기쁨과 즐거움은 물론 고통과 아픔까지도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온전히 하나님과의 합일에로 나아갈 수 있었다.

영혼이 하나님과의 합일의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좌절과 어려움은 영혼에게 커다란 아픔이며 고통의 심연이다. 하지만 성녀소화 데레사와 같이, 영혼이 어린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을 지니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오로지 의탁할 때 영혼은 자기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다.

이러한 소화 데레사의 단순한 삶의 특징은 부자연함, 복잡한 것, 다양한 것 등을 피하는 데 있었다. 즉 성녀는 "나는 여러 가지 책 안에서 이미 아무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복음서만으로 충분합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성덕에 이르기 위해 인위적으로 어떠한 방법을 찾으려 하지 않고 단순히 복음서의 말씀만을 충실히 생활화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성녀는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을 것을 피하고 단순히 복음서만으로 자신의 성덕을 꾸려가기에 충분하다고 보았다. 또한 성녀는 "단순한 영혼에게는 복잡한 방법 같은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영혼의 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즉 성녀는 겸손이 무엇이며, 또 애덕은 어떻게 행하는 것인가 따위를 생각하고 그 방법을 찾으려는 복잡한 과정을 피하고 그저 사랑 안에서 단순히 그것들을 실천해 나갔다.

 

 

3.3. 복음삼덕

 

수도자는 완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정결, 가난, 순명이라는 삼대 서원을 한다. 이 삼대 서원은 육신적으로 온전히 봉헌된 삶, 물질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 하나님만을 찾는 삶, 그리고 자기의 의지를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삶이다. 이러한 삼대 서원은 결국 인간적이고 영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만을 추구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가르침 안에서 이런 포기와 자기 이탈의 삶이 전제되고 있다. 즉 성인은 자신의 저서 가르멜의 산길에서 영혼이 완덕에 이르기 위해 하나님과 합일되기 위한 자발적인 정화(능동적인 정화)를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복음적인 이탈, 고행은 성덕의 첫걸음이다.

 

 

 

4. 완덕의 삶을 증거하는 가르멜의 사목 형태

 

가르멜 수도회의 정신에서 주된 두 가지 사목적 형태는 관상과 활동이라는 면으로 제시될 수 있다. "밤낮으로 깨어 기도하라", "나는 살아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 불타 있노라"라는 엘리야 정신이 성녀 데레사에게서는 "나는 하나님 뵙기를 원합니다" "나는 교회의 딸입니다"라는 데레사적인 카리스마로 요약된다.

그러므로 가르멜 영성은 내적인 삶과 활동, 즉 관상과 활동의 조화에 있으며 따라서 가르멜 수도자로서의 사목적 형태도 피정지도, 고해성사, 영적 상담, 사순 시기나 대림 시기 특별 강론, 또는 성직자 · 수도자 · 평신도 영성의 재교육, 영성신학 연구, 영성 사목을 위한 연구와 실천, 피정의 집 운영 등과 같은 직접적인 활동을 통해 완덕의 삶을 증거하는 형태와 수도 생활 안에서 기도와 희생, 고행과 극기 등을 통해 신자들에게 간접적인 형태로 완덕의 삶을 증거하는 두 가지 형태를 지니고 있다.

 

관상 안에서의 완덕의 증거적 형태: 기도와 포기를 통해 하나님과 일치하고, 기도하는 수도자로서 많은 영혼들을 위해 보속과 대속의 고행으로써 기도의 사도직을 행함.

활동 안에서의 완덕의 증거적 형태: 피정 지도, 고해성사, 강론, 영성 지도, 특별 강론, 피정의 집 운영, 영성신학 연구, 영성 사목을 위한 연구와 실천.

 

이 두 가지 형태의 사목은 역시 결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직접적인 사목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적으로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가르침은 그 힘을 지니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설교라도 설교자의 말이 행위로써 증거 되지 못할 때 그 설교는 힘을 잃게 마련이다. 따라서 완덕의 삶의 증거적 형태가 둘로 구분될 수는 있어도 기도하는 영혼인 가르멜 수도자들에게 관상과 활동이라는 이 두 가지 증거적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가르별 수도자는 관상과 사도직에 부름 받은 영혼들이다. 이 말은 가르멜 수도자는 기도 안에서 하나님과 일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파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가르멜 수녀들은 순수 관상의 삶을 통해 우러나온 교회에 대한 사랑을, 그들의 기도의 사도직으로써 가르멜 수사들을 돕는다. 또한 가르밀 수사들은 자신들이 관상한 바를 가르멜적 정신에 따라 전하고 봉사함으로씨 이웃에 대한 사랑을 증거하며 살아간다. 이렇듯 가르멜 수도자는 관상의 삶과 사랑을 전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만일 가르멜 수도자가 이러한 두 가지 증거의 삶을 살지 못할 때, 그는 진정한 가르멜 수도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도직은 하지 않고 기도만 좋아한다든지 반대로 기도는 하지 않고 사도직에만 온 정신을 쏟는다든지 하는 사람은 관상과 사도직이라는 가르멜 영성의 두 가지 카리스마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사람이다. 따라서 가르밀 수도자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또 기도하고 관상한 바를 이웃에게 전하고 실천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매 순간 이렇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 때 그는 진정한 가르멜 수도자이며 '하나님의 사람'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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